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익선’에 들어간 모니터가 1003개면 영상은 몇 개인가요?
일단 채널이 4개입니다. 그 안에서 작품으로 등록된 건 8개고, 자료가 16개예요. 작품과 자료가 같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작가께서도 편하게 미술관에서 선택해서 틀라고, 영상은 백남준 선생님과 미국에 있던 테크니션이 참여한 게 함께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 영상에도 다른 메시지가 있습니까?
네. 영상에 담은 메시지가 분명히 있어요. 그 영상을 설명하는 연구서가 따로 있어요. 한국 전통문화와 세계에 던지는 메시지, 건축 이런 것들이 혼재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콘텐츠가 더 예술이라고 말하시는 분도 있어요.
그렇다면 ‘다다익선’은 말하자면 콘텐츠와 디바이스가 함께하는 복합체 같은 거네요.
네. 그래서 처음에는 사진 한 장만 남겨놓고 없앤 다음 영상만 보존하자는 의견도 있었어요.
저는 ‘다다익선’ 복원이 무척 중요한 프로젝트이자 기록이라 생각했습니다. CRT 브라운관이 시대의 총아일 때 만들어진 작품이 여러 이유로 쓸 수 없게 됐고, 그걸 복원하기 위해 ‘복원의 정의’에 대한 개념 정리부터 하신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사고 과정이 백서에도 순서대로 나타나 있고요. 합의 내용에 따라 전체를 OLED로 바꿀 수도 있는 것이었잖아요.
맞아요.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어떻게 협의하고 정의 내리느냐에 따라 방향이 정해졌을 겁니다. 그 당시 상황과 모든 게 맞춰졌을 때 나오는 답으로 진행하게 되어 있고, 저도 거기서 관철하고 싶었지만 못 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요. 저도 너무 어려웠던 게, 이 작업의 가치를 제가 감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다다익선’의 보존 처리에 모두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컸어요. 이 정도의 예산이 들어가는데 모두가 납득할 만한 금액일까도 생각했고, 영속성에서 봤을 때 분명 이 상태로 가면 (가동 관련) 문제가 생길 텐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에게 ‘미리 예측하지 못했냐’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 모든 고민에 내가 답할 수 있어야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원래 해왔던 게, 저는 지키는(보존하는) 사람이다 보니 버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알게 모르게 있어요. 그래서 최대한 브라운관을 유지하되 신기술 도입도 적극적으로 해야 했어요. 모니터를 일부만 바꿨을 때 (새로 만든 모니터를 옛날 모니터의) 옆에 바로 붙이게 되면 톤이 튀죠. 그래서 (3D 프린트로 만든 모형의 윗부분을 만지며) 여기가 전체적으로 바뀌었거든요, 상단부가. 하단부도 10인치인데 상단부만 바뀌었어요. 그렇게 한 이유도 최대한 CRT를 지킬 수 있는 만큼 지키고 싶어서였어요. (상단부 모니터를 대폭 교체한 건) 다른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했어요. ‘다다익선’은 이렇게(새로운 모니터로)도 보여줄 수 있다는. 그런 메시지가 필요하다고도 생각했거든요.
상단부는 고해상 디스플레이로 옛날 영상이 보이는 건가요?
디스플레이 자체가 새것은 맞아요. 하지만 보이는 방식이 조금 달라서 사람 눈으로 감지하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칠 정도로 보존 내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전기전자적 고민을 많이 하셨겠지만 학교에 다닐 때는 고미술 위주의 복원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다다익선’ 복원을 위해 전기전자를 따로 공부하셨어요?
2016년에는 조각 보존 파트로 들어와 나중에 뉴미디어 장르로 분류된 작품들을 맡아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하다 보니까 전기나 전자 부문 지식에 대한 필요성을 계속 느껴서 무작정 전자기기 기능사 자격증 학원을 찾아갔어요. 거기서 이론 수업을 듣고 집에서 따로 공부를 해왔습니다. 최소한 내가 이게 뭔지는 알아야겠다 싶어서요. 그때쯤 ‘다다익선’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고요.
2018년 화재 사고 말씀이시군요.
그전부터 ‘다다익선’에 대한 논의는 계속 있었죠. 크고 작은 수리도 계속 이루어졌고요. 당시만 해도 이 작품이 ‘시설물’로 지정되어 있어서 저희 보존과가 손댈 필요가 없었습니다. 시설물 관리팀이 따로 있으니까요. 그때 여러 가지로 재검토가 들어가면서 2019년 12월쯤 작품으로 등록된 걸로 기억하고 있어요.
