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질문 하나. 설날 하면 떠오르는 것은? 아마 열이면 여덟아홉은 떡국 생각부터 했을 게다. 우리는 설이면 으레 떡국을 먹는다. 습관이나 관습처럼. 예부터 설날 아침에 먹는 떡국은 ‘첨세병’이라 불렀는데,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나이를 먹는 떡이란 뜻이다. 나이 먹기를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라고나 할까. 서른을 눈앞에 두고 보니 격하게 동의하건데, 연로한 어른들이 “나는 떡국 먹고 싶지 않다. 늙는 게 싫어”라고 늘어놓는
‘넋두리’도 조금은 이해가 간다(물론 누구도 진담으로 듣지 않고 떡국 먹기를 권하겠지만). 우리에게 떡국은 음식 그 이상의 의미다. 그런데 여기서 두 번째 질문. ‘아니 대체 왜!’ 하고 많은 음식 중에 하필 떡국이냔 말이다. 떡국은 맑은 장국에 멥쌀로 뽑은 가래떡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 소박하기 그지없는 음식이다.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음식치곤 막말로 좀 초라하다. 엄마는 질겁을 하겠지만 만약 갈비찜이나 잡채가 설날을 대표하는 음식이었다면 포식 한 번 제대로 했을 텐데 말이다. 사실 우리의 떡국이 새해를 ‘대변’하게 된 데는 구구절절한 이유가 있다. 떡국은 밝음과 깨끗함, 그리고 처음을 상징한다. 흰색 음식으로 새해를 시작함으로써 만물의 부활을 바라는 종교적 의미를 내포한 거다. 원료인 가래떡이 무병장수를 뜻한다는 것쯤이야 당신도 모르지 않을 거다. 시루에 찐 흰떡을 길게 늘여 뽑는 것엔 ‘재산이 쭉쭉 늘어나라’는 축복의 의미까지 담겼다. ‘아니 뭐 이런 것에까지!’ 심지어 먹기 편하게 모양 낸 줄만 알았던 어슷 썬 떡 모양에도 의미가 있는데, 원형이 마치 그 옛날 엽전의 모양과 닮아 1년 내내 재화가 풍족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 비단 우리의 얘기만은 아니다. 우리가 새해 아침 온 가족이 떡국을 함께 먹으며 덕담을 나누듯 다른 나라에서도 모두 각자의 전통에 따라 새해 음식을 먹는다. 우리의 떡국처럼 안 먹으면 왠지 모르게 나이를 안 먹는 것 같은, 재료 하나하나에마저 뜻을 내포한 음식들 말이다. 그들의 새해 음식들을 보고 있자니, 새해 벽두부터 갈비찜 타령을 햇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왜?’ 아무리 새해 첫날이라지만 먹을 음식에 동전을 넣고 돼지 발톱까지 먹는 ‘황당한 시츄에이션’이란 대체 뭐냔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들의 음식에도 무병장수와 재복에 대한 소망이 담겼다는 거다. 국적과 문화, 종교가 달라도 새로운 한 해의 복을 기원하며 특별한 음식을 즐기는 것은 세계 공통의 마음인 모양이다.
(왼쪽 상단부터)
1. 미국 + 호핑존
영토가 넓고 다양한 인종이 한데 어울려 사는 미국은 인종과 지역에 따라 새해 아침에 먹는 음식이 조금씩 다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음식이 콩과 쌀, 고기, 그리고 푸른 채소를 넣고 끓인 호핑존이다. 원래 남부 지방의 흑인 노예들이 먹던 음식에서 유래했는데, 각 재료는 모두 부를 기원한다. 동그란 모양의 콩이 동전을, 푸른색 채소는 각각 지폐를 상징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진짜 동전을 넣기도 하는데, 이는 호핑존을 먹다 동전을 발견하면 1년 내내 행운이 따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2. 베트남 + 바인 쯩
베트남식 포장 기술을 소개하려는 건 아니니 오해 마시길. 이 요상한 모양의 음식은 베트남의 대표 설음식 바인 쯩이다. 찹쌀떡 안에 녹두와 돼지고기를 넣고 은근한 불에 8시간 이상 쪄서 만드는데, 찹쌀은 베트남에서 액운과 잡기를 없애는 음식으로 여긴다. 우리의 떡처럼 말캉해진 찹쌀은 정사각형으로 잘라 바나나 잎에 예쁘게 포장한다.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한 개씩 대접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바인 쯩은 베트남의 대표 설음식이자 설 선물이기도 하다.
3. 멕시코 + 포도
멕시코의 새해 아침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일 수도 있겠다. 물론 우리 기준에서 말이다. 우선 새해 첫날 밥상에는 12알의 포도가 오른다. ‘엥?’ 눈치 챘겠지만, 포도 12알이 1년 열두 달을 상징하는 거다. 먹는 방법은 더 독특한데, 포도 한 알을 먹을 때마다 새해 소망 한 가지씩을 빈다. 포도를 먹은 후엔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보물찾기’를 즐기는데 집 안 구석구석에 감춰둔 지폐를 찾으면서 1년 동안 자신에게 닥칠 행운을 점쳐보는 것이다.
