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틀넥 스웨터·검은색 코튼 셔츠·회색 베스트·짙은 보라색 더블브레스트 재킷·어두운 캐러멜색 팬츠·갈색 레이스업 슈즈는 모두 프라다, 동그란 선글라스는 헨리 홀랜드 by 옵티컬W 제품.
원래 이렇게 웃긴 사람인가?
유쾌한 거 좋아한다. 처음 보는 사이에 어색해서 좋을 게 뭐가 있겠나?
술자리도 자주 가겠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더 좋아한다. 술을 제대로 먹은 건 대학교 들어와서가 처음이었으니까.
고등학교 때는 안 마셨나?
고3 때 백일주가 처음이었다. 독서실에서 먹다가 쓰러졌다. 집에도 못 가고 거기서 자고, 토하고 장난 아니었지. 근데 아침에 일어나서 교회 갔다. 옷에 발자국, 토사물 다 묻히고.
회개하셨네.
그때는 교회를 참 열심히 다녔다.
유부남이더라. 왜 그렇게 빨리 결혼했나?
와이프가 좋아서. 미쳤었지. 하하하.
왜 남자들은 나이를 먹어도 철이 안 들까? 정말 죽기 직전에야 드는 걸까?
다 그렇지 않나? 아버지들도 그러잖아. 아직도 우리 아버지는 술 마시고 들어오셔서 엄마한테 혼나신다. 남자는 70세 넘어서도 다 그러고 산다. 나는 나이 먹어도 계속 철없이 살 것 같다.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직업적으로 성공해서 사는 건, 철든 남자의 모습 아닌가?
사람들 기준으로 봐서는 그렇지만, 와이프 기준으로 봤을 때는 아직도 철이 없는 거다. 그냥 덩치 큰 애 같다고 한다. “아, 밥 줘. 아, 싫어.” 이렇게 생떼 쓰고, 아직도 세탁기 어떻게 돌리는 줄도 모르고. 하하.
그럼 집안 일 안 하나?
다행히 요즘은 바빠서 못하고 있다. 가끔 짜증날 때가 촬영 열심히 하고 집에 일찍 들어왔는데 분리 수거할 쓰레기 같은 게 쌓여 있을 때다. 아, 야구 보고 싶은데 말이지.
야구는 무슨 팀 좋아하나?
LG다. 며칠 전에 LG 경기에 시구하러 갔었다. 비 와서 우천 세리머니 하고 왔다. 비 오는 날 세리머니 한 건 내가 최초라고 하더라.
연기는 어쩌다 하게 된 건가?
무대 위에서 조명 받는 게 너무 좋았다. 영화제에서 배우들이 턱시도 입고 나오는 것도 멋있었다. 특히 임성민은 너무 멋있었다. 그래서 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롤링페이퍼 같은 거 쓰면 ‘더스틴 호프먼 같은 배우가 돼라’ 그런 글이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배우 하고 싶다고 떠들고 다녔었나 보다.
30대 후반이다. 그 나이 남자들은 뭘 하고 노나?
주변 친구들을 보면, 백수도 있고, 아직 연기하는 애도 있다. 데뷔 준비하는 친구, 뮤지컬 하는 친구. 모이면 다 똑같다. 옛날 생각하며 당구 치고, 골프 칠 때도 있고. 그리고 술이지. 소주 마시러 다니고 그런다.
그럼 40대를 맞이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아직 마흔이 아니라서 모르겠다. 서른이 될 때만 해도, ‘와, 이제 어떻게 살지?’ 그랬는데, 이제는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자 그런 마음이다. 서른 될 즈음에는 자기 일에 목표 정도는 있어야 하고, 어디서도 인정받을 만큼은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근데 마흔이 되면 입지를 굳혀야 하는 나이가 아닐까?
<신사의 품격>은 새로운 40대를 보여줬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의 40대와는 괴리가 크다.
젊은 친구들이 말하길, <신사의 품격>에 나오는 40대처럼 남한테 손 안 벌릴 정도의 물질적 능력을 갖추고, 오랜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는 40대가 되고 싶다고 하더라. 하지만 친구들과 오랫동안 어울리려면 평등해야 한다. 누구는 많이 벌고, 누구는 못 벌면 서로 열등감도 느끼고 멀어지게 마련이다. 취미도 공유하고, 시간이 남아돌아서 매일같이 어울리는 게 가능하겠나?
결국 20, 30대 남자를 위한 판타지란 건가?
그렇지. 드라마에서는 직장 고민도 없고, 애 낳으면 어떻게 되나? 연봉은 얼마나 올려야 하나? 그런 생각 안 하니까. 드라마 속 남자들은 돈도 많겠다. 차 끌고 다니면서 누가 야구 하자고 하면 야구 하고, 당구 치자면 당구 치고, 양주 마시고, 피곤한 기색도 별로 없고. 사랑 논평 따위나 하고 있고. 그런 생활을 젊은 친구들이 부러워한다. 그렇게 살고 싶다고 한다.