“저는 지키는(보존하는) 사람이다 보니
버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알게 모르게 있어요.
그래서 최대한 브라운관을 유지하되
신기술 도입도 적극적으로 해야 했어요.”
그전에는 시설물 관리팀이 관리했어요?
그것도 좀 애매했어요. 그렇게 되면 불용, 즉 없앨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시설물 관리팀의 영역이어도) 실제로 작품을 관리하는 소장품 관리 쪽에서 그동안 이걸 수리도 해오고, 행정 쪽과도 같이 고민해왔습니다.
행정적으로도 복잡했겠네요. 개념적으로 봐도 ‘다다익선’은 분류상 미술 작품이자 뉴미디어지만 작동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디바이스잖아요. 여러 개의 CRT 모니터로 구성된. 앞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성된 뉴미디어 작품은 제작할 때부터 수명과 보존 원칙에 대한 매뉴얼이 있어야 한다고 보세요?
제가 이런 고민이 많아서 작가도 몇 분 만나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어요. 작가들이 “향후에 이 부분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도 하고, 저희도 몇 가지 보존 전략을 갖고 있기도 해요. 예비품을 확보한다든가,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단서를 남겨놓는다든가. 그런 주제로 여쭤보니 어떤 작가께서는 “그래서 나는 이것의 예비 부품을 충분히 미술관에 같이 납품했어”라고도 했어요. 이미 그 재료의 한계를 알고 있어서요. 반면 “이 디바이스는 내 표현 방법의 하나일 뿐이라 이 디바이스가 아니더라도 이 영상이 이렇게 나오면 나는 괜찮아”라고 말한 작가도 있었어요. 제가 듣고자 했던 말을 해주신 셈이에요. (어떤 방법이든) 작가들과 작품 지속 방법에 대해 같이 고민해야 하고, (그 고민 과정을 거쳐 작품이) 남겨져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굳이 거창하게 표현의 자유를 해치면서까지 (작품 보존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기엔 제가 월권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동작 매뉴얼을 보내주는 작가님들은 있어요. 보존 매뉴얼도 보내주시면 너무 좋죠.
‘다다익선’의 복원이라는 개념 안에는 세부 모니터의 재창조, 수리, 교체 등 다양한 세부 개념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전체적인 방향성을 설정한 건 학예사님이었습니까? 관장님일 수도 있고, 민의일 수도 있고요.
이런 작업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당시 미술관 내부·외부 전문가, 미디어 디렉터, 보존가, 법률 자문가까지 해서 약 40분의 의견을 들었어요. 의견이 하나로 딱 모이지는 않았지만, LCD로 가도 좋다는 의견도 많았어요. 다만 ‘(CRT 모니터가) 계속될 수 없다면’. 미술관 내부에서는 CRT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CRT 모니터를 유지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건 이해하지만 저도 타협하기 싫었어요. 저는 CRT 원형 유지를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인데, 타협해야 할 때는 저에게 실망을 많이 하기도 했어요. 이걸 진짜 지킬 수 없는 건가, 방법이 진짜 없나, 이런 생각도 했어요.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거든요. 미국까지 가서 방법도 찾아보고 중국에서 누가 갖고 있다는 샘플도 가져와보고, 그런 식으로 (시도를 한 후) 모두의 의견이 가장 많이 반영된 결론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2019년 9월에 저희가 기자회견처럼 다 모셔서 발표를 했죠. “‘다다익선’은 이렇게 보존 처리가 될 겁니다”라고요.
저도 오래된 걸 옆에 두고 사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아까 ‘지키는 사람이니 버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라고 하신 말씀에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다 들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보존 과정에서 어디까지 버릴지에 대한 의사결정 방법이 궁금했습니다.
제가 초임 학예사일 때 무턱대고 어디 막 찾아가서 상단에 설치된 모니터의 내용물을 빼내고 안에 LCD를 집어넣은 모니터를 하나 만들어 왔어요. 이 작업을 하려면 돈과 인력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말로 설명하려니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예산 담당하시는 분께 TV 두 개를 들고 가서 보여드렸어요. 하나는 옛날 거, 다른 하나는 새로 만든 거. 그걸 들고 가서 ‘어릴 때 할머니 집에서 보던 이것이 아직까지 작품으로 작동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앞으로는 (새로 만든 걸 보여주며) 이런 형태로 가야 하고, 이러려면 돈이 필요하니 예산을 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어요.
예산은 넉넉했습니까?
