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로 정우성이 들어온다. 8년 전 에디터는 그를 처음 만났다. 영화 촬영장에서였다. 화면에서 존재하던 스타가 악수를 청했다. 멋있었다. 남자인데도 두근거렸다. 민망했다. 8년 후 지금 정우성이 다시 악수를 청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는 멋있다. 역시 두근거린다. 괜한 소리가 아니다. 그는 에디터에게 청춘의 아이콘이다(<영웅본색> 주윤발 이후 처음이다). 물론 에디터에게만 그러진 않았다. 영화 <비트>의 민은 그만큼 강렬했다. 이제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대학 신입생은 잡지 에디터가 됐다. 반항아 민 또한 연륜이 묻어나는 신사가 됐다. 그럼에도 에디터는 여전히 그를 청춘 아이콘으로 바라본다. 그 또한 여전히 청춘이 부럽지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 CF 카피 같은 낯 뜨거운 말이 술술 나온다. 그를 보면 그렇다. 정우성이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에디터 앞에 앉는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그에게 질문을 던진다. 남부럽지 않게 살아왔죠? 그가 답한다. 그때가 아쉬웠다고. 의자를 당겨 그에게 바싹 다가간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촬영할 때 돌체, 가바나와 영어로 얘기 잘하던데?
그냥 간단한 회화 정도 한 거다. 사소한 얘기였다. 한국에 더 자주 오고 싶다는 둥, 중국에 자주 간다는 둥, 나도 중국 좀 안다 정도. 굉장히 소탈하더라. 양말을 벗어서 누구한테 맡길 줄도 모르고 자기 주머니에 넣더라. 확실히 미국 사람들보다 유럽 사람들이 그런 점이 있다.
패션에 관심이 있나? 그냥 서 있어도 멋있지만, 왠지 보면 옷 잘 입을 듯하다.
아무래도 어릴 적에 데뷔해서 의류 브랜드 광고 모델로 많이 활동했으니까 사람들이 내가 옷을 잘 입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어릴 적에 옷에 관심 없지는 않았다. 주변에서 엠포리오 아르마니가 뭔지 모를 때 아르마니 찾아 입었으니까. 그렇다고 패션 쪽을 깊이 파서 올해 트렌드가 뭐고, 신진 디자이너가 누군지 찾는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직업상 내가 신경을 안 써도 늘 멋지게 입게 되니까 활동하면서 패션에 대한 관심은 줄었다. 늘 어딜 가나 입을 옷이 준비되어 있고 거기서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거 조금 빼고 더하면 되니까. 그런데 요새 옷 입는 것에 대해 너무 게을렀나 싶어서 다시 패션에 신경을 쓰고 있다. 옷도 부지런해야 잘 입는다. 보통 외출하기 한 시간 전에 뭘 입을지 고민해야 하잖나.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냥 샤워하고 5분 전에 아무거나 입고 나갔다.
그렇다. 사람은 편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이제 나이도 있으니까 신경 써야겠다.
나이 먹을수록 더 신경 써야 하는 건 사실이다. 20대 때는 캘빈클라인 스키니 진 팬츠가 무조건 어울리잖나. 젊음이 좋다는 건 진짜 아무거나 입어도 멋져서다. 나이 먹으면서는 그 값어치를 지키기 위해서 더 부지런하고 노력해야 한다.
아, 청춘의 아이콘 정우성도 이제 조금씩 나이를 먹어간다니. 스스로 이제 나이를 먹었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나?
나이를 먹어간다… 뭐 이런 것보다는, 솔직히 나이 먹는 게 좋았다. 20대엔 빨리 30대가 되고 싶은 욕구가 컸다. 30대가 되면 남자로서 인생에 대한 뭔가를 깨우칠 줄 알았다. 30대가 되었을 때 보니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더라. 그냥 좀 더 나이 먹은 20대, 하하. 30대 후반 되고 40대가 돼가니까 내가 진짜 이제 남자가 되어간다고 느낀다. 남자로서 어떤 정서나 가치관을 겸비해가면서 나이를 먹어야 하잖나. 그렇게 되고 싶어서 늘 고민했다.
확실히 정우성은 청춘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본인은 예전엔 거기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이제 시간이 흘러 40대를 앞둔 지점에선 오히려 그 아이콘이란 위치가 장점으로 작용한다. 아직도 아이콘이란 소리를 들으면 벗어나고 싶나?
