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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를 환영한다

흥미로운 흐름이 읽힌다. 최근 여성 서사 드라마가 몰렸다. 작년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이 후로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우연이지만 흐름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흐름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닐 테니까.

UpdatedOn March 05, 2025

“새로운 변주는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그 새로움이 여성 서사가 다채롭게 등장하는 배경이라 할 수 있다.”


고백하자면 OTT 마니아다. OTT는 이제 삶에서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다양한 OTT를 구독해 이 채널, 저 채널에서 몰아 보는 걸 즐긴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됐다. 왜 아니겠는가. OTT는 편하다. 움직일 필요도, 방송 시간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콘텐츠가 끝도 없다. 조금 기다리면 영화와 드라마가 적금처럼 차곡차곡 쌓인다. 만기 적금 받는 기분으로 쌓인 영화와 드라마를 몰아 본다. 사실 영화보다 드라마를 보는 경우가 늘었다. 몰아 보는 재미는 드라마가 제격이니까. 집중하지 않아도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다. 내게 OTT는 천일야화를 풀어내는 셰에라자드 같은 존재다. 앉아서 재생 버튼을 누르면 이야기가 끝없이 쏟아진다. 셰에라자드는 하룻밤에 한 편인데 OTT는 하루에 전편을 다 몰아 볼 수 있다. OTT로 드라마를 즐겨 보면 안 보이던 게 보이기도 한다. 어떤 흐름이랄까. 넷플릭스 시리즈는 자극적인 장면이 인장처럼 들어간다든가, 디즈니+ 시리즈는 어둡고 선 굵은 범죄 스릴러를 주로 제작한다든가. OTT만의 특색이 아닌, 드라마의 흐름이 눈에 띌 때도 있다. 다양한 채널에서 방영한 드라마를 모두 OTT로 다시 볼 수 있으니까. 진열대 위의 상품 특징이 비슷하다면 눈에 띌 수밖에 없잖나. 최근 흥미로운 특징이 보였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일이다.

각양각색 이야기

여성 서사가 몰렸다. 국극 배우의 성장기를 그린 <정년이>는 작년 10월에 방송했다. 특수 능력이 있는 가족을 다룬 <가족계획>과 노비 구덕이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옥씨부인전>은 작년 11월에 방송했다. 원경왕후의 이야기를 담은 <원경>, 여성 CEO와 비서의 로맨스를 다룬 <나의 완벽한 비서>, 시사 고발 프로그램 PD의 고군분투를 그린 <트리거> 모두 1월에 방영을 시작했다. 드라마는 방영 기간이 있다. 그런 점에서 모두 작년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바통 이어받듯 방영한 셈이다. 방송사도 제각각이다. <정년이>와 <원경>이 tvN으로 같을 뿐이다. <가족계획>은 쿠팡플레이에서, <옥씨부인전>은 JTBC에서, <나의 완벽한 비서>는 SBS, <트리거>는 디즈니+에서 볼 수 있다. 각기 다른 채널에서, 각기 다른 내용으로 여성 서사가 펼쳐졌다. 동시다발적 여성 서사의 향연. 이런 적이 있었나. 영화나 드라마를 제대로 본 이후로 처음이다. 물론 여성이 주체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창작물은 많았다. 기억을 멀리 되짚어보면 <에일리언>의 시고니 위버가 떠오른다. 우주 괴물과 싸우는 여성의 이야기. 어느새 40여 년 전이다. 1997년 작 <지.아이.제인>도 있다. 데미 무어가 한 손으로 팔굽혀펴기를 하는 장면은 지금도 기억한다. 군대는 남자의 세계로 통했다. 지금도 비슷하다. 무려 30여 년 전인데, 여성이 군대에서 활약하는 이야기를 다뤘다. 외국인 데다 영화라서 그럴 수 있다. 외국은 (그나마) 다양한 이야기가 곧잘 나왔고, 영화는 극적인 이야기를 잘 포착하니까.

그렇다면 한국에서 만든, 영화 말고 드라마를 보자. 가장 먼저 <대장금>이 떠오른다. 2003년 드라마다. 이영애의 역작. 궁녀가 성장하고 또 성장해 어의녀가 되기까지를 그렸다. 무려 54부작으로. 2009년에 방영한 <선덕여왕>도 있다. 한국사 최초의 여왕과 그에 맞서는 여성 정치가 미실의 이야기. 드라마 제목은 선덕여왕인데 미실 역을 맡은 고현정이 더 기억에 남았다. 두 여성을 중심에 둔 정치 사극이니 더 특별했다. 그렇다. 이런 이야기는 특별했다. 보편적이지 않고 특별히 기획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더 조명받았다. 반응도 뜨거워서 더 특별해졌다. 그 이후로도 여성 서사 자체는 여럿 있었다. 아니, 보편적으로 늘어났다. 액션을 펼치는 여성 같은 특별한 기획이 아니어도 여성의 삶 자체를 조명하는 드라마도 많아졌다. 여성들의 우정(<멜로가 체질>(2019))이나 세 자매가 풀어내는 스릴러(<작은 아씨들>(2022)), 커리어우먼의 성공기(<대행사>(2023)) 등 꾸준히 이어졌다. 그 사이 사회 분위기도 달라졌으니까. 여성 서사를 다룬 작품 수가 늘어난 건 익히 아는 사실이다. 중요한 건 앞서 주목한 동시다발적 출현이다. 물론 이들의 방영 기간이 몰리는 건 의도보다 우연이다. 제작 기간이 다르다. 방영하는 채널의 사정도 있다. 전략적으로 여성 서사 대여섯 편을 같은 시기에 순차적으로 풀어내는 건 무리다. 그럼에도 몰렸다. 우연이지만 뚜렷한 현상을 만들어냈다. 이건 중요하다.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 얘기다. 기획부터 제작, 방영까지 여성 서사를 선택했다는 의미다. 동시다발적으로. 여성 서사로 풀어내는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게 다채롭게 발화했다.

