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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물을 응원할 때가 있다. 비슷한 나이대의 누군가가 빛나는 성취를 이룰 때.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지만 유명인이 성공하면 그 여정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20대, 30대, 40대 칼럼니스트에게 자기 세대에서 인상적으로 성공 스토리를 써내려간 인물에 관해 글을 받았다. 세대의 아이콘으로서, 함께 성장한 동시대인으로서, 용기를 북돋은 하나의 본으로서 그들의 여정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그래서 그들이 누구냐면?

UpdatedOn January 08, 2025

20대_ BTS 정국

어딘가와 어딘가 사이에서

정국은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몸집을 고독하게 키워가는 중이다.

Words 이정욱(칼럼니스트)

칼럼을 쓰기 전엔 정국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BTS나 정국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BTS는 이미 다국적 기업이다. 내가 정국을 얼마나 잘 아는지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BTS는 전 세계 아미들 안에서 이미 너무 강력하니까. BTS는 나의 ‘알고 말고’의 영역에서 벗어난 지 오래라는 뜻이기도 하다. 소녀시대 말고는 아는 아이돌이 없는 부모님도 BTS는 안다. 그것도 영문 표기로. 이제 너무 커버린 BTS와 정국을 세대의 얼굴로 말하기 민망했다. 이 시대의 얼굴로 BTS 정국을 뽑는 건 이 시대의 스포츠 브랜드로 나이키를 뽑는 격이다. 하지만 나이키만 한 스포츠 브랜드가 없는 것처럼, 지금 우리나라에서 BTS만 한 파워를 가진 그룹도 없다. 내가 정국을 뽑은 게 아니었다. 정국은 이미 이 시대의 얼굴이었다.

정국을 잘 몰랐던 내가 그의 존재감을 강하게 느낀 건 ‘Standing Next to You(Usher Remix)’ 유튜브 영상을 본 이후부터였다. 일반 아이돌처럼 길게 늘어뜨린 앞머리와 동양인의 억센 옆머리를 다운펌으로 누른 모습이 아니었다. ‘스포츠 커트’를 하고 대형 컨테이너 세트장에서 나타난다. 부모님이 보면 준수하다고 할 머리다. 잘생긴 건 두말하면 입 아프다. 가죽 베스트만 입고 등장하는 정국은 소년과 남자를 정말 잘 섞어놓은 얼굴이다. ‘스포츠 커트’를 해도 잘생겼다. 두말해도 입 안 아플 정도로. 하지만 상대는 어셔였다. 어셔는 강력한 상대다. 어셔는 리믹스로 참여해도 모두 자기 노래로 만들 줄 아는 지독한 재주의 아티스트다. 노래 실력도 출중한데 춤도 잘 춘다. 40대 중반인데도 20대처럼 놀 줄 안다. 처음엔 어셔의 그루브에 시선을 빼앗겼다. 노래 중반에 거들먹거리며 등장하는 모양새엔 오라가 넘쳤다. 나는 정국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노련한 여우 같은 어셔에게 완패하진 않을까. 영상을 몇 번 반복해서 보니 정국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국은 어셔보다 잘나 보이거나, 어셔를 어쭙잖게 따라 하지 않았다. 정국은 자기가 뭘 해야 하는 지 정확히 알았다. 어셔의 춤과 노래는 곡선처럼 이어져 있다면 정국은 춤을 직선처럼 췄다. 시작과 끝이 분명했다. ‘춤의 본질은 움직임이 아니라 멈춤에 있다’는 말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어셔는 없는 박력이 정국에겐 있다. 어셔가 노련하다면 정국은 영리하고 당돌하다. 치고 빠질 줄 알았다. 그리고 이 노래는 정국의 춤이 더 잘 어울린다. 그리고 이게 더 멋있다. 정국과 어셔 모두 싱어송라이터면서 솔로 아티스트지만 어셔는 아이돌이 아니다. 정국은 이런 노래에는 이렇게 춰야 좋다는 걸 아는 13년 차(2025년 기준) 아이돌이었다. 그리고 확실한 팬덤을 가진 아이돌의 멤버가 솔로로 활동하면서 음악성으로 인정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음악성이 있어도 대중성이 워낙 강해 음악성이 묻히기 일쑤다. 하지만 정국의 ‘Standing Next to You’는 달랐다. 영국 ‘UK 오피셜 차트’의 ‘오피셜 피지컬 싱글 차트’(12월 6일~12일 자)에 99위로 재진입했다. ‘Standing Next to You’는 발매된 지 1년이 넘은 곡이었다. 놀라운 기록이었다. 발매 당시엔 BTS 파워로 ‘차트인’ 할 수 있다. 하지만 발매 1년이 넘은 지금 차트에 재진입했다는 건 ‘정국’이 좋아서 이 노래를 들은 게 아니라, ‘정국의 음악’이 좋아서 들었음을 뜻한다. 정국은 리스너들에게 음악성까지 인정받은 셈이다.