4. 중국 + 녠가오
중국 사람들은 같은 발음을 가진 단어에 엄청 민감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연인끼리는 절대 배를 먹어선 안 되는데 배를 뜻하는 ‘리(梨)’가 이별의 ‘리’(離)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설날 음식 또한 예외는 아니다. 중국에선 매년 설이면 녠가오(年 )라는 쌀떡을 만들어 먹는다. 새해엔 더 좋은 일이 일어나라는 뜻의 녠가오(年高)와 발음이 똑같기 때문. 맛은 우리의 쌀떡과 흡사한데,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뜻을 담아 중국인이 좋아해 마지않는 금색을 입히고 ‘복’이란 한자도 새겨 넣었다.
5. 불가리아 + 바니차, 포카차
불가리아에는 전통 음식인 바니차와 포카차 빵을 이용해 한 해의 운을 점치는 재밌는 풍습이 전해진다. 우선 바니차 빵은 돈, 건강, 학업 등의 단어를 붙인 나뭇가지를 넣어 굽는데, 자신의 빵 안에 든 글자로 1년 운수를 예견하는 거다. 불가리아판 포춘 쿠키라고나 할까. 또 커다란 모양의 포카차 빵엔 동전 한 개를 넣고 구워 가족끼리 손으로 뜯어 먹는데, 동전이 들어간 빵 조각을 먹는 사람에겐 1년 내내 행운이 따른다고 믿는다.
6. 이탈리아 + 참포네
이탈리아의 새해 음식 참포네는 솔직히 좀 흉칙하다. 우리의 족발과 비슷하면서도 돼지다리 모양이 지나치리만큼 적나라한 것이다. 심지어 발톱까지 제거하지 않고 돼지다리를 그대로 삶아 만드는데, 사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땅을 긁지 않는 돼지의 발을 먹어야 한 해를 풍요롭게 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어로 ‘긁다’가 ‘궁핍’이란 단어와 발음이 같은 데서 유래했다.
"UV 가라사대, 청소년은 대공원, 노인들은 양로원 그리고 우리는 이태원으로 가라 했다. 그래서 이태원에 다녀왔다. 새로 오픈한 이태원의 와인 바 ‘12그로우’에 말이다."
가수 UV는 강남과 홍대에 사람이 너무 많아 이태원에 가야 한다 부르짖었지만, 솔직히 요즘에는 이태원에 사람이 더 많다. 어느새 로데오 거리란 이름까지 붙은 이태원 소방서 일대는 더 그렇다. 어디 하나 조용히 앉아 사색할 만한 장소가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로데오 거리 언저리에 오픈한 ‘12그로우’는 퍽이나 반가운 장소다. 우선 이곳은 편안한 분위기를 내세운 와인 바다.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대목이다. ‘왜?’ 최근 이태원에 오픈한 바들은 하나같이 라운지 바 일색이었다. 주말이면 마치 클럽인 양 일렉트로닉 음악을 퍼붓는 바들 말이다. 나같이 조용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이태원을 떠나게 된 연유다. 반면 12그로우에서는 재즈나 모던한 팝 음악이 주류를 이룬다. 지나치게 무거운 분위기도 아니라 편안하게 마음 내려놓고 와인 즐기기에 좋다.
바의 인테리어는 반전 그 자체다. 컨테이너박스를 이용한 외관이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면 아메리칸 레트로를 내세운 세련된 실내에선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테이블 수는 딱 8자리. 당장이라도 나만의 아지트로 삼고 싶은 분위기다. 매장 곳곳에는 사장이 전 세계 방방곡곡을 돌며 수집했다는 독특한 인테리어 소품들과 패션 서적들이 놓였는데, 심지어 접시까지 이탈리아에서 직접 구입한 에르메스와 카스텔바작 등의 ‘작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와인 리스트가 참 좋다는 거다. 쉽게 접하지 못했던 컬트 와인과 부티크 와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특히 10만원대 미만의 와인 리스트가 탄탄하니 와인 바라고 해서 으레 겁부터 먹을 필요도 없겠다. 매달 ‘이달의 와인’을 선정하는데, 이번 달엔 강력한 느낌의 시라즈 와인 ‘루치도르’가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호주에서 천재 와인 메이커라 칭송받는 크리스 링글랜드와 알 와인즈 와이너리가 합작한 와인이다. 전 세계에서 딱 1백60케이스만 존재한다니 희귀종 중의 희귀종이다. 당신에게만 살짝 귀띔해주자면 알 와인즈 와이너리는 올해까지만 와인을 생산할 예정이라고. 우물쭈물하다가는 이 와인, 평생 맛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12그로우를 이번 달에 꼭 찾아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주소 :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64-29 2층
영업시간 : 오후 8시~ 오전 3시
문의 : 02-79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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