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은 있었지만 망설임은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가고 싶었어요.
축구를 시작할 때부터 목표가 있었거든요.”
스토크시티에서의 첫 시즌이었죠. 스토크에 가보신 적이 있나요?
스토크는 처음입니다. 동네가 작지는 않은데 되게 조용해서 도시 느낌은 아니죠.
외국에 가실 때 겁이 나거나 망설이지는 않으셨어요?
걱정은 있었지만 망설임은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가고 싶었어요. 축구를 시작할 때부터 목표가 있었거든요. 해외에 나가서 더 높은 리그에서 뛰고 싶다고. 대전이라는 좋은 구단을 만나서 유럽 진출이 잘 진행된 것 같습니다.
외국 생활에 불편한 점은 없나요?
많았어요. 언어가 되지 않다 보니 집 앞을 돌아다니는 것조차 쉽지 않았죠. 물건을 산다든지 식당에 간다든지 할 때도요. 가장 큰 건 팀에 적응하는 일이었습니다. 축구선수로 간 거니까 팀에 빨리 적응해야 했죠. 쉽지 않았어요.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영어도 미리 공부하셨어요?
아니요. 주변에서 형들이 영어 공부하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제가 안 하다가 막상 나가니 하게 되더라고요.
영어를 잘하게 되면 축구도 더 잘되나요?
그럼요. 동료들이랑 적응하기도 더 쉬워요. 축구가 팀 운동이다 보니 팀에 적응하는 게 중요해요. 감독님과 친구들과도 소통해야 하고요. 언어가 안 되면 적응하기 쉽지 않죠. 거기서도 과외를 받고 있어요.
축구선수 하기도 쉽지 않네요. 축구도 잘해야 하고 영어 공부도 해야 하고. 축구선수가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어릴 때부터 운동을 너무 좋아했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축구를 좋아했고요. 부모님께 축구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큰 반대를 안 하셔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운동선수들은 운동신경이 좋다고 하잖아요. 다른 운동을 해볼 생각도 하셨나요?
다른 운동도 못하지는 않는데 축구를 가장 좋아했어요. 어릴 때부터.
엘리트 축구선수들은 지금 어떤 포지션을 맡든 어릴 때는 최전방 공격수로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골키퍼도요.
저는 최전방 공격수를 본 적은 없었어요. 우선 미드필더를 하고, 오히려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 더 공격적인 위치로 올라갔던 것 같아요. 미드필더 쪽에서 뛰다가 공격형으로 올라가고, 윙포워드까지 계속 올라갔습니다.
그라운드에서 공을 받거나 움직일 때는 판단을 빨리 해야 하죠. 그때 생각이 많아지나요, 아니면 본능처럼 하게 되나요?
저는 빠른 상황 판단을 위해 오히려 생각을 많이 안해요. 머릿속이 복잡해지면 경기력이 더 안 좋더라고요. 여러 상황에 맞춰 인식을 해놓고, 그 상황이 닥쳤을 때는 제 몸의 반응으로 앞서 나가는 것 같습니다. 미리 생각한다기보다는 상대의 반응을 계속 보고 있습니다. 상대가 강하게 들어오면 빠르게 원터치로 나가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다음 방법을 찾고. 제가 ‘여기서 어떻게 해야지’ 같은 걸 생각한다기보다는 상대 반응에 맞춰서 하는 것 같아요.
반응에 맞춘 움직임은 미리 훈련된 대로고요?
그렇죠. 개인적으로도, 팀플레이 면에서도요. 팀 전술이 있으니, 어디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등의 요소가 정해져 있어요. 개인적으로도 어떤 상황에서 익숙한 플레이가 있고요. 자연스럽게 그 플레이가 나옵니다.
배준호 선수는 어떤 플레이가 익숙한가요?
한 명을 제친 뒤 본격적으로 밀어 올라가는 플레이가 저의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수비와 수비 사이에서 공을 받아 공격적으로 나가는 것도 익숙해요.
‘오프 더 볼’이라고 하는, 공 없을 때의 움직임도 중요하죠. 그때도 계속 집중하시죠?
네. 저의 움직임으로 인해 우리 팀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도 하고 상대 수비가 혼란을 겪기도 하니까요.
오프 더 볼 상황에서 공간을 창출하기 위한 움직임을 의식적으로 하나요?
그럼요. 공간을 비워주는 움직임을 통해 공간을 창출하는 전술을 주로 구사하는 감독님도 계세요. 그런 움직임을 장점으로 이용하려는 선수도 많아요.
