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커스 마크 셀러 에이지드
카테고리 버번위스키
용량 750mL
테이스팅 노트 오크, 바닐라, 과일
가격 20만원대
간결하다. 투명한 병이 온전히 속을 내비친다. 위스키 색이 곧 병의 색이다. 오크통이 떠오르는 진한 갈색. 오랫동안 숙성한 증표처럼 전시한다. 가감 없이 보여주겠다는 자신감이다. 라벨도 간결하다. 보통 위스키 병은 라벨로 반 이상 채운다. 알려줄 게 많으니까. 상표도, 맛도, 그 안에 담긴 이야기도 라벨에 표현한다. 라벨 디자인이 첫인상을 좌우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위스키 병은 라벨 보는 재미가 있다. 메이커스 마크 셀러 에이지드는 그 모든 보통을 지워버린다. 얇은 띠 같은 라벨이 병을 둘렀을 뿐이다. 그 위에 ‘셀러 에이지드’라고 이름만 인쇄했다. 추가 설명이 있긴 하다. 상표인 메이커스 마크와 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문구. 이조차 라벨에 양각으로 표현해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아래 출시된 해인 2023년과 사인을 병 표면에 멋지게 인쇄했다. 간결함은 어떤 면에서 자신감이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겠다는 의지. 그래서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투명한 병부터 라벨까지, 대단한 자신감이다. 이유가 있다. 셀러 에이지드에 도전 정신이 깃든 까닭이다. 보통 버번은 숙성 연수를 늘리기 어렵다. 버번의 대표 산지인 켄터키 지역의 기후 때문이다. 습한 대륙성 기후는 겨울철은 춥고 여름에는 덥다. 온도가 급격하게 달라지기에 숙성할 때 증발량이 많아진다. 5년 숙성 버번의 평균 증발량이 30~40%라고 한다. 천사의 몫(Angel’s Share)이 너무 과하다. 숙성 연수를 늘릴수록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고숙성 버번위스키가 적은 이유다. 셀러 에이지드는 도합 11~12년 숙성을 자랑한다. 그래서 도전이다.
메이커스 마크는 더 오래 숙성하기 위해 증류소에 석회암 지하 저장고를 지었다. 켄터키 지방의 후끈한 태양을 피해 지하 벙커를 만든 셈이다. 덕분에 1년 내내 10℃ 정도로 온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셀러 에이지드는 그곳에서 탄생했다. 기존 6년 정도 숙성된 원액을 지하 저장고로 옮겨 다시 5~6년간 추가로 숙성한 결과물이다. 11~12년 동안 두 번 숙성한 원액을 배럴 프루프(물을 섞지 않고 원액만 병입하는 방식)로 담았다. 특별한 방식으로 숙성한 흔치 않은 버번위스키. 자신감이 생길 만하다.
“새콤달콤한 맛이 얼얼한 혀끝을 포근하게 위로했다.
뺨 때리고 위로하는 격인데, 이상하게 끌린다.”
기습 펀치
메이커스 마크는 개봉하는 행위가 남다르다. 빨간 왁스로 마개를 봉해놓았다. 왁스 실링은 직원들이 일일이 병 주둥이를 왁스에 담가 만든다. 수작업이라 빨간 왁스 실링 모양이 제각각이다. 셀러 에이지드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어떻게 열어야 할지 짐짓 머뭇거렸다. 와인처럼 오프너가 필요할까. 칼로 왁스를 긁어내야 하나. 불로 녹여야 하나. 걱정은 금세 사라졌다. 왁스로 덮인 곳을 잘 보면 톡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 그걸 떼어 돌리면 왁스가 잘려나간 듯 벗겨진다. 고민한 나 자신이 우스울 정도로 쉽고 깔끔하게 열렸다. 여는 행위에서부터 재미를 준다. 확실한 차별화다.
