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한성컴퓨터 GK777SE 오피스마스터 키보드
김종훈 | 피처 디렉터
키보드는 내게 꼭 필요한 도구이자 동료가 되어주는 물건이다. 원고 쓰는 일을 시작한 후 1~2년마다 원고가 잘 써지는 타건감을 찾아 새로운 키보드를 구입해왔다. 그렇게 사 모으고 남은 키보드가 집에 7개 정도 된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지만 나는 장인이 아닌 직장인이니까. 올해 여름 <아레나>에 다시 돌아왔다. 오랜만에 많은 양의 원고를 마감에 몰아서 쓰고 나니 손가락에 피로가 쌓였다. 그간 써오던 기계식 갈축 키보드에서 다른 키보드로 바꿔야겠다 생각하던 중, 책상 건너편 동료가 쓰는 적축 키보드를 발견했다. 오피스마스터는 지금까지 사용해본 키보드 중에 가장 반발력이 적고 소리도 조용하다. 원고를 빠르게 많이 써야 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10년 전 나는 갖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그냥 샀다. 지금은 필요한 물건 위주로만 산다. 이미 갖고 싶은 물건을 많이 산 탓도 크지만. 에디터 생활을 하며 여러 물건을 경험해본 결과, 누구에게나 좋은 물건은 기본기가 충실하다. 꾸준히 변하는 트렌드 안에서 꾸준히 제 몫을 해주는 물건들.
단순히 내구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긴 세월 트렌드를 이겨내려면 본질적으로 ‘잘 만든 물건’이어야 한다. 여기에는 내구성, 디자인, 실용성이 모두 포함된다. 소비에 관해 이성적으로 말했지만 사실, 어떤 물건을 사는 이유가 꼭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물건이 생필품이 아니라 취미나 사치의 영역이라면 더욱. 혹여 기능이 떨어지더라도 당장 내 마음이 끌리는 걸 선택하는 편이 후회가 적다.
02 2020년식 랜드로버 디스커버리5
노현진 | 디지털 디렉터
‘공부는 오래, 고민은 짧게.’ 나의 쇼핑 좌우명이다. 디스커버리5를 사기로 결정하고, 매물을 찾아 받기까지 3일 걸렸다. 물론 딜러가 놀랄 만큼 사전 공부도 열심히했다. 디스커버리5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기존에 타던 차의 시트가 너무 불편했다. 여태까지 늘 작은 차만 탔으니 큰 차를 타보고 싶기도 했고. 그러던 차에 한 캠핑 유튜버 영상을 봤다. 주인장이 디스커버리4를 끌고 캠핑하는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였다. 특히 에어 서스펜션으로 차체를 내려서 짐을 싣는 모습이.
하지만 디스커버리4는 가격 방어가 잘되는 모델이고, 비슷한 돈이라면 신형인 디스커버리5가 낫겠다 싶었다. 실제로 타보니 승차감은 망망대해에서 요트를 타는 느낌이다. 모든 물건은 결국 소비재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비싸고 귀한 사치품을 사도 사용해야 의미 있고, 사용하다 보면 낡아 해져서 더 이상 쓰지 못하는 때가 온다. 그러니 어떤 물건을 사든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지금 내게 필요한 물건인지 아닌지만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필요하진 않지만, 갖고 싶은 물건을 사는 것도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 유행이라서 사는 것’만 피하려 한다. 쇼핑할 때면 1년 뒤 이 물건을 사용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내게 좋은 물건이란 질리지 않는 것을 뜻한다. 언젠가 디스커버리 역시 다시 파는 날이 오겠지만, 그 이유가 이 차에 질려서는 아닐 거다. 서울의 빡빡한 시내 주차 공간에 넌더리가 나서 팔겠지.