“저는 중앙 미드필더를 둘 두는 포지션보다는 공격형,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뉘는 포지션을 좋아해요.
그중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 서는 게 좋습니다. ”
배준호 선수가 특히 좋아하는 미드필더 진형도 있습니까? ‘나는 4-3-3을 좋아한다’거나요?
저는 중앙 미드필더를 둘 두는 포지션보다는 공격형,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뉘는 포지션을 좋아해요. 그중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 서는 게 좋습니다.
공격형 자리에 서면 수비 가담은 덜 해도 됩니까?
요즘은 그렇지도 않죠. 다 같이 공격하고 다 같이 수비해야 해요. 공격형 미드필더도 압박하니까, 조금 더 공격적인 위치에서부터 수비를 시작한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입니다. 요즘은 선수 한 명이 수비를 안 해서 균열이 생기면 팀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아요. 수비도 공격만큼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포지션도 있으세요?
미드필더를 보다가 20세 이하 월드컵에 나가면서 왼쪽 윙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윙포워드와 공격형 미드필더를 겸하고 있어요. 나이를 먹으면 중앙 미드필더 등 경험이 필요한 포지션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
왼쪽에 선다면 양발을 다 씁니까?
패스와 드리블은 양발을 다 사용하고 슈팅이나 킥은 오른발로 합니다. 오른발이 왼쪽에 섰을 때의 장점이 있어요.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들어가서 슈팅을 때릴 수 있고요. 요즘은 오른발이 왼쪽에서, 왼발이 오른쪽에 서는 경우도 많습니다.
중앙 미드필더는 발이 덜 빨라도 됩니까? 시야가 좋거나 돌파가 좋은 분들이 하나요?
수비력과 공격력을 다 갖춰야 하는 포지션이에요. 빠르기보다는 경기를 조율해야 하는 위치다 보니 기술이 좋고 센스가 뛰어난 선수가 서는 위치입니다.
요즘은 어떤 축구든 관객 입장에서 보는 맛이 좋더라고요. 선수는 더 고생스럽다 싶지만. 선수가 느끼는 압박감도 더 커졌습니까?
그렇죠. K리그에 있다가 유럽에 나갔을 때도 그렇고, 조금씩 높은 위치의 리그로 올라갈수록 경기 강도 등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템포도 확실히 빨라지고요. 이번에 A대표팀에 갔을 때도, 뛰어난 선수들과 같이하다 보면 게임 강도가 높아지는 만큼 기술도 더 향상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축구를 좋아해서 경기도 보고 하이라이트도 봅니다. 저 같은 일반인은 하이라이트를 보면 멋있는 게 많고요. 선수 입장에서 영상을 보면 다릅니까?
사실 EPL에는 워낙 수준 높은 선수만 있으니까 어떤 선수가 공을 잡아도 감탄하게 돼요. 세계 최고 리그에 뛰는 선수여서인지 정말 디테일 하나하나가 달라요.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선수들이 있어서 그런 선수들에게 많이 배웁니다.
축구선수의 디테일이 좋다는 건 어떤 겁니까? 어려운 공을 받고도 잘 대응하는 건가요?
그렇다기보다는, 두 번 잡을 걸 한 번 만에 나가는 거예요. 세 번 잡을 걸 두 번 만에 나가고, 한 번 잡을 걸 바로 나가고. 그런 디테일 하나하나가 쌓이면서 경기 템포가 빨라지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높은 리그에서 뛰는 것 같습니다.
가장 많이 참고하는 선수가 있나요?
맨체스터시티의 케빈 데 브라위너 좋아해요. 하이라이트가 아니라 풀 경기를 보는데도 하이라이트를 보는 느낌이 들어요. 볼 터치 하나하나가 놀라워요. 같이 뛰어보고 싶어요.
세계적인 선수들은 공을 잡았을 때 자기 존이 있잖아요. ‘손흥민 존’도 있고 ‘호날두 존’도 있고. 어디서나 잘하겠지만 더 자신 있는 ‘배준호 존’도 따로 있습니까?
‘배준호 존’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미드필더와 중앙수비수 사이 하프 스페이스에서 공을 받아 밀고 가는 플레이를 되게 좋아해요.
좋아하는 팀도 따로 있습니까?
딱 하나의 팀을 응원한다기보다는 EPL이라는 세계 최고의 리그를 좋아해요. (거기에 가는 걸) 목표로 삼고 있어요.
