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님께서도 실패 경험이 있습니까?
많죠. 상업 영화를 제가 4개 했어요. 그중 손익분기점을 넘은 영화는 하나밖에 없을 거예요. 우리에게는 사업과 예술이 합해진 게 대중 영화이기 때문에 저는 (그 둘을) 철저히 분리해요. <범죄도시>가 상업적으로 터졌기 때문에 4개 중 제일 좋은 영화인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성적표는 굉장히 정확하잖아요.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작품성이 안 좋았기 때문에 손익분기점을 못 넘었다는 게 아니라 못 넘었을 때는 상업적으로 무언가가 캐칭이 덜 된 거죠. 좋은 작품이었다고 할지라도 상업성을 넘지 못했을 때는 나름 분석하려 해요. 그 경험이 축적되면서 내가 상업성을 갖기 위해서는 이런 게 필요했고 이런 팀이 필요했고 나한테 이런 연기가 필요했다는 점 등을 알아두죠. 그걸 꼭 써먹는다는 것과는 별개로요. 영화나 드라마 하나 만들려면 작게는 80억~100억, 2억~300억원이 들고 참여한 사람들은 돈을 벌어 가야 좋잖아요. 배우지 않으려고 해도 배울 수밖에 없어요.
동감합니다. 내 것을 해나가기 위해서라도 대중성이 필요하죠.
아무리 영화가 잘 나왔다고 해도 원했던 목표만큼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하면 마음이 아프죠. 사람을 아주 작아지게 만들고. 그렇게 마음이 아파야 상업성을 배우지,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파봐야 하는 것 같아요. 누구 말을 듣는다고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아시겠습니까? 실전 경험이 쌓였으니까요?
‘뭐가 성공한다’는 모르겠는데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배우려고 해요. 영화와 드라마는 또 달라요. 영화는 ‘1만원 넘는 돈을 내고 극장에 간다’는 굉장히 능동적인 행위를 요구해요. 그 때문에 영화를 볼 때 제일 중요한 건 이야기의 재미고, 이야기의 재미란 ‘이야기를 관객이 따라가느냐’예요. 주인공이 어떤 결핍과 욕망을 갖고 필요한 걸 위해서 나가다가 어떤 난제를 만나고 그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재미있는 선택을 하느냐. 이게 저는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라고 보는데 그게 공감되는 이야기여야 하는 거죠. 그 이야기가 어려워지면 안 돼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려다 보면 부수적인 게 많아지고, 부수적인 걸 하나로 모으다 보면 왠지 뻔한 것 같아 성에 안 차고. 그런 걸 채워가는 이야기가 중요해요. 대중 영화에 스타가 나오느냐도 중요하고요. 스타가 안 나와도 이야기가 재밌으면 어느 정도 되는데, 스타가 나와도 이야기가 재미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야기가 넘버원, 그다음 스타가 나와서 뒷받침을 해주느냐. 이 두 가지가 되면 상업적인 손익분기점을 만날 확률이 높아지는 것 같아요.
캐릭터 연구를 많이 하신다고 들었는데 시장 연구도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시장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죠. 작품이 좋아도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기 때문에. 그 아픈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마음 아픈 경험에서 뭔가를 배우는 거예요. 그래야 다음 단계로 가지, 얻지 못하면 건강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뭐라도 배우고 넘어가야죠.
그렇죠. 배우는 게 있어야 시간 낭비처럼 안 느껴지죠. 작품이 성공해도 시간 낭비처럼 느낄 수 있어요. 영화는 몇 년 공들여 만들어도 잊히고 대체되어서 허무하기도 합니다. OTT가 나오면서 그 허무함이 더 커졌어요. 결국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공들였나’ 싶어 허무해지잖아요. 그렇게 느끼지 않기 위해 뭔가 배워서 다음 작품에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다른 작품으로 잊혀도 내가 뭔가 얻어서 써먹으면 연속성을 가지니까요. 저희가 만든 결과물이 무형의 것이라 더 그러는 것 같아요.
근황은 어떻습니까?
요즘 김다미 씨와 윤종빈 감독님과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나인 퍼즐>을 촬영하고 있어요. 제 촬영은 1~3월에 많았고 조금씩 덜 바빠지는 시기입니다. 저는 촬영 없는 날에는 어떻게 하면 더 재밌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 싶어서 자문하러 다니고 친구랑 대본 회의도 많이 해요. 바쁜 건 똑같아요.
