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피사체로서 작업물을 만들어내는 일은 너무 흥미 있고 즐거운데,
제 생각을 그때그때 얘기하는 건 지금으로선 쉽지 않아요.”
촬영 후 붙여놓은 사진을 오랫동안 보고 있더라고요. 어땠나요?
바로바로 결과를 확인하게 해주시니까 보게 되더라고요. 좋은데요, 좋았어요.
남성지 화보는 처음 촬영하잖아요? 촬영장에 오기 전에 생각한 것과 결과물이 비슷했나요?
오기 전에 생각한 것보다 훨씬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남성지랑 잘 맞는다는 생각도 들었죠.(웃음)
첫 컷 찍는 순간부터 멋있다는 표현이 탁 떠올랐어요.
저도 매니시하고 시크하고 쿨하고 이런 걸 좋아해요. 예쁘고 귀여운 척하는 건 어렵더라고요. 때로 그런 모습이 좋을 때도 있고 할 수 있는 기회도 많지만, 이번 촬영은 제가 정말 편했어요.
편한데도 강렬함은 더없이 진하고.
그냥 툭툭 편안하게 했는데 그걸 잘 담아주셔서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촬영하면서 별 생각 없었어요. 그냥 멋있게 나오겠지 믿고 맡겼습니다. 피사체로서 제 역할만 잘하면 이 팀이 잘 만들어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나 봐요.
요즘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 보내나요?
하루하루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충실히 살아내자는 생각과 주어진 것들을 넘어서 제가 능동적으로 찾아서 할 수 있는 것도 해보자는 생각을 해요.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작업하며 균형을 맞추거나 배분하는 데 요즘 어려움을 느끼기도 하죠. 정확하게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 무리하지 않으면서 좋은 퍼포먼스를 내는 균형을 찾아야 하는 시기예요. 자꾸 오버페이스하게 되더라고요.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균형을 생각하네요. 절제를 잘하는 편인가 봐요.
제가 절제를 너무 잘해서 절제를 넘어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려는 시기를 보냈어요. 그렇게 해보니 또 부대낌과 오류가 있는 거예요. 과부하에 걸리기도 하고요. 이젠 절제와 의욕 사이 간극을 좁혀 유연해져야겠다고 생각해요. 안 해본 걸 많이 해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죠.
여러 방송이나 유튜브 채널에 많이 나왔잖아요. 자기 이야기를 한꺼번에 몰아서 많이 하는 시간을 보냈는데, 그런 경험을 해보니 어떤가요?
감사하게도 데뷔 때부터 섭외는 많이 들어왔는데, 그런 자리를 피하려고 했어요. 제 말이나 생각이 단면적으로 비치는 게 싫어서 당시에는 인터뷰 몇 개 외에는 잘 안 했죠. 지금은 제가 명분이 생기기도 했고, 공들여서 만든 작품을 끝내고 여러 가지 시도하는 시기라고 정했어요. 그동안 보여드리지 않은 모습도 보여드리려고 했죠.
나름 도전적인 행보였네요.
제가 피사체로서 작업물을 만들어내는 일은 흥미 있고 즐거운데, 제 생각을 그때그때 얘기하는 건 지금으로선 쉽지 않아요.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걸 즐겁게 하기 위해 미리 다 해놓는 거라는 마음으로 많이 했어요. 우선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걸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해보려고 했죠. 사실 요즘 제 성향과 맞지 않는 활동을 많이 했어요. 감사함을 표현하기 위해서든, 저를 필요로 하는 자리든, 해야 할 거 같아서 하는 경우든. 일단 전 저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픈 욕구가 없어요. 그냥 배역으로만 보이고 싶어요. 인간 차주영이 자꾸 소비되는 건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물론 지금 하는 이런 인터뷰는 무척 즐거워요.
아무래도 요즘 영상 콘텐츠는 무차별로 재생산되는 경우가 많죠.
너무 많이 파생되죠. 무한 증식처럼 퍼지잖아요. 그런 점이 공포로 다가오기도 해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에 동의하는 편이에요.
저한테 기회가 생겼을 때 한번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제 작품을 빨리 만나고 싶었죠.”
좋은 흐름을 만들어가니 오히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을 때 시절이 떠오르지 않을까 해요. 그때를 생각해보면 어떤가요?
사실 전 데뷔 때부터 운이 좋았어요. 그렇게 시간에 쫓긴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전 배우가 아닌 자연인 차주영의 시간도 중요한 사람이라 오히려 여유가 있어서 좋았죠. 당시에는 작품 한 편 하면 반절은 제 시간이었으니까요. 자유롭게 시간을 쓰면서 충전하고, 일할 땐 집중해서 딱 했죠. 그런데 지금은 구분할 새 없이 어떻게 보면 휘몰아친 거죠. 그동안 잘 구분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내가 배우고 배우가 나인 구분 없는 삶을 살다 보니 고민하게 돼요. 이제 익숙해져야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방송에서 만 30세까지 배우로서 유예기간을 둔 것처럼 얘기해서 초조함을 느낀 줄 알았어요.
