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타오른 107번째 피티 워모의 불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다시금 이탈리아 남성복의 흐름이 피렌체로 돌아오고 있다고. 이건 밀라노 멘즈 패션위크의 위상이 점차 줄어드는 지금의 현실 속에서, 굳건하게 자기 영역을 잘 지켜내고 있는 피티 워모의 반등을 빗댄 말이지 아닐까 싶다. 이제 107번째다. 지난 1월 14일부터 17일까지 피렌체에 위치한 바소 요새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피티 워모는 다가오는 시즌의 본질과 정신을 담아낼 요소로 ‘불(Fire)’을 내세웠다. 매회 피티 워모가 열리는 바소 요새 내부로 들어서면 박람회장 앞에 이글거리는 화염이 영상으로 재생된다. 피티 워모 등의 연중 이벤트를 개최하는 피티 이마지네의 총책임자 아고스티노 폴레토는 “불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 몸과 영혼을 따뜻하게 하고, 주의를 끌며 길을 안내한다. 패션처럼 즐거움, 놀라움, 영감을 전하며, 오래된 관습을 녹여버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우리는 피티 워모가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흥분과 욕망을 불러일으키도록 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불이란 소재는 다중적 의미를 내포한다. 피티 워모는 그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열정으로서의 불을 끄집어낸다. 그래서 앞서 말한 바소 요새의 중앙 광장에는 디지털 모닥불이 타오른다. 그 위로 영상과 레터링을 얹어 불꽃을 더욱 매혹적인 비주얼로 완성해낸다. 107번째 피티 워모는 그렇게 불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이를 게스트 디자이너로 불러들였다. 바로 누구보다 뜨거운 팬덤을 보유한 MM6 메종 마르지엘라와 사토시 쿠와타라는 젊은 불꽃이 이끄는 셋추다. 피티 워모는 수많은 브랜드, 관계자, 바이어에게 사랑받아왔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미디어의 관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증거가 바로 MM6 메종 마르지엘라 2025 가을/겨울 쇼의 유치다. 각설하고 불을 테마로, 2025년 가을/겨울 시즌을 펼쳐낸 107번째 피티 워모는 성공적이라 평가할 수 있다. 피티 이마지네 CEO 라파엘로 나폴레오네는 “기대와 불확실성의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발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성공의 공은 박람회에 참가한 수많은 브랜드들에게 있다고 전했다.
이번 피티 워모에는 이탈리아 내 바이어 총 8300여 명에 해외 바이어 50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는 지난해 대비 6.5%가 상승한 수치다. 여기에 미디어, 에이전트등을 합친 전체 참석자 수는 2만여 명에 달한다. 이번이 나의 두 번째 피티 워모 참석이었다. 2020년 1월 97번째 피티 워모가 바로 첫 번째. 이때의 게스트 디자이너는 꽤 강력했다. 루시와 루크 마이어 부부가 이끄는 질 샌더가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을 사프란 꽃으로 수놓으며 런웨이를 펼쳤다. 생 로랑과 제냐를 이끌며 이름을 알린 스테파노 필라티가 자신의 브랜드 랜덤 아이덴티티로 참석했다. 여기에 떠오르는 신성 디자이너 텔파 클레멘스의 동명 브랜드 텔파의 쇼도 열렸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그때가 피티 워모 최고의 해였다면, 이번 107번째 피티 워모 역시 매우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 바소 요새는 많은 이들로 북적거렸고, 박람회장 내부의 브랜드 부스들은 이런저런 비즈니스로 바빠 보였다. 피티 워모의 진짜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으니, 이 그림이 완성되는 것처럼 보였으니 성공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참, 오는 2025년 6월 17일부터 20일까지 개최될 108번째 피티 워모에 미리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듯하다. ‘서울’을 특집으로 이런저런 이벤트가 열릴 거라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게스트 디자이너로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가 런웨이에 오를 것이라는 ‘설’도 있다. 아무튼 지금의 피티 워모는 다시금 부활의 신호탄을 완벽히 쏘아 올리는 것처럼 보인다.

피티 워모 박람회 중 브랜드 챔피언의 전시.
>“우리는 피티 워모가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흥분과 욕망을 불러일으키도록 할 것이다.”
GUEST DESIGNER 1:
MM6 메종 마르지엘라
이번 107번째 피티 워모에서 미디어를 비롯해 수많은 관계자가 고대한 건 누가 뭐래도 MM6 메종 마르지엘라의 런웨이였을 테다. 나 역시 MM6 메종 마르지엘라가 피티 워모의 게스트 디자이너로 발표되었을 때, 오랜만에 피렌체를 들러야겠다는 확신이 섰으니 말이다. 브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남성복 패션 박람회의 일환으로 피티 워모의 게스트 디자이너로 초청받아 영광이다”라며, “MM6의 스타일과 정신을 담아 피렌체를 위한 남성복 프로젝트를 선보이겠다”고 했다. 그런 MM6 메종 마르지엘라의 2025 가을/겨울 쇼는 피렌체의 대표적 건축물인 테피다리움 델 로스터에서 열렸다. 밤의 조명을 받은 건축물은 반짝였고, 그 유리 상자 안에서 펼쳐진 런웨이 무드는 관능적이며 뇌쇄적이었다. 이번 쇼의 테마에는 재즈 뮤지션 마일스 데이비스가 영감으로 자리했다. 브랜드에 따르면 이번 런웨이는 “서사가 아닌 제품을 중심에 두는 MM6 메종 마르지엘라 만의 솔직 담백한 방식으로 남성 복식을 구현했다”고 전해진다.
GUEST DESIGNER 2:
셋추(Setchu)
셋추를 이끄는 디자이너 사토시 쿠와타는 2023년 LVMH 프라이즈의 수상자다. 그런 그의 첫 번째 쇼 무대는 107번째 피티 워모. 젊은 디자이너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피티 워모의 아이덴티티에 잘 부합하는 브랜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피티 이마지네 오피스는 “오늘 날 우리는 예술, 패션, 오트 쿠튀르의 경계 영역에서 남성복의 독창적인 비전을 제안하는 새로운 세대의 디자이너들을 계속해서 알아가고 홍보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사토시 쿠와타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선정에 대해 사토시 쿠와타는 “피티 워모에서 첫 번째 셋추 쇼를 선보이게 되어 영광이다. 내 컬렉션을 통해 지식이 풍부한 관객과 사유를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셋추의 첫 번째 쇼는 피렌체의 유서 깊은 피렌체 국립 도서관에서 열렸다. 피렌체 국립 도서관은 18세기 초반부터 존재해온 지식의 보고 같은 장소다. 이런 곳에서 사토시 쿠와타는 클래식 현악으로 서막을 열고, 그만의 품격 있는 첫 번째 컬렉션을 완성했다. 이번 쇼만으로도 셋추는 향후 행보를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닌 브랜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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