자기가 뭘 갖고 있었는지 몰랐던 거다. 그땐 반항심이 큰 아이였고. 반항심이 어떤 한 부분만 향해서 일어나는 건 아니니까. 누군가 나를 테두리 안에 넣는 걸 싫어하는 성향의 아이였다. 어떻게 하다 보니 스타가 되고, 아이콘이 되었다. 갑자기 아이콘이 뭔지도 모르고 그 단어의 값어치와 크기가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사람들이 왜 자꾸 나를 이쪽으로 몰아넣지 하는 반항심이 있었다. 더 다양한 내가 있다고 하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쓸데없이 욕심을 부린 거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콘으로서 좀 더 착실히 작품을 고민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 30대엔 이런 걸 원망하기도 했다. 왜 그 당시에 영화계는 정우성이라는 아이콘을 이용할 줄 몰랐을까! 몇십 년에 한 번 나오기 힘든 아이콘이 나왔으면 그 아이콘을 활용해 좋은 영화를 더 만들어내야 했는데, <비트>랑 <태양은 없다> 달랑 두 개인 거다. 얼마나 아쉽나.
아, 아쉽다. 나도 기다렸다.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별개로, 지금까지 해오면서 쌓인 것도 쌓은 것도 있지 않나?
한 20년 흘렀다. 청춘의 아이콘이건 스타건 그런 걸 다 떠나 늘 같이 일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다. 영화 현장 안에서 나는 스타, 누구는 스태프, 이렇게 나누기보다는 그냥 같이 일하는 동료라는 의식이 굉장히 컸다. 그래서 그 안에서만큼은 어떤 수식어도 없는 나, 늘 내가 되고 싶었다. 밖에 나가서는 절대로 맨바닥에 앉을 수 없다. 하지만 현장에 있을 때는 편안하게 맨바닥에 앉아도 상관이 없었다. 카메라 앞에서는 내가 맨바닥에 앉건, 길바닥에 앉아서 뭘 먹든 그야말로 자유였다.
의외다. 보통 평상시는 자유롭고 카메라가 돌아가면 부담스럽지 않나? 정반대다.
그래서 사람들을 많이 얻은 거 같다. 그 사람에게는 내가 청춘의 아이콘, 정우성이 아니라 그냥 영화를 좋아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걸 즐기는 한 사람으로 비친 거 같다. 그런 게 쌓여 청춘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 말고, 영화계 쪽에서는 영화인, 그냥 동료로 인식됐다. 그들에겐 언제나 정우성은 잘돼야 해, 정우성은 잘될 거야, 이런 뭐랄까 응원하는 마음을 품는 대상이 된 거 같다. 그게 가장 크게 얻은 거다. 앞으로 내가 일하는 데 그 사람들과의 교감이 가장 큰 자양분이 될 테고.
“어떻게 하다 보니 스타가 되고, 아이콘이 되었다. 갑자기 아이콘이 뭔지도 모르고 그 단어의 값어치와 크기가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사람들이 왜 자꾸 나를 이쪽으로 몰아넣지 하는 반항심이 있었다. 더 다양한 내가 있다고 하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쓸데없이 욕심을 부린 거다.”
20년이면 강산이 두 번 변했다. 그 긴 시간 동안 연기해보니까 어떤가? 보통 이렇게 질문하면 ‘어렵다’는 답이 태반이지만.
나는 이제 연기가 재밌다. 돌이켜보니까 신경 써서 연기한 기억이 없는 거 같다. 지금 생각하니, 최선을 다한다고 했는데 그게 진짜 최선이었나 싶을 정도로 절실하게 하진 않았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확실히 그런 점은 본인만 안다.
맞다. 현장에서 어려운 촬영도 마다않고 하긴 했지만, 연기에 대해 고민하거나 표현 방식, 이런 걸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했다. 대충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제 조금 표현하는 재미에 눈을 뜨기 시작한 느낌이다. 예전에는 자기가 아는 게 다인 줄 알았던 거다. 이미지에 갇히는 게 싫었지만, 또 그 이미지를 상당히 즐기기도 했다. 그것만 하면 돼, 가서 멋진 척하고 서 있으면 돼. 자신도 모르게 타성에 젖어버린 거다.
그런 기분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하하. 그래도 상상해보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일 듯하긴 하다. 하늘로 올라가서 쉽게 내려오지 않을 기분. 난 최고야, 그래도 돼. 어리기도 했으니까.
심지어 최고라고 의식하는 것 자체도 의식하지 못한다. 거기에 그냥 계속 있어온 거라고 느낀다. 너무 자연스럽게. 그러다 보니까 연기나 역할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그냥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한 거다. 더 고민해야 했고, 천성을 찾아야 했다. 내가 배우로서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게 뭔지 고민해야 했다. 나는 딱 배우구나,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그런데 한 가지 우려된다. 고민의 결과를 풀어낼 폭넓은 작품을 만나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최고라는 위치가 반대로 배역을 제약하는 경우도 있다.
