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김별에서 송하윤으로 바꾸셨는데 송하윤이라는 이름은 작명소에서 지었나요?
맞아요. 옛날 기획사 대표님이 현빈 선배 이름 만드신 선생님을 찾아가 여러 이름을 받아 오셨어요. 투표를 했는데 송하윤이 압도적으로 많았어요.
실제로 이름을 바꾸고 더 잘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이 ‘별아~’ ‘김별~’이라고 부를 때랑 ‘하윤 씨’라고 부를 때 음파가 바뀌더라고요. 저도 ‘별아~’라고 부르면 (귀엽게) ‘네!’라고 했는데 ‘하윤 씨’라고 부르면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되면서 제 성격이나 성향도 조금 변한 것 같아요.
본명은 김미선이시죠. 저는 예명으로 활동하시는 분들께 늘 궁금했는데요, 댁에서는 뭐라고 부르세요?
김미선이요. 오래된 친구들도 그렇게 부르고요.
그러면 지인이 둘로 갈릴 수도 있겠네요. 본명을 부르거나 활동명을 부르거나.
셋으로 갈려요. 미선이, 별이, 하윤이. 별이 때 친했던 친구들은 별이라고 불러요. 하윤이가 아직 어색하대요.
이름이 세 개면 세 번 사는 기분입니까?
네, 진짜 달라요. 김미선의 삶은 학생의 삶. 그렇게 재미있게 지내지는 못했어요. 별이로 지내면서는 잡지나 CF 모델을 했고, 그때는 통통 튀는 걸 많이 원하는 시대였어요.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하윤이로 지낼 때는 차분해지고요. 나이의 문제도 있겠죠.
<내 남편과 결혼해줘>를 준비하시느라 스트레스 때문에 두드러기가 났다는 말씀을 봤습니다. 대단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어요. 어떻게 그렇게 되지?
온몸이 시뻘겋게 되고 반점도 났어요. 그 캐릭터가 이해 안 되고 싫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부딪히고 싶지 않은 성향의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수민이 캐릭터를 (그 싫은 캐릭터를) 제 몸에 넣어서 살아야 하니까 거부반응이 온 것 같아요. 촬영 끝날 때까지도 두드러기 같은 게 올라오고, 그런 상태로 그냥 찍기도 했어요. 화장으로 안 가려져서요.
역으로 그만큼 집중하신 거네요.
(촬영하는) 1년 동안 제가 누군가에게 안 좋은 얘기를 하고 안 좋은 얘기를 들으면 그냥 반응을 해요. 장난으로라도 욕을 하고 그걸 계속 1년 동안 들으면 그런 느낌인 거죠. 어떤 반응 같은 연기가 나왔을 때도 그냥 그때 마음이 나간 것 같고요.
그렇게까지 집중하시고 열심히 하신 이유나 동력이 따로 있나요?
매번 최선을 다해서 캐릭터의 삶을 살아주려고 해요. 제가 수민이라는 캐릭터를 대본과 웹툰에서 봤을 때 되게 많이 혼자였던 것 같아요. 그 친구를 제가 품어서 열심히 연기하고 열심히 살았다는 그 감 하나만 줘야겠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악역을 이렇게 잘하는데 기존에 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안 들어왔어요. 너무 하고 싶었는데. 나는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는 연기자인데. 제가 간절히 원할 때는 잘 오지 않더라고요. 이번에 한 수민 역할도 처음 제안받았을 때는 이렇게까지 악역인지 몰랐어요. 웹툰에서도 악역이지만 단순하게 표현된 부분이 있어서 보통 드라마의 악역 정도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감독님과 의견을 나눠서 ‘더 못되게 입체감을 주자. 이 캐릭터가 더 생동감 있게 살아 있는 느낌을 주자’ 이런 걸 더했어요.
지금까지 출연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이었어요?
그 당시 컨디션. 제가 지금 표현할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 관심이 있는 것과 관련해서 많아지는 것 같아요. 어떤 날은 기타나 키보드 이런 게 너무 배우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회사에 이야기해서 소개받아 배웠더니 2~3주 만에 밴드 멤버 역할의 대본을 받았어요. 또 한없이 슬프고 감수성이 풍부했던 시기에 <쌈, 마이웨이>를 만났어요. 그래서 눈물을 펑펑 흘리는 신과 아련한 장면을 잘 촬영했어요.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악역도 나에 대한 권태기를 벗어나고 싶을 때 들어왔어요. 다른 거 하고 싶어서 삭발도 괜찮을 정도로 의욕 넘칠 때였는데 딱 이 작품을 만나서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준비를 항상 해놓자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잘 맞아떨어졌네요.
