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촬영 어땠나요?
처음에는 긴장했는데, 사진가분과 작업한 적이 있고 잘 이끌어주셔서 점점 편해졌어요. <대도시의 사랑법>을 함께한 남윤수가 모델 출신이잖아요. <아레나> 화보를 찍는다고 조언을 구했죠. 그랬더니 남성성을 강조하라고 해서 일단 난 남자다 하면서 촬영했죠.(웃음)
<대도시의 사랑법>을 촬영하고 친해졌나 보네요?
촬영한 지는 좀 됐지만 GV라든가 비하인드 코멘터리를 하다 보니까 계속 볼 수 있었죠. 사적으로도 보긴 했는데 일로도 자주 만났어요. <대도시의 사랑법>이 제겐 처음으로 촬영 전부터 감독님이나 배우와 작업을 진행한 작품이어서 촬영할 때도 편하게 윤수와 놀듯이 연기했죠. 반면 허진호 감독님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이 컸어요. 감독님이 불러주셔서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죠.
감독님과는 어떤 인연이었나요?
드라마 <인간실격>에 출연했을 때 뵀어요. 한 4년 전인데 갑자기 감독님께서 <대도시의 사랑법> 대본을 회사로 보내주면서 제가 생각이 났다고 하시더라고요. PD님들 잘 설득해보라고 하시면서 먼저 제안해주셨죠. 대본이 일단 재밌었고, 너무 하고 싶었어요. 이거 꼭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설득할 때, 옷 벗는 부분도 있으니 사시사철 몸이 준비돼 있는 배우라고, 퀴어 작품도 많이 봐서 이해도도 높다고 막 얘기했죠.
어떤 면이 인상적이어서 허진호 감독님이 자신을 떠올렸는지 물어봤나요?
나중에 끝나고 나서 물어봤어요. 촬영할 때 물어보면 자신 없어 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니 촬영 중에는 그냥 열심히 했죠. 감독님 말씀으로는 몸이 좋은 멋진 남성으로, 그런 남성성을 보여줄 남자 배역을 생각했을 때 제가 떠올랐다고 하셨어요. <인간실격>에서 제가 죽는데, 당시 시체 더미를 구할 수 없어서 제가 옷 벗고 그냥 찍은 적이 있거든요. 그때 제 몸을 보신 거죠. 감독님이 제가 몸이 좋은 걸 알고 계신 게 너무 신기했어요. 꾸준히 운동해온 게, 그 순간 더미 역할을 한 게 다 연결된 거죠.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연기한 노영수와 실제 자신이 맞닿는 부분이 있었나요?
노영수란 인물이 복합적인 감정을 품고 있잖아요. 본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점을 생각하면, 아직 전 유명하진 않지만 그래도 배우로 생활하면서 다른 사람 시선을 신경 쓰면서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거든요. 또 밖에선 활달한데 집에 있으면 차분해지기도 하고요. 그런 미묘한 지점에서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맡은 배역을 보면 무사나 사회운동가, 형사 같은 선 굵은 인물이 많아요. 외모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에서 연결된 캐스팅일 텐데, 그런 역이 몸에 잘 맞나요?
아니요. 어떤 인물을 하더라도 잘 맞는 인물은 없는 것 같아요. 잘 맞나 싶다가도 막상 깊게 들어가면 어려운 지점이 있죠. 그래서 그냥 잘 맞는 인물은 원래 없구나 하면서 연기하죠.
그동안 촬영하면서 배역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인상적인 순간은 언제였나요?
영화 <파일럿>을 찍을 때, 소속사 선배인 조정석 형님과 같은 공간에서 연기한 순간이 기억에 남아요. 조정석 형님이 롤 모델이거든요. 롤 모델과 같이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인상적이었죠. 또 <삼식이 삼촌>에서 송강호 선배님과 대사를 주고받은 장면도 잊을 수 없어요. 두 경우 모두 내가 이들과 함께 연기하다니 하면서 감격했죠.
“이젠 어느 순간을 추억하게 하는, 추억을 선물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좋은 연기를 한다면 그런 추억을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당연히 같은 소속사라서 조정석 배우가 롤 모델은 아니겠죠?
