신필순 대표의 이력은 독특하다. 연세대학교 경영학 학사 출신으로 회계 법인에서 근무하던 그는 우연한 계기로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발을 들였다. 업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던 신 대표가 모험을 강행할 수 있었던 데는 배우 배용준의 힘이 컸다. 두 사람은 회계사와 클라이언트 관계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2004년 배용준이 설립한 연예 소속사 'BOF'의 상장 컨설팅, 2006년 BOF를 인수·합병한 '키이스트'의 회계 감사를 신 대표가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신뢰 관계가 형성됐다. 믿음직하고 영민한 신 대표에게 배용준이 먼저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냈다. 키이스트에서 재무관리를 전담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매력적인 엔터테인먼트업계를 더 탐구해보고 싶었던 신 대표는 고민 없이 배용준을 따라나섰다.
신 대표는 키이스트에서 견고하게 내공을 쌓아나갔다. 숱한 영광의 순간을 맛봤고 뼈아픈 경험도 거쳤다. 11년 경험이 지금의 신 대표를 만들었다. 신 대표는 안주하지 않고 최근 새로운 챕터에 돌입했다. 키이스트에서 함께 전성기를 보냈던 배우 김수현과 독립해 신생 엔터테인먼트 '골드메달리스트'를 이끌게 된 것.
이곳엔 김수현을 비롯해 서예지, 김새론, 신인 배우 최현욱, 김수겸, 김승호, 이보영, 조승희,이채민이 소속돼 있다. 업력 1년 남짓에 이름도 생소하지만 신 대표만의 전략과 지향점만은 확실하다. 소속 아티스트의 능력을 사업적 측면에서 발전시키는 것이다.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하지만 그동안 쌓아온 신 대표의 노하우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다. 첫 제작에 나선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흥행으로 일단 성공적인 물꼬도 텄다. 터닝 포인트를 맞은 '전략가' 신 대표의 다음 스텝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회계사 출신의 엔터테인먼트 대표라니 독특합니다. 흔치 않은 케이스죠.(웃음) 회계 법인에서 근무할 당시에 엔터테인먼트사의 회계 감사, 컨설팅 등을 맡았어요. 배용준 씨가 KBS2 드라마 <겨울연가> 성공 이후에 BOF라는 소속사를 설립하고 상장을 준비 중이었는데, 그때 제가 컨설팅을 담당했죠. 친분을 유지해나가던 중에 어느 날 배용준 씨가 키이스트로 와달라고 말하더라고요. 키이스트가 상장기업이다 보니, 사업적 측면에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을 원했던 거죠. 그렇게 2009년 말 키이스트에 합류하게 됐고 지금까지 오게 됐네요.
배용준을 선뜻 따라나섰던 이유가 있나요? 키이스트가 겪었던 시행착오나 내부적인 고민을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역할이 다양해지겠다는 생각을 했죠. 엔터테인먼트업계에 슬슬 재미를 느끼던 시점이기도 했어요. 키이스트의 창립 멤버인 양근환 사장(현 '어썸이엔티' 대표), 배성웅 대표 등 임원진에 대한 믿음도 있었고요. '욘사마' 시절부터 배용준 매니저를 담당했던 분들이라,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잘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돌이켜보면 무모한 선택이긴 했죠.(웃음)
옆에서 본 배용준은 어떤 사람인가요? 이상적인 오너였어요. 직원들에게 일일이 지시하기보다는 권한 이양을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가이드라인은 잡아주되 자율권을 보장해줬어요. 아이디어를 내거나 의견을 제시할 때 설득력을 갖춘다면 유연하게 허용해줬고요. 한마디로 굿 리스너예요. 키이스트가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데는 배용준 씨의 힘이 컸다고 봐요. 덕분에 지금까지도 여전히 형, 동생 사이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키이스트는 배우를 고르는 안목이 좋은 회사로 유명했죠? 캐스팅에 있어서는 양근환 사장의 영향력이 컸어요. 배우 박서준도 양근환 사장의 픽이었거든요. 그 둘은 키이스트에서 독립해 현재 '어썸이엔티'에서 함께하고 있고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배용준 소속사'라는 후광 효과가 컸던 것 같아요. 원칙이 있고 깔끔하며 돈 문제 없는 소속사로 업계에서 상승세를 탄 바람에 좋은 배우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어요.
