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리아는 한국 힙합 같은 거죠. 본토의 오리지널 문화가 있는데 그걸 ‘K 해버린’ 겁니다. 아무 데나 K를 붙여버리는 ‘K-컬처’ 중에도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롯데리아가 그렇다고 봅니다.” 김지윤 씨는 식품회사를 다니는 30대 중반 직장인이다. 그는 자신을 ‘햄버거 근본론자’라고 소개했다. ‘보수버거킹파’로 통했다던 그는 한때 롯데리아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롯데리아를 한 달에 두 번 이상 찾는다. “롯데리아가 예전에는 맛이 없었어요. 패티나 소스가 어떤 브랜드와 비교해도 확실히 부실했죠. 그런데 물가가 오른 탓인지 프랜차이즈 버거 퀄리티가 다들 비슷해졌어요. 반면 롯데리아는 이색 메뉴 때문에 조명을 덜 받아서 그렇지 퀄리티를 꾸준히 끌어올렸거든요.”
김지윤 씨는 평범한 날에는 맥도날드를, 특별한 날에는 롯데리아를 먹는다. “무두절이라고 하죠. 이름 그대로 우두머리가 없는 날입니다. 사무실에 상사들이 싹 다 자리를 비우는 날이 있어요. 그날은 혼자 점심 배달해 먹거든요. 그때 시키는 게 더블한우불고기버거입니다.” 더블한우불고기버거는 롯데리아의 최상위 프리미엄 메뉴다. 국내산 한우 패티가 2장 들어가는 버거로 단품 가격은 1만2400원이다. 김지윤 씨가 최근 가장 인상 깊었던 롯데리아 햄버거는 왕돈까스버거. 이름 그대로 왕돈까스 위아래에 버거번을 겹쳤다. “대단히 관념적인 메뉴라고 봅니다. 멀리서 보면 바다 위에 떠 있는 섬 같아요. 돈까스가 바다고 빵이 섬이죠. 이빨로 바다를 헤엄쳐가다 보면 섬에 도착해요. 우리가 찾던 햄버거 섬이요. 미친 콘셉트죠.”
모든 햄버거 마니아가 김지윤 씨처럼 심오한 철학을 가진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 중인 정지훈 씨에게 맥도날드는 구내식당 같은 장소다. 그는 맥도날드 버거를 아주 좋아하진 않지만, 점심 메뉴가 애매할 때면 그냥 맥도날드에 간다. ‘빅맥-맥스파이시 상하이 버거 -1995 버거’ 순서로 메뉴를 돌려가면 물리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저렴한 가격에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것. 그거면 충분합니다.” 정지훈 씨는 햄버거는 특별한 음식이 아니고, 그렇기에 합리적인 가격과 일정 수준 맛 보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정지훈 씨도 보수파에 가까웠다.
정지훈 씨도 한 달에 두세 번은 롯데리아를 찾는다.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다. “집에 가는 길에 맥도날드가 없어요. 새벽까지 문을 여는 곳은 롯데리아뿐입니다.” 정지훈 씨는 경기도 파주시 교하동에서 산다. 회사가 있는 압구정에서 집까지 가려면 3호선 종점인 대화역에서 버스로 한 번 더 갈아타야 한다. 롯데리아 일산대화역점의 주문 마감 시간은 새벽 1시 55분이다. 패스트푸드점을 찾는 이들에게 늦은 영업시간은 큰 장점이 된다. 정지훈 씨가 롯데리아에 불평만 가진 것은 아니다. “롯데리아가 맥도날드를 압도하는 게 딱 하나 있습니다. 감자튀김. 감자 종 자체가 다른 것 같아요. 맥도날드는 매장 따라서 너무 짠 곳도 있고, 눅눅할 때도 있거든요. 그런데 롯데리아는 어딜 가든 바삭해요. 롯데리아에서 감자튀김 남긴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지금은 정통과 근본이 무너지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파이브가이즈처럼 ‘진짜’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산 버거가 들어오고 있잖아요.
우리가 원래 근본이라 생각했던 맥도날드, 버거킹은
이제 그냥 버거 프랜차이즈가 됐으니까요.
각자의 캐릭터를 지켜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버거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은 어떨까? 김지훈태(사업자등록증에 적힌 실제 본명이다) 사장은 서울 경리단길에서 내슈빌 핫 치킨버거 전문점 ‘잭잭’을 운영한다. 그는 미국 버지니아에서 중학교를 다녔고, 잭잭을 차리기 전에는 호주 멜버른 수제 버거집 ‘로얄 스택스’에서 총주방장으로 일했으니 서양 본토 버거에 정통하다. 그런 그는 맥도날드를 좋아한다. 하루 종일 버거를 만들고 퇴근길에 맥도날드를 포장해 갈 정도다. “맥도날드가 가장 뛰어난 버거냐?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맛이 끌릴 때가 있어요. 중국집에서 탕수육이 제일 맛있다 해도, 결국 가장 자주 생각나는 건 자장면인 것처럼요.”
김지훈태 사장은 1년에 두 번 정도 롯데리아를 찾는다. 이유는 두 가지다. 향수와 시장조사. “저희 할머니가 새우버거를 좋아하셨어요. 어릴 때 할머니랑 같이 먹던 그 맛이 생각날 때 롯데리아 갑니다. 그리고 신메뉴가 나왔을 때 한 번씩 가보죠. 워낙 독특한 메뉴가 많으니까요.” 김지훈태 사장은 좋은 햄버거의 기준에 대해 들려주었다. “햄버거집은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이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재료와 기술은 당연히 좋아야겠지만, 햄버거집에 가는 마음은 김밥천국 갈 때처럼 편해야죠. 그래서 잭잭도 다른 내슈빌 치킨버거집보다 가격은 낮추고, 포장지도 일부러 투박하게 했어요. 그게 진짜 버거니까요.”
맥도날드와 롯데리아의 차이는 명확하다. 한 곳은 잘하던 것을 꾸준히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한 곳은 누구도 시도해본 적 없는 것들을 해내기 위해 노력한다. 햄버거는 누군가에게 특별한 음식이 될 수 있지만 대단한 음식은 아니다. 그렇기에 무난한 맥도날드가 찾기 편할 수 있다. 같은 이유로 롯데리아의 ‘전주 비빔라이스 버거’ ‘매운 왕돈까스버거’ 같은 메뉴가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246만 구독자의 유튜버 침착맨은 ‘롯스럽다’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그는 올해 1월 7일 유튜브에 올라온 ‘행운버거와 롯스러움에 대해’ 편에서 직접 행운버거를 먹으며 ‘롯스러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저에게 롯스럽다는 자신감 있게 하다가 덤벙대고, 기대하고 실망하다가 나도 모르게 정이 들고, 나중에 계속 생각나서 선택하는 그런 느낌이죠.”
서울 테헤란로에서 오바마가 먹던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시대에 햄버거의 근본을 따지는 것이 얼마나 유의미한지는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햄버거 근본론자 김지윤 씨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지금은 정통과 근본이 무너지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파이브가이즈처럼 ‘진짜’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산 버거가 들어오고 있잖아요. 우리가 원래 근본이라 생각했던 맥도날드, 버거킹은 이제 그냥 버거 프랜차이즈가 됐으니까요. 각자의 캐릭터를 지켜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