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된 시계들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전설에 호소하는 시계들. 인류가 최초로 달에 착륙할 때 우주비행사들이 찼던 시계, 나치 독일로부터 영국을 구해낸 전투기 조종사들의 시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탐험가들의 손목에 올랐던 시계. 서울 시내에서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에게 ‘달에서 찬 시계’ ‘영국군 파일럿 시계’가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리 녹록지 않다. 작은 시계 하나로 역사의 한 순간을 소유한다는 건 누군가에게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스마트폰 하나로 지구 반대편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시대에 여전히 수백만원짜리 기계식 시계가 팔리는 이유다.
그렇다 해도 론진 레전드 다이버의 호소력에는 모호한 면이 있다. 일단 이름부터 전설의 잠수부다. 앞서 말한 전설 속 시계들은 많지만, 대놓고 ‘레전드’라는 이름을 붙인 시계는 레전드 다이버뿐이다. 역사적 사실보다 이름으로 먼저 호소하는 느낌이랄까. 더군다나 론진은 바다보다 하늘에서 이야기를 써내려온 브랜드다.
론진은 1867년부터 모래시계에 날개 달린 엠블럼을 앞세우며 비행사들을 위한 시계를 제작해왔다. 지금도 론진 컬렉션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파일럿 워치다. 그럼에도 레전드 다이버는 론진의 대표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지금 보는 시계는 올해 9월 국내 출시된 신형 레전드 다이버다. 론진은 지난해 39mm 사이즈 모델을 레전드 다이버 컬렉션에 추가했다. 기존 42mm와 36mm 모델의 정확히 중간 사이즈다. 이듬해 론진은 레전드 다이버 탄생 65주년을 기념해 39mm 모델에 새로운 컬러를 적용했다. 그린, 테라코타, 앤트러사이트 그레이. 컬러와 사이즈를 다양하게 준비했다는 건 그만큼 이 시계를 찾는 사람도, 기존 고객이 새롭게 요구하는 것도 많다는 뜻이다. 그 이유를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크라운과 베젤이다. 레전드 다이버의 크라운은 총 두 개다. 브랜드마다 크라운 위치는 제각각이지만 크라운이 두 개 달린 다이버 워치는 드물다. 이 독특한 디자인은 1959년 등장한 첫 번째 레전드 다이버(레퍼런스 7042)부터 적용됐다. 두 크라운은 각기 다른 역할을 맡는다. 위쪽 크라운은 베젤을, 아래쪽 크라운은 시곗바늘을 돌린다. 손에 닿는 감각도 특별하다. 일반적인 다이버 워치 베젤은 딸칵 소리를 내며 시계 반대 방향으로만 돌아간다. 시계마다 미묘하게 다른 베젤 돌아가는 소리는 시계 애호가들에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반면 레전드 다이버 베젤은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마치 거울 위에 유리구슬 굴리듯 양방향으로 부드럽게 회전한다. 호불호가 갈릴 요소지만, 동시에 ‘레전드 다이버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기존 42mm, 36mm 모델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은 크게 두 가지다. 날짜창과 브레이슬릿. 기존 모델의 다이얼 3시 방향에는 날짜창이 들어간다. 39mm에서는 이걸 생략했다. 원형 레전드 다이버와 동일하게. 브레이슬릿은 보다 화려해졌다. 39mm 모델에는 7열 브레이슬릿이 기본 장착된다. 외국에서는 이 디자인을 ‘비즈 오브 라이스(Beads of Rice)’라 부른다. 쌀알을 이어 붙인 듯한 모습 때문에 붙은 명칭이다.
신형 브레이슬릿은 바깥쪽 2열과 안쪽 5열의 곡률이 다르게 세공됐다. 햇빛 아래 비춰보면 각기 다른 반사광을 뿜어낸다. 덕분에 ‘잠수부 시계’임에도 고급 시계라는 인상을 진하게 풍긴다. 케이스 지름이 40mm 안쪽으로 들어오면서 착용감도 좋아졌다. 42mm 모델과 비교하면 러그의 너비는 2mm, 러그 양쪽 끝 길이는 5.6mm 줄었다. 17cm 둘레의 손목에는 부담스러울 만큼 크지도, 옅은 존재감이 걱정될 만큼 작지도 않은 사이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능도 준수하다. 시계 안에는 칼리버 L888.6이 탑재됐다. 스와치그룹에서 론진에만 제공하는 무브먼트로,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을 적용하며 스위스 공식 크로노미터 기관(COSC) 인증을 받았다. 시계를 차고 있는 동안 시간이 틀릴 걱정은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 약 72시간의 파워 리저브, 수심 300m 방수 기능까지 갖췄다.
단순히 숫자만 놓고 비교한다면 고급 다이버 워치 시장의 일인자 롤렉스 서브마리너에 뒤지지 않는다. 이런 신형 레전드 다이버의 가격은 500만원이다.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다이버 워치가 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최초의 기록을 앞세우거나(롤렉스 서브마리너), 최고의 파트너를 앞세우거나(오메가 씨마스터). 레전드 다이버는 두 가지를 포기하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았다. 누구도 만들지 않는 시계를 만드는 것. 그 영역 안에서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 레전드 다이버가 최고의 다이버 워치는 아닐 수 있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레전드 다이버 같은 시계’는 레전드 다이버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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