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m를 9초 58로 달리는 우사인 볼트는 달리기를 ‘잘’한다고 말할 수 있다. 알파고를 이긴 이세돌은 바둑을 분명 ‘잘’하는 사람이다. ‘잘’하는 게 분명한 종목들이 있다. 골을 많이 넣었다고 축구를 ‘잘’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공을 잘 다루는 게 분명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스포츠를 포함해 대부분의 종목엔 못하는 선수가 있고, 잘하는 선수가 있다.
섹스라는 종목도 그럴까? “잘하세요?”라는 질문에 잘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그럴 확률은 얼마나 될까. 반대로 “잘 못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정말 잘 못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세분화된 기준과 쪼개진 카테고리로 섹스를 수치화한다면 섹스를 ‘잘’하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을까? ‘섹스 잘하는 기준’에 대한 나만의 견해는 지나친 일반화가 될 테니 이번에도 주변 사람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걸까? 어떤 게 좋았어?
고등학교 동창 김주원은 흔히 말하는 ‘노는 애들’ 사이에 있었다.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 같았다. 필사적으로 개근을 완성한 나에 비해 김주원은 등교일 중 삼 분의 일이 무단결석이었다. 밤새 중학교 여자 동창들과 술을 마셔서 나오지 않거나, 그냥 나오기 싫어서 결석했다. 그런 김주원과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다. 김주원은 갑자기 내게 공부하는 법을 물었다. ‘연대’를 가고 싶다면서. 그때 김주원은 9등급이었다. 거의 0점에 가까운 성적이었다. 그는 2학년 1학기 첫날부터 중학교 수학 문제집을 가져와 하루 종일 풀더니 한 달이 지나 고등학교 수학을 풀었다. 자거나 문제를 풀었다.
“키스할 때 여자 허벅지 안쪽을 빠르게 주물주물해주면 좋아 죽는다.” 김주원은 문제를 풀던 어느 날 대뜸 내게 말했다. 그는 중학생 때 첫 섹스를 했다. 다만 그 첫 섹스는 김주원에게 엄청난 순간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할 때가 돼서 한 거라고 했다.
김주원은 고3 9월 모의고사에서 거의 다 1등급을 기록한 뒤 10월에 애니에 빠져 수능에 미끄러졌다. 그는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해 지금은 IT 스타트업의 대표가 되어 한 달에 2000만원 넘게 번다. 내가 1년에 1000만원 모으기를 말할 때 김주원은 내년까지 30억에 앱을 팔 거라고 말했다. 김주원의 이야기가 길었지만, ‘영 앤 리치’에 대해 설명하고 싶었다.
“나는 발 잘 쓰는 사람이 좋아.” 그런 김주원에게 ‘섹스를 잘하는 기준’을 묻자 역시 또 거침없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원래 발을 좋아하거든, 삽입 안 하고 발만 빨아도 좋아.”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나는 여기까지 듣고도 ‘발을 잘 쓴다’는 말에 감이 오지 않아 계속 물어야 했다. “여자 위에 올라가면 여자가 발가락으로 내 거기를 일부러 스치거나 대놓고 만져. 상체는 내 눈에 보이지만 하체는 내가 위에 올라가 있을 땐 잘 보이지 않으니까. 보통은 손으로만 만지지만, 발을 잘 쓰는 여자는 발도 손처럼 사용하는 거지.”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가사가 떠오르는 말이었다. ‘잘하는 여자는 발도 손이래’로 개사해야 할까.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손과 입과 생식기라는 섹스의 도구에 발도 참여한다면 한층 다채로워질 것이었다.
