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사랑 이야기를 할 거예요." 1999년 아이돌 그룹 '티티마'로 데뷔한 김소이는 2년 남짓 아이돌로 활동한 후 그로부터 20년 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해왔다. 음악을 선보였고, 연기를 했으며, 에세이 <소이부답>을 연재했다. 최근엔 제작자이자 각본가로 변신했다. 단편영화 <리바운드>를 통해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 단편 부문에 초청된 것. 김소이가 주인공 '수진' 역을 맡아 연기까지 1인 3역을 한 <리바운드>는 남자친구 '지원(차영남 분)'과 다툼을 벌인 수진이 전 남자친구 '희석(이재민 분)'을 찾아가 과거의 사랑을 찾으려는 모습을 그린다. 그녀는 1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사랑과 이별을 겪는 여자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녀가 하는 이야기의 주제는 하나로 귀결된다. 삶과 사랑이다.
영화 <리바운드>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제가 가장 '찌질했던' 순간을 모티브로 만든 픽션 무비예요. 4년 전부터 머릿속에 담아놓았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죠. 2018년에 출연하기로 했던 드라마가 무산되면서 1년 동안 연기를 하지 못했거든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지 않아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과 배우를 섭외하는 등 3주간의 제작 기간을 거치고 촬영을 시작했어요.
각본가와 제작자의 역할은 어땠나요?
처음엔 버거웠어요. 제작 기간이나 예산을 고려하며 감독과 배우들을 아우르는 게 어렵더군요. 마치 좌뇌와 우뇌가 따로 노는 기분이었는데 김소이답지 않은 모습이었어요.
인간 김소이는 어떤 사람인데요?
시간을 정해놓고 무언가를 하지 않고 컨디션이나 흐름에 맡기는 편이에요. 이번 작업을 통해 체계적으로 창작하는 것을 경험했는데 그 과정이 싫진 않았어요. 모든 창작에는 스트레스가 따르기 마련이고 그게 책임감을 갖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창작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어요?
많이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 김소이 안에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고 해요. 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는' 시간을 가져요. 요즘 넷플릭스에 중독돼서 항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켜놓으니까 사색하는 시간이 줄었어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죠.
자신을 탐구하는 시간이네요.
버스를 타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을 좋아해요. 그럴 때 아이디어나 하고 싶은 이야기, 해야겠다는 의지 같은 것이 툭 하고 튀어나와요. 때로는 샤워를 하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도 있어요.(웃음)
요즘엔 무슨 생각을 해요?
어떻게 나이를 먹을까에 대한 것이요. 늙는 게 아니라 나이가 잘 드는 방법요. 무슨 차이냐고요? 나만 옳다고 생각하면 늙는 거 같아요. 그래서 매일 내가 어떤 상황에서 독선적이진 않았는지 자기 검열을 해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그른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연습을 하고요.
혼자 사색하다 보면 외로울 것 같아요.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도 '멍 때리며' 생각을 하기도 해요. 저는 '얼론 투게더(Alone Together)'를 좋아하거든요. 그러니까 같이 또 따로, 따로 또 같이하는 그런 상황이 편해요. 그와 별개로 저는 항상 외로워요.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 친구와 함께 있어도 외로운 순간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결혼을 하고 싶진 않아요. 외로우니까 결혼해야 한다는 것은 사회가 우리에게 주입한 생각이라고 여기거든요. 물론 가정을 꾸리는 것은 아름답고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언제부터 '인간은 항상 외롭다'라는 생각을 했나요?
20대에는 외로움이라는 감정 때문에 괴로웠고, 30대가 돼서는 현실에 겨우 발을 디뎠어요.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조금씩 저 자신을 알아갔고 외롭다는 것을 인정했죠. 외로움, 고독, 감정의 기복은 평생 함께하는 동무라고 받아들이고 나니 개운해지더군요. 이런 게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인 것 같아요.
나이 들수록 '나'에 대해 알게 되죠.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게 되니까 저 자신이 편안해지더라고요. 언젠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모습도 편안하게 바라봤으면 해요. 자기혐오를 떨치는 것은 어렵겠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자연스럽게 여기며 나이 들고 싶어요.
언제 자신이 가장 미워요?
제가 정해놓은 기준에 다다르지 못할 때요. 반대로 자연스러운 나의 모습이 좋아요. 예를 들어 친구들과 깔깔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김소이나 여름에 빈티지 숍에서 산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바이크에 앉아 서촌 일대를 돌아다니는 김소이가 좋아요. 여름과 빈티지 꽃무늬 원피스, 바이크를 사랑하거든요. 특히 빈티지 꽃무늬 원피스를 사랑해서 해외여행을 가면 꼭 로컬 빈티지 숍에 가요. 들어서자마자 꽃무늬 패턴이 있는 곳으로 향하죠.
그런 성향이 편안한 분위기로 드러나는 것 같아요.
저만의 카오스를 좋아하고 거기에서 영감을 얻어요. 그래서 체계적인 게으름을 즐겨요. 일종의 저만의 시스템인데, '체계적'으로 늘어놓고 풀어지는 거죠. 이런 것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예전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했는데, 이젠 기본적인 훈련이나 교육 과정, 체계가 필요할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멍 때리며' 생각하는 것을 좋아해요.
요즘엔 나이를 잘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독선적이지 않고, 꿈꾸고 사랑하는, 어른 여자요.
연애할 땐 어때요?
사랑을 하는 스타일이라 연애를 잘 못해요. 20~30대에는 지독하게 사랑했고 힘들게 연애했어요. 그때의 경험이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었죠. 그런데 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편안해지니 이젠 연애를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을 믿고 사랑해야 타인과 사랑도 잘할 수 있거든요. 누군가의 사랑으로 나의 빈 공간을 채우려고 하면 모든 것이 어긋나더군요. 진부한 말이죠? 하지만 진부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만큼 어렵기 때문인 것 같아요. 클래식이 영원한 이유가 있겠죠.
김소이가 그리는 사랑은 어떤 모습인가요?
예전엔 불타는 사랑을 하고 싶었는데 이젠 안정적이고 싶어요. 모든 것이 안정적이지 않은 세상이니까 사랑만이라도 안정적이면 좋겠어요. 어느 날 권태기가 오고 관계가 지루해지면 "우리 같이 지루하자"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꿈꿔요. 일상이 녹아드는 사랑을 하고 싶고, 이야기로 만들고 싶어요. 평범해 보이지만 모든 순간은 의미가 있고 특별하거든요.
모든 것에 열정적인 것 같아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꿈요. 꿈은 제게 가장 큰 상처를 줬지만 또 가장 많은 힘을 줬어요. 나이가 들수록 현실에 부딪히면서 꿈이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포기하진 않을 거예요. 꿈이 꼭 이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꿈을 꾸면서 달성하려고 노력하면 언젠가 그 모습이 돼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꿈에 대해 말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여요.
진정한 행복을 느끼려면 조금 더 노력해야 돼요. 모든 행복에는 끝이 있고 행복함의 끝은 슬픔이라고 생각해요. 다시는 그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슬프잖아요. 그래서 저는 행복의 점수를 짜게 매겨요. 행복한 순간은 많았지만 아직까지 완연한 행복은 느껴보지 못했어요.
사랑, 꿈, 행복에 대해 말하는 김소이의 눈은 반짝거렸다. 행복해지는 방법을 모르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분명히 완연한 행복을 마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