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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J-팝

정상급 아이돌이나 팝 스타의 전유물로 여기는 고척 스카이돔에서 공연을 펼치는 J-팝 아티스트가 등장했다. SNS에서도, 길거리에서도, TV에서도 이제 일본어 노래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그렇다. J-팝 붐은 이미 왔다.

UpdatedOn April 0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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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라시이 각코!

아타라시이 각코!

K-팝이 일본에서 인기를 끈다는 이야기는 약 20년 전부터 나왔다. 이제 K-팝은 일본 음악 시장에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하나의 장르로 정착했다. 반대로 J-팝이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끈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는 불과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전까지 수십 년간 우리나라에서 일본 대중음악은 소수 마니아만의 것이었다. 하지만 2025년 현재, J-팝은 2004년 일본 음반이 전면 개방된 이후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대중의 품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J-팝 공연 러시

한국에서 J-팝의 인기가 가시화한 것은 3년 전쯤부터다. 2023년 4월, 좀처럼 해외 음악을 찾아보기 어려운 멜론의 ‘톱 100 차트’에 일본 아티스트의 이름이 등장했다. 주인공은 바로 ‘NIGHT DANCER’로 해당 차트 17위에 오른 이마세(imase). J-팝이 멜론 ‘톱 100 차트’에 이름을 올린 일은 이때가 처음이다. 그 시기를 전후해 요네즈 켄시(米津玄師)의 ‘Lemon’이 13주 연속 한국 유튜브 뮤직 주간 톱 100에 들었고, 요아소비(YOASOBI), 후지이 카제(藤井風), 유우리(Yuuri) 등 J-팝 아티스트의 노래가 SNS를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하나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J-팝의 인기가 전반적으로 올라갔다기보다는 몇몇 곡이 일시적으로 유행한다는 인식이 컸다.

이내 J-팝 붐은 오프라인에서도 그 실체를 보이기 시작했다. 요아소비는 2023년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첫 내한 콘서트 티켓을 1분 만에 매진시켰고, 폭발적 인기에 힘입어 일정을 추가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펼쳐진 두 번째 내한 공연에서는 두 배 가까운 규모인 인스파이어 아레나를 채웠다. 이후 텐피트(10-FEET), 레이나(Leina), 토미오카 아이(冨岡 愛), 이브(Eve), 주토마요(ZUTOMAYO), 챤미나(ちゃんみな), 나니와단시(なにわ男子) 등 다양한 장르의 J-팝 아티스트가 한국에서 크고 작은 단독 공연을 펼쳤다. 그뿐만 아니라 J-팝을 중심으로 한 최초의 페스티벌 ‘원더리벳 2024’가 3일간 2만5000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성공리에 개최됐다. 기존에도 팬층이 탄탄한 일본 아티스트가 꾸준히 한국을 찾았지만, 이처럼 한꺼번에 다채로운 장르의 J-팝 아티스트가 내한하는 경우는 없었다.

일본 아티스트의 내한 러시는 끊이지 않았고, 그 규모는 더욱 커져갔다. 2024년 말 후지이 카제가 일본 가수로서 역대 최대 규모의 내한 공연인 고척 스카이돔 콘서트를 매진시킨 일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고척 스카이돔은 빌리 아일리시, 마룬 5, 찰리 푸스 등 글로벌 팝 스타와 BTS, 빅뱅, 세븐틴 같은 정상급 아이돌 그룹이 공연을 펼쳐온 국내 최대 실내 공연장이기 때문이다. 불과 1년 반 전에 그가 처음 내한 공연을 펼친 광운대학교 동해문화예술관의 10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앞으로도 많은 J-팝 아티스트가 내한할 예정이다. 4월에는 ‘Marigold’ 등으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모은 싱어송라이터 아이묭(あいみょん)이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9홀에서 첫 내한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예스24 라이브홀에서 첫 내한 공연을 한 유우리는 오는 5월, 반년 만에 그 10배 규모인 케이스포돔 무대에 오른다. 케이스포돔에 J-팝 아티스트가 서는 것은 2004년 아무로 나미에(당시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이후 21년 만이다.
단지 대형 공연장을 채울 만큼 팬층이 커졌다는 것만이 J-팝 붐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이제 길거리에서 일본 노래가 들리는 게 어색하지 않다는 것도 J-팝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최초로 J-팝 장르 팝업을 개최한 유니버설뮤직 재팬의 몬마 마리아 씨는 “음식점이나 로드숍에서도 후지이 카제, 래드윔프스(RADWIMPS)의 노래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이제 노래 한 곡의 유행을 넘어 J-팝이 한국에서도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체감했다”고 말한다. K-팝 아티스트가 J-팝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흔히 접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유우리의 ‘ベテルギウス(베텔기우스)’는 프로미스나인 송하영, 세븐틴 도겸, NCT 텐 등 여러 아이돌이 커버했다. 또한 그 커버 영상을 통해 J-팝에 관심을 갖게 된 팬들도 적지 않다. 한편으로는 앞서 말한 J-팝 아티스트와는 결이 다른 일본 가수들이 대거 등장하는 방송 MBN <한일톱텐쇼>가 인기를 끌면서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일본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제 정말 한국에서 J-팝은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음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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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소비

