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아레나> 사무실과 캘리포니아 ‘픽사’ 사무실의 수준 차이는 작은 것부터 시작됐다. 누군가가 가져다둔 토스터가 <아레나> 사무실에 있다는 소문이 퍼진 후 입구 앞은 회사 동료로 장사진을 이뤘다. 그다음 날부턴 모닝 토스트뿐 아니라 핫케이크로 오후 간식까지 즐기게 됐다. 덜렁 하나 있는 이 토스터는 단 며칠간, 힘겹게 자신의 소명을 다해내고 있었다. ‘누구든 케이크 찌꺼기를 남겨두고 퇴근하는 사람은 해고당할 줄 알아!’란 간부의 외침이 있기 전까진. 중요한 것은 말이다. 이 일이, 재능 있는 기자에게 즐겁고 행복한 업무 환경을 제공하는 것만이 회사의 앞날을 밝게 하는 비결이라고 주야장천 주장한 한 유명 잡지사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거다. 이 잡지사의 재능 있는 직원으로서, 취재 차 찾아간 픽사의 커다란 문을 들어설 때 주춤할 수밖에 없던 데엔 다 이유가 있는 거였다. 슬픈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치며, 나도 ‘픽사’의 당당한 직원이 되고 싶었다. 4.5m짜리 인크레더블의 악당 ‘신드롬’ 조각상이 있는 커다란 사옥의 리셉션엔 카페테리아, 화장실, 테이블 풋볼, 탁구대, 당구대, 플레이스테이션 터미널 말고도 스케이트보드나 스쿠터를 타고 바쁘게 오가는 직원이 있다. 지진을 대비해 전동 절연 장치로 조립된 이 사옥에 이사 온 날, 회장 스티브 잡스는 바티칸 교황처럼 아트리움 상층 발코니에서 연설을 했다. “이곳이 여러분의 마지막 직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창의력이 왕성한 활동을 하도록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는 약속을 지켰고, 이 건물은 세계 각지에서 25억 달러 이상의 흥행 수입을 올리고, 1억5천만 장 이상의 DVD를 판 픽사의 보금자리가 됐다. 16에이커에 이르는 사옥 곳곳에는 수영장, 축구장, 야구장, 배구 코트, 조깅로, 운동 기구가 완벽하게 갖춰진 피트니스 센터 등이 직원의 발길을 기다리며 자랑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칵테일 바와 카지노가 있는 작업실 애니메이션 사업부가 일하고 있는 곳. 꼭 촬영이 끝난 영화 세트장을 보관하는 창고같이 생긴 이곳엔 하와이 해변의 오두막처럼 생긴 정자가 줄지어 있고, 중세의 성 옆에는 멕시코 농가가 있다. 야외 음악 홀과 카우보이 스타일의 바도 보인다. 이 작은 집 하나마다 애니메이터 한 사람이 일하고 있다. 이들이 처음 입주했을 때만 해도 모든 벽이 흰색이었고, 보통 사무실과 똑같이 칸막이로 나눈 공간에 책상 하나씩을 받아야 할 참이었다. 하지만 애니메이터들이 우르르 몰려와 ‘비용을 얼마나 쓸 생각이냐’고 따지며 차라리 돈을 주면 자신들이 알아서 공간을 만들겠다고 주장했다. 이들에게 작업 공간을 스스로 꾸밀 수 있도록 허락하는 바람에 일류 인테리어 디자이너 작품 하나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지만 그 가치는 충분했다. <벅스라이프>와 <토이스토리2> 제작에 참여한 앤드루 고든의 작업실엔 칵테일 바가 있다. 작업실 인테리어를 꾸미는 과정에서 벽에 있는 해치 도어가 눈에 띄었는데, 그 문을 열어보니 에어컨 배관이 있는 작은 공간이 드러났다. 일주일 만에 그 해치 도어에는 ‘러브 라운지’라는 간판이 붙었고, 로버트 드니로를 초대해 칵테일을 대접하는 공간이 됐다. 다음 작품을 만들 때(작업이 바뀌면 작업실도 바뀐다) 고든은 역시 비밀의 방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고 곧바로 브론즈 흉상이 하나 놓였다. 이 흉상의 머리 부분은 위로 열렸는데 빨간 버튼을 누르면 책꽂이가 미닫이처럼 열리면서 작은 카지노가 나온다. 얼마 전엔 오웬 윌슨이 이 카지노에서 돈을 잃고 갔다.
