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매번 새로운 사람으로서 새로운 상황에 놓이잖아요.
늘 스스로를 의심하고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참 감사한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오늘 마침 <오징어 게임3> 티저가 공개됐어요. 간단히 귀띔 한번 부탁드려요.
티저에도 <오징어 게임> 시리즈 특유의 몰임감이 잘 담겼더라고요. 이번 작품에서는 전편보다 훨씬 더 처절한 인간 군상을 보실 거예요. 이야기도 전혀 예상 못한 방식으로 흘러가고요.
<오징어 게임>이 처음 나왔을 때의 감상도 궁금했어요.
박해수 배우가 출연했잖아요. 저랑 같은 회사에 소속된 친한 형인데, 워낙 시나리오도 재미있고 촬영도 즐거웠다고 해서 엄청 기대했거든요. 그럼에도 기대 이상이었어요. 각본, 연출, 촬영, 연기까지 볼거리가 정말 다양했으니까요. 그중 가장 눈길이 간 건 미술이었어요. 알록달록한 세트에서 456명이 목숨을 걸고 피 튀기는 게임을 하잖아요. 그 세계관 자체가 너무 특별했어요. 한 번도 보지 못한 거였으니까요.
모든 배우들이 <오징어 게임> 시즌 1 출연진을 부러워했을 것 같은데요. 내심 탐난 캐릭터가 있었다면요?
아무래도 해수 형이 맡은 ‘조상우’였죠. 나이가 비슷하기도 하지만, 218번이 마음에 들었어요. 제 생일이 2월 18일이거든요.(웃음) 혼자 의미 부여하면서 ‘내가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던 게 기억나네요. 제가 영화 <지옥만세>로 부산국제영화제에 간 적이 있어요. 일정이 끝나고 동료 스태프들이랑 횟집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막연한 꿈 하나씩 이야기해보자. 월셋집 탈출하기, 넷플릭스 드라마 출연하기 등등 여러 이야기가 오갔는데, 그때 제가 ‘<오징어 게임 2> 출연하기’를 말했거든요. 나중에 그 꿈이 실제로 이루어져서 다들 엄청 놀랐죠. 비현실적이었어요.
캐스팅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어땠나요?
<눈물의 여왕> 전체 리딩하는 날이었어요. 쉬는 시간에 저희 회사 팀장님이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오징어 게임> 쪽에서 연락이 왔다고. 심장이 쿵쾅거렸죠. 그런데 출연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촬영 기간이 <눈물의 여왕>과 6개월이나 겹쳤거든요.
조현주로 캐스팅된 이유에 대해서도 들으셨어요?
제가 KBS 드라마 스페셜 <희수>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평범하게 딸아이를 기르는 가장 역할이었는데요. 황동혁 감독님께서 그 작품을 보고 제안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조금 의아하기도 했죠. 워낙 다른 인물이었으니까요.
조현주 연기는 어떻게 준비했을지 궁금했어요. 특전사 출신의 트랜스젠더가 흔한 설정은 아니니까요.
절대로 현주가 희화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게 감독님과 정한 첫 번째 포인트였어요. 실제로 여러 트랜스젠더를 만나서 도움을 얻었고, 감독님과 다양한 톤으로 리딩을 해보기도 했어요. 작품에 나오지는 않지만 현주의 과거에 대해서도 아주 세세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씩 캐릭터를 만들어갔죠.
개인적으로 <오징어 게임2>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본인 장면을 고른다면요?
저희끼리는 ‘팀 현주’라고 하는데요. 찬반 투표를 앞두고 마음 맞는 참가자들이랑 ‘X’를 누르기로 약속했는데, ‘O’를 선택해버리죠. 금자가 왜 동그라미를 눌렀냐고 물었을 때, 현주가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거든요. 그 장면을 가장 좋아합니다.
<오징어 게임>은 워낙 출연자가 많아서 현장 분위기도 남달랐을 것 같아요.
