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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센 주먹을 가진 남자

최두호는 알고 있다. 지더라도 떳떳하게 승부할 것. 자기 한계를 알되 재능을 믿을 것. 손에 쥔 칼이 무거울수록 더 예리하게 벼릴 것. 이것이 데뷔 11년 차 UFC 파이터가 새롭게 반등할 수 있었던 이유다. 최두호가 들려준 이야기에선 그의 주먹보다 더 묵직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UpdatedOn January 31, 2025

레더 재킷·팬츠 모두 타이가 타카하시 제품.

“내 격투기 인생 마지막 경기일 수도 있다.
그러니 부담도 후회도 없이 내 모든 걸 쏟아붓자.
그런 생각으로 훈련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실례되는 질문인데요. 지금 체중은 얼마나 되나요?
오늘 기준으로 79kg 정도 됩니다.

페더급 체중 제한이 65.8kg(145lb)인데, 경기 한 달 만에 13kg이나 불린 거네요.
계체 당일에는 65.8kg으로 통과하는데, 시합 당일에는 75kg 정도 나가요. 하루 동안 9kg 정도 불립니다. 의학적으로는 설명하기도 어렵고, 위험한 일이긴 한데 다들 그렇게 합니다.

하루 만에 9kg. 도대체 그 하루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죠?
어떻게 빼는지가 중요해요. 일단 계체 하루 전에 수분을 완전히 끊습니다. 체중은 대부분 수분 조절로 덜어내는데, 2~3주 전부터 최대한 수분이 잘 빠져나갈 수 있게 몸을 미리 만들어요. 가장 먼저 나트륨 줄이고, 그다음 탄수화물, 막바지에는 둘 다 완전히 끊습니다. 나트륨이랑 탄수화물이 몸의 수분을 계속 머금거든요. 그리고 물을 많이 마십니다. 미리 물을 많이 마셔둬야, 나중에 수분을 끊어도 계속 배출할 수 있거든요. 마지막에는 유산소운동을 하거나, 열탕에 들어가서 수분을 최대한 빼내고요. 그렇게 마지막 하루 동안 3kg에서 많게는 6kg까지 뺍니다. 수분 섭취만 잘해도 5~6kg은 바로 올라와요. 많게는 10kg까지 회복합니다.

계체가 끝나면 UFC에서 비닐 팩에 먹을 걸 따로 준비해 주더라고요. 그게 뭔지도 궁금했어요.
계체가 끝났다면 끊었던 음식들을 역순으로 먹습니다. 말씀하신 봉투에는 주로 음료가 들어 있는데요. 각각 설명이 적혀 있어요. 처음 30분 동안 이 음료, 다음 30분 동안은 저 음료를 마셔라. 대부분 탄수화물, 아미노산, 크레아틴을 혼합한 일종의 이온 음료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 합치면 2L 정도 되는데 그걸 두세 시간 동안 나눠 마셔요. 전 수분 섭취 후에 죽을 먹습니다. 선수마다 다른데 저는 죽이 제일 낫더라고요. 외국 선수들은 파스타 많이 먹고요.

12월 8일 있었던 ‘네이트 랜드웨어’ 전은 퍼펙트게임이었죠. 인터뷰를 진행한 조 로건은 “커리어에서 보여준 적 없는 다른 레벨의 경기를 펼쳤다”라고 했고요. 경기 내내 무척 차분해 보였는데,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었어요.
사실 경기 중에는 최대한 생각을 안 하려고 해요. 가장 이상적인 건 내가 준비한 것들이 생각을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나오는 거죠. 물론 레슬링이나 그래플링 상황에서는 생각할 여유가 조금은 있어요. 하지만 타격전에서는 너무 순식간에 일이 벌어지니까 생각을 해도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반복 훈련이 중요합니다. 제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습관처럼 익혀놔야 경기에서 나오거든요. 다만 이번 훈련에서는 ‘자신감 있게 KO 시킬 수 있는 주먹을 많이 내자’는 생각을 했어요.