정국은 매번 당돌한 자세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넓히고 있다.
찰리 푸스나 어셔같이 거대한 상대들에게 끊임없이 덤비고 깨진다.

불안과 걱정을 뚫고

아미는 아니지만 정국을 ‘덕질’ 중인 회사원 김수정 씨는 실용음악과 졸업생이다. “실망스러운 얘기일 수도 있지만, 이전의 정국은 ‘노래 엄청 잘하는 아이돌’은 아니었어요.” 정국을 ‘덕질’ 중인 김수정 씨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이야기를 더 들었다. “누가 아이돌을 노래 실력으로 좋아해요. 잘생기고 춤 잘 추고, 팬들한테 잘해주면 그만이죠.” 맞는 말이다. 잘생기고 예뻐서 아이돌에 ‘입덕’했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가창력이 뛰어나서 특정 아이돌에 ‘입덕’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다. “근데 요즘 정국은 진짜 노래 잘 불러요.” 급격한 전개다. 정국 팬덤이 무서워서 급하게 말을 돌린 것 같진 않았다. 이 말을 그만큼 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보컬이 곡을 분석할 때 음을 따로따로 하나씩 뜯어보는데요. 그러다 보면 굉장히 예민하게 음을 듣고 남들은 절대 모르는 자기 실수를 알게 되거든요. 근데 정국이 뉴욕에서 ‘Standing Next to You’ 라이브 공연을 하고 나서 망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실용음악과인 저도 평소의 라이브와 별반 다를 거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정국도 자신만 아는 실수를 했고, 그걸 인정한 거죠.” 자신만 아는 실수를 한 거죠? 실수의 기준이 있나요? “노래마다 기준은 달라져요. 그러니까 정국은 노래 음 하나하나에 의미나 전략을 갖고 있었던 거죠. 이게 정말 귀찮고 힘든 작업이거든요. 그만큼 어려운. 근데 정국은 그만큼 노력한 거죠.” 11년 전 보컬 연습 영상에서 정국은 프라이머리의 ‘씨스루’를 불렀다. 굉장히 그루비한 노래다. 하지만 정국의 목소리는 ‘어딘가’ 정직했다. 잘 부르지만 ‘어딘가’ 흔들렸다. 거의 대부분 가수들이 이 단계를 겪는다. ‘어딘가’ 문제가 생기는 단계. 그리고 또 대부분의 가수들은 이 단계에서 낙심한다. ‘어딘가’ 문제가 생겼다는 불안감과 ‘어딘가’를 해결할 수 있긴 하는 걸까? 하는 걱정. 하지만 라이브를 켜놓고 낮잠을 자는 ‘잇프피’ 성격의 정국은 그런 자기 연민이나 생각의 늪에 빠지지 않는다. 곧장 그 ‘어딘가’를 찾아간다. 그게 정국이 가진 힘이다.

정국은 17세 때 라디오에서 자기 매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했다. 여느 신인 아이돌처럼 자기 역할이나 매력을 오글거리는 단어를 사용해서 어필할 법도 한데, 그는 다른 형(멤버)들에게 자기 발언 기회를 웃으면서 넘겼다. 정국에게 매력이 없어서는 분명 아니다. 단지 17세 정국은 자기 매력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다. 정국은 억지로 하는 법이 없었다. 없으면 말하지 않고, 있으면 말했다. 하지만 이제 정국은 자신이 달라졌다고 했다. “표정이든, 골격이든, 얼굴이든, 노래 실력이든.” 다만 정국은 결코 능청스러워진 게 아니다. 이제 자기 매력을 알게 된 거다. 그게 나이 때문인지 경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결국 ‘어딘가’를 찾아 자기 해결책을 제시한 것 같았다. ‘열정 없이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를 자신의 좌우명이라고 말한 것을 인증하듯.

