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친절남
제프 할모스는 뉴요커의 기준으로 볼 때 자신의 스타일은 아주 무난한 편이라고 말한다. 반면 서울 사람들의 스타일은 인상적이라고. 딱잘라 말하긴 힘들지만 클래식하지만 좀 더 슬림한 실루엣이란다.
아직 당신의 브랜드를 잘 모르는 한국 독자들도 있을 텐데, 소개 좀 부탁한다.
샘 시플리(sam Shipley)와 난 약 5년 전에 남성을 위한 캡슐 컬렉션을 첫 번째로 발표했다. 한 남자가 일주일간 여행을 떠날 때 수트 케이스에 챙겨야 할 아이템들을 콘셉트로 잡았다. 거기에 우리 브랜드의 핵심 요소들을 섞어 균형을 이루고, 더 필요한 것들을 덧붙여 나갔다. 그 첫 컬렉션을 아직도 매일 머릿속에 떠올린다. 그 후 우리는 옷뿐 아니라 신발, 넥타이, 벨트, 선글라스, 양말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망라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또한 작은 규모의 출판도 하고 있는데, 프린트물, 책, 포스터는 물론 아트워크도 좀 있다. 결국,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맞춘 브랜드가 되었다. 남자들이 뭘 입을지뿐 아니라,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까지 고려해 제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둘 다 패션 전공이 아닌데, 어떻게 처음 둘이 만났고, 패션 디자인을 하게 되었나?
1998년이니까 약 13년 전 콜로라도 주립대학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다. 학창 시절 다른 친구들과 같이 트로바타라는 의상 디자인 브랜드를 시작했다. 샘은 회화 전공이었기 때문에 아트 디렉션과 룩북, 그래픽 등등을 맡았고, 난 금융 쪽이었기 때문에 회계, 세일즈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그 브랜드를 몇 년 같이 하다가, 나중에 따로 둘이서 시플리&할모스를 시작한 것이다. 우리 둘 다 디자인 스쿨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배움의 연속이었다.
왜 패션 쪽을 선택한 건지?
어쩌다 보니 이 일을 하고 있다고나 할까? 하하. 트로바타는 그냥 학교 프로젝트 같은 것이었는데 잘 풀려서 결국 시플리&할모스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패션을 좋아하고 관심이 있으며, 의상을 디자인하면서 스토리 전달에 치중한다. 일례로, 패션 위크에 참가해보긴 했는데, 우리의 관심사와는 거리가 있어서 그만두기도 했다.
홈페이지를 보면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특히 제품마다 이름을 붙인 게 참 재미있었다. 아이템 작명법이 따로 있나?
남자들의 여행을 콘셉트로 했기에 세계 각국 도시의 이름이 적합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아이템이 다양해지면서 더 이상 도시 이름들을 찾는 게 힘들어졌다. 우리는 늘 친근함을 강조하는 브랜드이기에 친구의 이름이나 다른 사람의 미들 네임, 할아버지의 이름 등을 그냥 쓰기도 한다. 하하하.
그러면 아이템 이름에 특별한 감정이나 애착이 있나?
아주 가끔은 그럴 때도 있다. 어떨 땐 그냥 ‘이름이 필요해, 아무거나 쓰자’ 식이다. 하하.
이것저것 관심사가 많은 거 같은데, 디자인을 할 때 영감은 어디에서 얻나?
어떤 디자이너들은 시즌마다 아주 장황한 테마를 정하고 컬렉션을 이끌어간다. 예를 들면 ‘에베레스트 등정’이나 ‘갈라파고스 군도에서의 스쿠버다이빙’ 등 말이다. 우린 그런 걸 지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생활에서 관심 가는 것부터 시작한다. 디자인이 예쁜 의자, 스니커즈, 영화 장면 등. 우리의 생활에서 흔히 보는 것들 위주다. 결국은 우리 둘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우리 제품을 고를 남자들이 원하는 걸 고안해내는 것이다.
출판도 하고 있는데, 주기적으로 패션을 다루는 책을 낼 계획은 없나?
만일 한다고 해도 보나마나 라이프스타일 관련 책이 될 거 같다. 주기적으로 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우린 더 작은 규모의, 예를 들면 오래 남을 수 있는 하드커버 책을 내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책에는 아날로그적인 촉감이 있고, 간직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잡지는 보고 버리는 성격의 출간물이라서. 우린 읽고 또 읽고 대물림할 수 있는 전통적인 책이 더 관심이 간다.
새로운 프로젝트는?
당장은 없다. 사실 우리는 아주 진지한 비즈니스 마인드는 아니라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때그때 뚝딱 진행하는 편이다. 그래서 ‘1월에 출간, 2월에 출간’ 식으로 스케줄 압박이 있는 걸 싫어한다. 보통 ‘이야 이거 정말 근사하고 좋다’는 아이템이 나타나면 바로 진행해 버린다. ‘다음엔 뭘 하지?’ 하면서 쥐어짜내는 건 지양한다.
향수라든지 초콜릿 바 디자인 등 독특한 프로젝트들도 많이 해본 것 같은데, 가장 마음에 드는 게 있었다면?
난 단 걸 아주 아주 좋아하는 편이라서, 그 초콜릿 프로젝트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하하. 향수 프로젝트도 아주 인상 깊었는데, 향수를 만들 때는 뭔가 과학적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어려운 프로젝트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아 나 이 냄새 좋아’라고 말하지, 실제로 그 향이 어떤지 구구절절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워한다. 우리는 평소에 시각과 촉감만으로 디자인을 하는 데 반해, 후각은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기에 너무 재미있었고, 이런 식의 참신한 프로젝트를 또 해보고 싶다.
이런 신나는 프로젝트가 조만간 또 있나?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은 좀 더 간단한 편인데, 우리 홈페이지의 일부를 업데이트하는 게 그중 하나다. 블로그 형태에 가까운 섹션인데, 우리의 영감의 원천이 무엇인지 볼 수 있다. 아마 아카이브 성격이 강할 거다.
디자이너 혹은 업계 종사자 말고 다른 부문의 사람들까지 통틀어 롤모델이 있다면?
마크 제이콥스는 자신의 디자인에 유머를 싣는 것이 마음에 든다. 마르지엘라는 그 반대의 묘미가 있다. 항상 창의적이고 독자적인 뭔가를 뿜어내는 것, 그게 좋다. 패션 말고는 제품 디자인과 기능 구현 모두에 의의를 둔 애플. 유용한 제품을 만들면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브랜드 우선주의가 마음에 든다. 그리고 개인적인 롤모델 중 하나는 바로 우리 아버지다. 패션에는 전혀 조예가 없지만, 항상 옳은 결정을 하는 법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주신다.
디자이너로서 커리어 목표라든지, 현재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있나?
우리의 관심사를 표현할 수 있는 소통 창구라는 점에서 브랜드에 만족을 느낀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오늘은 이걸 진짜 만들고 싶어’라 느끼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말이다. 훗날 우리 회사가 디자인 에이전시로 발전해서, 물론 의상 컬렉션을 주로 하긴 하지만, 우리 고객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여러 제품군들을 디자인하고 만들어내는 회사가 되었으면 한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나씩 쌓아가고 이루어 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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