당시 기획재정부에서는 내년에 주겠다고 했어요. 저희는 당장 시작해야 하니까 급했죠. 그래서 국회를 찾아갔어요. 의원실 돌아다니면서 한 장짜리 종이를 만들어 상황 설명하고 그때 국회에서 예산을 주셔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시작되어 (예산을) 받으니까 그다음에도 신청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고요.
많은 종류의 실무가 필요했네요. 이제 ‘다다익선’이라는 구조에서 특히 좋아하는 부분이나 정이 든 부분이 따로 있습니까?
뒷면 하단에 문이 있어요. 저는 여기를 좋아해요. 이 안에 들어가면 ‘다다익선’의 영상을 재생하는 공간, 그리고 전원을 넣는 공간이 있어요. 이런 말 하면 웃길 수 있는데 누구에게나 허락된 공간이 아니잖아요. 관계자 외 출입 금지. 이런 특별함이 있어요.
감회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이 안에서 이루어지는 작업도 많았거든요. 겉으로는 모니터만 바꾸거나 고치는 일들이었는데, 이 안에서 데이터도 새로 모으고 있고, 여기 들어간 케이블 양도 어마어마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과 서울관의 거리보다 더 긴(30km) 케이블이 들어가요. 이 케이블을 설치하는 작업이 정말 힘들었어요. 비용도 많이 드는 일이고 품질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던 작업입니다.
그 노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오래된 차를 타는데, 오래된 차들의 배선이 산화할 때가 있어요. ‘다다익선’처럼. 그래서 30년쯤 된 차를 타는 사람들은 선택의 순간이 옵니다. 배선 공사를 해야 하느냐. 작업의 성격은 간단하죠.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걸 하기 위해서는 차를 거의 한 번 분해했다 재조립해야 해요. ‘다다익선’의 배선 교체도 상당히 지난한 과정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배선을 바꾸셨다니 상당한 규모의 오버홀이네요.
맞아요. 오버홀이라고 말씀하신 게 딱 맞는 것 같아요.
그런 걸 잘 고치고 먼지도 닦아내고, 그랬을 때의 희열도 있죠.
제가 보존 처리를 하면서도 가장 희열을 느끼는 부분이 그거였어요. 하나를 맡아서 끝냈을 때 오는 희열감. 얘는 안 오는 거예요. 긴 작업이었잖아요. 햇수로만 3년쯤 걸렸으니까요. 그런데 재가동 전날인 9월 4일 리허설하는 날, 혼자 있었어요. 혼자 지켜보고 있는데 처음으로 (영상이) 반짝 들어오는 걸 보니 눈물이 나는 거예요. 밤 10시쯤에. 그때가 진짜 희열을 느낄 때였습니다. 오히려 당일에는 정신이 없었어요.
복원을 주도하고 진행하신 입장에서, 미술관을 찾은 분들께 제안하고픈 ‘다다익선’ 즐기는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다다익선’이 가동되어 한 번에 영상이 딱 들어오는 순간을 좋아해요. 하지만 켜지기 직전에도 ‘타닥타닥 따닥따닥 띠로링’ 같은 소리가 계속 나요. 그때부터 와 계시면 뭔가 이제 카운트다운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리고 채널이 4가지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채널 안의 영상들도 들여다보시고, 이 영상들이 어떤 패턴으로 나오는지도 보신다면 훨씬 더 재미있을 거예요.
저는 학예사님께서도 일종의 창조를 하셨다고 봅니다. 백서를 보기 전에는 몰랐지만, 보고 나니 ‘이 팀이 생각보다 큰일을 했다’ 싶었어요.
창조는 사실 저희가 지양하는 부분이에요. 작가의 의도를 계속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 하지, 창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제가 조금.
창조라 생각했던 이유는 뉴미디어 복원이란 어찌 보면 인류가 처음 맞닥뜨린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면에서 학예사님이 포함된 복원팀은 복원뿐 아니라 상세한 기록을 남겼죠. 바꿔야 한다면 무엇을 왜 바꿔야 하는지에 대해서도요. 그래서 작품을 창조했다기보다는, ‘뉴미디어 복원 방법론’같이 이름을 붙일 만한 별도의 영역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작업이었으니 선례로 남을 거고요. ‘다다익선’ 복원 프로젝트와 백서 발간까지를 포함해 이번 작업이 앞으로 있을 뉴미디어 복원에 어떤 의미로 남을 것으로 생각하세요?