“발가락을 혀처럼 움직이는 여자도 있어. 나는 그러면 여자와 두 번 키스할 수 있는 거지. 혀로 한 번, 발가락으로 한 번.” 김주원은 전화번호부를 보며 섹스할 상대를 찾는다는 그의 말처럼 경험이 풍부해 보였다. 그는 많이 버는 만큼 많이 썼다. 먹고 입고 자는 것에 다 썼다. 코딩에 밤새는 날이 잦아져 발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김주원은 더 자극적인 여자를 원했다. 지금 그는 내가 필사적으로 개근하던 고등학생 때보다 더 필사적으로 더 잘하는 여자를 찾는다. 그래서인지 새벽 2시에도 전화기 너머 김주원의 목소리는 아침 같았다. 실제로 그의 하루는 그때부터 시작했다. 더 큰 세상을 찾은 ‘마당을 나온 암탉’처럼 그의 새벽 2시는 더 잘하는 여자를 찾기 위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섹스는 이제 우리나라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것 같아요. 특히 20대 사이에서. 제 섹스 경험은 2년 사귄 남자친구가 전부지만요”라고 말하는 서은진은 문화에 관심이 많은 스물세 살 공대생이다. 융합형 인재가 되어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문화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고, 그냥 요즘 것들에 관심 많은 게 당연한 나이의 대학생이었다. 그런 그에게 ‘잘하는 섹스의 기준’ 같은 걸 묻는 게 살짝 망설여졌지만, 다양한 의견을 싣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오랫동안 섹스를 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잘하는 사람 같아요.” 당연히 잘하는 사람과 오래 하고 싶은 것 아닐까? 무슨 뜻인지 재차 물었다.
“저는 안정적인 관계일수록 섹스하는 게 어려웠어요. 싫은 건 아닌데, 언제든 할 수 있는데 굳이 해야 하나?”라고 말하는 서은진의 말에는 심오한 구석이 있었다.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노원에 살 때는 한강이 그렇게 오고 싶었는데, 한강 주변으로 이사하고 나서는 한강을 안 가게 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에요. 그래서 섹스로 자연스럽게 이끌 수 있는 사람이 섹스를 잘하는 사람 같아요.”
“보통 남자들은 엉덩이를 때려달라고 해야 때려주고, 목을 졸라달라고 해야 졸라줘. 해달라는 걸 해주는 거지만, 내 엉덩이를 때리거나 목을 조르고 나서 내게 괜찮냐고 물어봐. 내가 그만하라고 해도 더 해줘야 하는데, 내가 그만하라고 하면 정말 그만해. 그건 강압적인 섹스가 아니야. ‘강압적인 섹스 플레이’지. 그래서 자극이 별로 없어.”
그럼 매번 섹스의 시작을 설레게 만드는 사람이 섹스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한 상대와의 첫 섹스는 남자든 여자든 신경을 쓰겠죠. 호텔을 예약한다든지, 좋은 향을 뿌리거나, 분위기 조성을 위해 괜찮은 식당을 가거나, 그럴싸한 멘트를 고르거나. 그러다 섹스가 잦아지면, 귀찮아지는 거죠. 집에서 씻지도 않고 하거나, 중국집에서 짬뽕을 시키고 배달을 기다리는 중에 하거나. 저는 그게 싫은가 봐요.” 섹스가 잦아지면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첫 섹스만큼 매번 공을 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관건은 섹스가 잦아질 때, 섹스가 특별한 게 아니라 당연한 게 되는 느낌이 싫다는 거예요.” 그에게 섹스는 과정보다 시작인 셈이었다.
섹스를 매번 잘 시작하는 사람이 잘하는 사람. 이 말도 분명 일리 있었다. “집에 와서 술 마시고 넷플릭스 보다가 시작하는 정해진 루틴 같은 섹스는 하기 싫어요.” 비슷한 시작, 비슷한 방식, 비슷한 마무리. 그러면 다양한 첫 섹스를 경험하면 되는 것 아닌가? “저는 연애하는 상대 아니면 섹스할 생각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서은진은 또렷했다.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지루하고 똑같은 건 못 참는 스물셋이었다.
“잘 맞으면 잘하는 거지. 잘하는 것에 기준이 어딨어.” 패션 회사에 재직 중인 장수진은 잘하는 것을 나눈다는 것 자체에 의문을 가졌다. “아직까지 잘한다고 생각되는 남자를 만난 적이 없어.” 올해 서른인 장수진은 나이가 들수록 다정한 남자가 좋다고 말했다. “다정한 수준을 넘어서 착해 빠졌으면 좋겠어. 그래야 연애든 섹스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장수진의 문제는 강압적인 섹스를 원한다는 점이었다. “보통 남자들은 엉덩이를 때려달라고 해야 때려주고, 목을 졸라달라고 해야 졸라줘. 해달라는 걸 해주는 거지만, 내 엉덩이를 때리거나 목을 조르고 나서 내게 괜찮냐고 물어봐. 내가 그만하라고 해도 더 해줘야 하는데, 내가 그만하라고 하면 정말 그만해. 그건 강압적인 섹스가 아니야. ‘강압적인 섹스 플레이’지. 그래서 자극이 별로 없어.” 말하자면 장수진은 연기 안 나는 바비큐처럼, 착한 남자와의 나쁜 섹스를 추구하는 셈이었다.