아직도 삭발 괜찮으세요?
너무너무 환영해요. 삭발해본 적도 있어요. 작품 때문에 했는데 개봉을 하지 못했어요. 그 당시에 저는 뭔가를 새롭게 바꾸고 싶던 상태여서 (삭발) 괜찮겠냐고 물었을 때 “어차피 머리 또 나잖아요?”라고 답했어요. 그 캐릭터 성격도 그랬고요.
이번 촬영을 하시고 무척 고되셨다고 했는데, 끝나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따로 한 일이 있나요?
드라마 찍는 동안에 스트레스를 계속 모았어요. 어렵고 답답하고 모든 안 좋은 기운을 잔뜩 모아서 촬영할 때 썼죠. 드라마 끝나고 한 달 정도는 ‘이게 뭐지’ 하는 느낌으로 그 후유증을 겪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진짜 거짓말처럼 싹 끝났어요. 까먹었습니다.
그러면 정말 내가 했던 대사도 전부 잊어요? 지금 기억나는 수민의 대사가 있으세요?
“강지원 넌 나 없이 행복해지면 안 돼.” 이게 사실 수민이의 가장 기본적인 정서 아니었을까요. 넌 나 없으면 안 된다. 나 없이 행복해지면 안 된다. 그 마음을 계속 끌어안고 살았던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못된 마음이 있죠. 그 마음이 이해될 때도 있으세요?
공감되죠. 알긴 알겠어요. 왜 그렇게까지 삐뚤어졌는지. 모든 인간은 아마 그 수민이의 본성을 알 거예요. 우리가 그걸 선택해서 살지 않을 뿐이니까. 저도 알지만 그걸 선택해서 살지 않는 거죠. 삐뚤어진 소유욕을.
깊은 생각을 하셨네요. <내 남편과 결혼해줘> 같은 회귀물 콘텐츠도 자주 보세요? 어떤 걸 보세요?
저는 평상시에 TV를 거의 켜지 않아요. 꺼진 TV를 보고, 천장 보고 혼자 많이 생각해요. 꺼진 TV의 소리 없음이 좋아요. 친구와 둘이 차를 타고 갈 때도 라디오보다 친구의 목소리를 듣는 편이에요. 직업이 조금은 화려하다 보니까 평상시에는 이런 상태로 지내려는 편이고, 일단 작년 1년 동안은 음악이나 감정이 들어간 영화 같은 걸 전혀 보지 않았어요. 저는 감수성이 풍부한 성격이라 그걸 다 차단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가사를 들어도 동요되고, 그럼 나쁜 마음이 자꾸 녹아서 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SNS도 지웠고요. SNS 속 내 착한 얼굴이나 과거의 시간들을 보면 (연기를 할) 용기가 안 나오더라고요. 수민의 역할이 세질수록 제 20년 동안의 연기 기록이 자꾸 사라지는 느낌이 드니까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다 지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너무 시원했어요. 삭발한 것처럼.
이번에 수민 역할은 송하윤 배우의 출연작 중 어떤 의미가 있나요?
그냥 송하윤이 송하윤을 깼다. 수민이가 모든 걸 깬 느낌이었어요.
본인의 배우 인생에서는 큰 의미가 있네요.
너무 너무 너무 있어요. 이걸 열심히 해낸 시간이 지금 저의 성격과 성향을 많이 바꾼 계기가 됐어요. 저는 연기할 때의 꾸밈을 내려놓고 싶었나 봐요. 제가 항상 열심히 살고 예쁘고 밝은 느낌을 간직했다면, 수민이는 생각을 하기 전에 행동을 하잖아요. 그런 부분이 제게 많은 변화를 준 느낌이에요. 거르지 않고 질러버렸던 일들이 정말 많은 걸 바꿨어요.
다음에도 악역을 또 해보고 싶으세요? 해보니까 매력이 있나요?
해보고 싶어요. 매력이 있다기보다는 수민이는 서른여덟 살의 송하윤 배우가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였어요. 다음에 만날 아이는 제가 서른아홉 살이고, 수민이를 품었고, 이런 것들이 조합되어 표현할 수 있겠죠.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역할에 대한 겁도 좀 사라졌어요.
SNS에 외국인 댓글도 많더라고요. 국제적인 인기가 많아진 것도 실감하세요?
