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니트
“운동화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했습니다.” 나이키의 사장이며 최고경영자인 마크 파커(Mark Parker)가 말했다. 날렵한 형태의 나이키 로고가 그의 뒤에서 출발 총성을 기다리듯 새겨져 있었다. ‘플라이니트(Flyknit)’ 기술은 나이키의 여러 혁신 기술 중에서도 손꼽을 만하다. 하늘을 나는 니트란 어떤 걸까?
니트를 생각해보자. 니트는 실로 만든다. ‘knit’는 ‘뜨개질’이란 뜻이다. 뜨개질로 운동화를 짤 수 있을까? 나이키는 밑창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뜨개질해 만들었다.
플라이니트 기술이 적용된 러닝화를 신으면 니트를 입은 것처럼 잘 맞는다. 물론 가볍고 포근하다. 여러 재질의 조각을 붙이거나 꿰매 만든 게 아니어서 이음매도 없다. 마크 파커에 이어 단상에 올라온 나이키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틴 로티는 플라이니트가 제2의 피부와 같은 착화감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과장처럼 들리지 않았다. 이건 니트니까. 6월에 열리는 올림픽에서 많은 육상 선수들이 플라이니트 기술을 적용한 ‘플라이니트 레이서’를 신을 예정이다. 사이즈 270mm에 해당하는 플라이니트 레이서의 무게는 160g이다. 알려진 얘기지만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남자 마라톤 1, 2, 3위에 올랐던 선수들이 나이키 ‘줌 스트리트 3’를 신고 달렸다. 플라이니트 레이서는 줌 스트리트3보다 19%나 가볍다.
플라이니트 러닝화를 신으려면 국가대표 육상 선수가 돼서 나이키와 계약해야만 하는 걸까? 아니다. ‘플라이니트 트레이너+’라는 일상 러닝화도 출시된다. 누구나 니트를 신고 달릴 수 있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길 법하다. 나이키는 왜 실로만 러닝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가볍고 더 빨리 달릴 수 있어서? 물론 그렇다.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뭘까?
0.023초의 차이
100m 경기에서 0.01초는 메달의 색이 바뀌는 시간이다. 어쩌면 이보다 짧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육상 선수들은 수년간 혹독한 훈련을 한다. 나이키가 육상 수트 ‘나이키 프로 터보 스피드’를 공개했다. 거짓말 같은 수트다. 우선 나이키 프로 터보 스피드는 나이키가 개발한 육상 유니폼 중 가장 가볍다. 이 수트를 입고 뛰면 빨라진다. 얼마나 빨라질까? 설마 0.01초? 더 빨라진다. 100m 비교 테스트 결과 베이징 올림픽 때 선보였던 유니폼보다 0.023초 빨랐다. 이건 반칙 아닌가? 육상계의 전설 칼 루이스가 직접 이 유니폼을 소개했다. 나이키는 육상 수트를 만들 때 프로젝트 스위프트(Project Swift)라는 기술을 사용한다. 기술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수트와 공기의 마찰을 줄이는 것. 나이키는 4백 개가 넘는 원단을 테스트했고 1천 시간 이상 윈드 터널 테스트를 거쳐 지금의 원단을 얻었다. 두 번째는 몸과 옷의 마찰을 줄이는 것. 상표, 꿰맨 자국 같은 것들은 모두 수트의 겉면에 있다. 세 번째는 무게를 줄이는 것. 이 수트는 지퍼가 없다. 달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있다.
100m 여자 육상 세계 기록 보유자인 카멜리타 지터와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0m에서 2위를 한 월터 딕스가 수트를 입고 단상에 올라왔다. 지터와 딕스는 런던 올림픽에서 이 수트를 입고 나이키의 초경량 러닝화 ‘나이키 줌 수퍼플라이 R4’를 신고 달릴 예정이다. “상당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처음에 이 수트를 입었을 땐 굉장히 타이트했고 귀엽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나이키의 디자이너들이 제 의견을 많이 반영해줬고 지금은 매우 만족합니다.” 반면 딕스는 비장했다. “저는 올림픽 메달이 없어서 런던 올림픽에 모든 걸 걸고 있어요. 수트와 러닝화는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경기에 훨씬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 수트가 제게 강한 동기를 부여해주고 있어요.” 지터가 또 다른 세계 신기록을 세울 수 있을까? 딕스가 기어코 올림픽 메달을 갖게 될까? 나이키 프로 터보 스피드는 미국, 러시아, 독일, 중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입을 예정이다. 아쉽다. 대한민국이 없다.