롤 모델이 있습니까?
외국에서는 케빈 데 브라위너, 한국에서는 (황)인범 형이요. 인범이 형은 미드필드에서 센스 있게 공을 다루는 선수예요. 그런 센스나 경기 운영 방식 같은 것을 본받고 싶어요.
골과 어시스트 중에 뭐가 더 좋으세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어시스트하는 걸 좋아했어요. 상대 선수들을 제치고 패스를 찔러주는 어시스트에 대한 만족감이 높았습니다. 이제 제가 공격적인 위치로 점점 올라가면서 공격수로서 골을 넣는 게 무척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프로에서는 골을 넣어야 하고, 공격수는 그걸 증명해야 하는 자리니까요.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실제로 골을 넣을 때 팬분들도 좋아해주시고 팀도 승리하는 걸 보면서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고요. 이제는 어시스트보다 골이 더 좋아요.
“이제 제가 공격적인 위치로 점점 올라가면서
공격수로서 골을 넣는 게 무척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프로에서는 골을 넣어야 하고, 공격수는 그걸 증명해야 하는 자리니까요.”
그럼 페널티 구역에서 골을 넣는 것과 중거리 골 중에는 뭐가 더 짜릿하세요?
중거리 골을 넣었을 때가 좋죠. 사람들이 봤을 때도 더 화려하잖아요. 저희가 볼 때도 비슷하거든요. 중거리 골이 난도도 높고. 골이 들어갔을 때 더 짜릿한 쾌감이 있어요.
이번 A매치 데뷔전에서 골도 기록하셨죠. 데뷔전에서 골까지 기록해 자신감이 생겼습니까?
그렇죠. 근데 사실 자신감이 없진 않았어요. 대표팀에 뽑혔을 때부터 자신감을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기회가 주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준비는 잘하고 있었고,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잘 잡은 것 같아요.
내가 골을 넣는 순간이 비디오처럼 기억나기도 합니까? 이번 A매치 데뷔 골은 어떨까요?
확실히 골 몇 개는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그(A매치 데뷔) 골은 은퇴를 하더라도 기억에 남을 골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국가대표를 안 해봤으니까 늘 궁금했는데 국가대표 경기 시작할 때 국가를 부르잖아요. 카메라가 국가대표들을 싹 비추고요. 그때 노래 부를 때 진짜 크게 부르세요? 아니면 입 모양으로만 부르세요?
입 모양으로만 하는 사람도 있고 크게 부르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작게 불러요. 크게 부르면 친구들끼리 웃기도 하거든요. 저는 집중해야 해서 작게 불러요 . 다 같이 부르기로 한 거니까 적절하게 부르는 것 같아요.
오늘 스위스 럭셔리 워치 브랜드인 IWC 샤프하우젠과 함께 화보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브랜드에 대해서 알고 있었나요?
저는 시계를 잘 모르지만, 오늘 촬영하면서 보니 정말 멋진 브랜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저희 에이전트 대표님도 “간결하지만 화려하다”고 평가받는 저의 플레이 스타일과 IWC의 심플하면서 세련된 스타일이 닮았다고 하셨어요.
제가 상상하는 엘리트 축구선수의 삶은 되게 화려할 것 같았는데요. 이를테면 연예인이랑 DM도 보내고. 그런 건 없으세요?
저는 아직 그런 게 없어요. 그런 삶을 모르는 게 사실이에요. 이번에 저도 A매치 가서 형들을 만났을 때 연예인 보는 기분이었거든요. 흥민이 형, 희찬이 형, 이런 형들은 사실 저도 처음 만났으니까요. 워낙 유명하신 분들이라 같은 축구선수인데도 연예인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배준호 선수도 앞으로 잘되실 텐데요. 스토크시티를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시키는 것과 스토크시티에서 EPL 팀으로 이적하는 것, 둘 중 뭐가 더 좋으시겠어요?
스토크시티와 함께 올라가는 거죠. 일단 제 목표는 EPL에서 뛰는 거라서 그걸 목표로 하지만, 스토크시티와 함께 승격할 수 있다면 그게 최고의 길일 것 같아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EPL에서 뛰고 싶기도 합니다.
앞으로 어떤 선수가 되고 싶으세요?
은퇴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저를 떠올렸을 때 어떤 선수와도 비교되지 않는 선수. ‘배준호 같은 선수는 없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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