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가장 키가 큰 느티나무
서초구 염곡동의 느티나무
TMI 서초구에만 느티나무 보호수가 19그루 있다. 서울 최고의 ‘보호수 느티나무 보유구’다.
서울의 보호수 중 가장 많은 수종은 느티나무다. (원고 작성 시점 기준) 보호수 204그루 중 98그루이니 전체 절반에 가깝다. 느티나무는 마을 초입에 심으니 오랜 느티나무가 있는 동네면 마을의 역사도 오래됐을 거라 짐작할 만하다. 나무가 오래되면 그만큼 높이 뻗을 가능성도 크다. 서울의 보호수 중 장신에 속하는 나무도 대부분 느티나무다. 그럼 서울의 옛날 동네 느낌인 종로구 등 사대문 안에 그런 나무가 있을까 싶지만, 가장 키가 큰 느티나무는 서초구에 있다. 실제로 보면 옛날 사람들이 이래서 나무를 신으로 믿었구나 싶을 듯한 기운이 있다.
서울 최초로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
도봉구 방학동의 은행나무
TMI 이 나무는 서울에서 가장 굵은 나무이기도 하다.(가슴높이 둘레 기준)
보호수 제도가 시작된 건 1968년. 1968년 2월 26일 서울에서 최초로 ‘보호수’라는 이름이 붙은 나무다. 궁금해진다. 이 나무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살았을 텐데 1968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기 한 달 전 인왕산 능선을 타고 북한군이 대통령을 암살하려 청와대를 습격했다. 1.21 사태로 불리는 이 사건 이후로 안보 공간 확보를 위해 ‘주변 자연환경을 보전’한다는 기조가 생겼고, 우연인지 그 한 달 후 첫 보호수 제도가 도입돼 도봉구 방학동 은행나무가 서울 최초의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서울 보호수 1-1
종로구 궁정동의 회화나무
TMI 보호수가 하나도 없는 구도 있다. 양천구다. 부동산 시세와 보호수 보유 여부에는 상관관계가 없다.
서울의 보호수는 서울 각 지역에 있는 마을의 역사를 상징하는 동시에 서울시정이라는 행정 활동이다. 서울시 보호수는 모두 번호로 구분되는데, 각 구별 번호+해당 구 나무의 번호를 규칙으로 번호가 붙는다. 보호수 세계에서 구 번호 1번은 종로구, 종로구의 1번 보호수는 청와대 바로 옆에 있는 궁정동 회화나무다. 청와대 옆으로 뻗어 부암동으로 돌아 올라가는 길을 간 적이 있다면 으레 봤을 그곳에서 있는 회회나무가 사실 430년이 넘은 노목이다. 종로구는 오래된 동네답게 서울의 25개구 중 가장 많은 30그루의 보호수를 보유하고 있다.
역 앞의 나무
은평구 수색동의 가죽나무
TMI 가죽나무의 이름은 동물을 감싼 가죽과 상관이 없다. 참죽나무와 구분되는 ‘가짜 죽나무’라고 한다.
나무가 100년을 넘게 살아가는 건 그 나무를 가꾸는 인간의 정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수색역 앞 가죽나무에도 사람들의 마음이 묻어 있다. 이 나무의 수령은 약 150여 년, 나무 옆에 보이는 돌탑 3기는 2000년 수색역 직원들이 안전을 기원하며 쌓은 탑이다. 돌탑 3기는 인간 존중, 무재해 달성, 환경 개선을 뜻한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믿지 않아도 사람들이 모여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기울인 곳에는 반드시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흔적이 남는다. 이 나무를 촬영할 때도 그늘 없는 나무 아래에 동네 어르신이 앉았다 가셨다.
재개발을 견딘 나무
은평구 응암동의 살구나무
TMI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된 살구 나무는 이 나무 하나뿐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살구나무이기도 하다.
내가 어릴 때 살던 동네 옆 공터에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릴 때인데도 참 좋아 보이던 그 큰 나무는 아파트가 들어서며 잘려 나갔다. 개발 논리에 나무 한 그루야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오래 산 듯 보이는 게 한 번에 사라진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충격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새 한국도 여러 가지를 고려하는 나라가 되었는지 응암동 살구나무는 재건축 이후 신수가 더 훤해졌다. 재건축 전엔 집 사이에서 세 들어 사는 듯한 모양새였는데 재건축 이후 아파트 광장 한가운데를 빛내는 모양새가 되었다. 노목을 품은 아파트 단지라니 멋지다.
동네 속의 나무
구로구 가리봉동의 측백나무
TMI 보호수 제도는 전국적으로 운영되므로 우리 동네 근처 어디에서나 오래되고 멋진 나무를 찾을 수 있다.
어떤 나무의 현재는 오늘날 사람들이 나무를 대하는 방식을 뜻한다. 그 면에서 구로구 가리봉동의 측백나무엔 감동적인 면이 있다. 이 나무는 동네 특유의 다세대주택 단지 사이에서 불상을 감싸쥔 앙코르와트의 거목처럼 서 있다. 서울로 떠나온 사람들이 부랴부랴 지은 집 사이에서 노목은 자기 자리를 지켰고, 사람들은 나무를 피해 집을 지어가며 이 나무를 아꼈다. 농촌에서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가리봉동이 ‘가디단’이 된 지금까지도 이 나무는 동네의 광장이 되어 원래 일을 한다. 사람들이 머무르고 쉬어 가게 하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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