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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시계

한 브랜드를 대표하는 시계는 어떻게 그 자리에 섰을까? 유적지를 탐사하는 마음으로 각 모델의 발자취를 좇았다.

UpdatedOn August 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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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rtier © Jean-Marie Binet

© Cartier © Jean-Marie Binet

까르띠에 산토스 드 까르띠에

좋은 시계의 기준은 여러 가지일 거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중시하는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의미 있는 시계는 분명한 기준이 있다. 역사 속에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산업의 흐름을 바꾸고 보다 다채로운 미래를 이끄는 분기점. 그런 위업이 있기에 의미가 생긴다. 최초라는 타이틀은 의미가 발아할 적합한 토양이다. 얼마나 강렬한가. 대담한 발상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냈기에 역사는 최초를 기록한다. 그리고 우린 그 최초를 기린다.

산토스 드 까르띠에(이하 산토스)는 최초의 현대식 손목시계다. 1904년 선보였다. 역사적 사실을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이 한 줄은 꽤 강렬하게 작용한다. 주얼리로 유명한 까르띠에가 전통적인 시계 제조사를 제치고 손목시계를 처음 만들었다니, 하는 반응. 보다 깊게 들어가 그 과정을 살피면 더 흥미롭다. 루이 까르띠에는 친구 알베르토 산토스-뒤몽을 위해 손목시계를 만들었다. 비행사인 산토스-뒤몽은 비행 중 시간을 보기 위해 회중시계를 꺼내는 게 불편했다. 그의 고충을 듣고 루이 까르띠에는 시계 케이스와 스트랩을 연결하는 러그가 있는 손목시계를 만들었다. 산토스는 사용자 편의를 고려한 특수 제작 시계인 셈이다. 그래서 시계 이름도 산토스. 우정에서 발화한 까르띠에의 대담한 발상이 지금 남자들의 손목에 시계를 채운 셈이다. 까르띠에는 산토스를 선보여 역사의 풍경을 바꿨다. 그리고 지금도 산토스는 까르띠에 시계 라인업에서 큰 축을 이룬다. 예전보다 세부 라인도 더 다채로워졌다. 최초라는 타이틀과 그 이후 쌓은 역사성이 있기에 산토스는 까르띠에를 대표하는 자리에 올랐다.

산토스의 대표성을 강화하는 요인은 하나 더 있다. 디자인이다. 1904년 산토스와 지금의 산토스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각 베젤과 겉으로 나온 나사 여덟 개, 용두 위의 보석 등 산토스 DNA라 할 수 있는 것들은 1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외형이 바뀌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초기 디자인의 완성도가 높다는 뜻이다. 그 유산을 계승할수록 가치는 더욱 커진다. 지금도 옛 실루엣을 간직하며 명성을 떨치는 제품들이 있다. 그 제품들의 디자인은 과거에도 지금도 여전히 감흥이 크다. 그러기에 오래 살아남았고, 그만의 고유한 형태가 됐다. 산토스 또한 그 서사를 써내려간다. 최초의 손목시계이자, 최초의 형태를 이어온 시계로서 까르띠에를 대표한다. 그 대표성이야말로 산토스를 선택하게 하는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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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 스피드 마스터

우리는 극적인 이야기에 매료된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순간 같은 이야기 말이다. 달 표면을 걸은 최초의 우주인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그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 역시. 우주인이 찬 시계가 대표적이다. 닐 암스트롱과 함께 달을 밟은 버즈 올드린의 팔에는 시계가 있었다. 그 시계가 스피드마스터다. 스피드마스터가 ‘문워치’로 불리게 된 순간이다. 그 장면만으로도 오메가의 대표 모델로 스피드마스터가 등극할 이유가 충분하다. 그에 얽힌 기술과 의미, 상징성과 이야기는 희소성이 높다. 어떤 시계도 그 장면 이상의 강렬한 인상을 남기긴 힘들다. 우주와 우주인은 지구인에게 그런 대상이니까.

