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탁스 MX
김종훈(<아레나> 에디터)
대학생 시절 우리 과에는 카메라를 들고 다닌 사람들이 많았다. 1990년대 말이니 당연히 필름 카메라였다. 게다가 수동. 캐논 FM2를 가장 알아줬고, 펜탁스 MX를 보편적으로 많이 가지고 다녔다. 몇몇 사진에 심취한 친구는 전문가용 중형기도 들었지만, 아무래도 사진학과의 전유물이었다. 당시에도 수동 필름 카메라는 오래된 물건이었다. 수동으로 초점을 맞추고 노출에 따라 조리개를 조정해 찍어야 하기에 편의성은 떨어진다. 하지만 그런 수동만의 감성은 당시에도 중요하게 여겼다. 이 카메라가 몇 년도에 생산된 제품인지는 모른다. 2001년에 내 소유가 됐다. 제대하고 복학했을 때 과 동기에게 농담처럼 달랬더니 흔쾌히 줬다. 그 친구에게 다른 카메라가 생겼는지, 사진에 흥미가 떨어졌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농담은 행운으로 돌아왔고, 이 카메라로 대학생 시절 많은 순간을 담았다. 사진과 카메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이 카메라로 쌓았다. 친구의 선물이자 카메라와 친해진 계기. 디지털카메라가 주류가 된 지금까지도 이 카메라가 여전히 선반 한구석을 차지하는 이유다. 이젠 사진 찍는 목적보다 대학생 때를 추억하는 물건으로 기능한다. 좀 써볼까 하다가도 필름 가격과 현상하기 귀찮아 포기하기 일쑤였다. 최근에는 미러리스 카메라에 렌즈만이라도 결합해 활용해볼까 한다. 여전히 쓸 수 있는 좋은 물건이니까.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좋아한다. 디자인 때문이든,
내구성 때문이든. 긴 시간을 버텨온 이 시계는 그럴 수 있다.”
카시오 e-데이터뱅크
주현욱(<아레나> 에디터)
외삼촌이 중학생 때 주신 시계다. 2006년쯤이다. 왜 주셨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조카가 귀여워서 그랬을 거다. 당시에 난 얇은 돌핀 시계만 차고 다녔다. 그런 내게 묵직한 금속 재질로 만든 이 시계는 기능 많고 으리으리한 고급 시계로 다가왔다. 지금은 배터리가 다 소모돼 차분한 시계로 보이지만, 당시 하이테크 시계로 부르기에 충분했다. 제대로 작동하면 시침과 분침이 있는 기본 시계 위로 홀로그램처럼 세계지도와 디지털 숫자가 펼쳐진다. 시계 유리에 얇은 막이 있어 디지털 그래픽을 표현하는 형태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세계지도와 숫자가 그래픽으로 휙휙 달라지니 얼마나 신기했겠나. 학창 시절에 심심할 때마다 버튼 누르며 마법 같은 기술을 즐긴 기억이 난다. 이 시계는 고등학생 때까지 즐겨 차다가 대학생 때 기억에서 사라졌다. 대학생은 다른 놀거리가 많고, 군대에 가서는 튼튼한 지샥을 찼으니까. 1년 동안 안 쓰면 버리는 성격상 지금까지 이 시계를 갖고 있는 건 특별한 일이다. 사실 본가에 두고 잊어버렸다. 다행이다. 그 사이 시계에 관심이 생겼고, 레트로 시계 유행도 나타났다.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좋아한다. 디자인 때문이든, 내구성 때문이든. 긴 시간을 버텨온 이 시계는 그럴 수 있다. 배터리만 갈면 그때 그 세계지도가 펼쳐질 거라 확신한다. 그런 든든함이 있는 시계다.
로얄 캠핑 버너
최민관(출판사 ‘헤이펍스’ 대표)
2012년 겨울의 초입, 창고로 쓰는 본가 다락방에서 찾아냈다. 아버지가 쓰시던 물건인데 가족 중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 내 소유가 됐다. 이 로얄 캠핑 버너는 천생 야전 군인이신 아버지와의 추억이 짙게 밴 모델이다. 가끔 꺼내 들고 황동 본체를 닦으면 기분이 무척 좋아진다. 이 버너를 보면 남해의 너른 모래사장에서 일렁이는 태양과 찬란한 오방색 파라솔, 투망과 낚시 도구를 들고 있던 아버지의 뒷모습, 등유 랜턴 아래 잘 구워진 고기 한 점 물고 마냥 신나 뛰어다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날 귀갓길, 아마도 피곤하셨을 아버지가 몰던 포니 2 CX가 도로 옆 공사장 자갈 무더기로 올라갔다. 사고 난 기억은 뚜렷한데, 이후 어떻게 집에 왔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어린 날의 기억을 소환하는 물건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처음 찾아냈을 때는 추억 때문에 좋아했는데, 이젠 내가 아들에게 어떤 기억의 장면을 만들어준다는 의미가 더 크다. 아버지와 나를 잇고, 다시 나와 아들을 잇는 물건으로서 가치가 크다. 물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실제 캠핑하러 가서 기분 낼 때는 페트로막스 등유 램프를 쓴다. 오직 아버지와 함께한 추억을 간직한 관상용이다. 비싸고 화려한 것보다 만지고 느낄 때 행복해지는 의미가 깃든 물건을 좋아한다. 로얄 캠핑 버너가 딱 그렇다.