말 대신 행동으로

난 <본> 시리즈의 맷 데이먼을 최근에 좋아하게 됐다. 맷 데이먼은 자신이 출연한 세 편의 <본> 시리즈 내내 일관되게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연기한다. 순식간에 몇 명을 제압하는 액션도 액션이지만, 난 그의 태도에 매료됐다. 깔끔하면서 화려하고, 침묵하지만 그 안에 의미가 있으며, 어두컴컴하지만 제법 명랑하다. ‘제이슨 본’ 같은 성격은 어디서나 각광받는다. 말 대신 행동이 앞서는 케이스. 특히 그게 남자면 더더욱. 이게 세대의 얼굴로 정국을 뽑은 진짜 이유다. 박재범이 꼽은 ‘월클’ 라인, ‘BTS, 봉준호, 손흥민, Jay Park(박재범이 월클인지는 시간이 더 지나봐야 알 테다)’ 중 유일한 20대라서 정국을 뽑은 건 아니다. 미국의 지미 팰런 쇼에서 ‘Standing Next to You’에 맞춰 춤추는 정국은 어떤 경지에 오른 사람 같았다. 팰런의 인터뷰엔 대답이 길지 않았다.

몸에 타투를 둘렀지만 순한 20대 후반 청춘 같았다. 난 청춘이라는 단어를 아무 데나 가져다 쓰는 걸 제일 싫어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나, ‘열정 페이’의 이유로 채택될 때. 하지만 정국은 소년처럼 부끄러워한다. 중간중간 한국어를 섞어서 말하는 당돌한 모습. 이런 것들은 분명 청춘에 가까웠다. 초롱초롱한 눈빛은 덤이고. 무대 아래에서 정국은 학교 축구부 중 ‘훈남’ 공격수나 재빠른 미드필더같이 친근하다. 무대 아래 정국은 그랬다. 그리고 정국은 무대에 오른다. 도톰한 이브닝 재킷과 땀에 젖은 듯 부드러운 화이트 티셔츠를 입고, 그림자처럼 등장한다. 20세기 폭스의 오프닝 같은 인트로 그리고 정국의 얼굴. 분명 인터뷰에서 본 얼굴이었지만 다른 얼굴. <아내의 유혹>에서 민소희는 점이라도 하나 찍고 나왔지만, 정국의 얼굴엔 새로운 점 같은 건 없었다. 같은 머리와 같은 얼굴. 옷만 바뀌었을 뿐이다. 하지만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부담이 막중한 솔로곡, 그리고 미국의 제일 잘나가는 토크쇼에서의 라이브 공연. 마음의 부담은 얼굴과 몸에서 무조건 나타난다. 자신도 모르게 더 찡그려지는 미간, 더 과장되게 치켜 올려보는 눈썹, 불안한 시선 처리, 납작해지는 안무. 하지만 이 당연한 논리를 간단히 무시하고 정국은 젊고 뜨거운 얼굴을 무대 위에 세웠다. K-팝의 정수라고 외국 가서 자랑하고 싶은 잘 짜인 화려한 음악 그리고 ‘따라 하기 쉬운’ 같은 수식어는 멀리 던져버린 듯한 고난도의 안무, 챌린지를 겨냥해 따라 부르기 쉬운 음악이 대유행하는 시대에 반역하듯 어려운 노래를 라이브로 부르며 무대 위에서 정국은 재밌게 놀았다.

이제 정국의 ‘Seven’과 ‘Still with You’ 그리고 ‘3D’를 말할 차례다. 이 곡들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들을 만든다. 정국에 대해 할 얘기가 정말 많다. 한소희와 빗속에서 찍은 ‘Seven’의 뮤직비디오나 찰리 푸스와 얼굴을 교차하면서 찍은 ‘Left and Right’ 뮤직비디오나. 정국이 별로 말이 없으니 내가 말이 많아진다. 다만 나에게 남은 지면이 얼마 없다. 하지만 이 말은 할 수 있다. 정국은 매번 당돌한 자세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넓히고 있다. 찰리 푸스나 어셔같이 거대한 상대들에게 끊임없이 덤비고 깨진다. 그러면서 배운다. 누가 이겼다고 확정짓기 어렵지만 정국은 이기든 지든 그 과정에서 계속 배웠다.

회사원 김수정 씨의 말처럼 정국은 노력한다. 정국은 점점 몸을 거대하게 키우고 있다. BTS라는 가족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몸집을 고독하게 키워나가고 있다. 정국은 계속 깨지고 넘어지면서 자신이 가진 ‘어딘가’의 결함을 계속 마주할 것이다. 그리고 정국은 또다시 그 ‘어딘가’를 찾는 여정을 떠날 것이다. 난 정국이 어디까지 도달할지는 잘 모르겠다. ‘어딘가’에 도달하면 또 다른 ‘어딘가’를 찾으니까. 하여튼 정국은 아직도 소년과 남자가 아주 잘 섞인 잘생긴 얼굴이다. 잘생겼다고 세 번 말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몇 번 더 얘기해도 입이 아플 거 같진 않다. 나는 계속 정국에게 ‘Standing Next to You’ 할 거고, ‘Still with You’ 할 거다. 그러고 싶다.