03 루이 비통 LV 러버스
김장군 | 패션 디렉터
올해 9월 루이 비통 청담 매장에서 구입한 향수. 평소 루이 비통도, 향수도 좋아하지만, 루이 비통 향수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퍼렐 윌리엄스가 제작에 참여한 향수’라는 말에 이끌려 곧장 매장을 찾았다. 구매할 마음으로 간 건 아니었다. 퍼렐이 만든 향수는 어떤 향일까 그저 궁금증이 앞섰다. 그런데 웬걸. 시향을 하자마자 바로 구매했다. 가격은 47만원. 향수 가격으로는 비싼 편이지만 전혀 아깝지 않다. LV 러버스는 잔향이 끝내준다. 옷에 향수를 뿌리고 일주일 뒤에 꺼내도 특유의 시더우드, 샌들우드 향이 선명하다.
향수는 일할 때도 도움이 된다. 주변의 향이 정돈되면 집중이 훨씬 잘되니까. 덩달아 올라가는 자신감은 덤이다. 좋은 물건은 시간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꼭 명품이 아니어도 좋다. 누구나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리바이스나 랭글러 데님 팬츠처럼 시간을 넘어 이미 클래식으로 자리 잡은 것들 말이다. 쉽게 생각해 각 분야에서 대명사가 된 아이템을 공략한다.
물론 아이템에 따라 비싸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물건을 사는게 오히려 돈을 아끼는 길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무너지지 않고, 그만큼 오래 사용할 수 있으니까. 중고 거래에서 가격 방어로도 이어진다. 물론 향수인 LV 러버스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중고 거래에 LV 러버스가 매물로 나온다며 언제든 쟁여둘 의향이 있다.
04 리코 GR3
주현욱 | 피처 에디터
올해 5월 구입한 리코의 콤팩트 카메라. 카메라를 산 건 10년 만이다. 인생 첫 카메라는 군대 전역 후 구입한 중고 캐논 5D 마크 II였다. 정말 갖고 싶었던 물건이지만 크기와 무게를 견디지 못한 탓에 카메라 가방에는 점점 먼지만 쌓여갔다. 작은 카메라를 사야겠다고 결심하자 평소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띄었다. 함께 일하는 포토그래퍼 여럿이 세컨드 카메라로 쓰고 있던 모델. 그게 리코 GR3였다. 130만원이 넘는 돈을 쓰려니 망설여졌지만, ‘분명 일에도 도움이 될 거야’ 생각하며 카드를 긁었다. 지금은 출장과 여행을 갈 때 노트북과 더불어 꼭 챙기는 물건이다. 실제로 GR3로 찍은 사진을 여러 번 기사에 실었으니 충분히 제 몫을 해주고 있다.
유명한 말이 있지 않나. ‘망설이는 이유가 가격이면 사고, 사는 이유가 가격이면 그만둬라.’ 동의한다. 남자가 서른 살이 넘으면 스스로 어떤 유형의 물건을 잘 쓰는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기호에 맞는 물건은 무엇인지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내게 좋은 물건은 구입한 이유가 명확하게 기억나는 물건이다. 내가 이 돈을 써야만 했던 명분을 기억만 한다면 후회할 확률은 적다. 어떤 물건들은 때때로 전혀 예상치 못한 경험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후쿠오카에서 GR3로 촬영한 사진이 부모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걸렸을 때의 묘한 뿌듯함처럼. 딱 하나, 가격 때문에 구입이 망설여진다면 과감해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카푸어가 되라는 뜻은 아니다.
05 로에베 코인 카드홀더
이상 | 패션 에디터
지갑을 너무 많이 잃어버렸다. 이제는 ‘나 지갑 잃어버렸어’ 해도 친구들이 대꾸조차 안 할 만큼 잃어버렸다. 어차피 잃어버릴 물건이라 생각하니 지갑 사는 게 늘 쉽지 않았다. 기왕 살 거라면 귀여운 포인트도 있으면 했다. 크기 작으면서, 수납력 좋고, 귀엽기까지 한 지갑. 생각보다 찾기 힘들다. 있다 해도 금세 품절이다.
어느 날 조나단 앤더슨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테이블 위에 무심코 놓인 초록색 지갑을 발견했다. 그 길로 곧장 압구정에 있는 까사 로에베 서울로 가서 이 지갑을 구입했다. 지갑은 향수 같은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사용하는 물건이고, 누군가 알아봐주길 바라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추천할 필요도, 추천받을 필요도 없다. 나는 충동구매의 힘을 믿는다. 물론 쇼핑하기 전 검색을 해보지만 그 시간이 길지는 않다. 당장 원하는 물건이 내 손에 빨리 안 들어오면 흥미가 떨어지니까.