상대 선수가 워낙 체력이 좋다 보니, 판정보다 KO를 노린 거네요.
맞아요. 네이트 랜드웨어는 체력이 워낙 좋아서 경기 후반부에 승패를 뒤집는 선수거든요. 저도 그 부분을 걱정했어요. 센 주먹을 계속 던지면 체력적으로 빨리 지칠 수밖에 없으니까요. 역전당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겠더라고요. 그냥 자신 있게 초반부터 내가 잘하는 걸 해보자는 전략으로 준비했습니다.

경기 내용은 어땠나요? 본인이 예상한 대로 흘러갔나요?
제 예상보다 더 잘 풀렸죠. 사실 객관적으로 봐도 테크닉이나 파워 면에서 제가 확실히 한 단계 위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네이트는 자기보다 한두 단계 위의 선수들을 상대로 인상적인 승리를 꾸준히 해온 선수거든요. 저 자신을 믿지만 이 선수의 뒷심을 봉쇄할 만큼 충분할까 싶기도 했어요.

이번 경기 인터뷰에서 “그래도 UFC 짬밥 10년인데 이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라는 소감이 화제가 됐어요. 따로 준비한 소감은 아니었죠?
전혀요. 옛날에는 소감을 미리 생각해본 적도 있는데, 스트레스더라고요. 당장 경기를 이길지 질지도 모르니까. 그런 상황에서 소감까지 생각할 정도의 여유는 없었어요.

‘빌 알지오’ 전 승리 후에는 울었고, 12월 ‘네이트 랜드베어’ 전 승리 후에는 웃었습니다. 두 경기는 어떤 점이 달랐나요?
빌 알지오 경기 전까지는 속앓이를 많이 했죠. 부상 때문에 시합도 안 잡혔고, 악플도 많았고요. 저는 스스로 정신력이 정말 강하다고 생각해왔거든요. 늘 ‘아무렇지도 않다’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기고 나니까 안도감이 들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스스로 의심해오던 것들이 해소되는 기분이었어요. 저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랜드웨어 전에서는 훨씬 마음이 가벼웠겠네요.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으니,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갈 단계라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내가 이 선수를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은 없었습니다. 내가 가진 무기가 정말 좋은데, 4~5년 동안 더 좋은 물건으로 만들어 왔다. 너도 좋은 물건을 가진 것 같은데, 누구 것이 더 나은지 한번 붙어보자는 느낌이었죠. 저는 이번 경기에서 지더라도 UFC에서 기회를 더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럼에도 만약 이 선수한테 진다? 그럼 저는 이 운동을 그만뒀을 거예요. 수년 동안 준비한 게 안 통한다면 굳이 더 커리어를 이어 나갈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거든요.

은퇴를 생각하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비장하기보다 태연해 보였거든요.
물론 지더라도, 어떻게 졌는지가 중요하겠죠. 하지만 오로지 실력으로 밀려서 졌다면, 다시 시합 생각은 안 했을 겁니다. 그런 생각이었기에 오히려 마음이 가벼웠어요. 자신감도 있었고요. 내가 가진 최고의 무기가 안 통한다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임한 경기였어요.

앞으로도 모든 시합을 커리어 마지막 경기라는 생각으로 준비하겠네요.
이제 적은 나이도 아니니까요. 내 격투기 인생 마지막 경기일 수도 있다. 그러니 부담도 후회도 없이 내 모든 걸 쏟아붓자. 그런 생각으로 훈련하고 있습니다.

UFC 경기를 보면 세컨드들이 펜스에서 소리치면서 디렉션을 주잖아요. 그게 들리나요?
아주 가끔 한마디씩 들려요.

들으려고 노력도 하세요?
아니요. 그 정도의 여유는 없습니다. 다른 선수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저는 상대방을 눈앞에 두고 세컨드 목소리를 들을 만큼의 여유는 없어요. 그라운드 상황에서는 조금 더 잘 들리긴 해요. 특히 제가 밑에 깔려서 그라운드 싸움을 할 때는 더 잘 들리죠. 그런데 워낙 경기장이 시끄러워서 정확하게 들리진 않습니다.