30대_ 손흥민

우리의 청춘과 함께한 슈퍼스타

손흥민은 30대와 보폭을 맞춰 성장해왔다. 그리고 여전히 도전한다.

Words 최용환(칼럼니스트)

대한민국 30대에게 우리 세대를 열광하게 한 최고의 인물로 손흥민 선수(이하 손흥민)를 뽑는다고 하면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 32세인 손흥민은 실제로 동세대 사람들의 청춘을 함께하며 수많은 전율과 환희를 선물해준 최고의 스포츠 스타이자, 누구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국가대표’다. 잠깐만 그의 활약을 상기해봐도 알 수 있다. 푸스카스상을 안겨준 2019년 EPL 번리전의 70m 드리블 골 장면부터 2022년 카타르 월드컵 포르투갈전의 극적인 어시스트 장면까지 한밤중에 환호를 참을 수 없었던 순간이 수도 없이 떠오를 것이다.

손흥민은 과거 외국에서 활약한 박찬호, 박세리 선수처럼 현실적인 문제를 잠시 잊고 마음껏 열광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줬다. 우리는 학생 시절에도 설레는 맘으로 늦은 새벽 경기를 챙겨 보고, 바쁜 직장 생활 중에도 야근이 끝난 후 맥주 한잔과 함께 그의 경기를 기다리며, 친구들과 함께 치킨을 먹으며 그의 활약에 대해 떠들면서 30대가 되었다. 그 추억들이 우리의 지난 10여 년간 켜켜이 쌓여왔으니, 우리 세대와 함께 성장한 손흥민이라는 인물에게 애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가 어느새 ‘고참’이 되어 국가대표팀과 소속팀의 주장을 담당하는 모습이 묘하게 뿌듯하게 다가오는 것은, 손흥민이 대한민국 30대에게 축구선수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대한민국 30대가 그동안 그에게 응원을 보내고, 그로부터 위로와 용기를 받으며, 또 지금도 애정을 갖는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복합적이다.

‘2002 한일 월드컵’은 말 그대로 대한민국 축구 역사를 뒤흔든 어마어마한 이벤트였다. 전국을 붉게 물들인 거리 응원으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였고, 당시 청소년이었던 지금의 30대에게도 2002 월드컵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이때 이뤄낸 전무후무한 ‘4강 신화’는 박지성, 안정환, 이영표를 비롯한 수많은 월드컵 스타를 탄생시켰고, 이들의 커다란 영향력은 이후 수십 년 동안 축구계와 대중문화 전반에 이어졌다.

또한 2002 월드컵은 한국인 선수가 세계 시장에서 관심을 받는 계기가 됐고, 이때부터 선수들의 해외 진출도 본격화됐다. 박지성, 이영표, 차두리, 송종국 등 많은 선수들이 월드컵 이후 유럽 무대를 밟았고, 특히 박지성은 PSV 에인트호번을 거쳐 2005년 당시 세계 최고의 명문 구단으로 손꼽히던 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합류해 큰 화제를 모았다.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7년간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간 박지성의 활약은 많은 사람들에게 유럽 축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해버지(해외 축구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박지성을 비롯한 2002 월드컵 세대는 한국 축구 전반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지만, 그 영향력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그들을 뛰어넘는 스타의 등장은 요원해 보였다. 그래서 지금 30대는 ‘우리 세대’의 포스트 2002 스타를 갈구했다. 그리고 마침내 박지성의 뒤를 이을 한국 축구의 새로운 아이콘이 등장했으니 그 인물이 손흥민이었다. 박지성이 선수 생활을 은퇴한 다음 해인 2015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부터 활약하던 손흥민은 마치 바통을 넘겨받듯 토트넘 홋스퍼 FC에 입단하며 EPL에 데뷔했다. 우리와 함께 성장해나갈 새로운 세계적 스타가 탄생한 것이다.

손흥민이 본격적으로 EPL에 진출한 2015년은
현 30대에 해당하는 많은 이가 사회 초년생으로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던 시기였다.

그의 성장은 우리의 성장

손흥민이 본격적으로 EPL에 진출한 2015년은 현 30대에 해당하는 많은 이가 사회 초년생으로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던 시기였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며 다양한 현실적 문제에 직면하던 20대 중후반의 우리는 손흥민의 활약에 크든 작든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그가 분데스리가에서 이룬 성공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무대 EPL에 도전하던 시기, 우리는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며 희망찬 출발을 함께했던 것이다. 그의 활약은 매 시즌 발전해갔고, 한 시즌 한 시즌이 우리의 연차와 함께 쌓여갔다.