‘뉴미디어’ 장르에서 텔레비전 CRT 모니터를 사용한 작품 중 이런 대규모 작업은 없었어요. 그러니 책에 정리된 이 일련의 작업이 후대에 드릴 수 있는 레퍼런스가 되긴 하겠죠. 당연히 그런 생각으로 이런 책까지 만들기도 했고요. 이런 작업이 꼭 참고가 되길 바랐습니다. 사람들이 봤을 때 “맞아, ‘다다익선’ 복원이 있었지. 한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이 백서를 사전처럼 들여다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백서도 흥미로웠습니다. ‘다다익선’ 복원 과정은 백서와 함께 완성되었다고도 생각하고요.
출판사 선정이 쉽지 않았어요. 미팅은 여러 출판사랑 했거든요. 저는 백서에 많은 기록이 담겨서 비슷한 유형의 작품을 처리할 때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복원 과정에서의 세세한 기술이나 방법도 공유됐으면 했고요. 그런 걸 봤을 때 수류산방에서 낸 책들이 아카이브 면에서 좋은 형태라고 생각했어요. 기관 특성상 입찰을 해야 하는 등의 특징이 있었고, 진행하며 의견 충돌도 있었습니다만.
저는 책을 만드는 게 일이다 보니 백서가 더욱 흥미로운 면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 클라이언트를 설득할 수 있나’ 싶은 부분도 있었고요. 제 입장에서는 손이 너무 많이 간 책입니다.
그래서 책이 나오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저희의 의견을 넣으려고 하다 보니 저희도 포기 못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보존에 초점을 맞춘 책이 아닐까 싶어요.
백서를 보니 CRT 모니터가 내는 열이 문제처럼 보였습니다. 발열이 문제라면 여름철에 조금 더 조심해야 합니까?
그렇죠. 발열과 노후가 제일 큰 문제예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여름철에 조심해야 하는 게 맞는데 데이터를 뽑아보면 달라요. 겨울에 난방하고 여름에 냉방을 해서 온도는 거의 일정하고, 난방이 센 날 온도가 더 올라가는 경향도 있어요. 그래서 온도를 측정할 때 평소보다 온도가 높으면 난방 수치를 여쭤보기도 하고, 우리가 원하는 보존 환경에 가장 적당한 온도와 맞춰보기도 해요.
그런 논리라면 지금(매주 목~일, 오후 2~4시까지)보다 더 짧게, 하루에 1시간만 가동할 수도 있지 않나요?
스크린에서 나오는 영샹들의 길이가 대부분 30분 내외예요. 1시간을 가동하면 두 사이클이 채 안 될 수도 있고요. 미술관 측에서 많이 보여주자는 의지는 있었는데 제가 온도 그래프를 보고 조금 보수적으로 생각했습니다. 2시간 가동을 기점으로 최고 온도에 거의 도달하니까 최고 온도가 계속 유지되었을 때 작품에 생기는 데미지가 저에게는 무척 부담스러웠어요. 미술관 내에서도 그 의견을 받아들여주었습니다.
더 오랜 보존을 위해 모니터 등 물자도 많이 비축해두셨죠. 실무적으로 보셨을 때, ‘다다익선’의 내구 연한을 생각하면 앞으로 우리는 이 작품을 얼마나 더 볼 수 있습니까?
감히 단언할 수 없지만, 산술적으로만 따졌을 때 저희가 작년에 24대를 불용시켰어요. 고칠 수도 없는 상태가 된 게 24대였어요. 그런데 (여분 모니터로) 저희가 가지고 있는 게 약 700대쯤 돼요. 엄청 모았어요. 계속 모으고 있어요. 올해도 모을 거예요. 그런데 모니터 크기에 따라 어떤 건 5년 정도의 여분이고, 어떤 건 10년 정도의 여분이에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따졌을 때 5~10년은 이 형태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멀지 않았죠. 수시로 점검하고 처리하고 온습도 맞추는 노력을 계속하며 온전히 가동한 게 2023년 한 해예요. 그러고 딱 1년이 지났는데 24대가 안 되더라고요. 우리가 했던 노력과 운영시간을 줄인 것 등을 다 합쳐도 이게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거예요. 당장 5년 뒤에 다 나간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태의 기재들이에요. 그래서 언제 올지 모르는 그 미래를 또 대비하고 있고요. 새로운 디스플레이에 대한 고민을 작업 시작부터 같이하고 있었어요. 다른 디스플레이를 유사한 방식으로 만들어보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방식의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등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게 뉴미디어 작품 보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뉴미디어라고는 하지만 디바이스는 ‘올드 디바이스’인. 이런 고민이 계속되는 게 어렵긴 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 걸 알죠.