회계 담당자가 조각 공예를 배운다 월급 날마다 누가 은행에 전화해 월급이 입금됐는지 확인할 것인가를 두고 티격태격하던 시절이 있었다. 10년간 건진 게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스티브는 계속 투자를 했고, 그 믿음으로 픽사는 성장했다. 그 성장의 한가운데에 픽사만의 독특한 사내 대학이 있다. 매일 두 시간씩 주어지는 점심 시간에 모든 스태프가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는 과목이 개설돼 있는 대학. 회계 담당자가 조각 공예를 배우기도 하고, 조각가가 애니메이션 테크닉을 배우기도 하며, 애니메이터는 시나리오 작법을 배운다. 픽사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넬슨은 실패를 딛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의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덕에 픽사의 애니메이터는 조각가나 회계 담당자에게 진지한 조언을 들을 수 있다. 픽사의 모든 직원은 후한 연봉에 스톡 옵션까지 받지만 구속은 전혀 받지 않는다. 유일한 가이드라인은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출퇴근 시간을 기록하는 카드도 없고 휴식 시간에 뭘 하는지 따라다니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스태프를 집에 가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다. 픽사의 아티스트는 월요일마다 한 곳에 모여 서로의 작업을 비판하거나 하지 않는다. 대신 화장실에 모인다. 설계사에게 건물 화장실을 한 군데에 몰아서 만들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화장실이 여덟 군데나 있었지만 직원을 사무실 밖으로 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스티브는 앞장서서 수다 떨 장소를 제공했다. 사람들이 화장실 앞에 길게 늘어서 있다 보면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그러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픽사는 직원들이 맘 놓고 ‘실패’를 경험하도록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토이스토리2> 제작 당시, 편집을 하는 대신 백지 상태로 돌아간 적이 있었다. 완성을 해도 모자랄 판에, 아웃풋이 확실하지 않다고 판단한 팀은 기존 스토리를 수정하는 대신 완전히 처음부터 새로 짜기로 결정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9개월 만에 작품을 완성했고 8천1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장편 애니메이션 한 편을 만드는 데 보통 4년이 걸린다고 볼 때 엄청난 속도였다. 픽사에는 스쿠터가 있다! 픽사의 모태는 <스타워즈>를 만든 루카스 필름의 컴퓨터 특수 효과 팀. 1979년부터 특수 영상 사업부 부사장이던 캣멀은 컴퓨터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 반면, 조지 루카스는 컴퓨터란 실사 영화에서 특수 효과의 차원을 조금 더 높이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루카스가 애니메이터 고용을 꺼린다는 사실을 눈치 챈 캣멀은 디즈니의 존 레스터를 은밀히 데려다가 ‘유저 인터페이스 디자이너’로 삼은 뒤 비밀리에 애니메이션 단편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 후, 루카스는 컴퓨터 특수 영상 사업 부문을 애플의 설립자 스티브 잡스에게 매각했다. 매각 가격은 1천만 달러. 잡스는 이 사업 부문을 ‘픽사’라고 명명했다. 1986년 픽사는 첫 단편 영화 <룩소 주니어>를 제작했고, 이 애니메이션은 단숨에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10년간 잡스에서 투자(자그마치 5천만 달러!)했는데도, 전혀 수익을 올리지 못했다. 그래도 잡스는 연구 개발에 투자한 자금이 언젠가는 큰 보답이 되어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당시 디즈니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존 레스터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시도하는 중이었다. 픽사는 디즈니와 협상해 장편 애니메이션을 픽사에서 만들기로 하는 계약을 성사시켰다. 잡스의 투자와 디즈니의 믿음은 1995년 <토이스토리>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세계 시장에서 3억6천2백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렸고, 그해 최고의 흥행작이 됐다. 다른 회사가 이런 픽사의 작업 방식을 따르지 않는 이유에 대해 넬슨은 아직도 회사가 인적 자원을 제3의 요소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미래의 기업은 인간 중심의 기업입니다.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아이디어가 바로 그들의 머리에서 나오니까요. 아인슈타인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특수 상대성 이론을 생각해냈습니다. 우리 회사 안을 보세요. 많은 스태프가 스쿠터를 타고 다니지 않습니까? 자전거가 아인슈타인에게 아이디어를 주었다면 우리에겐 스쿠터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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