고난과 희열을 동시에 준 특별한 배우가 있을까요? 김현중이 저에겐 아픈 손가락이에요. 잠재력이 크고 해외에서도 인기가 상당했거든요. 배우로서, 한류 스타로서 보여줄 게 많았는데 사생활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는 완벽하게 재기를 이루지 못했어요. 김현중의 팔로 업을 제가 담당했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지금은 키이스트를 떠나 혼자 활동하고 있는데 오히려 좋아 보이더라고요. 얼굴은 자주 못 보지만 간혹 연락하면서 지냅니다. 주지훈도 한때 부침을 겪었지만 지금은 훌륭한 배우가 돼서 뿌듯하고요. 손담비는 한동안 차기작이 잘 성사되지 않아서 늘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는데 지난해 KBS2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이후부터는 너무 잘 풀려 기분이 좋아요.
소속 배우 외에 꼭 함께 일하고 싶은 배우가 있나요? 이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인데요, 양근환 사장과 친분이 있으니 박서준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웃음) 신인 시절부터 곁에서 지켜본 박서준은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작품을 고르는 능력이 좋은 배우예요. 영화 <청년경찰>을 고를 때도 사실 저는 반신반의했거든요. 그때 박서준이 "저는 버디 무비를 꼭 하고 싶어요"라고 강하게 어필하더라고요. 시사회를 보고 나서는 바로 미안하다고 사과했죠. 개봉 후에 관객이 100만 씩 오를 때마다 계속 사과 문자를 보냈습니다. "형이 정말 잘못했다"고요.(웃음)
키이스트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는데 독립을 한 이유는 뭔가요? 만 10년 경력을 채우고 나니 변화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시점에 군 제대 후 키이스트와 계약이 만료된 김수현이 회사를 떠났고요. 저와는 오랫동안 함께한 인연이 있기 때문에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김수현이 먼저 제안을 하더라고요. 그렇게 김수현을 따라 올해 초 골드메달리스트에 합류했죠.
곁에서 본 김수현은 어떤 아티스트인가요? 천생 배우예요. 평소에는 내성적인 성격인데 카메라가 돌아가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KBS2 드라마 <드림하이>(2011) 때만 해도 철모르게 연기한다는 느낌이었는데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2012) 이후부터는 몰입도가 달라지는 게 확연히 보였어요. 경험치가 쌓일수록 배우일 때의 모습과 아닐 때의 모습이 분리되더라고요. 평상시에는 말수가 적고 술도 못 해요. 가끔씩 엉뚱한 개그를 시도하는데 곁에서 보고 있으면 귀엽죠.(웃음) 무엇보다 마음 씀씀이와 심성이 고운 친구예요.
김수현이 영화 <리얼> 이후에 슬럼프를 겪기도 했어요. 그 시절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데요.(웃음) 사실 <리얼> 개봉 후에 어떤 반응을 느낄 새도 없이 곧바로 입대를 했어요. 제대로 된 군 생활을 하겠다는 본인의 의지가 강해서 수색대에 자원했거든요. 혹독한 군 생활을 하면서 본인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떨쳤던 것 같아요. 쉬어가는 타이밍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여러모로 입대 시기가 잘 맞아떨어졌죠. <드림하이> 때부터 계속 달려왔기 때문에 에너지가 많이 소진됐을 거예요. 본인도 군 생활에 대해 만족해하더라고요. 체질인가봐요.(웃음)
그렇기에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성공이 더 값지네요. 정말 칼을 갈았더라고요.(웃음) 김수현은 항상 철두철미한 배우예요. 딱 하루의 촬영이라도 어울리는 비주얼을 유지하기 위해 몇날 며칠을 준비하거든요. 군 입대 후 첫 작품이었으니 본인도 욕심이 있었을 거예요. 프로는 프로더라고요.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서예지의 재발견이기도 했어요.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였지만, 이 정도로 반응이 좋을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전적으로 역할의 덕을 봤다고 하기에는 서예지가 정말 열심히 준비했거든요. 그 과정을 지켜본 입장에서, 본인의 역량이 크게 작용한 결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희가 기대한 것보다 더 잘해줘서 고맙죠. 배우 서예지의 매력을 알아봐준 시청자들에게도 감사드리고요.