처음 숙소 장면을 촬영할 때가 생각나요. 보조 출연자와 스태프까지 아마 500명이 넘었을 거예요. 배우들이 각자 자리를 찾아서 들어가는데 저한테 시선이 확 모이는 걸 느꼈어요. 그때 전재준으로 이슈가 됐을 때라 “헐, 전재준 여장했어” 하는 말도 들리고.(웃음) 사실 <오징어 게임2>에서 제가 트랜스젠더 역할을 맡은 게 가장 중요한 대외비 중 하나였거든요. 회차가 진행되면서 다들 “누나 예뻐요” 응원해주셨는데, 내심 ‘내가 이질감 있어 보이지는 않는구나’ 생각하면서 촬영을 이어나간 게 기억나네요.
여전히 ‘박성훈’ 하면 가장 먼저 ‘전재준’의 얼굴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죠. 그 후광이 숙제처럼 여겨질 것 같기도 합니다.
박성훈은 흔한 이름이잖아요. 제 얼굴은 알아도, 박성훈이라는 이름을 기억해주시는 분들은 많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더 글로리> 이후에는 저를 전재준으로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엄청 많아졌어요. 에전에는 ‘어디 나왔던 누구 있잖아’ 하고 설명이 길었다면, 이제는 ‘전재준’ 세 글자만으로 제 얼굴을 떠올려주세요. 감사한 일이죠. 빨리 전재준에서 탈피해야겠다기보다 아직은 즐기고 있습니다.
간혹 연기가 어렵다고 느껴질 때 찾는 작품이 있나요?
제가 집에서 보려고 영구 구매한 작품이 딱 하나 있거든요. 하정우 감독님의 <롤러코스터>. 하정우 감독님 특유의 위트와 코미디를 무척 좋아해요. 가끔 지치거나,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을 때 <롤러코스터>를 틀어놔요.
코미디 연기 욕심도 있어요?
있죠. 그런데 코미디 연기가 정말 어렵거든요. 늘 희극 배우분들을 깊이 존경하고 있어요.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성공한 시리즈잖아요. 그만큼 배우로서 ‘<오징어 게임> 출연’은 의미가 남다를 텐데요. 지난 세월들이 보상받는 듯한 기분도 들었을 것 같고요.
제가 다른 곳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요. 2라운드 ‘5인 6각’을 찍을 때였어요. 결승선을 통과하고 환호를 지르고 나니까 제 눈앞에 슬레이트가 들어오면서 ‘탁!’ 소리를 냈어요. 슬레이트에는 촬영 날짜가 적혀 있잖아요. 숫자 ‘23’이 제 눈에 딱 들어오더라고요. 제가 03학번이거든요. 여기까지 오는 데 20년이 걸렸구나. 대학생 박성훈이 어마어마한 작품 속에 들어와 있구나. 그제야 실감이 나면서 지난 20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더라고요. 배우 생활을 한 후로 처음 저 자신에게 칭찬해주고 싶은 순간이었어요.
만일 누군가 03학번 새내기 박성훈에게 ‘20년 뒤에 <오징어 게임>이라는 작품에 나올 거야’라고 말했다면 뭐라고 답했을까요?
안 믿었을 것 같은데요.(웃음) ‘에이 말도 안 돼. 내가?’ 했을 거예요.
‘배우 박성훈’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제가 어디서든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진 못하는데요. 그래도 어떤 현장에서든 동료들과 잘 어울리긴 하거든요. 동료 배우, 스태프들과 격 없이 지내는 성격이 배우 박성훈의 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요할 것 같아요. 배우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직업이니까요.
해를 거듭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극, 영화, 드라마 작업 모두 결국은 협업이 중요하구나. 저마다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동료를 대하는 방식도 배우의 실력이겠구나. 제가 부족할 때도 있지만, 늘 그 점을 염두하고 현장에 나가려고 합니다.
뜬금없는 질문인데요. 연기는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나요?
저도 그게 궁금해요.(웃음) 제가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작업할 때 한석규 선배님께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선배님도 여전히 고민 중이라며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연기가 무너지지 않을까? 성훈아, 너도 끊임없이 자문하고 노력하는 배우가 되렴.” 그 말씀이 정말 크게 와닿았어요. 배우는 매번 새로운 사람으로서 새로운 상황에 놓이잖아요. 늘 스스로를 의심하고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참 감사한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오징어 게임>이 끝나고 다시 20년이 지났을 때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하십니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믿고 볼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누가 들으면 비웃을 수도 있지만, 남들이 비웃지 않으면 꿈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모두가 믿고 볼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것이 저의 꿈이자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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