쇼핑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 결심을 하기까지 과정이 너무 길어지고 번거로워지면, 막상 물건을 받았을 때 예상보다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충동구매와 주관 없는 쇼핑은 다른 문제다. 제일 촌스러운 사람은 ‘자기도 왜 샀는지 모르는 물건을 쟁여놓는 사람’이다. 쇼핑을 하는데 매번 명분이 필요한 건 아니다. 다만 자신의 개성이 물건에 잡아먹히거나, 넘치는 물욕을 감당하지 못하고 휩쓸리듯 물건을 사 모으는 건 피해야 된다. 그러니 갖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 것. 대신 적게 사고 오래 쓸 것.
06 메이드 인 파키스탄 빈티지 가죽 재킷
유선호 | 디지털 에디터
이번 6월 피렌체 빈티지 숍 ‘멜로즈 빈티지’에서 구입했다. 브랜드명은 미상. 정보라고는 라벨에 적힌 ‘MADE IN PAKISTAN’ 문구를 보고, ‘파키스탄에서 만들었구나’ 유추할 수 있는 게 전부다. 가죽 재킷은 작년 겨울부터 벼르고 있었다. 생 로랑에서 원하던 디자인을 찾았지만, 1000만원이 넘는 재킷을 살 수는 없었다. 때마침 피티 워모 출장이 잡혔고, 여느 때와 같이 피렌체에 가면 꼭 들르는 멜로즈 빈티지 스토어에 방문했다. 곧장 달려간 가죽 재킷 코너, 그중에서 이 재킷이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핏, 컬러, 길이, 에이징까지 완벽. 가격을 살펴보니 20만원이 조금 넘었다. 구매까지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물건을 살 때 가장 먼저 보는 건 디자인이다.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데 가격 때문에 고민이 된다? 그럼 결국에는 사는 편이다. 어차피 사지 못할 가격이라면 애초에 고민조차 안 할 테니까. 내게 좋은 물건은 일상을 다채롭게 해주는 물건이다. 늘 가성비만을 따져 한 가지 온라인 플랫폼에서만 물건을 구입하는 건 추천하고 싶지 않다. 물론 가성비도 중요하다. 하지만 당장 몇 만원 아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다. 쇼핑은 단순한 소비가 아닌, 스스로 무언가 알아보고 결정하는 경험이다. 그게 백화점 제품이어도 좋고, 시장에서 파는 물건이어도 좋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는 경험은 항상 짜릿하니까.
07 이악크래프트 에페 오벌
이다솔 | 패션 에디터
올해 후암동으로 이사를 했다. 혼자 산 지는 10년정도 됐는데 내 취향대로 공간을 꾸민 건 이번이 처음. 이사하면 많은 물건을 버리고 새로 사게 된다. 이 접시는 새집에 오고 나서 처음 산 물건 중 하나로, 초여름 한남동 이악크래프트 쇼룸에서 구입했다. 디자인도 컬러도 이렇다 할 특별함은 없지만 그 무난함이 갖가지 음식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사과, 복숭아, 참외, 홍시 등 어떤 제철 과일을 올려도 곧잘 어울린다. 특히 안줏거리로 즐겨먹는 나물 반찬과 색의 궁합이 좋다. 원형이 아닌 타원형이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과일이나 반찬 등을 일렬종대로 올려두면 안정감과 만족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이 접시가 일하는 데 도움이 되냐고? 물론이다. 지금 이 기사에도 사용했으니 도움이 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퇴근 후 평온한 일상을 가꿔 나가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물건들이 있다. 쓰임새와 상관없이 그저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은 물건.
