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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의 적정 시간

섹스도 다다익선이 통하는 세계일까? 양보다는 품질이 중요하다면, 그 품질을 무엇이 결정할까? 혹은 양이 중요하다면 얼마나 많아야 할까? 그 답변을 얻으러 젊은 남녀를 찾아갔다.

UpdatedOn February 10, 2025

오래 할수록 좋다는 속설이 있다. 여전히 수많은 남자가 시간에 집착하고, 국적과 인종을 넘어 비슷한 욕망을 공유한다. ‘나 이렇게 오래 해’ 자랑하고 싶은 욕망. 남자는 그런 존재다. 고백하자면 나도 그렇다. 오래 하거나 많이 하면 으스댄다. 반대로 평소보다 빨리 끝나버렸거나, 한 번밖에 못 했다면 위축된다. 평소 ‘에겐남(에스트로겐 남자의 줄임말)’ 소리를 들을 만큼 복잡하고 예민한 나지만, 우리 할머니 말마따나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다. 남자는 여자보다 복잡할 수 없다. 남자가 생각할 수 있는 영역엔 한계가 있다. 무척 많지만 그중 하나가 섹스 시간이다. 남자는 단순하다. ‘시간’에 집착한다. 숨이 턱끝까지 올라오고, 사정감이 페니스를 가득 차기를 몇 회 반복하다 끝끝내 사정했을 때. 시침이 숫자 한 칸을 지나는 동안 한 번도 싸지 않았다는 성취감은 여자의 만족보다 더 중요하다. 일단 자기 몸에 자신이 있어야 좀 더 자신 있게 섹스할 수 있다. 여자를 지금 만족시키지 못하면 다음에 만족시키면 될 일이지만, 스스로 당장 만족하지 못하면 다음 번에도 만족시키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생기니까. ‘섹스의 적정 시간’으로 주제를 정하니 어떤 인터뷰가 나올까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자에게 섹스의 적정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저 ‘롱롱(Long-long)익선’이었다. 여자들도 명쾌한 답변을 냈다. 조루만 아니면 된다.

“적정 시간은 있다고 봅니다.” 30대 후반의 김지은은 섹스 칼럼을 쓴다. 김지은은 본명이다. 지금까지 섹스 칼럼은 가명으로만 진행했다. 본명을 써도 된다고 말한 사람은 김지은이 처음이다. “별로 숨기고 싶지 않네요.” 여자에게 섹스 칼럼이란 뭘까. 나는 30대 여자를 모르지만, 김지은은 30대와 여자와 섹스를 모두 잘 함축할 것 같았다. 김지은은 섹스에도 적정 시간 ‘같은 게’ 있다고 믿는다. “적정 시간 같은 건 ‘너무나’ 있지.” 얼마나 해야 적절합니까? “30분? 사실 20분만 넘어가도 뭐. 아니다, 15분. 그 정도만 돼도 힘들어.”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는데도요? “뭘 잘 모르시네. 어디 가서 그런 말 하면 큰일 나. 누워만 있다고 안 힘든 게 아니야. 같은 자세를 유지해야 하니까. 가만히 차렷하는 부동자세가 제일 힘든 거예요. 무엇보다 남자가 ‘잘 넣을 수 있는’ 자세를 유지해주고 있어야 하니까. 고욕이 따로 없지. 다이어터보다 유지어터가 더 힘든 거 몰라?” 하지만 절대적 운동량과 에너지 소비량은 남자가 훨씬 많지 않나? “그렇지. 절대적 운동량 자체는 남자가 더 많지. 하지만 힘든 분야가 다른 거야. 남자들도 원래 자기 군 생활이 제일 힘들다며? 그런 거랑 같다고 알아두자.” 그래서 이상적인 시간이 있다면? “<연금술사> 쓴 사람 누구지?” 내가 파울로 코엘료의 이름을 기억해내자, 김지은은 대뜸 책 한 권을 호명했다. “어 맞아. 그 양반이 쓴 책 중에 <11분>이 있어요. 나도 딱 그 정도인 것 같아.” 과연 11분은 이상적인 시간일까. 내게는 짧게 느껴졌다. “솔직히 5분만 넘어가도 힘들어. 나는 그래. 남자한테 지루가 있고 조루가 있는 것처럼, 나도 5분만 되면 힘들어져.” 그런 김지은도 20대 시절에는 조금 더 오래 하지 않았을까? “20대도 똑같았어.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 있는 것처럼, 내 섹스 체력이 그 정도로 딸린 것 같아.” 만일 5분씩 자주 한다면 어떨까? “물론 할 수야 있지. 젖긴 젖었으니까. 근데 재미가 없지. 속으로 ‘알았어, 알았어 이제 그만’을 반복해. 섹스는 길게 하면 산만해져. 15분쯤 지나면 둘 중 한 사람 스마트폰이 꼭 울려. 그럼 집중력이 깨져. 누구 알람인지도 궁금해지고.” 단순히 체력뿐만이 아닌 집중도의 문제였다.