뚜껑을 열자 진한 향이 콧속으로 돌진한다. 달콤하고 눅진한, 과일 같기도 꿀 같기도 한 향이다. 단지 병의 뚜껑을 열었을 뿐인데 이 정도라니. 빨리 잔에 따라 본격적으로 맡아보고 싶었다. 다음을 재촉할 만큼 향이 매혹적이다. 잔에 따라 맡으니 예상대로 더욱 풍성하게 콧속을 자극한다. 흡사 코냑이 연상될 정도로 달콤하고 향긋하다. 잔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달큰한 향의 여운을 즐겼다. 색도 코냑처럼 진하다. 고숙성 위스키의 진한 갈색에 와인 몇 방울 섞은 오묘한 갈색이다. 잔에 따르니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향에 너무 취했나 보다. 향처럼 맛도 달콤할 줄 알고 무방비 상태로 입에 머금었다. 갑자기 입안에 불길이 치솟았다. 혀끝이 찌릿할 정도로 매운맛에 혀가 얼얼했다. 불길은 식도를 지나 뱃속까지 이어졌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이건 프리미엄 버번이지. 버번은 강한 펀치력을 자랑할수록 고급으로 친다. 셀러 에이지드도 상당한 숫자를 자랑한다. 57.85도. 45도도 50도도 아닌, 60에 가까운 알코올 농도. 기습 펀치에 제대로 당했다.
각오하고 다시 한 모금 머금었다. 두 번째 역시 뾰족한 창처럼 불길이 입부터 복부까지 관통했다. 각오해도 얼얼함은 마찬가지. 그럼에도 첫 모금에서 못 느낀 맛이 입안에 번졌다. 새콤하다고 해야 할까. 새콤하고 달콤한 그 중간 어딘가라고 해야 할까. 새콤달콤한 맛이 얼얼한 혀끝을 포근하게 위로했다. 뺨 때리고 위로하는 격인데, 이상하게 끌린다.
불덩이와 과일
안주를 곁들였다. 첫 번째 안주는 초콜릿. 달콤함이 확실히 위로해준다. 그러자 향긋함도 더 살아난다. 건포도처럼 눅진한 과일 맛이 입안에 맴돈다. 주사 맞고 사탕 먹는 아이처럼 한 모금 마시고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펀치력은 여전히 강렬하지만, 다음 모금에 도전할 각오가 생긴다. 두 번째 안주는 캐슈너트. 고소함이 찌르르 울리는 매운맛을 둥글게 감싸 안는다. 나쁘지 않군. 그래도 초콜릿의 달콤한 위로에는 미치지 못한다. 고도수 위스키의 강렬한 한 방이 워낙 세니까. 세 번째 안주는 육포. 혀를 찌르는 얼얼함이 매캐함으로 이어질까 싶어서 선택했다. 매캐함이 육포와 만나면 그럴듯한 심상을 연출한다. 그 문을 여는 열쇠가 될까. 하지만 열리지 않는다. 그나마 육포가 입안의 불덩이를 서서히 뭉뚱그려줄 짭조름한 고소함을 선사한다. 역시 위스키 안주로 초콜릿은 실패할 확률이 적다.
다음 날, 다시 마셨다. 어제와 다른 오늘. 위스키에선 통용되는 말이다. 이번에는 공기도 곁들였다. 잔에 따라 놔두고 마시니 향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달큰한 캐러멜과 향긋한 과일의 앙상블. 경험이 있으니 향에 마냥 취하진 않았다. 각오하고 한 모금 머금었다. 역시 뜨거운 불길이 치솟았다. 오래 머금고 있으니 혀가 마비된 것처럼 떫은 느낌까지 번졌다. 처음도, 두 번째도 화끈함은 줄어들지 않았다. 대신 오래 머금으니 침이 고이며 달콤함이 퍼졌다. 침이 농도를 낮추며 강렬함 속에 숨은 과실을 발견하게 한달까. 음미할 단초를 찾았다.
사흘째, 나흘째 연거푸 밤마다 셀러 에이지드 한 잔씩 음미했다. 이상하게 강력한 펀치력이 자꾸 떠올랐다. 난 피학적 인간이 아닌데 자꾸 뚜껑을 열게 됐다. 그사이 다른 위스키도 한 잔 마셔봤다. 나름 개성 강한 피티드 위스키였는데도, 밋밋했다. 셀러 에이지드의 강렬함에 묻힌달까. 이래서 고도수 위스키에 적응하면 고도수만 찾는다고 하나. 게다가 마실수록 강렬함 속에서 향긋함이 섬세하게 전해진다. 강자와 수없이 스파링하며 적응한 것처럼. 셀러 에이지드는 단련시키는 술이다. 단련하고 나면 숙성된 과실의 진한 맛을 트로피처럼 거머쥘 수 있다. 현재 셀러 에이지드는 바에서만 판다. 바에 찾아갈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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