특히 2019년 챔피언스리그에서 보여준 모습은 30대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넣었던 결정적인 두 골과 AFC 아약스와의 극적인 준결승은 손흥민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성장한 우리 세대에게도 큰 자부심을 안겨줬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순간이 한 세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이 됐다. 작게는 그날 밤의 근심을 잊을 수 있는 훌륭한 엔터테인먼트였고, 넓게는 낯선 곳에서 조금씩 성취하고 자리 잡아 나가던 나날의 투영이었다. 2021년 손흥민은 EPL 득점왕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웠다. 이 타이틀은 손흥민의 개인 커리어를 넘어 한국 축구 역사에 남을 만한 성취일 뿐 아니라, 그의 경기를 밤새 응원하던 우리 세대가 함께 보낸 시간과 노력의 결실처럼 느껴졌다. 월드컵을 포함한 각종 국제 경기에서 보여준 헌신적인 플레이 또한 그의 커리어를 내내 지켜봐온 우리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고, 그렇게 손흥민과 함께한 나날은 우리의 청춘 안에 축적되어갔다.

손흥민의 플레이는 그 자체로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과 카타르시스를 준다. 폭발적인 속도를 살린 드리블, 수비수들을 벗겨내는 과감한 돌파,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날리는 전매특허 중거리슛은 관객을 열광시킨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두 개의 심장’으로 팀을 지원하며 헌신적인 플레이로 큰 사랑을 받았다면, 손흥민은 팀의 전방에서 화려한 돌파로 득점을 노리며 사람들을 흥분시킨다. 이것은 경기 내용 이상의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최전선에서 공격적 플레이를 선보이는 손흥민의 활약은 우리 세대가 열망하는 이상을 그려내고 있다. 대한민국 30대는 부모 세대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중심에 서기를 갈망해온 세대다. 집단의 성공을 우선시하던 사회에서 개인의 역량과 독창성이 주목받는 시대로 전이하는 경험을 하며 성장했고, 자연스럽게 개인의 성취와 행복이 우선적인 가치가 됐다. 그리고 손흥민은 우리 세대가 갈망하는 ‘주인공 서사’를 그대로 구현한 인물이다. 물론 손흥민은 개인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면서, 동시에 팀의 성공을 위해 헌신하는 태도 또한 갖췄다. 이는 공동체와 개인의 균형을 언제나 신경 써야 하는 대한민국 30대의 정체성과도 연결된다. 손흥민은 단순한 축구선수가 아니라, 대한민국 30대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주인공’이다. 그가 그라운드 위에서 보여주는 존재감은 우리 세대의 상황과 맞물려 더욱 큰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이다.

손흥민에게 같은 세대의 감성을 느끼는 것은 라이프스타일 전반의 공통 관심사도 큰 역할을 한다. 먼저 여가 시간에 <FIFA>나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게임을 즐기는 모습은 모두에게 친근감을 준다. 그리고 버버리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개인 브랜드를 론칭할 정도로 패션에 관심도 많은데, 운동에만 집중하는 것이 미덕이던 과거의 운동선수와 달리 ‘나만의 개성과 취향’을 전면에 드러내는 모습은 이전 세대와는 분명 차별된다. 그가 본업의 커리어에서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문화 아이콘으로서의 면모도 갖췄다는 이야기다.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2025년, 손흥민은 33세가 됐다. 프로 축구선수로서 30대 초반은 결코 적지 않은 나이고, 이제 팀을 이끄는 주장이자 대한민국 축구의 상징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이는 그가 단순히 선수로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동료를 이끌어가는 리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회사로 치면 개인 성과를 유지하면서 팀 운영을 신경 써야 하는 입장인 셈이다.

