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잡한 홍대 앞 가톨릭청년회관의 옥상 문을 열면 텃밭에 탐스럽게 열린 빨간 딸기가 반갑게 손님을 맞이한다. '원래 딸기는 오뉴월이 제철이지…'라고 새삼스레 인지한다. 여성환경연대 소속의 텃밭 코디네이터 이보은 씨와 홍대다리텃밭의 멘토 박정자, 하정미 씨는 입을 모아 지금은 '딸기가 익는 계절, 완두콩이 열리는 계절'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단순히 자급자족의 의미를 넘어 새로운 도시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도시 공동체 텃밭(커뮤니티 가든) 사람들을 만났다.
지속 가능한 녹색 도시를 꿈꾸는 공동체 텃밭
높이 솟은 빌딩 사이에 완두콩, 비타민, 상추, 가지, 당근, 허브 등의 이파리가 해바라기하며 자라는 홍대다리텃밭. 사람들로 붐비는 홍대 거리가 무색할 정도로 옥상은 초록빛이 전하는 여유로움에 숨통이 탁 트인다.
이곳은 공동체 텃밭 조성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이보은 씨와 텃밭을 운영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텃밭 멘토 박정자 씨가 작년에 단장한 텃밭이다. 도시 공동체 텃밭은 도심에서 개인적으로 농사짓거나 주말농장의 도시 농업과 견줘 약간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땀 흘려 건강한 먹을거리를 재배한다는 성취감과 안전한 식량 확보, 안정적인 식량 공급으로 오일 마일리지가 줄어들어 환경을 보호하는 등 큰 맥락은 같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도시 공동체 텃밭은 비록 소수가 참여하지만 이웃 간의 소통으로 강한 연대감을 갖는다. 도시 공동체 텃밭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 시애틀의 P-patch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지역공동체 활성화에 목적을 두는 '커뮤니티 가든', 저소득층의 소득 창출을 위한 '마켓 가든', 지역 학교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가든’을 통해 청소년층과 저소득층 등 지역사회 문제를 농사로 해결한다. 2007년부터 3년간 아이들에게 텃밭 교육을 진행했던 이보은 씨는 공부에서 꼴찌 하는 아이가 농사지을 때는 우등생으로 바뀌어 자신감을 되찾아가는 모습을 보고 흐뭇했다. 또한 박정자 씨는 귀농하지 않아도 도심에서 농부로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도시 공동체 텃밭이 활성화된다면 코디네이터나 멘토를 양성해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에 의미를 둔다.
나눔과 소통의 거리를 좁혀주는 도시 농업
2010년 일본에 갔던 이보은 씨는 토종 콩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젊은이들이 마을 곳곳에 콩을 심어 두부 가게에 팔기도 하고 직접 콩으로 음식을 만들어 팔기도 하는 것을 눈여겨봐두었다. 도시 공간을 재생시키고 변화를 일으키는 일본의 청년들을 보고 벤치마킹한 것이 2010년에 시도한 ‘문래텃밭’이다. 문래동은 철공 기술자와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공존하는 곳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낮에 일하는 철공 기술자들과 밤에 작업하는 예술가들 사이에는 소통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은 큰 변화가 생겼다. 삭막한 철공 단지에서 작은 텃밭을 중심으로 텃밭 부흥회, 옥상 부엌 파티, 김장 잔치 등이 열릴 정도로 주민들의 교류가 활성화된 것이다. 문래텃밭을 토대로 젊은 층이 많이 사는 홍대 지역의 가톨릭청소년회관에 ‘홍대다리텃밭’을 작년에 열었고 올봄에는 합정동에 위치한 카페 무대륙 옥상에 '대륙텃밭'을 개장했다. 평균 4~6명으로 구성되어 홍대다리텃밭은 9팀이, 대륙텃밭은 30팀이 텃밭을 일구고 있다. 빠르게 돌아가는 도시의 삶에서 자연의 속도에 맞춘 여유로운 삶을 동경하고 환경과 먹을거리를 고민하는 30대가 주를 이룬다. 그래서인지 각자 일하는 분야가 달라도 이곳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친밀도는 더욱 단단해진다. “농사짓는 것에 성취감을 느끼는 것은 물론 텃밭을 함께 일구는 사람들과 만나고 싶어 자주 와요.” 채소를 키우고 싶어 하던 찰나 집 근처에 홍대다리텃밭이 있다는 것을 알고 도시 농부가 된 하정미 씨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즐거워 텃밭 멘토가 되었다. 단순히 작물을 재배하는 것을 넘어 공동체 텃밭은 커뮤니티의 장소가 된다. 그리고 교류의 장은 작물 재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시형 장터인 '마르쉐@'로 확장된다. 여성환경연대와 패션지 <마리끌레르>, 아르코미술관의 공동 주최로 열리는 '마르쉐@혜화동'에는 도시 농부와 요리사, 아티스트가 참여한다. 농부들은 소비자에게 농산물을 건강하게 키우는 과정을 소개하고, 요리사들은 지역 농민들의 유기 농산물을 확보해 건강한 맛으로 교감한다.