‘콘텐츠를 만든다’ 함은 배우로 참여하는 것뿐 아니라 대본이나 감독에도 뜻이 있다는 거죠?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는 되게 명확하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 장르나 이야기가 있으니까 실현해보고 싶죠. 작가적인 욕구가 있고요. 배우로서 (영화에 참여)하는 경우는 좀 달라요. 배우는 내가 뭔가를 표현하기보다는 어떤 작가와 감독님과 제작자가 표현하려 하는 것에 내가 팀플레이로 일조하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만드는 것에 저의 몇몇 부분을 보태는 거죠. 거기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동시에 배우로서 해소가 안 되는 표현 욕구가 있거든요. 제가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게 샘솟겠죠.
해보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저는 소소한 얘기를 좋아해요. 스티븐 소더버그,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창동 감독님 영화. 상업적으로 위험한 면이 있고, 예술적인 측면에 가치를 두는 영화들이요. 사건 때문에 흘러가는 이야기보다는 감정 변화 때문에 흘러가는 이야기가 저는 굉장히 공감돼요. 제가 영화를 남들보다 조금 더 참고 볼 줄 알고, 영화라는 매체에 익숙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겠죠. 그렇게 내밀한 이야기를 시각화한다는 건 너무 어려워요. 농익은 연출이 필요하고요. 그런 것에 도전 의식을 느끼긴 하죠.
말씀대로 그런 이야기가 실전 투자나 제작으로 넘어가면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될 텐데요.
그런 거 돈 안 주죠(손석구 미소). (영화는) 기업화가 돼 있고 예산이 많이 들어가니까요. <범죄도시2> 이상용 감독님이 그랬어요. “석구야. 영화는 사람들의 욕구가 충돌하는 곳이야. 영화란 욕망이야.” 영화에서는 뭔가 표현하고 싶은 사람의 욕망이 막 만나요. 주·조연 배우, 제작자, 투자자, 감독과 조감독, 다 욕망이 있어요. 그 욕망을 하나로 모으다 보면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닌 그 뭔가가 나오는 건데, 그걸 결합하는 게 되게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촬영 현장이 설득의 장이라고 봐요. 그 욕망들이 뭉친 곳을 서로서로 설득하는 거예요. 내가 하나 시도하고 싶으면 두 개 들어줘야 하고요. 그런 걸 즐겨야 한다고 보지만 스트레스는 받으니까 작가가 좋죠. 글을 쓰다 보면 영화로 못 만들어지더라도 그 시간만큼은 다른 사람하고 안 해도 되잖아요. 그게 굉장히 힐링 되죠. 상상력이 풍부해지는 시간이니까.
말하자면 그 세계만은 내 거니까요.
그렇죠. 현장에 가면 내 상상력을 억제해야 하는 순간이 더 많이 생기죠.
실제로 연기하실 때는 감독이나 작가 등 여러 사람의 의견을 굉장히 많이 받아들이는군요.
그럼요. 그렇게 안 하면 안 돼요. 그래서 현장에서 많이 봐요. 감독님, 작가님, 지금 상대 배우가 어떤 스타일인지. 사람들에게 맞추다 보면 제가 가질 수 있는 자유 공간은 진짜 한정되거든요(작게 원을 그리며). 그럼 저는 여기서 재밌게 놀려고 해요. 현장에서 내게 할당된 창작 영역은 한 2% 정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하는 게 익숙해져서 재미있어요. 그 바운더리를 찾는 것도 재미고요. ‘감독님이 이거 싫어할 거야’처럼요. 그러다 정말 해보고 싶은 게 있을 때 “이거 한번 해보시죠”라고 이야기하는데 상대방의 욕망을 꺾는 건 쉽지 않죠. 욕망 사이의 합의점을 찾기보다, 거대 욕망이 있는 쪽에 내가 가는 거예요.
<범죄도시2>를 하실 때쯤 지금 말씀하신 걸 깨달으셨겠습니다.
제 연기 영역을 가장 많이 넓혀준 작품이에요. 그때 저는 액션 영화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감독님은 그게 입봉작이었어요. ‘범죄도시’는 이미 완성된 시나리오와 브랜드가 있었기 때문에 감독님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넓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온 면이 있어요. 감독님은 조감독 생활을 10년이나 하면서 한국 조감독으로 톱을 찍은 분이기 때문에 현장의 생리도 잘 알고요. 저를 만나서도 “이 영화의 엄연한 주인은 (마)동석이 형이라 그의 아이덴티티와 지분이 너무나도 명확해서 그것을 따라야 하므로 그걸 같이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제 의견도 많이 들어갔어요. 엘리베이터 신이라든지 길거리에서 경찰들하고 싸우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한테 욕하는 대사 등도 저와 감독님이 대본에 없는 걸 만든 거예요. 캐릭터의 에너지 레벨은 감독님의 성향에 맞췄다면 대사, 상황, 의상, 생김새 같은 건 제 의견이 많이 반영됐어요.