맞다. 작품을 선택하는 데 보이지 않는 기조가 서로 견제하고 제약한다. 이번처럼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이하 <빠담빠담>)의 양강칠 같은 캐릭터를 한번 보여주면, 정우성이 이런 표현도 하네, 하면서 더 다양한 역할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지 않고선 서로 굉장히 조심스럽다.
그런 점에서 <빠담빠담>은 시의적절한 선택이었겠다.
<빠담빠담>을 선택한 이유, 양강칠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한 것을 다 이룬 거 같다. 만족도가 상당히 크다. 감정 신이 굉장히 깊고 격해서 촬영할 때는 몰입하느라고 힘들기도 했지만. 이젠 그냥 하는 힘들다는 표현이 아니라 더 깊은 것들을 끄집어내기 위해 보낸 고독의 시간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 시간들이 다 소중하고 귀하게 남아 있다.
그동안 일상의 감정을 표현할 기회가 없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도, <아테나: 전쟁의 여신>에서도 비일상적인 역할이었으니까. 이번엔 연기하면서 신선했겠다.
훨씬 재밌었다. 특히 엄마와 교류하는 감정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비트>에서 민에게 엄마가 있긴 했지만 이렇게 끈끈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대상은 아니었으니까. <똥개>에선 아버지가 그 대상이었고. 누구나 양강칠을 보면서, 저거 내 얘기야, 이럴 정도로 감정이 비슷하잖나. 엄마 하면 느끼는 감정은 표현 방식이나 수위만 다를 뿐이다. 대본을 보고 엄마와의 장면이 너무 좋아서 선택한 부분도 있었다.
“가장 어리석은 게 외면이다. 그 하나하나를 직시할 때 나를 더 강하게 하는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게 사랑일 수도, 일일 수도, 대인관계일 수도, 연기일 수도 있다. 그때 남이 보지 못하는 미묘하게 작은 평가나 관점을 놓치고 외면해버린 채 만족하면 안 된다.”
배우로서 결핍을 채우는 짜릿함이 있었겠다. 배우 말고 정우성에게도 결핍이 있을까? 완벽한 외모와 그걸 부러워하는 시선이 따를 텐데.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여자? 사랑? 하하하. 일상에 대한 결핍이 있다. 특히 이제 나처럼 창작에 대한 욕구가 크고, 그 꿈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일상의 부재, 결핍은 굉장히 큰 타격이다. 바운더리가 굉장히 작았다. 나 나름대로는 자유롭게 돌아다닌다고 생각했다. 한 치의 거리낌 없이 친구들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한정된 공간, 한정된 사람들만 만난 거다. 어떻게 보면 멍청한 자유주의자가 된 느낌이 들더라. 스스로 안타까웠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동네 조그만 카페에 가는 걸 즐긴다. 오전이나 오후에 책 한 권 들고 가서 읽거나 지나가는 사람을 보거나 한다. 한적함이 주는 풍요와 에너지가 풍만한 사람들의 움직임이 소중하다. 어릴 적에 혼자 사색하는 걸 좋아했다.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손님이 없을 때 음악이 흘러나오면 밖을 보면서 사색하던 시간이 굉장히 많았다. 그때 내가 느낀, 공허하고 외로운데 굉장히 풍성한 느낌이 자극적이었다. 그걸 한동안 잊고 있다가 다시 떠올린 거다.
그 좋은 걸 잊고 어떻게 살아왔나? 그 부분을 채우지 못해 일탈 같은 건 안 했나? 반항심도 있었다면서.
30대 때 제일 방황한 거 같다. 꾸준히 활동했지만, 가장 마음이 가라앉은 시기였다. 어찌됐든 그 방황을 외형적인 형태로 표출할 수는 없잖나. 그러니까 안에선 비바람이 휘몰아친 거지. 그때 오랫동안 사귄 여자와 헤어지기도 했으니까. 보면 당시 얼굴도 안 좋다.
여자 문제에 감정적으로 많이 휩쓸리나?
그럴 수밖에 없는 케이스가 있고, 안 그럴 수 있는 케이스도 있겠다. 그때는 굉장히 오랫동안 사귄 여자였으니까. 그런 감정 풍파도 없으면 사람이 아니지 않나. 남녀 간에 보이지 않는 감정은 서사시다. 우리가 매일 듣는 유행가 가사가 다 사랑에 대한 헤어짐, 아픔, 짝사랑 이런 거잖나, 하하. 겪는 순간에는 이게 뭔지도 모르고 지나왔지만 다시 한 번 되새겨 내 걸로 만들어야 한다. 가장 어리석은 게 외면이다. 그 하나하나를 직시할 때 나를 더 강하게 하는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게 사랑일 수도, 일일 수도, 대인관계일 수도, 연기일 수도 있다. 연기에서, 흥행이랑 상관없이 어떤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과 실패가 있잖나. 그때 남이 보지 못하는 미묘하게 작은 평가나 관점을 놓치고 외면해버린 채 만족하면 안 된다.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인가?
