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니 뭐니 해도 춤 하면 ‘탱고’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부에노스아이레스 보카 항구 뒷골목에서 마주쳤던 그 가슴 찌릿한 탱고 선율 한 자락, 그리고 그 선율에 맞춰 어둑한 밤거리를 끝간 데 없이 헤매던 두 남녀의 유려한 춤사위 한 대목은 지금껏 마음 한구석에 어릿하게 남아 있다.
그리하여 눈이 먼 후에도 ‘바벨의 도서관’을 구축하고자 텍스트의 한가운데에서 끊임없이 자맥질을 시도했던 보르헤스는 탱고가 자신의 삶의 큰 줄기임을 결코 잊지 않았다. 비록 영어로 소설을 쓰지만 ‘내추럴 본 아르헨티나인’답게 두 눈이 멀고 난 뒤에도 탱고 선율에 발맞춰 미로(迷路)와도 같은 부에노스아이레스 한복판을 걷곤 했던 그는 문장 하나를 후세에 남겼다. “탱고는 시인들이 언어로 기술하고자 하는 것들, 그리고 투쟁은 곧 축제라는 믿음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다.”
하여 탱고는 한없는 슬픔과 딱 떨어지는 절제, 절도 있는 동작에 내재한 유려한 운율이라는 상반되는 가치를 동시에 품은 역설적인 춤이자 예술이다. 내 시선의 바깥에서 한없이 미끄러지기만 했던 제시카 고메즈가 비로소 내 눈 안에 들어온 것은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 화려한 탱고의 한 자락을 한없이 소박하게 소화하던 그 슬프면서도 우아한 자태 때문이다. 그리하여 드디어 완벽한 S라인의 ‘쭉쭉빵빵’ 몸매가 아니라, 그 우아한 라인 안에 담겨 있는 세상사의 질곡, 지금껏 꿋꿋한 삶을 살아온 지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한국 나이로 스물셋. 꽤 어린 나이에 한국에서 모델 일을 시작했다. 왜 하필 한국이었나? 아는 사람 하나도 없었을 텐데.
모델 일은 10대 때부터 계속 해왔다. 호주에서 광고 모델로 시작해서 이런저런 일들을 했고, 뉴욕까지 진출하는 등 점차 모델로서 입지를 넓혀왔다. 그러던 와중에 2007년 LG에서 비키니폰 모델 제의가 들어왔다. 하와이에서 첫 촬영을 했고, 이후 한국에서 유명해졌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즈음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일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어머니가 동양인이긴 하지만 싱가포르계라 한국과는 인연이 전혀 없다. 낯선 한국인들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법한데?
그렇다. 한국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많은 고민을 했다. 무서웠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거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한국의 모델 업계, 패션 업계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미국과 호주에서 모델 활동을 하며 막 이름을 알리던 시기였기에 무턱대고 한국으로 간다는 건 정말 위험부담이 컸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건 언어 장벽이었다.
위험부담이 있는데도 굳이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글쎄. 비키니폰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이 열광적이라는 얘기에 호기심이 끌렸다. 내게 광고 모델을 제안한 이들은 좋은 미래가 보장될 것이라 했다. 어렵더라도 새로운 도전,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두려움을 이기기 시작했다.
‘신이 내린 몸매’라는 수식어가 있을 정도로 사람들은 당신의 몸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싫진 않은가?
뭐, 싫진 않다. 내 몸을 아름답게 생각하고 평가해주는 건 참 고맙다. 말 그대로 신이 내려준 것 맞다.(웃음) 그래서 항상 그에게 감사한다. 사실 내가 미국에서 처음 명성을 얻은 것도 몸매 덕분이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에 표지로 등장했었으니까. 세상 모든 것에는 두 측면이 있듯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잡지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섹시 걸을 표지에 사용하는 잡지이기도 하다. 섹시하다는 평가를 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내가 일상생활 내내 섹시하게 폼만 잡으며 생활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 속 보통 사람, 제시카도 한 번쯤 봐줬으면 좋겠다. 이 번에 <댄스 위드 더 스타>에 출연한 것도 단순히 침을 질질 흘리게 하는 광고 속 이미지뿐 아니라 ‘춤’이라는 목표에 전력투구하는 평범한 여자의 모습도 보여주고 싶어서다.
사람들이 완벽한 몸매의 ‘어른’ 여자만 상상하는 것과는 달리 당신에게도 어린 시절은 있었을 거다. 호주에서 보낸 유년기는 어땠나?
나는 부모님은 물론 두 명의 언니들과 각별히 친한 사이다. 집에 가면 좋아하는 바비큐를 하고, 맥주를 마시고, 해변에 가곤 한다. 호주의 생활 방식은 한국과 전혀 다르다. 느리고 쉬엄쉬엄 사는 분위기다. 반면 한국과 뉴욕은 훨씬 더 빠르고, 도시적이다. 어린 시절부터 언젠가는 ‘시티 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꿨더랬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시골 소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심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그동안 췄던 춤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보디가드다. 원래 왈츠를 좋아한다. 왈츠는 리듬이 매우 쉬워 듣기도 편할뿐더러 춤추기도 수월하다. 우리가 선택한 음악도 매우 좋았고, 또 춤추기 너무 좋은 노래였다. 실제로 휘트니 휴스턴을 비롯해 블랙 뮤직을 좋아하는데, Jay Z부터, 샤데, 비욘세, 알리시아 키스 등 R&B, 힙합을 즐겨 듣는다.
한국에서 비욘세에 버금갈 만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글쎄, 어릴 때부터 유명해지고 싶기는 했지만…. 비욘세와 비교된다는 건 무척이나 놀라운 일이다.
한국에서 인기를 얻은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보는지?
그건 내가 혼혈이기 때문이 아닐까? 아버지는 포르투갈인이고, 어머니는 중국인이다. 그래서 외모가 백인 같기도 하고 동양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마 그런 외모에 친근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손목에 있는 문신은 무슨 뜻인가?
아버지의 포르투갈 이름 ‘자카’와 어머니의 중국 이름 베이 연을 새겨 넣었다. 오른팔에는 ‘LOVE’라고 새겼는데 유치해 보일지 모르지만 어머니가 그리워질 때를 대비해 새겨놨다.
가로수길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는지?
많이 알아보는 편이다. 처음에는 그런 시선이 매우 쑥스럽고 불편했다. 나는 낯을 가리는 성격이 아닌데도 말이다. 가끔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숨고 싶을 때도 많았다. 지금은 많이 적응되어서 괜찮다. 가끔은 카페 같은 데서 ‘제시카 고메즈다’라고 수군덕거리며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는데 슬쩍 고개를 돌려버리곤 한다. 아직 시골 소녀의 티를 완전히 벗지 못했기 때문일까?(웃음)
호주의 생활 방식은 한국과 전혀 다르다. 느리고 쉬엄쉬엄 사는 분위기다.
반면 한국과 뉴욕은 훨씬 더 빠르고, 도시적이다. 어린 시절부터 언젠가는 ‘시티 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꿨더랬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시골 소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심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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