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CAR MORE+

911로 캘리포니아 종단하기

미국 전체에 단 한 대밖에 없는 신형 911을 타고 눈이 가득 쌓인, 해발 2000m가 넘는 산 속을, 해수면에 인접한 사막을, 캘리포니아의 멋지고도 장대한 도로를, 우리는 2000km가 넘는 거리를 그저 달리기만 했다.

UpdatedOn March 28, 2012




당신이라면 어떻겠나? 15년 전 수랭식 엔진을 도입한 이래 처음으로 전체적으로 손을 봐 새롭게 출시되는 신형 911의 국제 론칭 행사가 캘리포니아에서 마무리되어가고 있다. 포르쉐는 20여 대의 홍보용 카레라 S를 슈투트가르트로 항공 운송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그런데 단 한 대를 당신만을 위해 남겨놨다고 해보자. 당신은 어디를 가도 되고, 무엇을 해도 좋다. 이번 주가 끝나갈 때쯤이면 맨해튼이나 마이애미에 도착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 만찬 이후 불룩해진 배보다 더 비싼 주유비,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할 어마어마한 (그리고 단조로운) 시간, 냉정하게 생긴 고속도로 순찰대원들과 몇 번 접촉하는 것을 제외하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만약 내 계획이 이기적으로 느껴진다면 미리 사과하겠다. 나는 원래 항상 계획을 세우고 사는 편인데, 이번에는 로스앤젤레스 최대한 가까이에서 경관이 수려한 도로만을 찾아 그냥 한번 운전해보는 심심한 계획을 세워봤다. 오로지 운전만 할 생각이다.

‘우리의’ 신형 911을 건네받는 순간, 북한의 국가 장례식에서나 접할 법한 화려한 수여식이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나의 예상은 처참히 빗나갔다. 미국 내 항공편 때문에 우리는 약속 시간에 3시간이나 늦었다. 우리는 조명이 어두컴컴한 바 한구석에서 번역도 안 된 문서에 사인하고, 바 뒤편에 위치한 주차장으로 안내를 받았다. 그게 전부였다. 그다음 우리는 호텔을 찾아, 미국 전역에서 단 한 대밖에 없는 911의 차 열쇠를 왜 건네줄 수 없는지 발렛 담당자와 실랑이를 벌인 후, 결국 잠자리에 들었다. 참으로 우아하기 그지없는 이행 과정이었다.

오로지 포르쉐 스포츠카만이 특유의 쾅 소리와 함께 열고 닫힌다. 그리고 오로지 911과 박스터 또는 카이맨만이 유사한 저음의 쾅 소리와 함께 보닛이 열린다. 그리고 이 세 차종만이 동일한 대시보드 상 점화 장치를 가졌다. 열쇠를 넣고 돌리면, 스타터 모터가 수평대향형 6기통 엔진에 생명을 불어넣는 단단한 시동 소리가 들린다. 포르쉐 특유의 소리다. 길다란 911 실루엣 형태의 열쇠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카의 시동을 건다. 3.8리터 엔진이 더 깊은 특유의 의미심장한 으르렁 소리로 시동을 거는데, 왠지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느낌이다.

자, 예열했고, 짐을 꽉꽉 실었고, 이제 출발할 시간이다. 이른 아침 햇살 속에서 뽐내는 관능적인 자태는 나중에 감탄해도 된다. 원래 같았으면 나는 너무 높은 전자식 좌석에 한탄했겠지만, 14가지 방향으로 조절 가능한 스포츠-스펙 가죽 체어에 내장된 너무 많은 모터 개수에도 불구하고, 좌석 그 자체는 그리스의 국가 신용등급보다 낮게 조정하는 게 가능하다. 나는 전자식 스티어링-칼럼의 팬도 아니고, 전자식 핸드브레이크의 팬도 아니며, 포르쉐의 스티어링 휠이 항상 약간 넓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일단 1단에 놓고, 핸드브레이크를 내리고, 도로와 연결되는 가파른 진입로를 천천히 신경 써서 내려왔는데도 불구하고, 차 앞부분을 살짝 긁히고 만다. 플라스틱 범퍼가 아스팔트와 사랑에 빠지는 수많은 순간의 첫 번째다.