사실 여유는 늘 있었어요. 그것보다 스스로 직업을 배우라고 얘기해야 할지 자신이 없던 시절이었죠. 제 직업을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는 시간을 보냈죠. 방송에선 제 얘기를 완벽하게 펼쳐놓을 수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배우로서의 절실함만 부각됐는데, 사실 그 당시엔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이 더 많았어요.
개인적인 일 때문에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 절을 찾았군요.
맞아요. 배우로서 잘되게 해달라고 간 건 아니었어요. 제 삶이 바로 설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갔죠. 그리고 제가 원하는 것을 더 정확하게 파악해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고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는 편인가요?
흔들리지 않는 줏대는 있었어요. 방법만 알면 잘해나갈 것 같은데 연기에 확신이 없다 보니까 그게 괴로웠죠. 연기 자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어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다루고 접근할지 하나만 딱 걸리면 될 거라 생각했죠. 그런 면에서 확신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진 게 답일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가진 것을 잘 발휘하고 활용하면 언젠가 괜찮은 무언가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확신은 있었죠. 전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에 동의하는 편이에요. 저한테 기회가 생겼을 때 한번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제 작품을 빨리 만나고 싶었죠.
<더 글로리>도 그렇지만, <원경>이 딱 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드라마는 끝났지만 아직도 크게 영향을 미칠 듯해요.
지금 시기에 만나기 어려운 작품을 너무 일찍 만났다는 생각도 들어요. 누군가의 일생을 다 보여줘야 하니 조금 더 내공이 쌓인 사람이 해야 하는 것 아닐까 했죠. 그래도 이 작품을 통해서 많은 경험을 하면서 시야가 넓게 확장했어요. 사실 이 말이 조심스럽긴 해요. 다음 프로젝트에서 그걸 또 확인받아야 하니까요. 그래도 그동안 배우로서 연차가 쌓이면서 확인해볼 수 없던 다양한 것을 제 방식대로 시도해보고 확인받은 것 같아요. 값진 경험을 한 것은 틀림없죠. 앞으로 더 대담하게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대단한 걸 봐야지 하는 마음도 아니었어요.
문득 사막이라는 데 가보고 싶어서, 눈만 보고 싶어서 가게 돼요.
가는 여정이 결코 쉽진 않았지만.”
<원경> 대본을 보면서 드디어 기회가 왔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나요?
당시에 대본이 여러 개 있었어요. 사극 대본도 몇 개 더 있었죠. <원경>은 가장 먼저 받은 대본이었어요. 다양한 작품을 읽으면서 바로 결정하진 않았는데, 어느 날 문득 <원경> 어디 갔지? 하면서 다시 찾았죠. 당시에는 완성된 원고도 아니었고 초고도 수차례 바뀌었어요. 일대기를 다루는 정도만 알고 어디까지 다루는지 전혀 몰랐어요. 그래도 다시 보고 이거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회사도 <원경>을 한다고 하니 처음에는 갑자기 사극을 한다고? 이런 반응이었죠. 한 번 하기로 하고선 다른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더 글로리>의 혜정과 <원경>의 원경왕후는 그만큼 다르고, 달라서 더 인상적이었어요. 차주영이라는 배우의 영역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느낌이랄까요? 그만큼 강렬해서 겁도 많이 났을 듯해요.
지금 생각해도 그 중압감을 제가 어떻게 이겨냈는지 모르겠어요. 다시 돌아가면 기술적으로 더 노련하게 잘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때의 진심과 열정, 그 모든 것이 합쳐져서 지금의 결과물이 나왔죠. 다시 하라고 하면 그렇게는 못 할 거 같아요. 뭘 몰라서 덤볐어요.
보통 겁 없이 덤벼야 좋은 결과가 나타나긴 하죠. <원경>을 보면서 그동안 차주영이란 배우를 잘 모르고 있었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음 모습이 더 궁금해지기도 했고요.
<원경>을 끝내고 나서 다른 대본이 읽히지 않더라고요. 드라마는 짧아서 함축해 보여줄 수밖에 없었지만 시대상이 완전히 다른, 상상하기도 힘든 시공간에 들어가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게 해나간 드라마이다 보니 끝나고도 빠져나올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는 역할은 배우라고 다 맡긴 힘들죠. 특별한 경험이기에 배우로서 성장 폭이 상당했을 듯해요.
아까 좀 이르게 찾아왔다고 얘기했지만, 그건 제가 받아들이기에 이른 시점이라고 생각한 거였어요. 배우로서 성장하기에는 적정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너무나도 만나기 힘든 경험을 했죠.
촬영하면서 이거 하나는 놓치지 않으려고 한 부분이 있었나요?
정말 진심 하나였어요. 연기하면서 기술적으로 컷마다 퀘스트처럼 해나가기도 했지만, 결국 답이 없을 때마다 나만큼 진심으로 할 사람은 없다는 마음으로 밀어붙였죠. 그 마음이 보시는 분들에게 전달될지 저한테는 엄청난 도전이었죠. 재촬영이 정말 많았어요. 진심에 집중하다 보니 눈물도 많이 나오고 과장한 부분도 있어서 많은 걸 쳐내고 담백하게 가려고 노력했죠. 제가 느끼는 만큼만 담백하게 하자면서.