김지은은 차분하고 거침없이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래서 나는 짧고 굵게 하는 남자가 좋아.” 그런 남자가 있었나? “완벽하진 않았어도 첫사랑과 했던 섹스가 제일 이상적이었지.” 어떤 점이 이상적이었을까? “우선 10분에서 15분 사이에 섹스가 마무리됐어. 무엇보다 나를 통해서 자신의 섹스가 얼마나 건장한지 확인하려 들지 않아서 좋았고. 그 남자는 나보다 열다섯 살 많았는데, 확실히 노련하기도 했고.” 여기까지 듣고 나는 이 질문을 하고 말았다. 그는 잘했나요? “섹스를 잘한다는 게 무슨 군대 뜀걸음이나 사격처럼 그저 잘 넣고, 오래 한다고 가능한 게 아니잖아. 여자가 느낀 ‘잘하는 남자’는 ‘무드 있게 하는 남자’니까. 아, 나는 아직도 무드에 너무 약해.” 나는 질문을 바꿔보기로 했다. 그 남자는 무드를 잘 잡았나요? “무드를 잘 잡기도 했고, 내가 무드에 잘 잡히기도 했지.” 그럼 첫사랑은 잘해서 더 좋아진 겁니까? 아니면 좋았기 때문에 섹스도 좋았던 겁니까? “당연히 전자지. 남자는 나보다 열다섯 살이나 많았지만 늘 변화를 즐겼어. 어둡게 하다가조명을 살짝 켜기도 하고, 커튼 치고 창문 열어서 바깥 소리가 들리게도 하고. 물론 하고 있을 때.” 첫사랑이 한 번 하고 몇 번 더 하자고 했을 땐 어떻게 했습니까? “나한테 아래만 있니? 입으로도 해줄 수 있고, 손발, 가슴 다 있는데. 내가 또 매력 어필하는 건 좋아해서. 그렇게 해줬지.”

“아무리 짧아도 10분은 돼야겠죠?
너무 짧으면 ‘내가 오나홀인가’ 싶은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럼 서로 슬프잖아요.”

