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인터뷰가 나갈 때쯤 영화 <대치동 스캔들>이 개봉하죠. 학원가를 소재로 한 영화는 드문 편인데,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의 감상이 궁금해요.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풋풋하지만 열정적인 20대의 청춘이 떠올랐어요. 속도감이 살아 있어서 마치 한 편의 소설을 빠르게 읽어 내려간 느낌이었죠. 그만큼 이야기가 탄탄하고 짜임새가 좋았어요. ‘좋은 이야기가 내게 왔다’는 느낌이 들어서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직접 출연하신 입장에서 이번 작품의 감상 포인트를 소개 부탁드려요.
<대치동 스캔들>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대치동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에요. 주인공 ‘윤임’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가 전개돼요. 누구에게나 잊고 싶은 시절이 있잖아요. 윤임은 전 연인인 ‘기행’을 만나면서 잊고 싶었던 대학 시절을 소환하고, 일련의 사건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죠. 윤임의 과거와 현재에 얽혀 있는 세 친구들과의 관계를 유심히 지켜보시면 더욱 재미있으실 거예요. 그 관계 속에서 요동치는 윤임의 감정선도 감상 포인트 중 하나고요.
극 중에서 맡은 ‘윤임’은 유명해지고 싶어 대치동에 들어온 국어 강사죠.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실제로 강사나 수험생을 만나기도 하셨나요?
전직 국어 강사님과 현직 영어 강사님을 만났어요. 사실 두 분 모두 제 지인인데요. <대치동 스캔들> 각본과 연출을 맡으신 김수인 감독님께서 대치동에서 국어 강사로 일하셨어요. 덕분에 작품을 준비하면서 감독님께 많은 팁과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현직 영어 강사는 저랑 가장 친한 친구예요. 윤임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전직, 현직 강사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죠.
특히 영어 강사인 제 친구는 워낙 오랜 시간을 함께해서 ‘내가 친구의 직업을 연기하게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감회가 새로웠죠. 친구가 일하는 학원에 직접 방문해서 여러 조언을 구하고, 같이 연구도 했는데 그 시간이 이번 작품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친구의 직업에 대한 이해도가 생겼어요.
연기하는 동안 ‘윤임이 이런 사람으로 보였으면 좋겠다’ 하는 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보통 새 작품과 인물을 준비할 때마다 ‘이 사람은 이렇게 보이면 좋겠다’ 생각하는 지점이 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하고 연기해봤어요. 현재의 윤임은 ‘이렇게 보이고 싶어’보다는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아’에 더 가까운 인물이라고 느꼈거든요. 대본 속 윤임은 굉장히 섬세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한 캐릭터예요. 살면서 여러 상처를 받아서 현재는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느꼈고요. 저 역시 연기하면서 윤임의 생각과 마음을 숨기기 위한 노력을 했어요. 그만큼 윤임의 겉모습과 본모습의 차이를 생각하면서 봐주셨으면 해요.
아직 작품 소개글만 읽어봤지만 <대치동 스캔들> 속 주인공들은 실제로 우리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인물처럼 느껴졌어요. 그런 점에서 연기가 쉽거나 되려 더 어려운 부분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흔히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캐릭터나 세밀한 설정이 뒷받침된 캐릭터를 ‘땅에 발 붙이고 있다’고 해요. <대치동 스캔들> 감독님과 동료 배우들 역시 땅에 발 붙이기 위해서 많은 대화를 나눴고요. 그 과정을 거치다 보면 캐릭터가 더 쉽거나 어렵다기보다, 어떤 인물이든 이해하게 되는 지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누구나 특정 관계나 상황 속에서 조금씩 달라 보이기도 하지만 일관된 지점이 있기도 하잖아요. 그 점을 중심으로 파고들다 보면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윤임과 안소희는 닮은 점이 있던가요?