포르쉐 예찬이 가끔은 너무 지겨울 수도 있다는 걸 안다. 모든 리뷰가 페달 하중, 부드러운 변속, 정밀한 스티어링에 대한 찬사로 가득하다는 걸 잘 알지만, 이 모든 건 정말 사실이다. 게다가 엔진이 운전자 뒤편에 위치한 슈투트가르트산 자동차라면 더욱 그렇다. 첫 경험부터 확실히 느끼는 거지만, 변속기를 이리저리 오가며 기어가 서로 맞닿는 느낌을 만끽하고, 페달이 얼마나 경쾌하고 정밀한지 경험하기 위해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를 번갈아 밟아보고, 시속 30km로 브레이크를 발끝으로 밟은 채 뒤꿈치로는 액셀 조작을 그저 즐겁다는 핑계를 대며 충분히 연습해본다. 지역 딜러를 찾아가 박스터 시운전을 살짝만 해봐도 지금 이게 무슨 말인지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게 너무 적절하다는 말이다.
미국 대선처럼 끝없이 포르쉐 예찬을 계속할 수도 있지만, 911은 뭔가 조금 다르다. 호텔을 나설 때의 휠이 피드백도 없이 쉽고, 빠르고, 가볍게 돌아간다. 이거 안 좋은 징조다. 다행히 이건 악명 높은 신형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 때문이 아니라, 우리 차에 옵션으로 붙은 파워 스티어링 플러스(Power Steering Plus) 때문이다. 덕분에 시속 50km 이하에서 스티어링은 쉬워졌지만, 즐거움도 그만큼 감소한 듯하다. 빨리 샌타바버라의 시내 도로를 벗어나고 싶어진다.

서쪽으로 향하는 101번 고속도로에 합류해 (시시한 속도인) 시속 90km에 이르자마자, 나는 세계 최초의 수동 7단 변속기의 7단을 넣어본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이라도 해본다. 그리고 다시 시도해본다. 알고 보니 (홍보 자료를 제대로 읽어봐야 한다는 사실은 나도 잘 안다) 효율을 높여주는 이 기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일단 5단이나 6단 상태여야 한다. 근데 395마력에 44kg·m의 토크로는 기어가 3단 이상 필요한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고단 기어로 바로 변속하고 싶은 유혹이 든다. 한마디로 추가 기어 변속이 필요하다는 말인데, 변속기 조작이 그나마 즐거워서 다행이다. 이전보다 좀 더 가볍고 스프링 가압이 덜 됐다고 쳐도, 왠지 ‘부드러운’ 변속이란 말은 이제 이 차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익스플로러(Explorer)와 유콘(Yukon) 등 주변에 보이는 차들이 도로의 신축 이음부에 튕겨오르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는 달리, 우리 차는 콘크리트 고속도로를 편안하게 운행한다.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orsche Active Suspension Management: 2단 댐퍼 조절 장치)는 카레라 S의 기본 사양이고, 우리 차는 새로 나온 포르쉐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Porsche Dynamic Chassis Control: 수평 코너링과 편안한 크루징을 모두 제공하는 롤 바)을 탑재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가장 눈에 띄는 건 타이어 소음의 제거다. 피렐리 타이어의 소음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어쨌든 시어머니의 시끄러운 잔소리를 듣는 것처럼 거슬리는 소음은 없어졌다. 이와 더불어 폴짝 뛰어들어도 될 정도로 충분한 실내 크기 덕분에, 휠을 돌릴 때 더 이상 무릎이 손에 와 닿지 않는다. 911은 이제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여전히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 하지만 재규어가 새로 출시할 예정인 XK 이하급 스포츠카와는 다른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는 오전이 지나기 전, 그 유명한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에 도달해 마치 관광객처럼 시간을 보냈다. 어쨌든 따뜻한 겨울 햇볕에 몸을 녹이고, 바다 쪽 경치에 감탄하고 (푸른 바다는 911처럼 햇빛을 받아 빛난다), 미국에만 존재할 것 같은 희한한 곳(예를 들자면 총 인구가 18명밖에 안 되는 하모니라는 이름의 마을)을 들른 것이다. 그리고 해가 지기 직전, 우리는 정말 미국답지 않은 도로를 발견한다. 우리는 101번에서 갈