깁슨 커스텀샵 레스폴 커스텀 57
신동헌(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1996년에 산 1991년식 깁슨 커스텀샵 레스폴 커스텀 57년형이다. 제대하고 과외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처음으로 산 미제 기타다. 그전까진 국산 염가판 기타만 썼다. 이 기타를 치며 왜 비싼 게 좋은지 처음 알게 됐다. 당시 이것까지 (밴드 멤버와 공동으로) 깁슨 기타를 세 대 보유했는데, 다른 두 대는 깁슨이어도 일반 라인 제품이었다. 커스텀샵은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든 복각 라인이다. 나무나 플라스틱도 당시 쓰인 소재로 재현했다. 일반 라인도 좋은데 커스텀샵은 얼마나 좋을까 기대하며 들였다. 예상대로 소리가 끝내준다. 그 이후로 수많은 기타를 사고, 지금도 기타를 20여 대 보유했지만 단 하나만 남겨둬야 한다면 이 기타다. 결혼하기 전에 지금 아내 앞에서 깜짝 이벤트 공연을 펼쳤을 때도 이 기타로 연주했다. 그런 추억과 시간이 쌓인 물건이어서 소중하기도 하지만, 다 떠나서 소리가 가장 뛰어나다. 2000만원짜리 기타도 있지만, 소리는 이게 최고다. 지금 내 주변의 프로 뮤지션들도 다 탐낼 정도니까. 난 가성비라는 말을 안 믿는다. 저렴해서 산 물건은 결국 저렴한 물건이다. 비싼 게 무조건 좋다는 게 아니라 좋은 건 보통 비싸다. 그 값을 지불해 타협하지 않고 만족하며 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직접 몸으로 체감한 물건이 이 기타인 셈이다. 그때도 지금도 가장 만족하는 기타로 남아 있으니까.
“물건은 물건일 뿐이다. 결국 그걸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이 어우러져 이야기가 있어야 좋은 물건이 된다.”
히타치 캠코더
김선관(프리랜스 에디터)
1999년 초등학교 6학년 생일날 아버지가 사주신 캠코더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어떤 영화에서 한 영화학도가 양손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프레임을 만들어 사물과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멋지다고 생각해 그 동작을 시도 때도 없이 따라 했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내 행동이 즐거워 보였는지 생일날 사주셨다. 당시 꽤 고가의 물건이라 부모님 동행 때만 집 밖으로 가지고 나갔다. 이 캠코더는 영화라는 꿈을 꾸게 해준 오브제였다. 그 이후로 친구들과 드라마를 재현해 찍고, 가족의 일상을 담았다. 결국 영화 전공으로 대학원까지 가게 된 시작점인 셈이다. 이젠 가족의 흔적을 담은 물건이다. 가끔 이 캠코더에 비디오테이프를 넣어 그동안 찍은 영상을 보기도 한다. 할머니의 생전 모습, 젊은 부모님 모습, 철없는 동생이 다 그 안에 있다. 물건은 물건일 뿐이다. 결국 그걸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이 어우러져 이야기가 있어야 좋은 물건이 된다. 내게 이 캠코더는 ‘내 물건’을 넘어 ‘우리 가족의 물건’이 됐다. 지금은 너무 오래돼서 말을 잘 듣지 않고, 촬영하고 싶어도 테이프조차 구하기 쉽지 않다. 실사용 목적보다 관상용이다. 그래도 이 캠코더를 볼 때마다 그 시절을 소유한 기분이어서 여전히 남겨둘 수밖에 없다.