스피드마스터가 연출한 결정적 장면은 마케팅의 힘이 아니다. 그래서 더 극적이다. 시작은 두 우주인의 개인 취향이었다. 월터 월리 시라와 르로이 고든 고르도 쿠퍼는 개인적으로 구입한 스피드마스터 2세대 모델을 차고 우주 미션을 수행했다. 달 착륙 전에 이미 스피드마스터는 우주인의 시계로 데뷔한 셈이다. 이후 나사(NASA)가 훈련과 비행에 사용할 공식 시계를 선정하기로 했다. 그 과정은 후보 시계들에겐 혹독했다. 우주에서 사용할 시계이기에 가혹한 테스트가 이어졌다. 온도, 진동, 중력가속도 등 흡사 파손 한계를 측정하는 수준이었다. 최종 승자는 알다시피 스피드마스터. 나사 인증 공식 우주 시계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극적인 장면 이면에 담긴 기술적 성취가 읽힌다. 그런 점에서 ‘문워치’라는 타이틀은 곧 뛰어난 기술력을 의미한다. 화제성으로 시선을 집중시키고, 점차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스피드마스터가 오메가의 대표 모델로 자리 잡게 된 과정이다.

기억은 되새겨야 선명해진다. 오메가도 그걸 알았다. 오메가는 스피드마스터와 ‘문워치’의 연결고리를 에디션으로 강조했다. 대표적으로 ‘실버 스누피 어워드 스피드마스터 한정판’을 들 수 있다. 1970년에 나사는 오메가를 실버 스누피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했다(스누피는 나사의 공식 캐릭터다). 아폴로 13이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는 데 스피드마스터가 일조한 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메가는 그 상을 기념해 스누피 캐릭터가 담긴 스피드마스터를 선보였다. ‘문워치’의 연결고리를 강조하면서 럭셔리 시계 속 스누피라는 화제성도 더했다. 두 가지 이야기가 담기니 더욱 주목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모르면 모를까 일단 ‘문워치’에 얽힌 이야기를 알면 스피드마스터가 달리 보인다. 그 힘이 스피드마스터에 대표성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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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호이어 까레라

시계와 스포츠는 연관성이 깊다. 시간은 스포츠의 시작과 끝을 선포하고, 때로 승부를 결정하기도 한다. 자연스레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는 스포츠와 함께한다. 다양한 시계 브랜드가 스포츠와 연을 맺고 활동하는 이유다. 태그호이어는 스포츠, 그중에서 모터스포츠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1911년에 자동차 대시보드에 설치하는 시계를 만들었으니 오래전부터 이어온 관계다.

태그호이어의 까레라는 그 관계성을 대표한다. 이름부터 모터스포츠에서 따왔으니까. 1950년대에 시작된 ‘카레라 파나메리카나’라는 로드 레이스다. 멕시코 대륙을 종단하며 3300km에 육박하는 거리를 달려야 하는, 난이도 극악의 레이스. 당시 태그호이어 회장이던 잭 호이어는 이 혹독한 레이스의 진취적 정신을 기리며 까레라를 만들었다. 레이스명을 제품명으로 사용한 만큼 이후 까레라는 F1 페라리 팀의 클레이 레가초니나 니키 라우다 등 전설적인 드라이버와 영광의 순간을 함께했다. 모터스포츠와 밀접한 브랜드가 만든, 이름마저 모터스포츠에서 따온 시계. 태그호이어 하면 까레라가 떠오를 만큼 대표성이 생긴다.

그 대표성을 더욱 알린 건 신기하게도 다시 자동차다. 자동차 좋아하는 사람에게 까레라는 포르쉐 911 뒤에 붙는 카레라를 떠올리게 한다. 둘은 스펠링이 같지만 태그호이어는 까레라라고 표기한다. 둘은 우연히 이름이 같은 게 아니다. 그 명칭이 붙은 이유가 같다. 태그호이어도, 포르쉐도 카레라 파나메리카나에서 명칭을 빌렸다. 같은 명칭을 쓰는 만큼 카레라라는 단어에 굉장한 힘이 생긴다. 두 브랜드 모두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력과 역사를 자랑한다. 게다가 시계와 자동차 모두 남자의 로망을 담은 물건이다. 그러니 태그호이어 까레라든, 포르쉐 911 카레라든 카레라는 선망의 단어로 다가온다. 이런 시너지, 좀처럼 찾을 수 없다.