갈라지는 1번 주도로 빠진 후, 잘라마(Jalama) 도로를 타고 잘라마 해변에 도달한다. 뭐, 웨일스 북부였다면 매주 보는 풍경이었을 것이다. 물론, 태평양이 내다보이는 트레일러 주차장 같은 건 없겠지만 말이다. 이 도로를 왕복하면서 스티어링에 대한 신뢰를 어느 정도나마 회복했다. 일단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샌타바버라로 돌아와 발렛 파킹이 없는 호텔을 찾는다. 결국, 싸구려 모텔로 낙점한다.
다음 날 아침, 어울리지 않는 독일 및 조지아주 번호판 덕분에 관심을 좀 끈 후, 101번을 타고 동쪽으로 향한다. 서핑족들이 낡은 비틀과 볼보 스테이션 왜건을 타고 천천히 운전하며 완벽한 파도를 찾아 나서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 또한 한쪽에서 솟아오르는 봉우리와 평평하게 지평선과 맞닿은 바다를 얼빠진 듯 감상하며 천천히 나아간다. 나머지 차량들은 우리한테 시선도 안 주고 휙 지나친다. 그들에게는 이게 남부 캘리포니아 일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101번이 벤투라 부근에서 내륙 방향으로 꺾이며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로 접어들자 교통량이 갑자기 많아진다. 우리는 405번을 북쪽 방향으로 올라타 앤젤레스 국립공원(Angeles National Forest)과 리틀 터헝가 캐니언(Little Tujunga Canyon) 도로를 지나친다. 회색 리본 같은 도로가 녹색 산 속을 뚫고 들어가는 모습은 마치 남부 프랑스를 상기시킨다. 알프스 산맥의 낮은 고개는 급커브의 연속이겠지만, 이곳의 토목 기사들은 도로를 훨씬 더 자유롭게 설계한 것 같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곳에는 딱히 볼거리도 없다. 굳이 언급할 만한 건, 더 좋은 촬영 지점을 찾아 관목을 헤쳐 들어가던 그렉을 깜짝 놀라게 한 타란툴라거미 떼 한가득뿐이다.

거친 산악도로의 정점에서 정지, 임기응변, 거침없는 전진을 모두 가능하게 해주는 완벽한 반응성을 갖춘 페달이 있고, 모든 코너를 돌 때마다 후륜 타이어와 땅의 접착력을 강력하게 유지하는 시끄러우면서도 허기진 엔진이 어깨너머에 위치한다. 이 모든 걸 느끼는 동안, 우리 옆으로 차 한 대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는 러시아워가 시작되기 전,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 210번 주간 고속도로를 탄 후, 다시 한 번 앤젤레스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2번 주립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향한다. 그러다 이상한 길과 마주쳤다. 고속도로에서 빠져 주택가 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갑자기 경사가 가팔라진다. 노란 중앙선을 불법으로 넘나드는 건 예사고, 직선 주로의 폭이 너무 좁기도 하다. 어차피 동네 주민이 탄 자동차들 뒤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으니 몰래 아래쪽 경관을 훔쳐보기도 한다. 차라리 그냥 차를 세우고 내려서 휴대폰으로 전망을 담으려는 어이없는 시도를 하는 게 낫겠다.

첫 번째 산등성이 끝까지 좀 더 높이 올라 반대쪽을 바라보면, 넓게 퍼진 교외 지역이 이렇게 가까웠는지 놀라게 된다. 산 가브리엘 산맥이 저 멀리 펼쳐져 있다. 뒤쪽으로 갈수록 구름에 가린 산들을 보면, 마치 각 봉우리 사이에 기름종이를 끼워 넣은 듯한 형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속 어딘가에 앤젤레스 국립공원 고속도로가 위치할 테고, 모든 차량이 향하는 방향 또한 그쪽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앤젤레스 크레스트 고속도로를 타기로 결정한다.

표지판을 보니 멀지 않은 곳에 스키장들이 개장 했다고 나오는데, 간간이 나타나는, 밤에는 작업을 멈춘 도로 공사 현장들을 제외하면 그 무엇도 눈에 띄지 않는다. 911(또는 그 형제 모델들)의 가장 좋은 점은, 빨리 달리면 운전 외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속에서도 경이로움을 느꼈지만, 고속에서는 정말 유기적이고 직관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솟아오른 변속기는 마치 GT3 컵 경주용 자동차에 올라탄 느낌이 들게 손에 착 감기고, 발바닥의 볼록한 부위로 가운데 페달을 살짝만 눌러도 브레이크가 단단히 잡히면서, 한 코너에서 다음 코너로 포르쉐가 빠르고 부드럽게 나아간다. 여전히 앞바퀴가 코너에 잘 접어들 수 있게 운전해야 하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52mm 넓어진 앞쪽 회전 반경 덕분에 좀 더 날렵한 카이맨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100mm 길어진 휠베이스 덕분에 안정감 역시 좋아졌다. 사실 나중에 조용히 숙고해봐야 이 모든 게 얼마나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는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페달 하중, 부드러운 변속….