기존과 다른 매력

한꺼번에 몰렸다는 점 외에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이야기의 다양성이다. 여성 서사라 해도 각기 다른 내용과 장르로 풀어낸다. 남성이 있던 자리에 여성을 넣어 특별함을 부각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러니까 여성 주인공이 액션만 펼치지 않는다. 예전에는 그런 특별함을 강조했다. 이젠 그냥 여성 서사를 다채롭게 보여준다. <정년이>는 국극을 조명하며 아예 색다른 여성의 삶을 바라봤다. 잘 모르던 흥미로운 세계였다. 세계와 인물 모두 새로웠다. 그렇게 <정년이>는 드라마 배경으로 국극을 재조명하며 실제 국극에도 관심을 확장시켰다. <가족계획>은 특수 능력을 지닌 가족 얘기지만, 아빠가 아닌 엄마가 극의 중심이다. 배두나가 엄마 역을 맡았기에 비중이 높았을까. 엄마 역을 주축으로 놓고 배두나를 섭외했을 거다. 아무튼 아빠보다 엄마가 앞서며 극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질감이 또렷해졌다. <옥씨부인전>은 여성 성공 신화로 보일 수 있다. 구덕이가 조선시대 변호사인 외지부로 활약하는 이야기다. 20여 년 전 <대장금>이 겹쳐지려나. 하지만 단지 외지부 하나에만 초점을 맞춰 단선적으로 성공을 그리진 않는다. 신분을 바꾸는 이중생활과 운명 같은 로맨스, 사건을 해결하는 수사물까지 뒤섞여 흥미를 더한다. 반면 <원경>은 진중한 사극이다. 조선 왕실 초기의 정치적 혼란을 다룬다. 익히 봐온 이야기다. 하지만 태종 이방원이 아닌 원경왕후를 중심으로 풀어낸다.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니 해석도 달라진다. 극이 보다 풍성해진다. 그렇게 기존 익숙한 이야기를 여성 서사로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현대물인 <나의 완벽한 비서>는 여성과 남성의 전형적 관계를 뒤집으며 재미를 선사한다. 제목의 비서는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 여성 사장과 섬세한 남성 비서의 로맨스. 여성 사장과 남성 비서라면 신데렐라를 비튼 이야기인가 싶지만, 판타지보다 그냥 사는 이야기다. <트리거>는 여성 PD가 사건 문제를 조명하고 권력과 맞선다. 익숙한 이야기지만 강단 있는 여성 PD와 심드렁하지만 섬세한 남성 PD 조합이 새롭다. 여섯 편 모두 비슷한 구석이 없다. 다루는 이야기도, 풀어내는 방식도 다르다.

어떻게 이런 작품이 늘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만큼 사회 분위기가 달라져서? 물론 드라마는 사회를 반영한다. 그것만이 전부일까. 진짜는 새로운 이야기에 있다고 본다. 하늘 아래 새것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변주는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그 새로움이 여성 서사가 다채롭게 등장하는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변화도 있겠다. 웹툰과 웹소설의 등장을 꼽을 수 있다. 두 플랫폼은 제한 없이 상상력을 발휘한다. 또한 확실하게 독자층을 조준한다. 그러니까 여성 독자층을 위한 맞춤 창작물. 물론 앞서 언급한 드라마는 <정년이> 빼고 원작이 없다. 하지만 창작물의 영역 확장에 웹툰과 웹소설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도 웹툰, 웹소설이 원작인 작품은 수두룩하니까. 이런 이야기들은 새롭고 대담하고 꽤 자극적이다. 창작자를 자극해 상상하게 한다. 혹은 다루지 않은 틈새를 바라보게 한다. 그렇게 여성 서사가 새로운 이야기로 등장할 토양을 마련한다. 여성 서사의 전성시대. 꼭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다. 이젠 자연스러운 흐름이니까. 그럼에도 최근에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한 점은 인상적이다. 임계점으로 볼 수 있다. 하나의 흐름은 어떤 기점으로 활발해질 수 있다. 릴레이하듯 보여줬고, 저마다 반응을 일궈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흐름을 검증하면 금세 가속한다. 앞으로 다채로운 여성 서사가 등장할 가능성이 무척 높다는 얘기다. 반가운 일이다. 우린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원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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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김종훈

2025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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