드림팀의 유니폼, 드림팀의 농구화
미국은 자국의 농구 대표팀을 드림팀이라고 부른다. 잘난 척이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수긍하지 않는 국가는 거의 없다. 그들은 그렇게 불릴 만하다. 드림팀이 런던 올림픽에서 입고 신을 유니폼과 농구화를 발표하는 자리에는 뉴저지 네츠의 가드 대런 윌리엄스와 인디애나 피버의 센터 타미카 캐칭이 왔다. 그곳이 뉴욕이어서 ‘황색 돌풍’ 제레미 린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전날, 뉴저지와 뉴욕이 맞붙었고 대런 윌리엄스의 신들린 3점 슛 때문에 뉴욕이 졌다. 대런은 린이 좋은 선수라고 말했다. 그런 말은 나도 할 수 있다. 대신 그는 자신의 새 유니폼 ‘나이키 하이퍼 엘리트 쇼츠’가 얼마나 마음에 드는지 말했다. “이 유니폼은 너무 가벼워서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 같아요.” 꼭 새 유니폼을 입어서 그렇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대런은 단단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무척 가벼워 보였다. 타미카 캐칭은 낯익은 선수다. 그녀는 2006년에 한국 여자 농구팀 우리은행에서 뛰었다. 타미카의 격이 다른 활약 속에 우리은행은 우승을 차지했다. 그녀가 팀을 떠난 이후 최근까지 우리은행은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타미카도 대런과 같은 말을 했다. “이 유니폼은 가볍고 몸을 움직이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날렵해 보여요.” 도대체 얼마나 가볍기에? 140g이다. 베이징 올림픽 때 드림팀이 입었던 유니폼은 300g이었다. 140g만으로도 옷을 만들 수가 있구나.
드림팀이 신을 농구화 ‘하이퍼 덩크’도 공개됐다. 하이퍼 덩크에는 나이키가 자랑하는 두 가지 기술이 적용됐다. 하나는 플라이와이어. 사진을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옆이 끈으로 돼 있다. 하이퍼 덩크는 현존하는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르브론 제임스가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해 만들었다. 그런데 르브론같이 육중한 선수가 신고 뛰는데 저 얇은 끈이 안 끊길까? 나이키 농구 풋웨어 디자인 디렉터 리오 창은 문제없다고 답했다. 현수교를 지지하는 쇠줄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고 설명까지 해줬다. 그런데 플라이와이어는 신발의 무게를 최소화한 기술이다. 이 와이어는 때론 느슨하게 때론 강하게 발을 지지한다. 하지만 신발은 그만큼 얇다. 부상 위험은 없을까? 리오 창은 퉁명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밟히기 싫으면 더 빨리 달리면 됩니다.” 갑피 안에 ‘엑스트라 레이어’를 한 겹 넣었다는 말도 했다. 두 번째 기술은 루나론 쿠션 시스템이다. 신발 중창이 루나로 돼 있단 얘기다. 루나론 폼은 일반적으로 스포츠화 중창에 사용되는 폼인 파일론보다 30% 가볍다. 놀라운 건 밀도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디자인돼 있다는 것. 안전성이 요구되는 곳에서는 두껍게, 충격을 흡수해야 할 때는 부드럽게 형태가 변한다. 마이클 조던의 시대에 ‘AIR’가 있었다면 르브론 제임스의 시대에는 ‘루나’가 있는 셈이다. 나는 루나가 아이폰 터치 못지않은 발명품이라고 생각한다.
이쯤에서 미뤄뒀던 이야기를 하겠다. 나이키는 왜 실로만 러닝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지속 가능성’ 때문이다. 소재를 최소화하는 것이 나이키가 생각하는 지속 가능성이다. 앞서 소개한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육상 수트 ‘나이키 프로 터보 스피드’는 82%가 재생 폴리에스테르 섬유다. 이 섬유는 플라스틱 병 13개로 만들었다. 드림팀이 입는 ‘나이키 하이퍼 엘리트 쇼츠’의 상의는 22개의 플라스틱 병으로 만들었다. 무려 92%가 재생 폴리에스테르 섬유다. 어쩌면 가장 놀라운 건 나이키가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도 제품의 질을 향상시켰다는 것 아닐까? 스티브 잡스도 이런 건 못했다.