김지은을 만나고 이틀 뒤. 나는 윤철현을 만나기 위해 한파를 뚫고 해방촌으로 향했다. 지독히 추운 날이었다. 찬 바람 속에서 20분 넘게 걷다 포근한 카페로 들어가니 마음도 한순간에 누그러든다. 커피가 테이블 위에 놓이자 묵혀뒀던 질문들이 앞다투어 나왔다. 윤철현은 서른다섯살 남자고, 지금은 도자기를 판매하는 일을 한다. 그는 ‘이상적인 섹스 시간’에 대한 질문에 ‘25분’이라는 구체적 답변을 내놨다. “25분. 그 정도면 딱 좋죠.” 윤철현은 경남 창원 출신이다. 여전히 경상도 사투리가 짙게 밴 그는 모든 답변을 시원시원하게 했다. 그럼 25분 동안 삽입하는 겁니까? “그렇게는 힘들어서 못하죠. 애무를 10~15분, 삽입을 10~15분 정도 합니다.” 타이머를 켜고 하는 것도 아닐 텐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어떻게 압니까? “어렸을 땐 잘 몰랐죠. 그런데 나이 먹고 경험이 누적되니까 몸이 기억하더라고요.” 그 이상을 한 적도 있습니까? “있죠. 1시간 넘게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드물어요. 그렇게 오래는 웬만해서는 잘 못합니다. 너무 힘들어요.” 듣다 보니 30대의 섹스가 부러워졌다. 섹스를 잘하는 법을 알아서가 아니라, 안 해도 크게 상관없다는 태도가 부러웠다. “4년 사귄 여자친구가 두 번이나 워킹홀리데이를 떠났어요.” 그동안 섹스는 어떻게 하냐고 따로 묻진 않았다. 어련히 알아서 잘 해결했을 테니. 나는 질문을 이어 나갔다. 애무를 꽤 오래 하는 편인가요? “남자들 중에 자기 거를 입으로 빤 여자와는 키스하기 싫어하는 남자들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편입니다. “저는 안 그렇습니다. 뭐든 역지사지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나저나 제가 안 한 지가 오래돼서 인터뷰를 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네요.”

류다운은 경제학을 공부 중인 대학생이다. 스마트폰 너머 류다운은 대뜸 질문을 걸어왔다. “연애하니까 글 잘 써지나요?” 류다운은 내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고 전화를 건 참이었다. 학교 다니기도 귀찮다는 그는 내가 원하는답변을 해줄 것 같지 않았지만, 이달 칼럼의 주제가 ‘섹스의 적정 시간’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흥미를 보였다. “저는 낮에 하는 게 좋아요.” 시간대 말고요, 얼마나 섹스를 해야 좋은가요? “저는 길게 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해서. 30~40분 정도?” 삽입만 30~40분 하는 건가요? “당연히 삽입만 하는 건 아니죠. 애무가 60% 정도 되죠. 체력도 체력이지만, 오래 하면 지루하던데요.” 자극이 충분해도 지루한가요? “같은 데를 계속 자극하면 무뎌질 수밖에 없어요. 애초에 진짜 잘하는 사람이 드문 데다가, 매번 색다른 자극을 주는 사람은 더 드무니까요. 섹스를 운동 목적으로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근육 키우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관계잖아요. 성관계.” 그렇다면 섹스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 있다면요? “아무리 짧아도 10분은 돼야겠죠? 너무 짧으면 ‘내가 오나홀인가’ 싶은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럼 서로 슬프잖아요.” 사랑하는 마음과 섹스 시간은 비례한다고 보십니까? “아니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거지, 그 사람이 가진 신체적 기능을 사랑하는 건 아니니까요.” 말씀하셨던 30~40분은 하루 할당량입니까, 아니면 회당 시간입니까? “회당 시간이죠. 남자가 한 번 갈 때까지 걸리는 시간. 회를 거듭할수록 시간은 짧아져도 괜찮아요. 반대가 돼도 그것대로 재밌을 것도 같네요.” 류다운은 뭐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의학신문>에는 이번 칼럼과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결과는 같았다. 18년 전에도 여성에게 섹스는 시간보다 질이 먼저였다. 김지은의 말처럼 “무드에 약하다”거나, 류다운처럼 “오래 하면 지루하다”라는 말도 등장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건 여자도 남자도 마찬가지다. 다만 18년 전에는 남자들이 ‘여자가 섹스에서 양보단 질을 선호한다’라는 사실을 접할 기회가 적었을 것이다. 그만큼 잘 몰랐을 거고. 이제는 조금만 찾아보면 내 상대가 어떤 섹스를 기대하는지 높은 확률로 예상할 수 있다. 우리에겐 ‘소셜미디어’가 생겼으니까. 나는 그저 시대 불문하고 여성들이 말하는 ‘사실’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남자에게 읽히길 바랄 뿐이다.

* 기사에 등장한 모든 인물의 이름과 직업은 가상으로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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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주현욱
Words 백윤준(칼럼니스트)

2025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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