한류에 대한 노하우가 남다르시잖아요. 요즘 한류 시장은 어때요?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때와 비교하자면 지금의 한류 시장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넷플릭스 등의 '글로벌 OTT'가 한류를 전파하는 기본 시스템이 됐죠. 과거에는 국내 시청률만 걱정했다면 이제는 해외 시청자들의 반응을 먼저 살펴요. <사이코지만 괜찮아>도 높은 시청률을 겨냥해 만든 드라마가 아니에요. 하지만 넷플릭스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 그 계기로 서예지는 동남아를 비롯한 해외 팬들이 대거 늘었어요. 넷플릭스가 사실상 콘텐츠의 고속도로를 뚫어준 셈이죠. 요즘 한류 스타는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김수현의 해외 인기는 여전한가요? 아직까지는요.(웃음) 한한령 이후 체감상으로는 줄었지만, 중국에서의 인기는 여전히 건재해요.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흥행한 데는 '김수현 이펙트'도 빼놓을 수 없겠죠.
회계사로 일할 때보다 지금이 훨씬 재미있어요. 변수가 많은 업계지만 지금은 즐길 수 있게 됐어요.
신인 배우를 많이 영입했어요. 기준이 뭔가요? '골드메달리스트'라는 사명에 저희 콘셉트가 담겼어요. '금메달'이 곧 1등을 뜻하는 건데, 배우 중에서 1등은 '주연배우'인 셈이잖아요. 충분히 주연배우로 키울 수 있다는 확신이 들고 그만큼의 잠재력을 가진 신인 친구들을 영입하려고 해요. 키, 몸무게처럼 기준을 계량화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저희 나름대로 감을 통해 선발하는 거죠. 눈빛에서 보이는 똘끼나 카리스마, 주연배우에 걸맞은 오라 등을 봐요. 엔터테인먼트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채민, 조승희가 주목받고 있지만 내년 지상파 드라마에 일부 캐스팅된 다른 친구들도 있으니 두루 관심 주길 바라요.
배우진이 전반적으로 어려요. 4050대 배우 영입 생각은 없나요? 지금 소속된 신인 배우들은 포텐셜이 터질 시기를 감안해 영입한 거라, 비교적 나이가 어린 편이에요. 그렇다고 나이가 어린 배우들만 영입하려는 건 아니에요. 골드메달리스트는 업력이 채 1년도 안 돼요. 이제 막 시작한 소속사라 공격적인 영입을 하기에는 아무래도 능력 미달이죠. 업력을 채워나가면서 장기적인 안목을 두고 배우를 영입할 생각입니다.
소속 배우 위기에 대처하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키이스트에서 사건 사고를 겪으면서 배운 것이 많아요. 그 경험을 녹여 골드메달리스트 소속 배우들에게 종종 교육을 해요. 해당 사건이 왜 일어났으며 원인 제공이 어떻게 됐는지,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말해줘요. 배우들에게 가장 신신당부하는 것은 일이 터졌을 때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회사 입장에서는 상황에 맞는 최선의 선택지를 골라야 하는데 거짓말을 하면 난감해지거든요. 무조건 덮는다고 덮어지는 세상이 아니잖아요. 명백한 잘못이라면 인정하고 정직하게 사과하는 게 정답일 때가 있더라고요.
대표님의 슬럼프는 언제였나요? 김수현의 군 입대 이후 일시적으로 실적이 안 좋았던 적이 있어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지속적으로 준비해야 하는데 생각만큼 잘 안 됐죠. '과연 내가 키이스트 대표이사로 이 자리에 있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배용준 씨가 "어떻게 항상 좋은 일만 있겠어. 이런 일도 같이 견뎌야지" 하면서 독려해줬는데 고마웠어요. 배성웅 대표, 양근환 사장 등 임원들끼리 서로 격려했던 것도 힘이 됐고요. 지금은 각자의 길을 걷고, 각자의 사업을 하고 있지만 제게는 언제나 든든한 지원군이에요. 돌이켜보니 키이스트가 제게 남겨준 것이 참 많네요.
엔터테인먼트 일은 계속하실 거죠? 그럼요. 회계사도 해봤고 군대에 장교로 있으면서 잠시 공무원도 돼봤는데 저는 지금 이 일이 가장 재미있어요. 무엇보다 변수가 많은 업계잖아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잘 풀리는 반면에 상상 이상의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요. 이 업계의 본질이자 속성인 것 같아요. 지금은 이걸 즐길 수 있게 됐어요. 제 적성에도 잘 맞는 것 같아 보람을 느끼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골드메달리스트를 어떤 회사로 만들고 싶나요? 사명의 의미대로 1등 회사로 만들어야겠죠?(웃음) 최고의 배우, 최고의 콘텐츠를 지향하고 싶어요. 이 콘셉트만큼은 확실히 유지해나가는 게 저희의 전략이에요. 골드메달리스트 소속 배우들만의 확실한 색깔을 찾고 차별화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이제 막 시작 단계라 갈 길이 멀지만 열심히 달려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