도전하고 기록하는 농구화
르브론 제임스가 현장에 오진 않았지만 나이키와 미리 나눈 인터뷰에서 말했다. “젊은 선수들은 자랑하기 위해서 혹은 최고의 플레이를 비디오로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통계 자료를 추적하고 확인할 것입니다. 그들은 흥분할 것이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나이키의 대장 마크 파커는 현장에서 말했다. “스포츠의 물리적 세계를 디지털의 사회적 요소와 결합해 모든 선수들이 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줄 거예요.” 둘은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까? 단상이 사라지고 거대한 농구장이 들어섰다. 열 명의 농구 선수들이 나타나 경기를 했다. 5분간의 짧은 경기가 끝나고 스크린에 여러 데이터들이 나타났다. 선수 각각이 얼마나 높이,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많이 뛰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나이키+ 농구(Nike+ Basketball)’는 농구화에 디지털 센서를 장착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운동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스포츠에서 발전은 기록의 측정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기록을 정확히 아는 것만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 이 농구화는 경쟁을 유도한다. 자신의 기록과 경쟁하고, 다른 사람의 기록과 경쟁한다. 그리고 훈련을 더 즐겁게 만든다. 도전하는 게임이 되기 때문이다. ‘트랙 마이 게임(Track My Game)’ 모드를 사용하면 목표를 정해 스스로 발전해갈 수 있다. 목표를 달성하면 나이키와 계약을 맺은 유명 농구 선수들이 전하는 격려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칭찬은 우리를 춤추게 한다! ‘쇼케이스(Showcase) 모드’를 사용하면 본인의 경기를 촬영해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에 올릴 수 있다. 이 영상이 자랑거리가 되기 위해선 훈련하고 도전해야 한다. 나이키는 스포츠 용품을 파는 회사였다. 그리고 지금은 새로운 경험도 판매한다. ‘나이키+ 농구’가 장착된 최초의 농구화는 앞서 소개한 하이퍼 덩크+가 될 예정이다. 플라이와이어와 루나론 쿠션 시스템이 적용된 그 농구화다. 아직 세계 어디에서도 살 수 없다. (난 신고 뛰어봤다!) 여름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이 농구화, 물세탁을 해도 되는 건가? 나이키 풋웨어 디자인 부사장 피터 허드슨이 대답했다. “물론. 수많은 테스트를 거쳤고 문제없다는 결론이 나왔어다. 하지만 권하지는 않겠습니다. 당신이 아이폰을 세탁기에 넣지 않듯이.”
엘리트 코치
라파엘 나달은 무슨 훈련을 받기에 그렇게 테니스를 잘 칠까? 치차리토의 득점력의 비밀은? 일반인이 앨리슨 펠릭스처럼 달릴 수 있나? 내가 매니 파퀴아오처럼 강한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도 있는 건가? 파퀴아오가 나타나 줄넘기를 시작했다. 커다란 스크린에 그가 얼마나 빨리 줄을 넘었는지 기록이 나타났다. ‘나이키+ 트레이닝(Nike+ Training)’을 사용하면 그의 기록에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나이키+ 트레이닝’은 엘리트 선수들이 하는 트레이닝을 알려준다. 따라 해볼 수 있고 도전하게 만든다. 사용자들은 몸이 날씬해지고, 움직임이 빨라지고, 힘이 강해질 수 있도록 일련의 집중적인 운동 프로그램을 부여받는다. 각각의 프로그램은 ‘나이키+ 농구(Nike+ Basketball)’가 그렇듯,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확인할 수 있다. 데일리 프로그램은 사용자가 원하는 훈련 강도에 따라 정해지고, 운동량과 목표를 디지털 커뮤니티에 공유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이 프로그램은 운동이면서 게임이다. 수많은 유저들과 기록 경쟁을 한다. 체험해봤다. 세 가지 도전 과제가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줄넘기를 얼마나 빨리 많이 하는가. 정해진 거리를 얼마나 빨리 달리는가. 점프를 얼마나 높이 하는가. 남자 그룹과 여자 그룹으로 나눠, 여러 나라의 기자들이 참가했다. 상위 기록은 스크린에 표시됐다. 대한민국 일반인의 명예를 걸고 혼신을 다해 뛰고 넘고 뛰었다. 체험을 끝내고 스크린을 보니 가장 빠르고 높은 달리기 기록에 내 기록이 올라가 있었다. 음, 세계 1등! 뿌듯함은 1분도 못 갔다. 현장에 들른 앨리슨 펠릭스가 가볍게 뛰었을 뿐인데 훨씬 빨랐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적자면 앨리슨은 여자고 나는 남자다. 도전 의지를 불태우게 하는 ‘나이키+ 트레이닝(Nike+ Training)’이 장착된 최초의 트레이닝화는 남성용의 경우 루나 TR1+가 될 것이다. 하이퍼 덩크+와 마찬가지로 플라이와이어와 루나론 쿠션 시스템이 결합돼 있다. 물론 구입하려면 여름까지 기다려야 한다. 나이키는 권하지 않지만 물로 세탁해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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