조정석 형님을 보고 지금 소속사에 찾아갔을 정도로, 원래 롤 모델이었어요. 형님처럼 무대와 영상 매체를 넘나드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애초 연기로 진로를 정할 때 뮤지컬과 영상 매체 연기를 같이 생각한 건가요?
원래 꿈이 영화배우였는데 길이 안 보였어요. 군대 다녀왔는데 어느 날 선배가 뮤지컬 앙상블이 있다는 걸 알려줬죠. 배우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며 권했죠. 특기가 노래라서 오디션 보고 들어갔어요. 그 이후로 뮤지컬을 알게 됐죠.
뮤지컬 연기를 하다가 영상 매체에 관심이 생긴 것으로 알았는데 반대였군요.
뮤지컬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하고 나서 뮤지컬 소속사에서 많이 연락했어요. 잘될 기회가 생긴 거죠. 그런데 이대로 뮤지컬을 계속하면 평생 뮤지컬만 할 거 같았어요. 영화배우의 꿈을 찾고 싶어 지금 소속사를 찾아갔죠. 그렇게 영상 매체 연기를 시작하게 됐죠.
나름대로 닦아놓은 길에서 내려와 새로운 길을 선택했어요. 지금까지 잘 나아가고 있나요?
이 시간이 정말 필요했어요. 인간적으로 참 많이 성장했거든요. 단역부터 시작해 오디션도 탈락하고 작품도 기다려보는 시간을 겪고 30대가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시기를 겪지 않았다면 경거망동하지 않았을까. 너무 감사한 시간이죠. 또 운이 좋게도 노영수라는 역할을 만나 사랑받기도 해서 행복하죠.
뮤지컬 연기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기할 때 이모저모 영향을 미쳤을 듯해요.
표현 방식이 달라서 버려야 할 지점이 엄청 많았지만, 기본적인 부분은 도움이 됐어요. 뮤지컬 연기뿐 아니라 어떤 무대 예술이든 배우는 깊게 들어가고 자신을 내던져야 할 때가 많거든요. 무대에서 연기하면 발가벗겨져야 하잖아요. 그렇게 다 내던지던 습관이 있어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기할 때 그런 순간에 주저하지 않고 할 수 있었죠. 또 무대에서 소리를 훈련한 사람이니까 다양하게 소리를 쓸 수 있는 것도 장점이죠. 소리 훈련은 항상 해요. 놓으면 안 되는 지점이죠. 언제든 무대에 꼭 돌아가고 싶기도 하고요.
다 경험해보고 싶겠지만, 그럼에도 지금 해보고 싶은 역할을 꼽는다면 뭘까요?
떠오르는 건 되게 많아요. 영화를 볼 때마다 저 연기 해보고 싶다고 하거든요. 지금 딱 떠오르는 건 진한 멜로예요. 가슴 절절해서 아파 죽겠는 멜로. 우리 모두 사랑하면서 살잖아요. 사랑 이야기를 하면 대중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웃음)
의욕적으로 시작하는 만큼 이런 부분도 생각해봤을 듯해요. 연기를 통해 도달하고 싶은 지점이라든가.
예전에는 뭐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고 싶다 등 원대한 꿈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다 소멸했어요. 이젠 어느 순간을 추억하게 하는, 추억을 선물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우연히 음악을 듣는데 알고리즘으로 <러브레터> OST가 뜬 적이 있어요. 옛날에 많이 좋아한 영화였어요. 노래를 들으니 영화의 장면과 오래전 제가 좋아하던 시절이 갑자기 떠오르더라고요.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가 누군가에게 어떤 시절을 추억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배우를 해나가면서 나이 들어갈 텐데 좋은 연기를 한다면 그런 추억을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추억하게 하는 배우, 좋네요.
제가 출연한 뮤지컬 오디션 프로그램 영상을 지금 입시를 앞둔 친구들이 참고하면서 도움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들에겐 그 영상이 훗날 한 시대를 추억할 수 있는 영상이 될 수 있잖아요. 그렇게 추억을 남겨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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