슬리브리스 톱 베인, 팬츠 니치투나잇, 반지·목걸이 모두 아크바인, 신발 페라가모 제품.

“이제는 스스로 ‘종합격투기를 이해하는 선수’라고 생각해요.
싸움꾼에서 운동선수가 된 거죠.”


국내 팬들은 최두호를 두고 ‘역대급 재능’이라고 하죠. ’내가 격투기에 소질이 있구나’ 처음 알게 된 건 언제쯤이었나요?
처음 운동을 시작한 게 열일곱에서 열여덟으로 넘어가는 12월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어떤 운동이든 잘 하긴 했어요. 그래서 격투기도 당연히 잘할 줄 알고 체육관에 갔는데 생각만큼 안되더라고요. 격투기가 운동신경으로 하는 운동은 아니거든요. 시간이 조금 걸렸죠.

복싱 체육관이었나요?
주짓수, 종합 격투기를 같이 다루는 체육관이었어요. 2007~8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종합 격투기를 제대로 다루는 체육관이 없었거든요. 사실 거기서도 곧잘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서 빠르게 아마추어 시합에 나갔어요. 그리고 네 번을 연달아 졌어요. 나가기만 하면 지는 거예요. 3연패 후로는 친구들한테 시합 뛰러 간다는 이야기도 못 했어요. 계속 지니까.

최두호도 처음부터 이기기만 했던 건 아니네요.
처음에는 지기만 했죠. 격투기를 시작하고 시합에서 처음 이기기까지 2년 정도 걸렸어요. 기본기가 없었던 거죠. 어느 정도 기본기가 만들어진 후로는 계속 이겼어요. 20연승 가까이 했던 걸로 기억해요. 당시 아마추어 이종격투기 선수로는 기록적인 숫자였다고 하더라고요. 그제서야 ‘이 정도면 내가 이 운동을 제대로 한번 해 봐야겠다’ 생각할 수 있었어요.

닉네임 ‘코리안 슈퍼보이’도 그 무렵 만들어진 거죠?
UFC 데뷔 전에 일본 DEEP이라는 단체에서 뛰었어요. 프라이드에서 뛰던 선수들이 한참 합류하던 시기라, 베테랑 선수들이 많았거든요. 그때 저는 스무 살 정도 되는 신예였고요. 한국에서 온 무명 선수가 베테랑들을 다 KO로 잡으니까, 그걸 보던 일본 팬들이 ‘한국에서 온 슈퍼보이다’해서 지어줬던 별명이에요.

중간에 닉네임 바꿔볼 생각은 없었어요?
네. 딱히 새롭게 해보고 싶은 이름도 없었고, 저도 마음에 들어서.(웃음)

최두호 선수는 같은 체급 안에서도 워낙 펀치가 좋은 걸로 유명하잖아요. 그 이유가 있을까요?
동현이 형, 찬성이 형이랑도 이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저는 제 펀치가 훈련으로 만든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형들이 그러더라고요. 그런 훈련은 다들 한다고. 네 주먹은 타고난 거라고. 격투기도 과학이잖아요. 강한 데는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는데, 선배들은 제 주먹이 센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직접 맞아본 사람들은 뭐라던가요?
느낌이 다르대요. 맞으면 ‘아픈 느낌’ 보다 ‘울리는 느낌’이라고 하더라고요.

반대로 직접 경험해본 주먹 중에 ‘정말 세다’ 느꼈던 선수가 있다면요?
예전부터 찬성이 형이랑 스파링하면 그랬어요. 팬들은 타격만 놓고 보면 최두호가 정찬성보다 낫다고들 하시는데, 막상 스파링 해보면 확실히 주먹이 달라요. 특히 어퍼컷이 엄청 셉니다. 제가 지난 17년 동안 스파링 하면서 딱 두 번 쓰러졌거든요. 한 번은 헤비급 선수 주먹 맞았을 때고, 다른 한 번은 찬성이 형한테 어퍼컷 맞았을 때였어요. 그만큼 주먹이 셌어요.