악역도 많이 했다. 그런데 당신은 악역을 해도 밉지가 않다.
생존 전략이었다. 이유 있는 악역을 만들었다. 그 사람이 왜 악역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중점을 맞춰 연기했다. 혼자 고민할 때도 악랄하게 하는 게 아니라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연기를 조율한다. 조금씩 말이다. 시선도 냉소적이기보다 아련할 때가 있다. 그런 이미지들이 쌓이다 보면 사람을 죽여도 관객들은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전략이다.
스스로 신사답다고 생각한 적은 있나?
별로. 먹고살기 바쁘다. 그런 건 품위 유지할 만한 사람들이나 가능하지. 품위 유지할 게 뭐가 있나? 시간도 없는데.
무명 생활이 길었다. 어떻게 버틸 수 있었나?
부모님이 있으니까. 집 있고 밥은 먹여주니까 버틸 수 있었다. 한 달에 30만원을 벌어도 밥 먹고, 지하철 타고, 선배들한테 술 얻어먹고, 택시비 나눠 내고, 아침에 들어와서 오후에 일어나 또 연극 하러 다니고 그랬으니까 버틸 수 있었다. 그래서 여름에 탄 적이 없었다. 공연하느라 밤에만 돌아다녔으니까.
하지만 이른 나이에 결혼하면 책임감도 생기고, 압박도 받지 않나?
결혼하고는 그렇지. 책임을 져야 하니까. 놀면서 스트레스 많이 받았다. 뭐라도 하고, 움직여야겠다 싶어서 활동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됐다. 작품이 끝나면, 바로 다음 작품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공개 오디션 찾아봐야 하고, 그렇게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잘나가는 게 아니었으니까.
인터뷰 오기 전에 인터넷으로 이종혁을 검색했다. 그러니 라마 사진이 뜨더라.
하하하. 라마랑 내가 닮았다며 누가 카톡으로 보내줬다. 너무 닮아서 트위터에 올렸는데 그게 기사로 나왔다. 나도 깜짝 놀랐지.
트위터는 예전에 열심히 했는데, 이젠 안 한다. 할 말이 없지 않나?
자기 얘기를 그곳에서 한다는 게 이상한 것 같다. 좀 청승맞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오늘 어디서 뭐했고, 뭘 먹었네, 그런 얘기를 하는 재미는 좀 있는 것 같다.
원래 성격이 그렇게 낙천적인가?
낙천적이다. 처음 <신사의 품격> 섭외가 들어왔을 때, 네 명이 주인공이면 분량이 없을까 걱정도 되고, 장동건 들러리 될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작가를 만나니까 작은 배역도 설득력 있게 만든다고 하더라. 네 명이 주인공인데 설마 아무렇게나 막 쓰겠나? 그래서 해보니까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잖나? 그래서 그냥 오늘을 열심히 산다. 그럼 언젠가 결과가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조바심 내고, 불안해하면 오늘 일 못하고, 내일 일도 못한다. 원하는 배역만 기다리면 뭐하나? 손가락 빨 건가? 그럴 순 없다. 물론 결혼도 하고, 애가 있어서 그런 것도 있다.
한국에서 40대가 신사로 살기는 힘든 것 같다.
힘들지. 우리나라에 신사가 어디 있나? 연봉 1억 넘는 사람들이나 신사 흉내 좀 낼까? 직장 생활하면, 윗사람 눈치 보고, 욕먹고, 또 회식 때 노래방 가서 망가지고 그러는데 신사가 나올 수 없지. 우리나라 정서에는 안 맞는다.
신사가 나올 수 없는 나라에서 신사 역할을 하고 있다.
넷 중에서 내가 제일 신사가 아니지. 제일 한량이고.
그래, 마흔이 넘어도 남자들은 다 똑같은 것 같다.
그렇지. 죽기 전까지 변하지 않을 거다.
(위 왼쪽) 더블브레스트 수트는 라르디니 by 라 카타넬라, 니트 소재의 회색 티셔츠는 솔리드 옴므, 페이즐리 실크 스카프는 페어펙스 by 존 화이트, 금색 메탈 프레임의 반뿔테 안경은 디타 by 옵티컬W 제품.
(아래 왼쪽) 니트 카디건·감색 실크 스카프는 모두 구찌, 밝은 회색 울 팬츠 Z 제냐, 카키색 가죽 줄 팔찌·닻 모양 펜던트가 달린 검은색 가죽 팔찌는 모두 토코 by 유니페어, 보라색 구슬 팔찌·스카프처럼 돌돌 말아 착용할 수 있는 팔찌 모두 불레또 by 유니페어 제품.
흰색 드레스 셔츠는 돌체 & 가바나, 빳빳한 검은색 보타이는 드레이크스 by 유니페어, 기하학적인 무늬의 재킷은 샌드 by 존 화이트, 반짝이는 금색 뿔테가 인상적인 선글라스는 카렌 워커 by 옵티컬W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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