오메가 씨마스터 데이데이트
이동희(자동차 컨설턴트)
버지가 물려주신 시계다. 1998년 내가 결혼할 때 좋은 시계 차라며 주셨다. 물려주신 것이니 이 시계의 역사는 훨씬 오래됐다. 아버지가 결혼하실 때 모은 돈으로 산 시계라고 들었다. 결혼도 했으니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 같은 시계였다. 그러니까 그때가 1970년. 처음 물려받았을 땐 차고 다니지 않았다. 당시 내 눈에는 고급 시계라는데 금장 롤렉스도 아니고 해서, 좀 심심해 보였다. 그리고 그때 난 실용성과 기능성을 중시해 시티즌이나 세이코의 쿼츠 시계를 여러 개 상황에 맞춰 차는 걸 좋아했다. 베젤이 동그랗거나 네모나거나, 가죽 줄이거나 금속 줄이거나 차이를 두고 캐주얼과 정장에 맞춰 찼다. 그러다가 이 시계를 다시 돌아보게 된 건 일 때문이다. 제네시스 브랜드 관련 교육을 진행하면서 헤리티지를 얘기할 때 예를 드는 용도로 사용했다. 어쨌든 아버지가 나에게 물려주신 시계고, 나도 아들이 결혼할 때 물려줄 생각이다. 그렇게 물건에 시간이 쌓이면 나름의 헤리티지가 생긴다고 얘기하며 이 시계를 보여줬다. 그러면서 종종 차고 다녔다. 그 사이 수리도 했고, 간결한 디자인의 드레스 워치로서 다시 바라봤다. 보다 보니, 말하다 보니 전과 다르게 애정이 진해졌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물건은 오랫동안 쓸 수 있는 물건이다. 이 시계는 1970년부터 지금까지 수리하며 계속 쓰고 있다. 내가 가진 좋은 물건 중 하나인 셈이다.
좋은 물건은 좋은 기억을 남겨준다.
콘탁스 G2는 내 이야기가 담긴 좋은 물건이다.
콘탁스 G2
이주영(<아레나> 편집장)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2006년쯤 구입했다. 당시 로모 카메라를 비롯해 토이 카메라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다. 그러니까 디지털이 아닌 36mm 필름, 120mm 필름, 폴라로이드 등을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시절 얘기다. 캐논, 니콘의 전문가용 카메라보다 클래식한 외관에 가벼운 콘탁스 G2가 마음에 들었다. 저명한 사진가 유르겐 텔러도 이 카메라를 사용했다. 유르겐 텔러를 만난 적 없지만, 당시 유명한 패션 사진가 이전호가 이 기종을 사용했다. 필름 한 롤을 후루룩 찍는 그가 멋있어 보였다. 그와는 자주 작업했으니 콘탁스 G2가 더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콘탁스 G2는 거의 자동 카메라다. 오토포커스도 빠르다. 툭 찍으면 결과물도 만족스러웠다. 당시 나는 콘탁스 G2와 후지필름 조합을 좋아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스마트폰 카메라를 주로 사용한다. 그럼에도 처분하지 않았다. 원래 뭔가 사면 잘 팔지 않지만, 좋은 필름 카메라 하나는 오래도록 가지고 싶었다. 콘탁스 칼짜이즈 렌즈의 색감은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찍지 않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젠 필름 가격이 치솟아 다시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기억을 담은 콘탁스 G2는 여전히 지켜낼 것이다. 좋은 물건은 좋은 기억을 남겨준다. 콘탁스 G2는 내 이야기가 담긴 좋은 물건이다.
삼성 슈퍼 겜보이
정진해(모터스포츠 마케터)
역사가 깊은 물건이다. 1988년 출시한 게임기로 기억한다. 소유한 건 1989년이다.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1학년, 형이 초등학교 4학년 때. 형이 게임을 좋아해 아버지가 사주셨다고 기억한다. 형은 게임 잡지인 <게임월드>를 매번 구입해 게임 공략을 볼 정도로 게임을 좋아했다. 당시 난 너무 어렸으니 내 의지보다 형 덕분에 게임기를 소유할 수 있었다. 또래 형제가 있는 집이 다 그렇듯 형의 취향이 동생의 취향에 영향을 미친다. 일단 게임기의 소유권은 형이 우선이었다. 항상 게임을 하려면 형의 눈치를 봤다. 형보다 새로운 게임을 먼저 즐기면 구박도 받았다. 형이 없을 때 게임을 즐기던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물론 나이 들면서 다행히 형과 사이가 좋아졌다. 그 뒤로 수많은 게임기가 집에 들고났다. 패밀리, 슈퍼패미콤, 닌텐도64, 플레이스테이션 1 등등. 지금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삼성 슈퍼 겜보이는 남겨뒀다. 인생 첫 콘솔 게임기라는 의미가 있으니까. 형이 해외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자연스레 내 소유가 됐다. 물론 지금은 이 게임기로 게임을 즐기진 않는다. 최신 TV와 연결하려면 잭도 안 맞아 변환해야 한다. 과거에는 상상하게 하는 물건이었는데 이젠 추억하게 하는 물건이 됐다.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물건을 좋아한다. 손때 묻은 이 게임기에는 나만의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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