요즘에는 다들 ‘레슬링이 최강이다’라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현 챔피언들만 봐도 레슬링 기반 선수들의 비중이 높고요. 종합 격투기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타격이나 레슬링이죠. 그래플링은 꼭 필요한 방패지만, 아주 강한 창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보통 최두호 하면 ‘타격’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잖아요. 스스로 생각하는 장점은 다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저의 장점은 빠른 이해력이에요. 어떤 동작이나 기술도 그 원리를 빨리 파악하고 잘 적용할 수 있다고 해야 될까요? 프로 선수들에게는 그 이해력이 아주 중요한데, 이해가 확실히 빠른 것 같아요.

파이트 IQ가 높은 거네요.
그런 셈이죠. 반대로 단점은 스스로 이해력이 좋다고 생각하니까, 반복 연습을 별로 신경을 안 썼던 거죠. 어차피 할 줄 안다고 생각하니까. 이제는 알죠.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반복해서 훈련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이번 연승이 가능했던 것도, 반복훈련이 누적된 덕분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죠. 종합격투기 선수들은 전성기가 늦은 편이에요. 다른 격투 종목에 비해서 챔피언들의 나이가 많아요. 왜냐하면 할 게 너무 많거든요. 레슬링 선수들은 레슬링 한 종목만 가지고 평생을 훈련하잖아요. 그런데 MMA 선수는 레슬링도, 주짓수도, 타격도 준비해야 해요. 이 세 가지를 어중간하게도, 아닌 ‘잘’ 해야 되고요.

시험으로 치면 공부할 양 자체가 너무 많은 거네요.
그래서 처음 종합격투기를 시작할 때는 ‘레슬링’ ‘타격’ ‘주짓수’를 각 종목 선수들한테 지지 않을 정도로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전성기가 늦는 거죠. 20대 초반에 그걸 다 완성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니까. 여기서 챔피언이 되려면 셋 중 최소한 하나는 그 종목 선수에게 ‘지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이길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어야 해요. 세 개의 방패를 만들어 놓고 하나의 창을 만드는 거죠. 재능에 따라 가질 수 있는 창의 예리함이나 개수가 달라지는 거고요.

올해로 UFC 데뷔 11년 차입니다. 2014년 11월 샘 시실리아와 첫 UFC 데뷔전을 치렀는데, 그때의 최두호와 지금의 최두호는 무엇이 다를까요?
그때는 그냥 싸움꾼이었어요. 복서도, 종합격투기 선수도 아니고 싸움꾼. 그때도 훈련은 열심히 했고 실력도 괜찮았지만, 이 스포츠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어요. 이제는 스스로 ‘종합격투기를 이해하는 선수’라고 생각해요. 싸움꾼에서 운동선수가 된 거죠.

UFC 선수들은 1년에 한 번도 경기 제안을 못 받을 수 있잖아요. 그만큼 보람을 느낄 순간도 적을 듯한데, 그럼에도 ‘내가 격투기 선수 하길 잘했다’ 하는 순간이있다면요?
결국은 이겼을 때죠. 나머지는 힘든 것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 기분이 1년에 한 번이든, 2년에 한 번이든, 3년에 한 번이든 상관없어요. 그 순간을 위해서 모든 걸 감수하는 겁니다.

어떤 기분인가요? 옥타곤 위에서 자기 이름이 환호받는 기분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데요.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그간의 모든 순간이 한 번에 보상받는 거잖아요. 약 2만 명의 관중이 제 이름을 외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세상의 중심에 있는 기분이 들죠.

생각해보면 커리어 내내 트래시 토크를 한 번도 제대로 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파이트 머니를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는 필요할 것 같기도 한데.
파이트 머니가 올라간다는 보장만 있으면 바로 트래시 토크를 합니다.(웃음) 하지만 트래시 토크도 잘해야 파이트 머니가 오르죠.