연기하기 쉬운 캐릭터도 아니었죠.
다 끝났으니까 이렇게 말하지, 진짜 어려웠어요. 선한 역도 아니고 악역도 아닌 복잡한 인물이었죠. 대본도, 인물도 어려웠어요.
어쨌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잘 끝냈네요. 끝내고 나서 어려운 통로를 뚫고 딱 나왔을 때 느낌은 어땠어요?
전혀 실감이 안 났어요. 이렇게 끝난다고? 뭔가 더 해야만 할 것 같았죠. 아쉬움과는 달랐어요. 보이지 않는 어느 곳에서 그 인물과 이야기는 계속되는 느낌이었죠.
어쨌든 드라마는 끝났고 시청자는 다음을 기대하죠. 이후에 배우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나요?
이미 찍어놓은 작품도 다른 모습일 텐데, 평범한 사람의 사는 얘기도 하고 싶어요. 자꾸 자극적인 것만 찾아다니는 것 같은데 어떡하다 보니 그렇게 결정했을 뿐 심심한 듯 자극점이 없는 이야기도 해보고 싶죠. 아직 제가 보여드린 모습이 진짜 없다고 생각해요. 할 게 너무 많은데 또 시간이 없네요. 이젠 작품 하나 하면 거의 1, 2년이 훌쩍 지나가버리니까요. 영화 <로비> 외에 또 다른 영화가 개봉 예정이고, 지금 <클라이맥스>라는 OTT 시리즈를 찍고 있어요.
팬 이야기를 해볼까요? 어떻게 팬과 그렇게 살갑게 지낼 수 있나요?
사교적으로 잘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사람도 엄청 타고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하는 걸 좋아하지도 않아요. 그런데 그분들이 저를 보겠다고 시간 내서 와줬으니 그 반가움이 그대로 표현된 거죠. 그렇게 지낸 지 꽤 돼서 정도 들었죠. 처음에는 저도 경계했죠. 나를?(웃음) 알고 보니 절 좋아하시는 분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꾸준히 그 모습을 담았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제 사람들 같은 마음이 들었죠.
처음 보는 팬한테 그렇게 살갑게 구는 줄 알았어요.
저 그러지 못해요.(웃음) 진짜 오랜만에 한 번 보는 거예요. 그러면 또 반갑고 애틋하고 그렇죠. 그리고 제 팬들을 많이 본 적이 없어요. 몇 명을 계속 보는 거죠.
방송에서 인간관계가 좁은데 깊다고 했어요. 어떤 사람과 결이 맞나요?
자연스럽고 담백한 사람. 그리고 확실한 사람을 좋아해요. 매사가 모호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자기 몫 하나 정도는 하는 사람이 좋죠. 일 잘하는 사람도, 귀하게 여긴다는 게 뭔지 아는 사람도 좋아요.
어느 날 문득 사막 보러 가고, 눈 보기 위해 일본에 갔다는 말도 인상적이었어요. 거대한 자연을 보는 차분한 여행을 좋아하는 성격인가요?
처음부터 그런 여행을 좋아했거나 자연 친화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전 스케줄 없으면 반은 도쿄에 가 있을 정도로 도시도 좋아해요. 그런데 어느 날 그냥 고립된 환경에 있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대단한 걸 봐야지 하는 마음도 아니었어요. 문득 사막이라는 데 가보고 싶어서, 눈만 보고 싶어서 가게 돼요. 가는 여정이 결코 쉽진 않았지만. 섣불리 추천하긴 어렵지만 죽기 전에 한 번쯤 가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어지럽던 머릿속이 사막에 들어가는 순간 탁 정리됐죠. 아, 이러려고 왔구나. 설명할 수 없는 압도가 있죠.
방송에서 모터사이클 타는 모습을 봤어요. 어떻게 모터사이클에 관심이 생겼어요?
요새는 시간이 없어서 잘 못 타요. 어릴 때부터 와일드한 걸 좋아했어요. 차도 좋아해요. 원래 릭 오웬스 재킷 입고 두카티를 타고 싶었어요. 그런 느낌 있잖아요.(웃음) 모터사이클도 그냥 숍에 가서 타는 법 물어보고 바로 사서 한남대교 넘어 집에 왔어요. 그냥 타니까 탈 만하더라고요. 모터사이클은 가끔 타면 좋아요. 한 번 해봤으니까 이젠 됐어요. 제가 좀 그래요. 이런 거 저런 거 해본 것들이 다 그냥 멋있어, 할 거야 해서 한 거고, 수영은 물 공포가 있으니 극복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죠. 나중에 비행기도 조종하고 싶어요. 그냥 경비행기가 아닌 전투기.
아무래도 전투기 조종은 힘들겠네요.
그렇겠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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