우리는 황혼이 가까워짐과 동시에 속력을 낮춘다. 화려한 일몰을 감상할 때쯤 되자 두꺼운 이불 같은 안개가 내려앉는다. 전방 2m의 시야도 확보되지 않는다. 수많은 비바람에 도로 위로 나앉은 자갈들이 우리의 두툼한 타이어에 부딪혀 차 아래편으로 튕기는 소리와 함께 우리는 여정을 지속하지만, 사실 거의 기어간다고 할 수 있는 속도다. 아니, 튕겨오르는 건 자갈이 아니라 모래였다. 제논등이 장막을 뚫고 나가 길 언저리의 하얀 모래 구름을 포착할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길을 막은 바리케이드를 발견하기 전까지, 얼음과 단단히 쌓인 눈 위로 계속해서 천천히 나아간다. 이제는 막혀 있는 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왔던 길을 영하의 기온 속에서 조심스럽게 되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글렌데일의 한 호텔을 찾았다가, 결국 (약간) 덜 지저분한 다른 곳으로 옮긴다. 호텔 발코니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주차를 한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차에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는지 바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아침 식사를 하며 그렉이 눈을 배경으로 911을 찍자는 제안을 한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어제의 그 괴로웠던 도로를 다시 찾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산 정상 근처까지 다시 올라간다. 이번에는 속력을 낮추게 만드는 두꺼운 안개가 없다. 하지만 경계를 늦출 수는 없다. 노면 한쪽이 아침 햇살에 바짝 말라 있다고 하더라도, 코너를 돌면 하루 종일 햇살이 전혀 내리쬐지 않은 위험한 빙판길이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속에서도 간간이 앞바퀴가 미끌거리는 느낌이 있지만, 뒷바퀴는 언제나 좋은 접지력을 유지한다. 물론, 속도를 너무 올리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다.
촬영을 마친 우리는 해발 2150m의 클라우드 버스트 산 정상에서 다시 내려온다. 그러자 갑자기 머릿속으로 스티어링에 대한 정리를 깔끔하게 내린다. 더 이상 손에 든 맥주 캔과 시끄럽게 대화하는 부랑자 같은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다. 이제 바깥세상의 대화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다. 우리는 차 안의 공간에 온전히 갇히고 만다. 마치 포토샵 작업을 한 슈퍼모델처럼 너무 완벽한 소음 차단이다. 하지만 이런 완벽함이 꼭 좋은 건 아니다. 운전자는 앞바퀴가 살짝 비틀어졌는지, 무슨 문제가 없는지 알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911을 한 번도 운전해보지 않았다면 눈치 챌 수 없는 부분이다. 너무 정밀하고, 깔끔하고, 직접적인데다가 인공적인 느낌을 주는 가짜 무게감 같은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건 역사상 최고의 전자식 스티어링 시스템이다.

LA 변두리를 지나치는데 몇 시간이 지나간다. 우리가 안자보레고 사막 주립공원(Anza-Borrego Desert State Park)에 접어든 시점은, 대낮의 열기가 이미 사라진 후였다. 우리가 타고 있는 검은색 도로만이 흙, 먼지, 그리고 선인장으로 구성된 이 고대의 혼란스러운 풍경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질서의 증거가 되어준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 액셀러레이터를 꾹 밟는다. 엄청난 엔진 성능이다!
소음 또한 다르다. 예전 엔진은 그저 특유의 공허한 음색으로 울부짖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깊고 사나운 중첩된 소리가 난다. 특히 리프트를 하면, 오버런 중인 페라리 458과 비슷한 터덕거림과 부르릉 소리가 난다. 예전의 배기음이 불필요한 사족 같았다면 (아무리 흥미롭다 하더라도), 지금은 의도적인 튜닝을 거친 확실한 소리가 난다. 마음에 든다.