하긴 트래시 토크도 적성에 맞아야겠네요.
그렇죠. 저는 경기로 파이트 머니를 올려보려는 편이에요. 트래시 토크가 적성에 안 맞기도 하고요.(웃음)

지난해 ‘빌 알지오’ 경기 전까지 8년 가까이 승리를 못 했잖아요. 여러모로 힘든 시기였을 텐데, 그때는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했습니까?
조금 웃긴 이야기인데요. 저는 그때도 스스로 엄청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랑 스파링해도 제가 다 이겼거든요. 조급한 마음은 없었어요. 그냥 내가 해야 할 걸 하면 된다. 그런 생각으로 매일 똑같은 운동을 반복했어요. 훈련도 갑자기 안 하던 레슬링을 더 준비하지 않고, 대부분 복싱 위주로 진행했어요.

경기 전에는 선수들이 대기실에서 몸 풀고 있는 모습을 중계하잖아요. 그때만큼은 챔피언들도 하나같이 긴장하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그 긴장감은 어떻게 다스립니까?
달리 방법이 없어요. 그냥 인정합니다. 시합 전에 긴장하는 거? 당연한 거다. 아무리 경험이 쌓이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도, 실제로 케이지 안에 들어가면 공기, 거리, 체력까지 모든 게 다르게 느껴지거든요. 이겨내는 게 아니라 그냥 받아들이는 거죠.

운동선수들은 저마다 징크스가 있잖아요. 시합 준비 기간에 꼭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 있나요?
저는 최대한 징크스를 안 만들려고 노력해요. 이런 느낌인 거죠. 내가 10년 넘게 이 운동을 피땀 흘리면서 했는데, 별것도 아닌 걸로 승패가 정해진다? 저는 그걸 믿는 제 모습이 싫어요. 굳이 있다면, 징크스를 믿지 않는 게 제 징크스입니다.

UFC 선수이기 전에, 격투기 팬이기도 하니까 여쭙고 싶은데요. 개인적으로 어떤 선수를 좋아하세요?
제가 좋아하던 선수들이 다 은퇴했어요. 현역 선수 중에는··· 더스틴 포이리에 좋아합니다. 저는 파이팅 스타일보다, 그 선수의 정신을 보고 좋아해요. 포이리에는 흔히 말하는 ‘인자강’은 아니거든요. 매번 이기는 선수도 아니에요. 예전에는 마음이 먼저 꺾여서 지는 경기도 있었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걸 이겨내더라고요. 한 번은 포이리에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가장 힘들고 가장 치열하고 가장 괴로운 시합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자기는 그런 마음으로 경기를 뛴다고. 그 정신이 너무 멋있죠.

UFC에서 다게스탄, 브라질처럼 유독 강세를 보이는 나라들이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한국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다게스탄, 브라질 선수들은 구력이 달라요. 초등학생이 되기도 전에 레슬링이나 그래플링을 시작하거든요. 그럼 몸놀림 자체가 다릅니다. 격투기에 최적화된 신체를 갖게 되는 거죠. 종합격투기에서 요구되는 특유의 유연성, 폭발력, 근력이 있거든요. 일례로 저는 킥이 빠른 편이 아니에요. 지금 와서 아무리 킥 연습을 해도, 태권도 선수들처럼 빠른 킥은 못 차거든요. 그건 어릴 때부터 꾸준히 훈련을 해온 친구들만 가능해요.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좀 더 어릴 때부터 격투기 종목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분위기나 환경이 조성된다면 유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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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호가 예상해본 UFC 빅매치

일리아 토푸리아 vs 이슬람 마카체프
마카체프. 완력에서 마카체프가 압도할 것 같다.

이슬람 마카체프 vs 아르만 사루키안
마카체프. 두 선수가 가진 무기들이 비슷한데, 같은 스타일 안에서 마카체프가 훨씬 오랫동안 잘해왔기 때문에 유리할 거라 생각한다.