손흥민이 감당해야 할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팀의 프런트나 협회, 감독 등이 얽힌 이해관계 속에서 뜻하지 않은 피해를 입거나 정리해야하는 책임까지 져야 할 때도 있다. 클린스만 감독의 무책임한 아시안컵 국가대표팀 관리, 대대적으로 보도된 후배 선수와의 마찰 그리고 선수 보호를 뒷전으로 한 대한축구협회의 대응까지 모든 불합리한 상황 속에서 고통을 겪는 손흥민을 보면서 회사의 사내 정치나 팀 관리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썩을 수밖에 없는 자기 처지를 떠올린 또래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선배로서의 책임감과 리더로서의 중압감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손흥민의 나이는 이제 선수로서 마지막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매번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고 발전하고자 하는 자세에는 변함이 없다. 그는 지난해 5월 소속팀 주장으로서 첫 시즌을 보낸 뒤 “(관중석의) 태극기와 내 이름을 보면서 힘을 냈다. 덕분에 선수로서, 사람으로서 성장했다. 나이를 먹어가는 입장이지만 그럴 때마다 감동을 받는다.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더 성숙한 사람,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하며 성숙한 상황 인식과 감사함을 잊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지난 10월 팔레스타인과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A매치 51호 골을 터뜨린 뒤에는 “내가 느끼기에 결과적으로 2~3% 부족한 모습을 보였는데, 조금씩 채워나가 언젠가 대표팀을 떠나갈 때 100% 만족하는 수준까지 만들어놓고 은퇴할 수 있으면 한다”는 이야기로 끝까지 발전을 거듭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는 우리가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 손흥민의 경기를 계속 기대해야 하는 이유다.

한밤중에 친구들과 혹은 퇴근하고 컴퓨터 앞에서 치킨을 시켜놓고 손흥민의 경기를 챙겨 보던 우리는 지금 어디선가 사회의 일원이 돼 오늘도 마감을 하든, 영업을 하든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도 이제 어리지만은 않기에 자기 위치를 늘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주변 환경과 자기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다. 30대는 성장과 도전을 멈추기엔 너무 이른 나이기에, 우리도 은퇴할 때까지 100% 만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손흥민 경기가 있는 밤은 잠깐의 휴식이 허락된다. 앳된 얼굴로 그라운드에 등장했던 우리의 스타 ‘쏘니’가 팀을 이끌며 자신의 100%를 완성하는 과정을 마지막까지 목격해야 하니까.


40대_ 안정환

변화에 적응한 40대 남자의 표상

안정환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그 너머를 바라본다

Words 조진혁(칼럼니스트)

안정환은 대한민국 현대 축구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꽃미남 축구선수’라는 수식어로 축구장에 오빠부대를 불러 모았다. 오빠부대가 촌스럽게 들리지만, 1998년 그때는 그랬다. 여하튼 안정환은 축구를 잘하는 선수라는 범주를 넘어, 당대 청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화장품 CF를 찍는 축구선수 안정환은 특별한 존재였다.

20대 초반의 그는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서 흩날리는 긴 머리카락과 조각 같은 이목구비, 화려한 기술과 결정적 순간에 터뜨리는 한 방으로 축구 팬뿐 아니라 대중의 마음을 흔들었다. 골을 넣고 긴 머리를 흔들며 뒤돌아서 환하게 웃는 모습이 스포츠 뉴스 하이라이트로 나오던 시절이었다. 한국 축구장에 만화에나 나올 법한 ‘테리우스’가 실제로 등장했다고 보도하곤 했다. 외모와 실력이 모두 받쳐줬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당시 K리그의 흥행을 주도하며 ‘신드롬’을 일으킨 주인공이 안정환이었다.

밀레니얼이 시작되고 그의 축구 커리어는 정점에 올랐다. K리그에서 스타로 떠오른 뒤 유럽 무대에 도전하겠다는 마음을 품고 2000년 이탈리아 세리에 A의 AC 페루자로 이적했다. 당시 한국 선수가 유럽 프로 리그에 이적하는 건 매우 희귀했다. 세리에 A는 당시 최고 리그였고, 안정환은 ‘세계 무대’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AC 페루자에서 등번호 10번을 단 ‘안느’는 한국 축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당시 안정환은 세계적인 수비수들을 상대로 날카로운 기술을 선보이며, 재능을 입증했다. 골을 많이 넣은 것은 아니었지만 출전 때마다 높은 평점을 받아 글로벌 스타의 자질을 보여줬다. 국가대표팀에서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한 방을 터뜨리며 그의 존재감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안정환은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탈리아전 골든골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극적이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안정환에게도 인생의 전환점과 같았다. 주전 보장도 없던 상황에서 월드컵이 시작됐으나, 그는 중요한 순간마다 ‘해결사’로 활약했다. 안정환은 실력뿐 아니라, 셀레브레이션과 카리스마, 월드컵 4강이라는 전무후무한 성과를 배경으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축구선수로서 정점에 선 순간, 그는 20대 중반을 지나고 있었다.