건강한 흙만 있다면 나도 도시 농부
커피 자루, 가죽 가방, 장독대 뚜껑, 채반 심지어 캐리어까지 개성 넘치는 흙주머니가 흥미롭다. 배수가 잘되게 구멍을 뚫어주면 특별히 텃밭 상자나 화분을 구입할 필요 없이 재활용이 가능하다. 다만 키우는 작물에 따라 크기를 고려해야 한다. 감자나 비트, 당근 같은 뿌리채소는 깊이가 깊은 것을 준비해야 한다. 흙의 깊이가 얕고 증발이 빨라 매일 물 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물은 100% 빗물을 받아 활용한다. 중요한 것은 흙이다. 건강한 식재료는 건강한 흙에서 자라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비료를 만드는 작업에 힘을 쏟는다. 큼직한 대야에 흙을 넣고 솎아낸 잡초나 집에서 가지고 온 칼슘이 풍부한 달걀 껍데기를 뿌려 습도와 온도를 맞춰 비료를 만든다.
직접 기른 야들야들한 상추와 고추를 따서 바비큐 파티를 하는 것은 도시인들의 로망이다. 멀리 가지 않고 베란다나 옥상, 앞마당 등에서 소소하게 시작해보고 싶다면 매달 1. 3주 토요일에 홍대다리텃밭에서 열리는 수업을 참관하거나, 궁금한 점이 있다면 여성환경연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문의하는 방법이 있다. 박정자 씨는 채소 재배 정보가 담겨 있는 블로그 '올빼미 화원', 유기농 채소를 기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유기농 채소 기르기 텃밭 백과>를 추천하면서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채소와 과일을 살펴보면 물이 필요한지 햇빛이 필요한지, 영양분이 필요한지 눈에 다 보입니다. 때가 되면 잎이 자라고 열매를 맺으니 도시의 시간에 맞추지 말고 자연의 시간에 맞춰 텃밭을 가꾸세요.”
가톨릭청년회관 3층 베란다에서 키우는 각종 허브와 특수 채소는 건강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선보이는 '수카라'와 '카페 슬로비'에 납품한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서 재료를 받아 오니 오일 마일리지는 0이고, 얼굴을 맞대며 거래하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신뢰로 인해 생산자는 더욱 신경을 써서 작물을 키우게 된다. 소비자인 레스토랑에서는 건강하고 신선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 수 있을 것이며, 생산자인 여성환경연대에서는 이익이 창출되어 텃밭 유지는 물론 장기적인 발전에 힘을 쓸 것이다. 홍대다리텃밭과 대륙텃밭에서 기른 채소는 '메이드 인 마포(made in mapo)' 브랜드로 곧 출시되는데, 반응이 어떨지 기다려진다.
번잡한 홍대 앞 가톨릭청년회관의 옥상 문을 열면 텃밭에 탐스럽게 열린 빨간 딸기가 반갑게 손님을 맞이한다. '원래 딸기는 오뉴월이 제철이지…'라고 새삼스레 인지한다. 여성환경연대 소속의 텃밭 코디네이터 이보은 씨와 홍대다리텃밭의 멘토 박정자, 하정미 씨는 입을 모아 지금은 '딸기가 익는 계절, 완두콩이 열리는 계절'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단순히 자급자족의 의미를 넘어 새로운 도시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도시 공동체 텃밭(커뮤니티 가든) 사람들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