각자 몸담고 있는 대치동과 연예계 모두 치열하다는 점?(웃음) 사회인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는 점이 닮은 점이라고 생각해요. 비록 하는 일은 다르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은 크고 작은 일과 상처 때문에 자기만의 갑옷을 갖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고요. 저도 윤임도 갑옷을 입고 자신을 지키면서 살아가려고 하는 점이 닮아 있죠. 사실 저와 윤임만의 닮은 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분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낄 테니까요. 그 때문에 <대치동 스캔들>은 대치동 학원가 이야기가 아닌,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로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배우분들을 만나면 꼭 영화 취향을 여쭤봅니다. 배우님은 어떤 편이세요?
다양한 장르를 보려고 해요. 그럼에도 늘 보기 어려운 건 공포 영화. 너무 잔인한 고어물도 힘들더라고요. 그 외에는 가리지 않고 봐요. 저는 한 번 감상한 작품을 여러 번 다시 보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좋아하는 장면이 생기면 몇 번이고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시각적으로 볼거리가 많은 영화를 특별히 더 좋아하는 것 같네요.
연기자는 ‘내가 보고 싶은 작품’과 ‘내가 출연하고 싶은 작품’의 기준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출연 작품을 선택할 때는 항상 결과물을 생각하잖아요.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내가 역할을 잘해낼 수 있을지 판단하는 게 중요하죠. 그 판단에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꼭 던져봐요.
요즘 연극 <클로저>로 무대에 서시죠. 가수로 활동하던 당시의 경험이 도움이 되나요?
저는 가수 활동할 때도 무대에 서는 걸 너무 좋아했어요. 무대 위에서 관객과 주고받는 에너지가 엄청나거든요. 연극 무대는 처음이지만 관객석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수로 무대에 섰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 들더라고요. 여전히 무대에 설 때마다 설레고 긴장되지만, 아이러니하게 낯설거나 어색하지는 않아요. 커튼이 올라가고 관객분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올 때면, 벅찬 감정이 올라와요. 표정 하나하나 눈에 담으면 그 안의 감정이 보이는 듯하거든요. 반가움, 애정, 환호. 그 모든 게 생생하게 느껴져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죠. 이제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하루하루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 벌써 아쉬워요.
무대에서 노래할 때와 연기할 때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표현하는 시간이 다르다는 점. 노래는 한 곡을 부르면 보통 3분 안에 끝나잖아요. 2시간 콘서트 전체로 봐도 노래도 했다가 춤도 췄다가 팬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요. 하지만 연극은 2시간 내내 쉬지 않고 연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 다르죠.
공통점은 내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 관객이 내 사소한 손짓, 발짓, 표정, 말투에서 감정을 느낀다는 것. 무대를 보러 와준 사람들에게 내가 지닌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감동과 행복을 줘야 한다는 것. 무엇 하나 쉽지 않지만 그게 무대 위에서 펼치는 연기와 노래의 매력이기도 해요. 그만큼 무대에 설 때마다 배우는 것도 많고요.
나이를 먹고 인생의 경험이 쌓일수록 연기에도 변화가 생길 텐데요. 배우님도 어릴 때부터 또래 친구들은 겪지 못할 여러 경험을 쌓았으니, 그게 도움이 되기도 할 것 같고요.
맞아요. 말씀하신 대로 저는 이른 나이에 데뷔해서, 조금은 특수한 상황에서 10대와 20대를 보냈잖아요. 연기를 할 때마다 내가 겪은 경험이 다양할수록, 대본과 인물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지는구나 생각해요. 연기의 깊이도 깊어질 테고요. 그래서 배우가 아닌 인간 안소희로서 일상에서 더 많은 걸 보고, 느끼고, 경험하려고 해요.
연기를 하다 보면 극 중 역할에 공감될 때도 있지만, 행동이나 감정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그때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궁금해요.
사실 항상 있어요. 작품 하나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인물이 잘 이해되다가도 어떤 장면이나 대사에선 ‘왜 이럴까?’ 하는 순간이 생기죠. 그럴 때는 역시나 감독님, 동료 배우들과 같이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면 해결되더라고요. 그렇게 해결되면 캐릭터에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연기도 더 명확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그 과정이 연기를 하면서 가장 즐거운 부분 중 하나예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오디션을 본 이후로 지금까지 연예계 활동을 하고 계시죠. 이따금 ‘다른 직업을 가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하나요?