완전히 손석구 성향의 작품은 아니더라도 해석에 손석구의 여지가 많이 들어갔군요.
그렇죠. 그것도 협상의 기술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하고 싶은 게 있을 때는 먼저 이야기하기보다는, 상대 배우나 감독님이 했으면 하는 거 다 하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거 하나 정도 해보는 거예요. 제게 주어지는 긍정적인 한계치가 있어야 그 안에서 자유로움을 느껴요.
오늘 함께한 까르띠에가 주관한 출장을 올 2월에 다녀왔습니다. 그때 인터뷰를 한 디렉터가 “예술은 제한에서 태어나고 자유에서 죽는다”고 했어요. 그게 떠오르는 말이네요.
맞아요. 한계점이 명확히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까르띠에는 좋아하십니까?
저는 브랜드를 잘 몰라요. 참여하게 되면 그때부터 관심을 가집니다. 까르띠에는 되게 품격 있어 보이던데요. 나는 산토스의 정사각형 디자인 같은 데서 희열을 느껴요. 되게 제한된 디자인이잖아요. 이들이 갖고 있는 브랜드의 상징적인 디자인이 있죠. 그걸 자꾸 보고 싶게 만든단 말이에요. (산토스의) 사각형 케이스가 깎인 정도, 색감, 그 모두를 뭐 하나 모나지 않게 다듬었죠. 이 정도까지 디자인을 뽑아내는 게 쉽지 않을 거예요. 명품은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범죄도시4>는 보셨습니까? 내가 나온 작품이 시리즈화되면 무척 기쁠 것 같은데요.
당연히 봤죠. 필연적으로 제 또래 남자 배우들이 빌런을 하기 때문에 (김)무열이도 궁금했어요. 저는 그냥 동석이 형이 좋아요. 동석이 형이 가는 길이 저한테 지표가 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마동석의 길’이요?
그 형은 그냥 배우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걸 같이 하시잖아요. <범죄도시> 시리즈도 동석이 형의 욕망이 묻어난 작품이거든요. 형도 무명 시절이 있었고, ‘나는 나중에 이런 영화를 해야지’라는 생각을 했고 그 아이덴티티가 <범죄도시>라는 시리즈로 나온 거예요. 형이 오랜 생활 투자한 캐릭터가 있었기 때문에 나온 거고요. 그 길을 저는 열렬히 응원해요. ‘나도 동석이 형 같은 액션 스타가 돼야지’가 아니라 ‘나도 동석이 형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해서 대중적으로 인정받는 영화인이 돼야지’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손석구 님도 자신만의 것을 만들고 인정받고 있습니다. 지금 손석구 님의 정서는 어떤 걸까요?
배우로 사용하려는 정서는 대본에 쓰여 있는 것 안에서 찾아야 해요. 작가가 된다면 써보고 싶은 정서는 40~50대가 되면서 느끼는 무기력, 허무함, 공허함이에요. 저는 그게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다고 봐요. 그걸로 이야기를 만든다면, 그 감정을 이겨내는 이야기가 될 텐데, 저는 그런 게 공감되더라고요. 저는 심심할 틈 없이 바쁘고 하고 싶은 욕망은 이렇게 많아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걸 기계적으로 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성공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이 일이 그냥 즐거운 예술 행위는 아니고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그게 종종 사람을 무기력하게 해요. 지금은 연기를 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예전에는 순수하게 연기하고 싶다는 욕망만 있었죠. 그때는 삶의 희로애락이 엄청 다이내믹했어요. 열정과 울분 등 터질 것 같은 감정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내 할 일이 정해져 있고 그걸 해내야 하는 입장으로 바뀌었어요.
상황도 리듬도 바뀌었군요.
40~50대가 되면 자기 자리를 찾아가며 바뀌는 기간이 오는 것 같아요. 하루치 감동의 기회도 줄어드는 것 같고요. 감정이 찰랑찰랑할 때는 봄이 오면 괜히 슬퍼지고 비가 오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지금 그런 시기인 분들은 저보고 사치라고 할 수 있지만 저는 역으로 그 시기를 겪는 사람들이 부러워요. 나도 그때의 그 격동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데. 제가 40대에 느끼는 가장 큰 감정 중 하나가 일은 바쁘게 하는데 정서적으로 많이 죽어 있다는 거예요. 그런 상태의 주인공, 중년이 되어 감흥이 없는 사람이 다시 감흥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싶어요. 그러면 나처럼 중년을 넘어서는 사람들한테 희망과 대리만족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손석구 님 본인은 답을 찾았습니까?