  • 요아소비
  • 퍼블리시티
  • 요네즈 켄시
  • 유우리
  • 후지이 카제
  • 아이묭

세상이 바뀌었으니까

한국에서 불고 있는 J-팝 열풍에는 복합적인 배경이 있다. 먼저 SNS를 통한 숏폼 중심의 음악 소비가 자연스럽게 J-팝 확산을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최근 한국에서 인기를 얻은 J-팝 중 많은 곡이 이 과정을 통해 알려졌다. 챌린지를 통해 인기몰이를 한 요아소비의 ‘アイドル(아이돌)’, 이마세의 ‘NIGHT DANCER’가 대표적이다. 유니버설뮤직 재팬에서 J-팝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는 몬마 마리아 씨는 “과거 일본 내 TV 음악 방송이나 라디오에 주력했던 프로모션이 지금은 SNS 플랫폼으로 옮겨갔다”며 “예전과 달리 J-팝이 실시간으로 해외에서 소비되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설명한다. 국내에서 J-팝 관련 소식을 전하는 인스타그램 채널 중 가장 많은 팔로워를 보유한 ‘제이팝 오제’의 운영자 오제 씨는 SNS상에서 J-팝에 대한 관심이 실시간으로 증가하는 것을 목격한 인물이다. 그는 “채널 개설 121일 만에 팔로워 수 10만 명을 달성했을 때 J-팝 붐을 실감했다”고 이야기하며 SNS가 J-팝 정보 교류에 핵심적인 플랫폼이라고 말한다.

애니메이션 등 일본 미디어 콘텐츠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실제로 팬데믹 시기에 OTT 콘텐츠를 활발하게 소비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마니아층을 넘어 대중적으로 소비된 점도 J-팝 확산의 이유로 거론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끈 요네즈 켄시의 ‘KICK BACK’, 요아소비의 ‘アイドル’, 크리피 넛츠(Creepy Nuts)의 ‘Bling-Bang-Bang-Born’은 각각 인기 애니메이션 <체인소 맨> <최애의 아이> <마슐>의 오프닝에 사용된 곡들이다. 그 밖에 한국에서도 크게 흥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 OST로 사용된 텐피트와 래드윔프스의 노래가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앞서 설명한 SNS를 통한 바이럴과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별도로 나눠서 볼 필요는 없다. 일례로 요아소비의 ‘アイドル’은 애니메이션의 큰 인기와 수많은 K-팝 아이돌이 참여한 챌린지가 시너지를 내면서 폭넓은 대중에게 사랑받은 경우다. 이처럼 J-팝은 다양한 경로로 유입돼 복합적으로 한국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물론 근본적으로 J-팝 음악 자체가 한국 대중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점도 큰 이유다. J-팝은 한동안 내수시장에만 집중하는 경향 때문에 글로벌 트렌드와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방송과 라디오에 출연하는 혜택이 일부 대형 기획사를 중심으로 독점되다시피 하자, 인디 아티스트가 인터넷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음악적 토대를 갈고닦아 나갔다. 그것이 현 J-팝 아티스트의 개성적인 음악성과 글로벌한 활동 반경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는 것이다. 현재 J-팝 붐을 이끌고 있는 아도(Ado), 후지이 카제, 바운디(Vaundy) 등이 모두 인터넷을 기반으로 활동을 시작한 대표적인 아티스트다. 이들은 일본의 밴드 신 아티스트와 함께 지금의 J-팝 붐을 이끄는 한 축이다. J-팝 심층 분석 콘텐츠를 다루는 인스타그램 채널 ‘사요크루’의 사요 씨는 “예전엔 애니메이션 관련 곡들이 주로 소비됐지만, 최근엔 개별 아티스트의 활동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고 말한다. J-팝을 음악적으로 깊게 분석하는 자신들의 콘텐츠가 사랑받는 상황이 J-팝 음악 자체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방증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 모든 현상의 기저에는 일본을 포함한 글로벌 문화에 대한 편견 없는 수용이 자리한다. 과거에는 일본어와 일본 문화 자체에 거리감이 있었다면,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후 태어나고 자라 SNS로 음악을 소비하는 세대에게 J-팝은 그저 ‘또 하나의 좋은 음악’일 뿐인 것이다. 실제로 2만5000여 명의 ‘원더리벳 2024’ 관객 중 85%가 10∼20대라고 발표됐다. ‘제이팝 오제’와 ‘사요크루’의 팔로워도 10대에서 30대 초반이 80% 이상이라고 한다. 이미 젊은 세대에게 J-팝은 K-팝이나 팝 음악이 채워주지 못한 부분을 채워주는 존재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대로 가면 일본에서 K-팝이 붐을 거쳐 하나의 장르로 정착했듯 한국에서 J-팝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을 날도 오지 않을까? 그 시기와 영향력은 아직 예단할 수 없지만 말이다. 한때 ‘오타쿠’ ‘독특한 취향’이라는 조소를 들으며 힘들게 구한 테이프, CD를 조용히 듣고 좋아하던 오랜 J-팝 팬들에게 지금은 꿈의 시대다. 2025년, J-팝 붐은 이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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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ibuting Editor 최용환
Image 더오차드, 소니뮤직코리아,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워너뮤직코리아

2025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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