둘의 시너지는 까레라 에디션으로도 이어졌다. 태그호이어는 포르쉐와 2021년 본격적인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태그호이어×포르쉐 까레라 크로노그래프’를 선보였다. 이 흥미로운 에디션은 매년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에겐 꿈이 현실이 된 에디션일지 모른다. 모두 까레라에 얽힌 이야기 덕분이다. 제품에 담긴 풍성한 이야기는 브랜드 정체성을 더욱 단단하게 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겐 소유하고픈 매력으로 다가온다. 까레라는 그 흐름을 만들어낸 모델이다. 자연스레 대표 모델로서 브랜드의 매력을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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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렉스 서브마리너

서브마리너는 롤렉스의 대표 시계다. 서브마리너를 검색하면 ‘서브마리너 진품 구별하는 법’ 같은 질문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찾는다는 뜻이다. 럭셔리 시계의 대명사로서 서브마리너는 위세를 뽐낸다. 서브마리너의 인기를 되짚어가려면 우선 롤렉스의 상징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브마리너의 인기는 롤렉스의 인기에 바탕을 두는 까닭이다.

롤렉스는 럭셔리 시계 시장점유율 1위 브랜드다. 모건스탠리가 진행한 ‘2023 스위스 럭셔리 시계산업 리포트’의 결과다. 더 중요한 건 매출 규모다. 2위부터 5위까지 매출을 합한 것보다 롤렉스가 많다. 압도적인 1위. 많은 사람이 찾는다는 건 그만큼 상징성을 구축했다는 뜻이다. 단 하나를 선택할 때 상징성은 강력한 이유가 된다. 롤렉스가 상징성을 쌓을 수 있던 비결은 크게 두 가지다. 기술과 소통. 기술은 브랜드를 차별화하고, 소통은 그 차이를 대중에게 각인한다. 롤렉스는 1914년 영국 큐(KEW)천문대에서 손목시계로는 처음으로 A등급 크로노미터(시간 기록 장치) 인증을 받았다. 당시 크로노미터 인증은 큰 항해용 시계만 받을 수 있었다. 작은 시계로 인증받은 정확한 시간. 곧 기술력을 뜻한다. 최초의 방수, 방진 시계인 오이스터 역시 롤렉스를 달리 보게 했다. 이젠 익숙한 기술이지만 누구보다 먼저 구현했기에 상징성이 생겼다. 새끼 오리가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인식하듯이.

롤렉스는 그 차이가 도드라지게 전략적으로 소통했다. 1927년, 한 여성 속기사가 수영으로 도버해협을 건널 때 롤렉스는 오이스터를 채웠다. 평범한 여성의 위대한 도전에 오이스터가 함께했고, 방수 성능 역시 증명했다. 롤렉스는 이 일화를 신문에 광고로도 실었다. 독보적인 기술을 쌓고, 전략적으로도 알렸다. 롤렉스라는 브랜드명도 창업자가 발음하기 좋고 기억하기 쉬운 단어로 고른 결과 아닌가. 역시 소통하는 법을 안다.

롤렉스의 이런 방식은 꾸준히 브랜드 역사와 함께해왔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롤렉스는 럭셔리 시계의 대명사가 됐다. 서브마리너는 그 명성을 바탕으로 대중적 인기를 획득한 모델이다. 무엇보다 디자인의 힘이 크다. 지금 일반적인 다이버 시계의 디자인에서 서브마리너의 지분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대표성. 게다가 다이버 시계는 다른 모델과 달리 정장과 캐주얼에 모두 어울린다. 전문가의 툴 시계에서 일상으로 확장하며 폭넓은 취향을 품었다. 대표성에 범용성이 더해졌다. 결국 서브마리너에 다다를 이유가 많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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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종훈

2024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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