그에 맞춰 변화를 주자니 바꾸는 것 같고,
지키자니 버리는 것 같은 상황에 맞닥뜨린 거예요.”
어찌 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꺼져가는 모습으로 두는 것도 관점에 따라 일종의 원형 유지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맞아요.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었죠. 지금 우리가 뉴미디어라 부르는 걸 해외에서는 대부분 ‘타임 베이스드 미디어’라고 해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 걸 알죠. 그에 맞춰 변화를 주자니 바꾸는 것 같고, 지키자니 버리는 것 같은 상황에 맞닥뜨린 거예요.
다른 곳에서 학예사님이 하실 법한 고민을 본 적이 있어요. 포르쉐 박물관이 자동차를 복원할 때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이 차의 상태가 어디인가’에 대한 고민이 복원의 시작이라고 해요. 랠리에서 우승한 자동차 복원이라면 세차도 안 한다는 겁니다. 그 먼지까지 아카이브니까.
저도 작품이 꺼져가는 게 원형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번 복원은 ‘가동하는 걸 다시 보여주는 것’이라는 목표가 정해져 있었어요. 작가의 의도 역시 작품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것이었고, 작품 테크니션 역시 그렇게 말씀하셨고, 많은 분들의 의견도 ‘계속 보여주는 게 맞겠다’로 정해져서 지금처럼 진행되었죠. 보통 복원은 지금 해주신 말씀처럼 하거든요. 조각이나 예술품은 작가가 실수로 남긴 서명도 그대로 둬요. 실수라도 작가의 흔적이니까.
‘다다익선’은 그냥 감상하는 작품이 아니라 ‘작동되는 기기’이기 때문에 복원에 대한 정의가 더 복잡할 수도 있겠습니다.
비슷한 사례가 고궁박물관에 있었어요. 고궁박물관에 어차가 있거든요. 이걸 어디까지 복원할지도 똑같이 고민했다고 해요. 기능적인 부분까지 보존해야 하는 것인가 아닌가를. 저희도 보존학회가 있거든요. 거기서도 복원 보존에서의 기능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 선례로 ‘다다익선’ 사례를 이야기하기도 했고요.
큰 복원 경험을 해보신 입장에서 뉴미디어 작품의 보존 복원이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저는 정답을 말하려는 경향이 있어 이렇게 답할 거예요. 뉴미디어를 넘어 그냥 보존에 대해서는, 관람객에게 계속 보여줄 수 있도록 컨디션을 유지하는 작업이 계속될 것이라 생각하며 일하고 있어요. 뉴미디어로 한정하면 이제 보존학계에서도 생소한 개념이 생긴 셈이에요. 작품 기능 유지가 필요한 상황이 온 거니까요. 외국에도 이제 타임 베이스드 미디어의 보존에 대해 말하는 그룹이 있고, 각자 (보존에 대해)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어요. 기존의 개념이라는 그릇에 담기지 않는 새로운 개념을 갖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인 셈이에요. 미디어 작품 보존은 앞으로 복원이라는 개념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거예요.
뉴미디어나 미디어 아트의 ‘원형’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아이디어가 원형인지, 재생되는 영상이 원형인지, 이 영상이 작동되는 디바이스까지 원형인지.
보존은 고미술 문화재 쪽에서 시작하다 보니, 그 분야의 복원은 ‘출토 당시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것’이에요. 그러다 미술품에 전기전자의 개념이 등장하다 보니 고미술 개념으로 보면, 그건 복원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예요. 근현대 문화재가 생길수록 이런 고민도 따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미래를 위해 해보지 않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지금 복원은 이렇게 끝나지만 앞으로 다가오는 세계가 무서워요. 앞으로 이런 경우가 계속될 거잖아요. ‘다다익선’처럼 디바이스를 바탕으로 재생되는 예술품이 점점 많아질 거예요. 메타버스라는 개념도 들어왔고 그걸로 작업하는 작가도 많아졌고요. 그런 개념들이 보존의 세계로 들어올 때 어떻게 감당하나 싶어요. 학예사들끼리 고민을 공유할 때 이런 이야기도 나왔어요. AI가 그린 그림, 메타버스 안에서 이루어진 작품 활동, 이런 것도 보존해야 하는 대상인가? 이런 이야기를 지금은 장난처럼 하지만 진짜 다가올 미래일 수도 있으니까요.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