정말로··· 없어요.(웃음) 워낙 어렸을 때부터 이 직업만 생각했고, 의지도 확실했거든요. 다른 일을 하는 제 모습은 상상이 안 돼요.
그만큼 배우 일을 하길 잘했다 싶은 순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배우는 매번 다른 사람을 연기해야 하잖아요. 역할이 늘어나는 만큼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 경험이 인간 안소희가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줘요. 가령 제가 일터 밖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도 저마다의 관계와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죠.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을 때면 ‘아, 더 나은 사람이 돼서 이 사랑을 돌려드려야겠다’ 생각되면서 특히 배우 하길 잘했다 싶어요.
어린 나이에 전 국민이 아는 스타가 됐잖아요. 남들보다 일찍 성공했지만, 한편으로는 남들이 그 나이에만 누릴 수 있는 경험을 놓쳤다는 아쉬움도 있을 것 같아요.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은 학창 시절이 짧았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 늘 있어요. 만일 10대 시절로 돌아간다면 또래 친구들과 학교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을 더 해보고 싶죠. 그 시간들이 지금의 제가 연기를 하고,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처음 오디션에 붙었던 초등학교 6학년의 소희 양을 만나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너 정말 멋지다! 대단하다! 장하다! 용감하다! 응원한다! 잘할 거고 잘될 거야! 어깨 토닥토닥하면서 이런 말들을 해주고 싶어요.(웃음)
유튜브 채널 <안소희>도 운영 중이시죠. 꼭 한 번 협업 혹은 출연해보고 싶은 유튜브 채널이 있나요?
저는 ‘빠더너스 BDNS’. 문상훈 님이 제가 출연한 영화와 연극을 보시고 어떻게 느끼실지, 그걸 어떻게 표현해주실지 너무 궁금해요. 그분만이 지닌 감성적인 말과 글들을 좋아해서 꼭 한 번 뵙고 싶습니다.
연기를 하다 보면 이따금 누군가에게 질문하고 싶어질 때가 있을 거예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결하세요?
저는 궁금한 게 생기면 물어봐요. 제가 물어볼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요. 꼭 같이 연기를 하는 동료뿐만 아니라, 직장을 다니는 친구에게도 물어보고, 부모님께도 여쭤봐요. 다양한 의견을 들으면서 여러 각도로 생각하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의 답을 얻을 때도 있으니까요.
가장 간단하고 현명한 방법이네요. 2024년의 안소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조금 뻔한 답변일 수도 있지만 매 순간이 중요해요. 그리고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데 집중하려 하고요. 요즘 연극을 하는 중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매일매일, 연극 한 회 한 회가 소중하고 중요하니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 10년 뒤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안소희. 어떤 수식이나 설명 필요 없이 그저 ‘안소희는 안소희’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안소희의 인생 영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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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 이언희, 2003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만의 감성이 있잖아요. 임수정, 김래원 두 배우만의 매력이 많이 담긴 영화라고 생각해요. 풋풋하면서도 따뜻한, 마치 구름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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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2003
이 영화만의 감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잊을 수 없어요. 처음 봤을 때의 파격적인 장면과 아름다운 미장센도 특별하죠. 시간이 지날 때마다 돌려 보는 작품인데, 매번 새롭게 보이고 느껴지는 것이 많은 작품이에요. <몽상가들> 속 에바 그린은 모든 장면에서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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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도리스 되리, 2003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 그 사람이 떠난 후에야 느끼는 감정과 진실을 보여주는 영화.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정말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어요. 그만큼 여운이 유난히 길었던 영화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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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 선샤인>, 미셸 공드리, 2004
‘기억을 지운다’는 아이디어, 그걸 표현해내는 방식과 미장센. 미셸 공드리 감독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여기에 보면 볼수록 놀라운 배우들의 호흡과 합이 이 영화의 특별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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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스탠리 큐브릭, 1971
집요한 미장센과 파격적이면서도 세련된 의상이 충격적이었어요. <시계태엽 오렌지>를 본 후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봤어요. 배우들의 연기도 충격적으로 좋았고요. 꽤 오래전에 봤는데 여전히 지금의 저에게도 큰 영향을 주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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