결국 안 해본 도전을 할 때 감흥이 오는 것 같아서 새로운 창작을 해요. 회사를 시작했고 제작과 기획을 해보려고 해요. 그러면 무서워요. 옛날에는 생각이 없으니까 ‘그냥 배워 나갈래’ 했는데 지금은 그게 잘 안되죠. 어느 날 뭔가 성과가 있으면 다시 옛날 감정이 돌아오는 것 같고요. 제가 만들려고 하는 캐릭터와 저는 같이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그것대로 좋아 보이는데요. 거기선 정말로 자연인인 나의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요. 스스로가 꼽으시는 가장 큰 성취는 어떤 게 있을까요?
인간으로서는 이 일을 마흔까지 하고 있고 제2의 도전도 모색하고 있다는 거예요. 표피적인 건 <나의 해방일지>와 <범죄도시2>가 같은 기간에 히트한 거예요. 그게 말도 안 되는 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그걸로 인생이 바뀐 경우예요. 그전에 제일 큰 변화는 배우로서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갈수록 더 깨달아요. 드라마나 영화 하나가 대중한테 인정받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건데, 내가 당시에 그 두 개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건 제 인생에서 제일 큰 운이 그때 몰렸던 것 아닌가 싶어요. 그건 진짜 쉬운 일이 아니에요.
전혀 아니죠. 표피적이라고 말씀하신 그 성공이 손석구 님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습니까?
아이러니하게 미쳤던 게, 저는 그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다작을 했어요. 요즘은 바뀌었어요. 내가 언젠가는 인터뷰하게 되면 해야겠다 싶었던 이야기인데요. 제가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가서 다작한다고 얘기했을 때 사람들이 그렇게 신선하게 받아들일지 몰랐어요. 이제는 다작 다음 페이스로 넘어가야 하는 시기가 오는 것 같아요. 저는 <나의 해방일지>와 <범죄도시2>로 흔히 이야기하는 ‘일약 스타’ 같은 게 되었고, 그다음 단계가 있다고 봐요. 스타를 지속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보기 때문에 안개 같은 이 시기가 걷히고 나서 남는 걸 제대로 보고 키워야 하는 시기가 있는 거죠. 아마 선배 배우분들은 저를 보면서 그 생각을 했을 거예요. 지금이 뭔가 절정인 것 같고 좋아 보이지만 분명히 다음 것이 있다는 걸 경험한 분들은 아시겠죠. 결국에는 작품이 남는데, 제가 스타가 되면서 많은 작품을 하고 경험을 축적하는 시기였다면, 지금부터 나만 할 수 있고 인간적으로도 동의되는 예술 작품으로 좀 더 신중히 다가가는 시기가 오는 것 같아요. 다작을 했기 때문에 이제 적게 할 거야, 그런 산술적인 이야기는 절대 아니에요. 그저 자연스럽게 가야 하는 길이 있고, 그리로 가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저는 사람의 본래 모습이 위기에 몰렸을 때 나오는 게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걸 다 가졌을 때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위기랑도 비슷할 수 있죠.
말하자면 손석구 님은 그런 분이네요. 뭔가가 충족된 후에 내린 선택이 자기 자신의 선택일 테니까요.
그렇죠. 이런 얘기는 사실 굉장히 조심스럽기도 해요. 대중 입장에서 배신이나 사치로 들릴 수도 있다고 보거든요. 저에게 조금씩 뭔가 보이는 게 대중의 의지하고 안 맞을 때도 많아요. 저는 그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세요? 이제 남에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셨는데요.
인터뷰 때마다 의식적으로 나름 배우로서 영향을 끼치고 싶어서 하는 말이 있어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일에 영향을 끼치고 싶어요. 딴 사람들한테 솔직한 건 어느 정도 용기를 내면 할 수 있는데, 나 스스로에게 솔직한 건 단순히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내면을 오래 들여다봐야 하고요. 사람들께서 ‘(손석구) 쟤는 말하는 걸 들어보니까 자기를 좀 아네. 자기를 들여다봤네. 스스로에게 솔직하니까 저런 용기도 나오겠지’라는 추리를 하시고, ‘스스로에게 솔직한 게 좋아 보이네. 나도 저렇게 한번 해보고 싶네’라는 생각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궁극적인 목표예요. 그걸 작품으로 보여드리고 싶고요. 스스로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그런 작품을 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기억되는 게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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