축구 스타의 커리어가 로맨틱 코미디 영화처럼 아름답게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안정환은 해외 리그 생활을 하며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탈리아 AC 페루자 시절 구단주와 갈등하고 잦은 임대를 겪었다. 프랑스, 일본, 독일 등 낯선 무대에서 부딪힌 현실 또한 녹록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한국 감독님들이 나를 싫어했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당시 한국 축구계의 보수적 분위기나 자기 플레이 스타일에 대한 오해에 맞서야 했다. 해외 리그에서 언어 장벽과 문화 차이, 전술의 차이 속에서 힘겹게 싸우는 동안, 그를 지탱한 버팀목은 가족이었다.

안정환은 버텼다. 미스코리아 출신 이혜원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면서, 그는 그라운드 밖에서 또 다른 인생의 축을 세웠다. 가족은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덕분에 그는 불확실한 선수 생활과 부침을 견뎌낼 수 있었다. 커리어를 이어감과 동시에 자녀 교육, 가족 부양 등 현실적인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남자를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한다. 안정환 역시 스타플레이어가 아니라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체득해갔다.

과거 명성에 매몰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극대화했다.
안정환은 여전히 인생의 전환점인 40대를 성숙한 도전으로 가꿔나가고 있다.

새로운 도전과 변화

30대 중반 이후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은퇴를 고민하던 시점, 안정환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한다. 축구 스타들이 은퇴 후 감독, 코치, 행정가의 길을 택하지만, 그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MBC 해설위원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해설자로 데뷔하는 일은 쉽지 않다. 축구를 잘하는 것과 축구를 잘 말하는 것은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예상외의 입담과 시원시원한 분석, 솔직하고 직설적인 멘트로 시청자의 귀를 사로잡았다. 지나치게 전문적 용어만 나열하거나, 조심스러운 해설자로 남지 않았다. 때로는 거침없이, 때로는 능청스럽게, 축구장 안팎의 이야기를 펼치며 전직 축구 스타로서의 경험을 살렸다. 시청자에게 새롭고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가 안정환 해설위원은 곧 대중적 호감도를 쌓아 나갔다. 해설자로 성공적으로 연착륙한 안정환은 <아빠! 어디가? 시즌2>를 시작으로 예능계에 발을 내디뎠고, 특유의 허당미, 진솔함, 재치를 발휘해 ‘예능 블루칩’으로 부상했다. 이때 안정환은 한국 나이 39세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안정환이 40대에 이르러 대한민국의 많은 40대 남성이 느끼는 고민과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현재의 위치를 차지했는가 하는 점이다. 대한민국 40대 남성은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동시에 직장과 가정, 자기 계발과 시대 변화 속에서 문제를 겪는다. 업무 압박, 조직 내 불안정성, 가족 부양, 세대 차이, 신기술 습득, 노후 준비, 정체성 고민 등 열거하기만 해도 괴롭고 복잡한 난관을 마주한다. 안정환 또한 40대에 접어들며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도전에 직면했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의 균형을 잡아갔다.

40대 남성의 고민 중 하나는 직장 내 압박감과 불안정성이다. 이 시기엔 회사에서 중책을 맡거나 높은 성과를 요구받고, 영리한 젊은 세대에게 위협받으며, 구조조정으로 자신의 자리마저 위협받는 심리적 압박을 느낀다. 안정환에게 축구선수에서 해설자, 예능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안전한 선택은 아니었다. 이미 구축한 스포츠 스타 이미지가 예능판에서 무너질 수 있었고, 해설자로서 혹평을 받을 위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기술(해설 능력, 방송인으로서의 진행 감각)을 배우고, 예능 프로그램의 흐름과 문화를 익히며 변화에 적응했다. 안정환의 과묵하고 쑥스러움 많던 젊은 시절을 기억한다면, 방송인 안정환이 얼마나 새롭게 느껴지는지 알 것이다. 안정환은 축구장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일터’인 방송국에서 자기 가치를 증명했다. 치열한 예능계의 ‘성과 중심 평가’의 압박 속에서도 자기 계발에 힘쓰고, 변화에 적극 대응하며 불안정성을 극복했다.