누군가는 ‘예쁜 쓰레기’라 부르지만, 내게는 ‘예쁜 물건’이다. 설령 사놓고 구경만 하더라도, 집안 분위기와 지친 마음을 환기할 수 있다면 그걸로 제 몫을 다 한다고 생각한다. 에디터 일을 하다 보면 예쁜 쓰레기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지금도 화보 촬영을 준비할 때면 집 안을 먼저 둘러본다. 집들이 갈 일이 있다면 누구에게든 선물하고 싶은 물건이다.
08 미우미우 선글라스
유지원 | 피처 에디터
지난 10월 세컨드 핸드 거래 플랫폼 후루츠패밀리에서 구입했다. 가격은 18만원. 올해가 가기 전 파리 여행을 떠나겠노라 다짐하게 한 선글라스다. 쇼핑은 언제나 ‘여행 전에 하는 게’ 최고다. 여행지의 날씨와 풍경에 맞춰 나의 새로운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우니까. 이번에는 그 순서가 바뀌었다. 선글라스 쓰려고 파리에 가는 느낌이다. 12월 파리에서 코트를 걸치고 미우미우 캐츠아이 선글라스를 쓴 내 모습. 생각만 해도 근사하다.
안경 전체에 새겨진 호피 무늬, 안경다리의 ‘MIU’ 로고가 특히 마음에 든다. 다소 과감한 디자인 탓에 아직 서울에서는 한 번도 쓰지 못했다. 초겨울 캐츠아이 선글라스를 쓰고 지하철을 타면 왠지 사연 있는 여자처럼 보일 것 같았다. 최근 이사하면서 생각했다. 좋은 물건은 이사를 몇 번이고 해도 챙기는 물건이겠구나. 묵은 짐을 정리하면서 새삼 내가 안 쓰는 물건이 정말 많다는 걸 발견했다. 그중에는 1년 내내 한 번도 쓰지 않았지만, 곧 죽어도 버리지 못할 물건이 있었다. 마치 오래된 편지 같은 물건들. 나만 기억하는 내 모습과 이야기가 서려 있는 물건들이 있다. 이번 선글라스도 내게 그런 물건이 되어줄 거다.
쇼핑할 때면 그 물건을 쓰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근사한 선글라스는 가방에 들어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 한편을 든든하게 한다. 자신감은 때때로 높은 굽과 선글라스에서 나오니까. 상상 속 내 모습이 스스로 마음에 든다면 가격을 떠나 언제나 좋은 물건이 되어줄 거다.
09 애플 맥북 에어 M2
이아름 | 디지털 에디터
2024년 6월 8일 ‘애플 스토어 여의도’에서 구입한 맥북 에어 M2. 날짜를 명확하게 기억하는 건 이날이 황선우 선수와 <아레나> 7월호 커버를 촬영한 날이기 때문이다. 맥북을 사기 전까지 삼성 노트북을 2년 가까이 썼다. 두께가 얇고 스크린 터치가 가능해 2년 내내 만족스럽게 사용했다. 그러다 커버 촬영을 앞두고 삼성 노트북이 제 명을 다 했다. 수리 비용이 새 노트북을 사는 것만큼 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그간 애를 쓴 삼성 노트북에 작별을 고하고 촬영장으로 가는 길에 오래도록 고민한 맥북 에어로 환승을 택했다.
지금은 잠자는 시간 외에 거의 모든 시간을 맥북과 함께한다. 일과 휴식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물건이다. 내게는 좋은 물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다. ‘이거 없이 어떻게 살았지?’ 하는 생각이 드는 물건. 맥북이 그렇다. 앞서 구매한 아이폰, 에어팟, 아이패드, 애플워치와 연동할 수 있다는 점이 이렇게까지 편리할 줄은 몰랐다. 이제는 사무실에서, 택시 안에서, 비행기에서도 일을 더 빠르게 척척 해낼 수 있게 됐다.
충동구매는 잘 하지 않는다. 매달 쓸 수 있는 예산에는 한계가 있기에, 한 번 살 때 ‘얼마나 잘 그리고 자주 쓸 수 있는 물건인지’를 고려하는 편이다. 신발장에 100켤레가 가득 차 있어도 큰 의미는 없다. 결국 신는 신발에만 손이 가기 마련이니까. 물건을 사 모으는 건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필요한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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