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심을 부리는 건 자존심 때문이죠. 진짜 자부심이 있는 사람은 안 그래요.”
아주 큰 ‘거기’를 가진 남자도 스키니 진을 입지 않은 이상, 외관상으로 그 크기를 가늠하기는 힘들다. 벨트를 풀고, 바지 지퍼를 내리고, 팬티가 발목을 지나치고 나서야 그 크기를 확인할 수 있다. 그 후에도 남자의 ‘진짜’ 크기는 확인하기 어렵다. 단단해진 후가 ‘진짜’ 크기니까. 현명한 여자들은 남자의 거기를 보지 않고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름하여 ‘꼬춘쿠키 확인법’이다. 그 방법 중에서도 인상적인 항목이 하나 있다. ‘거기의 크기를 논할 때 넌지시 웃고 있으면 클 확률 80%.’ 자부심은 직선적이지 않고, 물결파처럼 은은하게 퍼진다. 하지만 이번 기사는 남자의 그곳이 아닌 여자의 그곳이다.
큰 가슴은 벗지 않고도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이다. 요즘 뽕은 최첨단이다. 최신형 보정 속옷은 진짜 크기를 가늠하기 더 어렵게 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A에 속지 않는 법은 딱 봐도 C인 사람을 만나는 거다.’ ‘약간 처진 게 찐이다.’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이 되레 진짜 가슴을 구별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것은 아니다. 그녀들의 ‘부심’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
누가 봐도 ‘(가)슴부심’ 부릴 가슴이 없는 여자가 묘하게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자신감은 되레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섹스 테크닉은 필연적으로 내가 아닌 다른 남자의 도움을 빌렸을 테니까. 그런 점에서 혹자는 자신의 탁월한 테크닉을 대놓고 자랑하는 걸 꺼릴 수 있다. 하지만 ‘물부심’은 이야기가 다르다. 여기서 ‘물부심’은 타고난 애액의 양을 뜻한다. 한 여자로부터 ‘신세계를 보여주겠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난 어떻게 보여줄 건지 물었다. 관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는 아니어서 더 궁금했다. 그 답변을 잊지 못한다. “나는 물이 많아.” 언제 어디서든 ‘넣을 수 있는’ 상태에 대한 자부심일지, 아니면 그걸 좋아했던 남자들의 데이터에 기반한 근거 있는 자신감일지. 나는 그게 궁금해졌고, 다른 이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고등학교 동기 최성현은 현재 대학교를 졸업하고 법학대학원에서 수학 중이다. 그는 최근 쌍꺼풀 재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베타메일이라 이런 거라도 해야 돼.” 그는 타고난 대로 사는 것보다 잘생겨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자기 객관화가 잘되는 남자는 대체로 베타메일이 아니고, 최성현은 나름 알파메일이 될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런 그에게 ‘슴부심’과 ‘물부심’에 대해 묻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아쉽게도 아직 그런 여자는 만나본 적 없다.”
최성현은 목을 축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슴부심 있는 여자를 만나본 적은 있지. 그런데 ‘가슴도’ 큰 여자였어.” 무슨 뜻일까. “모든 신체 부위가 컸어. 어깨가 나만 했거든. 가슴이 크지만 다른 부위도 큰 여자. 나는 그런 여자 앞에선 잘 안 서.” 여기까지 말하고 최성현은 잠시 말을 멈췄다. 최성현은 ‘가슴만’ 큰 여자를 좋아했다. 대부분의 남자가 그럴 것이다. “그런데 ‘누가 봐도’ 가슴 큰 여자는 오히려 감추려는 것 같아.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티가 나니까.”
나는 최성현에게 물이 많은 여자를 만나본 적 있냐고 물었다. “있지. 하지만 물부심 부리는 여자는 없었어. 물이 많든 적든 간에.”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물이 많으면 기술적으로 섹스에 도움이 되긴 하지만 그건 젤로 대체할 수 있잖아. 나는 물리적 도움보다는, 시각이나 청각적 자극 때문에 물 많은 게 좋아.” 촉각이 아닌 시각적 자극 때문에 물을 찾는다라. 그 의미를 알 것도 같았지만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건 또 무슨 뜻이야? “나는 속옷의 변색분포도를 봐. 물론 당사자는 젖은 만큼 흥분된 게 아닐 수도 있지. 하지만 그걸 본 나는 상대가 ‘젖은 만큼’ 흥분했을 거라고 생각되니까. 젖어 있는 팬티 보고 안 좋아할 남자는 없을 것 같아.”
웹디자이너 박희연은 내가 아는 지인을 통틀어 슴부심을 가질 자격이 되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다. 자부심은 ‘자신이나 자신의 가치, 능력을 믿고 떳떳이 여기는 마음’이다. 박희연도 자신의 가슴을 떳떳이 여기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때마침 몸살을 앓는다며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집콕중’을 인증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자들의 부심’에 대해 글을 쓴다고 하자 박희연은 웃었다. “부심을 부리는 건 자존심 때문이죠. 진짜 자부심이 있는 사람은 안 그래요.” 박희연이 말하니 뭔가 그럴듯해 보였다.
“자타 공인할 만한 가슴이 있다면 굳이 슴부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는 거죠. 그보다 태도로 나오죠, 태도.” 태도로 드러난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저는 제 앞에서 눈을 어디다 둘지 모르고 당황하는 남자가 좋아요.” 같은 남자로서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해야 하니 계속 듣기로 했다. “내 가슴을 보고 나서 갑자기 느끼한 태도를 취하거나, 부담스러운 스킨십을 시도하는 남자들은 싫어요. 저는 아직 사랑을 하고 싶으니까. 큰 가슴은 남자가 어떤 성격인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인 것 같아요.”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잠깐 상상했다.