우리는 이번에도 해가 질 때까지 달려본다. 두 대의 아파치 무장 헬기가 우리를 예의 주시한다. 우리는 남쪽으로 향해 멕시코 국경과 평행으로 이어지는 8번 주간 고속도로에 올라탄다. 엘센트로에 다 왔을 즈음 해발 0m라는 표지판과 마주한다. 우리는 해발 2150m에서 모래사막을 거쳐 해발 0m까지, 이 모든 걸 단 하루 만에 섭렵했다. 우리는 레스토랑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시즐러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 유일하게 흥미로웠던 점은, 자리 바로 위에 위치한 TV에서, 공화당 대선 토론을 중계해주던 CNN이 중간 중간 ‘요실금 광고’를 끊임없이 내보냈다는 것이다. 걱정 마시라. 호텔로 돌아와 구글로 검색해보는 행위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음 날 아침, 다시금 안자보레고를 통과한다. 국경 검문소에서 멕시코인을 밀입하지 않는다는 증거로 차량 내부를 보여준 때를 제외하면 단 한 번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LA를 향해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도시 위로 펼쳐진 두꺼운 스모그 장막을 보는 건 참 우울한 일이지만, 어느새 그 속에 들어가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스톱/스타트 시스템이 효과를 발휘하지만(우리는 약 2250km의 거리를 평균 7.95km/ℓ의 연비로 주파했다), 30분도 지나지 않아 우리 차에 PDK 기어박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좀 얌체 같은 생각을 한다. 90분 정도 더 느리게 진행하다가, 결국 LA 북부의 선밸리에 도착한다. 코너를 더 빨리 (그리고 안전하게) 도는 것이든, 편안한 승차감을 제공하는 것이든, 이번 모델은 그 어떤 911보다도 더 포괄적인 능력을 선보인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간단히 말해 꽤 큰 차이로 더 좋은 모델이라고 하면 되겠다. 주관적으로 보면? 예전의 스티어링이 조금 그립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디지털 매거진

MOST POPULAR

  • 1
    Like a Panda
  • 2
    온전히 나를 위한 후회 없을 소비 6
  • 3
    장 줄리앙과 장 줄리앙들
  • 4
    신세경 향수, '제라늄 젬' 출시
  • 5
    애인의 취미

RELATED STORIES

  • ISSUE

    2022년의 2등을 위해 #2

    2022년은 특별한 해다. 2가 반복된다. 그리고 이건 12월호다. 2가 반복되는 해의 마지막 달이라 2등만을 기념하련다. 올해 각 분야의 2위들을 재조명한다.

  • ISSUE

    2022년의 2등을 위해 #1

    2022년은 특별한 해다. 2가 반복된다. 그리고 이건 12월호다. 2가 반복되는 해의 마지막 달이라 2등만을 기념하련다. 올해 각 분야의 2위들을 재조명한다.

  • ISSUE

    이란, 세 소녀

    히잡 시위를 계기로 이란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혼란기를 겪고 있다. 혁명의 주체는 시민이고 시위대를 이끄는 이들은 히잡을 벗어던진 10대, 20대 여성이다. 세상은 혼란할지라도 일상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란의 10대, 20대 여성과 인스타그램 DM으로 짧은 대화를 나눴다. 혁명 속을 살아가는 소녀들의 이야기를 옮긴다.

  • ISSUE

    보이지 않는 공로

    영화 한 편엔 수없이 많은 제작자들의 정성과 노력이 담기지만 관객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제작자들의 공로를 ‘제12회 해밀턴 비하인드 더 카메라 어워드’가 기린다.

  • ISSUE

    2022 Weekly Issue #2

    돌아보면 2022년 대한민국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오미크론 확산부터 대선 이슈, 전쟁과 경제 이슈 등 매일이 격동의 나날이었다. 우리는 주 단위로 2022년을 돌아본다. 2022년 1월 첫째 주부터 11월 둘째 주까지 . 우리의 눈과 귀를 번뜩이게 한 국내외 이슈들을 짚는다.

MORE FROM ARENA

  • REPORTS

    인스타그램의 神 - 박경인

    여자를 잘 찍는 포토그래퍼들은 많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에서는 이들이 최고다.

  • ARTICLE

    48 Swim Pants

    “덥다, 더워.” 탄식은 5초마다 터져 나오고 곧 다가오는 휴가철에 달아오른 몸을 시원한 물속에 첨벙 던져버리고 싶어지는 7월이다. <아레나> 독자라면 휴가 계획보다 무엇이 중하냐 하면 역시 스타일 아니겠는가. 그중에서도 스윔 팬츠는 신중하게 골라야 할 아이템 중 아이템이다. 휴가철을 겨냥해 이런저런 취향 다 곁들여 12가지 브랜드, 48가지 디자인의 스윔 팬츠를 모았다.

  • LIFE

    스웨덴의 가장 뜨거운 섬

    쇠데르말름섬은 지금 스톡홀름 젊은이들의 성지다.

  • INTERVIEW

    시우민, "반전 매력을 기대하세요."

    엑소 시우민의 <아레나> 9월호 화보 및 인터뷰 미리보기

  • LIFE

    낯설고도 익숙한 방콕에서

    늦은 휴가의 목적지로 ‘더 스탠더드 방콕’을 택했다. 재방문 의사를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