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당신이 말한 바
당신. 지금의 나를 채워 준 당신. 미욱하게 불혹의 나이에 이른 내게, 세상 이치를 조금은 깨달을 수 있도록 귀한 언명을 주었던 당신. 그리하여 당신은 우수로 꽉 찬 가을빛이 뚝뚝 떨어지는 경복궁 돌담길을 걸으며 이렇게 말했었다. 아버지란 그런 존재여야 한다고. 무언가를 강요하는 법이 없었던, 그저 낙관과 열정과 유머로 똘똘 뭉친 자신의 삶으로 직접 증명하며 끊임없이 자극을 줄 뿐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이른바 ‘폴 스미스식 스타일’이 창조될 수 있었다고.
지금으로부터 꼭 4백 년 전, 남미 대륙에 첫발을 내딛은 포르투갈인들에게 ‘1월의 강’이라는 시적 오해를 불러일으킨 리우데자네이루. 코파카바나의 무수한 해안선이 겹치고 겹쳐 마치 속리산 문장대에서 바라본 백두대간의 오묘한 자태와 중첩되었던 그 풍광이 내려다보이는 22층 펜트하우스에서 당신은 또 말했었다. 백수(白壽)를 넘어 백 살, 기원지수(期願之壽)에 이른 당신을 취재하기 위해 세계 20여 개국에서 몰려든 언론인들의 틈바구니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에게 넌지시 다가가다 멈칫, 내게 찡긋 윙크를 날리며 던졌던 그 말. 지금껏 이야기 나눴던 어려운 테제들 따윈 다 잊어버리라고. 아름다운 여성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기쁨은 세상 모든 것들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느냐며 소년처럼 눈을 반짝이던 당신. 오! 위대한 도시 브라질리아와 뉴욕 UN빌딩, 알제리 콘스탄티니 대학을 설계한 그 거장 오스카 니마이어의 쫄깃한 육성이라니.
또한 당신은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진중권’이라는 이름 석 자에 돋을새김된 편견 따위는 단 5분 만에 저 멀리 날려버린 당신은, 소형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이라는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 필리핀에 상주하며 ‘어린왕자’의 눈망울을 습득한 당신은 이른바 ‘지적유희’의 짜릿함에 대해 논했다. 신학자와 대비되는 예술가. 즉 자기희생과 금욕이 아닌 유희와 금기 깨기를 통해 ‘놀이의 지대’로 진입한다면 세상사가 참 쉬워질 거라는 지극히 미학적인 콘셉트.
그리하여 당신은 또한 박웅현. <스콧 피츠제럴드 단편선>의 ‘풍요로움 속의 불안감’에 미묘하게 흔들렸던, 젊은 시절의 미망을 새삼 되새기게 했던 당신만의 그 고전관. 지금 이 슬픔과 애욕은 나 혼자만 겪는 게 아니라는 것, 오랜 세월 도저하게 흘러내려온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리하여 수백 년 동안 검증된 고전을 선택하는 행위에는 실패가 있을 수 없다는 그 단호한 단정. 그리하여 연필을 비스듬히 쥔 채 흘려 쓴 ‘만물은 서로 의존하는 데에서 그 존재와 본성을 얻는 것이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여 당신은 특유의 낙낙한 표정과 그저 ‘프리’라는 단어만이 맞춤한 몸놀림으로 이렇게 말했지. “지호야, 아메리카노에 보드카 타서 먹어봤니? 딴 데 가서 찾지 마. 인생의 오묘함은 바로 이 안에 있단다.” 예술가 특유의 묘한 까칠함이 주변을 맴돌고, 그 까칠함이 섬세한 촉수를 뻗쳐 사소한 일상의 풍경을 독특한 추상의 세계로 이끌며, 결국 그 추상마저 넘어서 우주 수준으로 맴도는 거대한 단어들의 향연과 마주치던 그 순간.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스무 살은 스무 살을 살 뿐이니, 내일 무언가가 되기 위해 오늘의 즐거움을 포기하지는 말자던 당신. 그 무수한 단어의 편린과 조우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해 김창완, 당신과 마주한 그 자리를 결국 파하지 못했었다.
마지막으로 당신. 잡지라는, 여전히 매혹적이고 여전히 정체를 알 길 없는 그 깊은 심연을 특유의 낙관과 직관으로 20년 가까이 관통해온 당신. 2년 차일 때는 2년 차만큼, 10년 차일 때는 10년 차만큼 최선을 다하는 게 ‘제대로’ 하는 거라고 늘상 강조해오던 당신. 잡지를 만드는 힘은 날선 촉수와 감각이기도 하지만, 진정 중요한 건 경험과 진정성과 통찰력이라고 밑줄을 긋듯 힘주어 강조하던 당신은 넘지 못할 시간의 벽을 붙잡고 좌절할 시간에 공부나 열심히 하자는 낙관을 지금껏 주변에 흩뿌려왔다.
그 낙관의 힘으로 간다. 후회 없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P.S. <아레나> 한국판을 창간한 산파이자, 7년간 대한민국 최초의 남성 패션지라는 고고한 명성을 지켜온 안성현 편집장이 영전하였다. 보다 높은 위치에서 <아레나>를 관리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매체 창간까지 총괄하게 되었다. 업계와 독자들에게 드리워진 그 거대한 자취를 어떻게 따를 수 있을까, 고민하기보다는 그저 낙관하기로 했다. 그녀의 확신에 가득한 음성이 그리울 때면 곧바로 달려가 말을 걸고(영전했지만 그녀의 자리는 멀지 않다), 그 답을 듣기로 했기에. 당신 또한 그럴 것이라 믿는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