“내 욕심이지. 근데 이런 사람과 그런 섹스를 하고 싶다고 바라는 게 내 욕심인가?” 장수진은 잘 맞고 싶어서 잘 때려주는 남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장수진은 부드러운 삽입이나 편한 체위 등을 구사하는 일반적인 고수는 필요 없었다. 잘 때리는 남자여야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장수진은 고민이 많았다. 때리는 것에 능숙한 남자에는 경험도 많은 남자, 흔히 말하는 ‘날티 나는’ 부류의 남자가 많았다. 아니면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일상에서도 그런(때릴 듯한) 성향이 조금씩 드러났다. 장수진은 그런 사람과 연애를 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욕심을 버려야 하나.” 장수진은 한탄하면서도 어딘가에 ‘착하면서 나쁜 남자’가 있을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 만나면 바로 결혼할 수도 있을 것 같아”라는 말과 함께.
“이번 주제는 뭐야?” 매번 내 질문에 흥미로운 답을 주는 박혜연은 심지어 이번엔 내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만큼 그는 섹스 자체에 흥미를 가진 여자다. “잘하는 게 뭐라고 생각해?”라고 물었더니 그는 내게 자신의 비밀을 하나 알려주겠다고 했다. “나 솔직히 중학생 때부터 다른 애들이랑 몸이 조금 달랐어. 가슴도 좀 크고, 골반도 넓고 엉덩이도 크고. 그래서 또래 남자들한테 놀림도 많이 받았지.” 그게 관심 있다는 표현 아닌가? “그렇지 그걸 말하려는 건 아니야. 외관상의 신체도 그렇고, 실제로 그만큼 여성호르몬도 많아서 산부인과에서 임신이 잘되는 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어. 그래서 피임도 잘해야 한다고 들었고.” 임신이 잘된다는 말이 뭐지? “음 다른 용어가 많지만, 했던 남자들의 말을 빌리면 내가 거기를 빨아들이는 것 같대.”
박희연의 말이 실제인지 아닌지 몰랐지만 그의 외모는 분명히 남과 달랐다. 넓은 골반, 잘록한 허리, 터질 것 같은 엉덩이 위의 청바지. 브라 사이즈가 D를 넘을 듯한 게 확실한 가슴. 그래서 ‘빨아들임’ 뒤에 따라오는 말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남자들이 나랑 하면 그렇게 빨리 쌌어.” 얼마나 빨리? “보통 20~30분 한다고 치면 한 5~10분 안에 다 끝났어. 남자들은 자기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라고 계속 변명했고.” 그럴 수가 있나? “나도 거짓말인 줄 알았어. 근데 나랑 하는 남자들은 아주 길어야 10분이고, 하는 말들이 다 비슷하더라고. 그래서 알았지.” 박희연은 정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자랑 같지 않았다. 오히려 넋두리 같기도 했다.
“중학교 동창과 스무 살에 했던 섹스는 정말 기억에 남아. 그 남자는 지루였어. 그냥 평균보다 조금 늦는 정도가 아니라, 싸고 싶어도 잘 안 되는.” 박희연의 넋두리는 역시 섹시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의 이전 남자들은 장거리를 시도했다 단거리 경주로 끝났다. 하지만 박희연의 ‘잘했던 남자’는 단거리 달리기를 할 마음으로 섹스를 시작해 마라톤을 했다. 빨아들이는 여자와 끝나지 않는 남자의 만남은 서로에게 ‘환상’에 가까웠다. “심지어 크기도 컸어.” 박희연은 회상했다.
“나는 사람이 좋으면 섹스도 좋은 편이야.” 이제 박희연은 돌고 돌아 기본으로 돌아온 사람처럼 성격의 궁합을 찾는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와의 섹스가 제일 좋다고 말했다. “그런데 요즘 좋은 사람이 없어. 그게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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