벨랄 무하마드 vs 샤브카트 라흐모노프
고르기 어려운 데··· 샤브카트 라흐모노프. 레슬링은 벨랄 무하마드가 더 낫다고 해도, 타격부터 경기가 시작하는 옥타곤에서는 라흐모노프가 기회가 더 많을 것 같다.

드리커스 두 플레시스 vs 이스라엘
아데산야 2차전 두 플레시스. 아데산야가 에이징 커브를 겪고 있는 듯하다.

션 스트릭랜드 vs 캄자트 치마예프
치마예프. 앞서 로버트 휘태커를 그렇게 이기는 걸 보면서, 한동안 치마예프의 그래플링 게임을 과연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싶었다.

알렉스 페레이라 vs 마고메드 안칼라에프
페레이라. 페레이라와 직접 스파링을 해보면서 생각했다. 얘를 어떻게 이기나. 라이트 헤비급임에도 리듬과 템포가 터무니없이 빠르다.

알렉스 페레이라 vs 존 존스
존 존스. 존 존스는 단순히 재능이 있는 선수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지 너무 잘 이해하는 선수. 존 존스가 페레이라를 이길 수 있는 무기는 너무 많다.

존 존스 vs 톰 아스피날
존 존스. 아스피날이 빠른 속도를 앞세워서 좋은 장면을 만들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존 존스가 5라운드를 잠식하면서 이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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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연패를 해도 상관없어요.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으로 싸운 경기이길 바랍니다.”


본인 유튜브에서 ‘내가 진 시합 다시 보는 건 안 불편한데, 뭔가 쪽팔린 시합 보는 건 엄청 힘들다’라고 했어요. 스스로 부끄러운 경기는 어떤 경기인가요?
예를 들어 컵 스완슨한테 졌던 경기는 안 부끄러워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제 마음이 안 죽었거든요. 그거면 돼요. ‘3라운드가 아니라, 둘 중 한 명이 죽을 때까지 싸우면 결과는 모른다’ 위안할 수 있잖아요. 찰스 주르댕 전은 제가 경기 도중에 팔이 골절됐어요. 비록 경기는 졌지만, 저 스스로 부끄럽거나 졌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해요. 하지만 제레미 스티븐스 전은 달랐어요. 메인 이벤트 경기라는 부담감, 5라운드 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점, 상대가 5라운드 내내 KO 펀치를 뻗는 선수라는 것. 이런 걸 계속 생각하니까 제가 계속 싸움을 피하고 있더라고요. 경기를 보면 그게 느껴져요.

자신이 먼저 목숨 걸고 덤벼드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덤벼드니까 싸우는 거네요.
맞아요. 당장 눈앞에 상대가 오니까 뭘 하긴 해요. 전반적으로 제가 안 싸우고 싶어 하는 게 보이거든요. 그게 전략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분명히 그게 느껴지거든요. 그런 모습은 정말 보기 싫더라고요. 부끄럽고요.

반대로 승패를 떠나서,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멋있는 시합은 어떤 경기라고 생각하세요?
그냥 제가 멋있게 이기는 경기.(웃음)

격투기는 승리의 종류도 워낙 다양하잖아요. 탭을 얻어낼 수도 있고, 깔끔하게 KO로 끝낼 수도 있고요. 가장 꿈꾸는 KO의 모습이 있습니까?
KO에 대한 갈증은 별로 없어요. 제가 지금까지 이긴 경기는 90% 이상 KO 승이었거든요. 다만 이런 건 있죠. 빌 알지오 전에서 제가 정말 기뻤던 건 약점으로 평가받던 레프트 훅으로 경기를 끝냈기 때문이에요. 지난 2~3년 동안 레프트를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그게 통했으니까요. 랜드웨어 전에서도 레프트 어퍼로 이겼고요. 제가 준비한 게 통했을 때의 짜릿함이 정말 크더라고요.