가정에서의 책임감 증가와 갈등 역시 40대 남성의 주요 고민거리다. 자녀 양육, 부모 부양, 주택 문제, 교육비 부담 등 경제적·정서적 압박은 삶의 무게를 더한다. 안정환은 방송에서 가족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숨기지 않는다. 예능 출연 중 자녀 교육관에 대해 솔직하게 밝히며,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해주고 싶다”고 말하는 등 권위적이지 않고 유연한 태도를 취했다. 자녀와 소통할 때도 세대 차이 문제를 인지하며, 자기 경험을 강요하기보다 아이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모습을 방송에서 여러 차례 보였다. 물론 예능에서 보이는 모습이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가 아내와 함께 <남의 나라 살아요 - 선 넘은 패밀리>에 출연해 구박과 사랑을 동시에 받는 모습이나, SNS에 공개된 아이들과의 친밀한 모습을 보면, 그가 부부 관계와 부모 자식 관계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안정환은 ‘가정’이라는 또 다른 필드에서도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가

40대 남성은 개인 시간은 부족하지만, 자기 계발 욕구는 전과 다름없다. 새로운 분야를 접할 때마다 자아 성취 욕망이 생겨나지만, 30대 때와는 달리 몸과 시간이 따라주지 않는다. 40대 남성이 마주하는 평범한 문제다. 대부분의 40대는 직장과 가정 사이에 끼여 자기 자신을 돌볼 시간이 부족하다. 안정환은 해설, 예능 활동 등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유소년 축구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표현했고, 자신이 받은 것을 다음 세대에게 돌려주고자 했다.

이건 안정환 유튜브 채널 <안정환 19>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기 경험 성취를 의미 있는 방식으로 재투자하고, 축구를 매개로 사회에 기여하는 활동이다. 이러한 가치 활동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존경받고자 하는 성공한 40대가 가장 바라는 활동일 것이다. 물론, 안정환이 평판을 얻기 위해 사회 기여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닐 테다. 하지만 그가 성장 욕구를 긍정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다고 볼 수는 있다. 그 성장은 40대 남성이 꿈꾸는 더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이다.

급변하는 사회 변화에 적응하는 것도 40대 남성에게 큰 부담이다. 새로운 기술과 문화 등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과거의 성공 방식을 고수하기는 어렵다. 안정환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초창기 어색했던 모습을 벗고 점차 트렌디한 방송 문화와 형식에 적응했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 온라인 플랫폼, 디지털 콘텐츠 흐름을 이해하고 그에 맞추어 자신의 캐릭터를 발전시키는 과정이었다. 40대 중년 남성으로서 과거 영광에만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변화를 수용하며 발전을 거듭했다.

건강과 노후 불안 역시 40대에게, 특히 안정환과 같은 40대 후반에게는 예민한 문제다. 신체적으로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은퇴 이후의 삶, 노후 대비에 대한 고민도 깊어진다. 안정환은 축구선수로서 몸을 관리한 경험을 바탕으로, 건강 유지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방송 출연을 통해 꾸준히 움직이며, 스포츠 스타들과의 예능 프로그램 <뭉쳐야 찬다> 시리즈 등을 통해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정체성과 자아 성찰에 대한 고민도 40대 남성의 중요한 과제다. 안정환은 과거 영광을 그저 추억으로 남겨두지 않고, 은퇴 이후 해설자·방송인·멘토 등으로 ‘업그레이드’된 정체성을 찾아가며 삶의 의미를 재해석했다. 옛 스타의 ‘추억팔이’나 방황이 아니라,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진지한 답변이다. 자기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진솔한 태도로 팬과 시청자에게 다가가는 과정에서 그는 성숙한 인생 2막, 3막을 보여주고 있다.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정체성을 추구하며 성장하는 40대 남성의 모습을 구현하는 것이다.

다시 정리해본다. 20대에 꽃미남 축구 스타로서 대중을 열광시켰던 축구선수 안정환은 절정기를 누렸다. 이후 잦은 이적과 국제 무대의 고단함 속에서 가족을 이루며 삶의 균형을 찾았고, 은퇴 이후에는 해설자와 예능인으로서 새로운 재능과 가능성을 발굴했다. 40대 후반에 접어든 현재,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과 사회 분위기에 맞춰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안정환은 대한민국 40대 남성이 공통적으로 마주치는 다양한 고민을 나름의 방식으로 극복해왔다. 사회적 압박감과 불안정을 해설위원이라는 새로운 역량 계발로 돌파했다. 자기 계발을 하면서 MC로서, 예능인으로서 개인적 성장 욕구를 채우고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해냈다. 무엇보다 과거 명성에 매몰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극대화했다. 노력과 변신을 통해 현실을 개척한, 대한민국 40대 남성이 바라는 성공의 표상. 월드컵 스타의 영광 못지않은 ‘인생 2막, 3막’의 성공담이다. 안정환은 여전히 인생의 전환점인 40대를 성숙한 도전으로 가꿔나가고 있다. 대한민국 40대 남성에게 ‘나이 듦’과 ‘변화’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성장의 기회이며, 자기 재능을 재발견할 수 있는 시기임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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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김종훈
Illustrator 김지빈

2025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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