실례지만 정확한 사이즈가 어떻게 되십니까? “그렇게 크진 않아요. E나 F?” E나 F. 박희연은 남자들에게 E 나 F 사이즈의 가슴이 지니는 의미를 알면서도 괜히 ‘그렇게 크진 않다’라는 말을 덧붙이는 게 분명했다. 일부러 ‘그렇게 크진 않다’라고 덧붙이시는 겁니까? “요즘 큰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저는 그렇게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가슴이 ‘커 보이는’ 게 생각보다 어려워요. 보통 한국 여자들은 가슴이 크면 뼈대도 커서 ‘덩치’가 커 보이죠. 팔다리는 말랐는데 가슴만 크면 거의 수술이고요.” 본인도 가슴이 ‘커 보이기’ 위해 노력하십니까?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커 보이려고 하진 않아요. 몸매 관리를 열심히 하죠. 가슴에서 허리, 허리에서 골반. 몸 선이 둔탁해지지 않게 운동을 꾸준히 해줘야 해요.”
이번 칼럼의 주제는 사실 슴부심만 있는 게 아닙니다. 물부심도 있습니다. “물이 많아서 부심을 부린다고? 그런 여자가 있어요?” ‘나 물 많아’라고 하진 않아도, 그런 걸 은근 내비치는 여자는 있지 않습니까? “누가 내세울 게 없어서 그런 걸 내세워요.” 만약에 그런 말을 하는 여자가 있다면 무슨 마음일까요? “남자를 진짜 좋아하거나, 진짜 ‘하고’ 싶거나. 물이 많다고 말하는 여자가 궁금하긴 할 것 같아요. 얼마나 많은지. 그런 의미에서는 섹스 어필이 될 수는 있겠다. 일단 해보고 싶으니까. 그런데 섹스는 ‘한 번 해보고’ 싶은 거랑, ‘하고 싶은’ 거랑 완전 다르잖아요.” 생각해보니 ‘물이 많다’는 말은 남자로 치면 ‘나 시도 때도 없이 서 있다’는 말과 별반 다를 바 없군요. “그러니까. 너무 웃기다.” 하지만 나와 박희연 모두 웃진 않았다.
“꼭 자존감 낮은 애들이 그래요.” 유리공예를 하는 변수정은 화가 난 듯 말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수술로 키운 가슴이면서, 원래 큰 가슴인 것처럼 행동하더라고요. ‘너는 가슴이 작아서 그런 옷 안 어울려’라든가 ‘너는 엉덩이를 더 키워야 해’라든가.” 그분은 수술하길 진짜 잘했네요. 안 했으면 어떡할 뻔했어. “그러게요. 제 주변에 가슴 큰 친구들이 몇 있는데 먼저 티내지 않아요.” 그래도 자랑은 할 것 같은데요? “신기하게 그 친구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이 거의 비슷해요.” 노출이 있는 사진을 올리나요? “대부분 가슴이 부각되는 옷을 입고 사진을 찍죠.” 원래 큰 가슴이니 사진에서 더 부각되는 거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고요. 그걸 감안해도 사진의 결이 다 비슷해요.” 변수정은 한 친구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예시로 들었다. 나는 말없이 끄덕였다.
“가슴 크면 어쩔 수 없이 ‘글램 룩’ 을 입어야 한다니까요?” 영어학원에서 조교를 하는 김성주는 억울함을 토로했다. 왜죠? “우선 큰 가슴에 오버핏을 입으면 그냥 덩치만 커 보여요. 저희가 글램 룩을 입는 건 가슴을 드러내고 싶어서가 아니에요. 살쪄 보이고 덩치 커 보이는 게 싫어서 ‘어쩔 수 없이’ 택한 거예요.” 어쩔 수 없다라. “진짜라니까요.” 김성주는 억울했다. 앞서 박희연의 말대로 팔다리가 마르고 가슴이 큰 여자는 거의 없다. 그건 타고난 재능 같은 것이다. 타고난 여자들은 큰 옷을 입으면 오버핏 룩이 되지만, ‘몸도 가슴도’ 큰 여자가 오버핏을 입으면 그냥 ‘큰 여자’가 된다는 얘기였다. 김성주는 억울함과 동시에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려 들었다.
“아무래도 이런 옷만 입다 보니 클럽에 가면 의심을 많이 받아요.” 어떤 의심인가요? “가슴이 남자들 등이나 팔을 쓸고 지나갈 때가 있어요. 그럼 제가 플러팅하는 줄 알더라고요. 제가 죄송하다고 하면, ‘감사하다’고 해요.” 어떤 남자들에게는 감사할 일이긴 하죠. “그렇죠. 저도 슴부심이 없진 않아요. 문제는 슴부심을 부리지 않을 때도 슴부심 부리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나는 마지막으로 김성주에게 물부심을 가진 여자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아이러니한 답변이 돌아왔다. “남자들은 물 많은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아요. 나한테만 물이 많아지는 여자를 좋아하는 거지. 아, 내가 딱 그런 스타일인데···.”
슴부심과 물부심은 비슷한 듯 보이지만 다르다. 슴부심은 불특정 다수에게 도달하지만, 물부심은 섹스할 수 있는 상대에게만 통한다. 슴부심은 명확한 근거에 기반한다. 반면 물부심의 근거는 오로지 파트너를 통해서만 확인된다. “물이 왜 이렇게 많냐”는 말을 들을 때 비로소 객관적 물부심을 가질 수 있다. 그 효과도 복불복이다. 누군가에게는 자극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감점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고로 본인이 가진 무기에 자신이 있다면 그걸 굳이 어필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제 무기를 꺼내기도 전에 주변 남자들이 먼저 자존감을 올려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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