지금 선수로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될 숙제가 있다면요?
제가 가진 걸 더 뾰족하고 예리하게 다듬는 것. 지금 제가 장착한 무기들은 10년 넘게 많은 스타일을 시도해본 끝에 남은 결과물이거든요. 누군가는 다른 챔피언들처럼 ‘레슬링을 좀 더 준비해야 된다’ 할 수 있지만, 선수마다 자기 몸과 성향에 맞는 무기가 있어요. 새로운 무기를 준비하는 것보다 당장 제게 주어진 장점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게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UFC 선수로서 바라는 마지막 경기의 모습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행복해하면 좋겠어요. 지든 이기든. 어린 시절부터 20년 가까이 제 모든 걸 바쳐서 한 운동이지만, 언젠가는 저도 시합을 못 뛰는 날이 올 거잖아요. 그게 당장 내년이 될 수도 있고요. 그 장면은 앞으로 살아가는 내내 제 인생의 하이라이트로 돌려 볼 장면일 테니까. 그 장면을 보면서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더 뛰어나고 재능 있는 선수한테 지는 거라면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또다시 연패를 해도 상관없어요.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으로 싸운 경기이길 바랍니다.

챔피언이 못 돼도, 강인한 기세와 투지로 오래도록 회자되는 선수들이 있죠. 훗날 최두호는 어떤 선수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저도 부끄럽지 않은 선수로 남고 싶어요. 매번 이기지는 못해도, 언제나 기대되는 선수들이 있잖아요. 챔피언이라고 그 선수의 모든 경기가 기대되는 것도 아니고요. 늘 기대되는 경기를 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은퇴를 한 후에도 팬들에게 ‘최두호 경기 보고 싶다’ ‘조금만 늦게 은퇴하지’라는 마음을 새길 수 있는 선수로 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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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주현욱
Photographer 김태환
Stylist 임경집
Hair 조영인
Make-up 김주희

2025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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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원의 이해력

    김희원은 배우도 감독도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그의 첫 감독 데뷔작 <조명가게>가 성공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감독 김희원이 들려준 좋은 배우, 좋은 작품, 좋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

  • INTERVIEW

    배현성의 스펙트럼

    점점 확장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홍도, <우리들의 블루스>의 정현 그리고 <조립식 가족>의 해준까지. 모두 순하고 착한 청년이 겹쳐지지만, 흐른 시간만큼 배우 배현성은 다채로워졌다. 실제로 보면 막냇동생 같은 귀여움만 번질 줄 알았는데, 배우로서 다음 단계를 또렷하게 내다본다. 질문 하나 던지면 깊게 생각하면서. 큰 눈을 깜박이며 말을 고르면서. 경험이 쌓일수록 연기하는 재미가 더 커진다는 그는 이제 스펙트럼을 넓히려 한다.

  • INTERVIEW

    찬열이 꿈꾸는 풍경

    지난 가을, 엑소 찬열이 기타를 둘러메고 훌쩍 여행길에 올랐다. 자신이 오래도록 꿈꾸던 풍경을 보기 위해서다. 첫 솔로 라이브 투어 <도시풍경>를 마치고 돌아온 찬열에게 그간 담아뒀던 질문을 건네고 왔다.

  • INTERVIEW

    HELLO TO THE WORLD

    같은 방향을 꿈꾸며 함께 걷는 길을 택한 여섯 소년이 힘차게 세상에 걸음을 내딛는다. 서로에게 물들며 나아가는 ATBO의 이름을 기억할 차례다. 오준석, 류준민, 배현준, 정승환, 김연규, 원빈이 전하는 첫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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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가 할리 위어

    사진가 할리 위어의 시선에는 내러티브가 담긴다. 그녀는 설명 대신 감정의 동요를 부르는 타당한 아름다움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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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리즘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당신의 페이스북 뉴스피드는 온전히 당신의 의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알고리즘이 당신과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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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LITTLE BLACK BAG

    우직한 남자 손에 새침한 핸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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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색적인 체험은 덤! 전국 곳곳의 찜질방 5

    이번 주말에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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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A-Awards #안효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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