이제는 그런 걸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인 거 같다.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연기하는 게 더 재밌는 거다. 이제야 흔히 말하는 악기, 나라는 악기로 제대로 소리 낼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이제 영화도 연출해야 하지 않나? 일단 단편부터 기다린다.
단편은 내 돈으로 해야지. 투자자에게 부담 주면 안 되니까. 그런데 머릿속에서 그리는 게 장편 액션 영화다.
단편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단편영화제에 익명으로 출품하고 상 받으면 정우성이라고 공개하고. 그 자체가 드라마다, 하하. 그다음에 장편영화로 넘어가는 거다.
나도 저예산으로 한 번 갈까, 고민하고 있다. 드라마도 좋아하니까. 드라마를 만드는 것도 자신 있다. 개봉도 개봉이지만, 영화제 쪽에 도전할 수도 있다. 생각하는 액션 영화는 중국이 배경이어서 제작비가 좀 든다. 그동안 중국 촬영이 많아서 중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생각한 게 있다. 사막을 보다가 그 공간에서 남녀의 얘기가 떠올랐다. 그걸 한국에서 하려니 안 되는 거다. 배경이 중국이나 미국이어야 하잖나. 대지에서 느낀 비주얼이나 황량함을 표현해야 하니까. 중국인 프로듀서도 아니까 액션은 중국 쪽에 넘기고 한국에선 내가 할 수 있는 걸로 바꿔볼까 해서 쓴 시나리오가 액션이 된 거다. 액션이면 멋진 스케일이 있어야 하니까, 규모가 계속 커진다.
연기하랴, 연출하랴, 제작하랴 할 게 많다. 실력보다 먼저 체력이 있어야겠다.
그래서 운동도 어릴 적보다 규칙적으로 시간 정해서 더 많이 한다. 기본적으로 체력이 있어야 촬영도 버틴다. <빠담빠담> 같은 경우도 난이도가 있어 엄청나게 감정을 소모했다. 이때 촬영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꾸준한 운동 덕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관리해야 하는 건 맞다. 그래도 직업상 다른 사람보다 시간의 흔적이 덜하다.
관리가 필요한 배우가 있고, 필요 없는 배우가 있겠다. 난 관리가 필요하다고 요구받는 영역에 있는 배우 같다, 하하하. 물리적 나이를 떠나 30대만 되면 나도 남자겠지, 이랬는데 그냥 20대로 계속 살아왔다. 이제야 남자로서 말에 무게가 실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일에서도 자신감이 생긴다. 남자로서 사회에 자신감을 갖고 뛰어드는 초년생 느낌이다. 아직은 여자한테도 젬병이고. 사람들이 정우성 하면 여자를 잘 알 거라고 생각하겠지? 배우라서가 아니라 성향이 여자를 잘 모르는 거 같다.
몰라도 안 만날 순 없다.
만나야지. 많이 만나는 게 좋은 거 같다. 난 많이 만나보지 못해서 그렇지.
그럴 수밖에 없잖나. 사실 만날 기회나 영역도 한정되어 있고. 마음에 든다고, 정우성이 가서 말 걸고 꾀는 것도 힘드니까.
그러고 싶은 여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상황이 닥치면, 그럴 용기는 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물론 그 순간, 내 안에 이상형으로 데이터화된 모든 게 조합되어야겠지만. 그다음에 차차 얘기해보면서 맞는지 아닌지 판단해야겠지. 그러니까 용기 내서 말을 걸어봐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그럴 기회가 없어! 하하하.
보통 지인이 소개해줘서 만나지 않나?
난 소개받는 거 부담스럽다. 뭐든 내 선택으로 움직이는 게 좋다. 소개받는 것도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주변에서 그 사람을 소개해주면 모를까. 그런 거 아니면 두렵고 무섭다.
그러다 홀로 보내는 시간에 익숙해진다.
맞다. 한창 결혼이나 가족에 대해 간절해지는데, 그러다가 또 지나면 무뎌진다. 위험한 일이다. 나이 사십 넘은 형들도 장가를 안 가잖나. 그게 무뎌져서 그런 거다. 난 아니다. 상대를 빨리 잡고 싶다. 심지어 내게 솔로가 어울린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으니까, 하하하. 솔로로 지내는 게 멋있는 것 아니냐며. 그래도 이제 결혼에 대한 조급함은 많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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