배우들이 직접적으로 실감하기는 어려운 부분이에요. 무대의 가수처럼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데 이번엔 달랐어요. 저는 외국 친구들이 많은 편이거든요. 태국, 일본, 캐나다 등등. 그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자기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드라마를 많이 보고 있다고. ‘진짜 그런 건가’ 싶을 정도였어요. 아마존에서 1위 했다는 기사를 보긴 했지만 이게 그냥 문구인 거잖아요. 외국에 있는 사람들을 제가 만날 수도 없고요. 그런데 몇 년 만에 미국에 있는 친구가 연락을 해서 “너무 재미있다” 같은 말을 하면, ‘진짜 외국 사람들이 이걸 보고 있구나’라는 실감이 좀 났어요.
데뷔 20년 동안 그 정도로 세상이 변한 거죠. 촬영 현장 등에서 느끼는 세상의 변화가 있으세요?
저는 촬영장에서 연기 외에는 관심을 크게 두지 않는 편이라 연기에만 집중해요. 우리 업계의 일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세상이 변해서 거기에 맞추는 것 같아요. 우리 직업은 우리가 아니라 시청자가 이끄는 부분이 있잖아요. 좀 더 자유로워졌고 자연스러운 걸 원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꾸며졌어도 콩트 같은 게 인기였다면, 요즘은 옆에 있는 사람을 원하는 느낌으로 변한 것 같아요.
이렇게 바뀌는 것도 없고 정답이 없는 세계에서 고민이 생기면 누구에게 물어보세요?
작품 하면서 생기는 고민은 현장에서 이야기를 나눠요. 감독님께도 여쭙고 상대 배우에게 묻기도 하고. 개인적인 고민은 보통 하루 이상 끌지 않아요. 스트레스가 오면 혼자 고민하다가 ‘근데 이거 뭐 하러 고민하지’ 싶어요. 고민해봐야 해결될 게 아니잖아요. 풀어야 하는 문제는 빨리 대화해서 풀고, 사과할 건 빨리 사과하고, 도전할 거면 빨리 도전하고.
약 20년간 활동하셨는데, 해보니 가장 어려운 게 무엇이던가요?
정답이 없는 거요. 끊임없이 누군가 잘했다고 하는데도 잘하지 않은 것 같고, 난 잘한 것 같은데 잘못했다고 할 때도 있죠. 이런 것들이 가장 어렵지만 또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그게 이곳을 못 떠나는 이유이기도 해요. 정답이 없어서 정답을 찾을 때까지 계속 매달리고 고민하는데, 그런 일들로 삶에서 얻는 것이 생겨요. 해결되지 않은 고민으로 인해서 배울 수도 있고요. 이런 부분이 재미있죠.
뭔가 깨달은 듯한 말씀이네요.
흔히 ‘꽃길 걸어’라고 하잖아요. 이번에 잘돼서 꼭 꽃길 걷자고. 명예가 쌓인 곳이 꽃길이 아니라, 내가 지금 가고 있는 이곳이 꽃길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힘든 일 사이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 진짜 꽃길 같아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여정이 꽃길이고요. 한때는 땅에 떨어진 벚꽃을 보면서 ‘1년에 한 번씩 꽃이 오는 계절도 있는데 왜 내 삶에는 꽃길이 없지’ 고민도 했어요. 낼 수 없는 사표를 가지고 다니는 느낌. 그런데 재작년부터 그냥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힘든 거 즐겨야겠다. 기다리는 거 즐겨야겠다. 지금이 꽃길이니까. 이런 마음으로 버티고 있어요.
저도 뭔가 만들어내고 평가받는 입장에서 동의합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내 삶의 행운이고 행복이라 생각해요.
이번에 이 역할을 하면서 많은 게 바뀌고 열렸어요. 예쁘고 못생겼다는 기준도 변했고요. 거울을 보며 ‘이 부분은 예쁘다, 이런 건 좀 별론데’ 싶어서 손질도 해보잖아요. 그런 기준이 사라졌어요. 머리 하나 내리고 올리는 건 내 기준인데, 어떤 사람은 내린 게 더 예쁠 거고 어떤 사람은 올린 게 더 예쁘다고 느낄 텐데 내가 왜 스스로 거울 앞에서 단정 짓고 있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를 놓고 가야겠다. 이 일에서 만나는 변화를 잘 써야겠다. 이렇게 바뀌었어요.
맞는 말씀이지만 여러 개 중 하나를 고를 때는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것도 흐름에 맡기려고 해요. 지금 그게 운명이겠지. 그리고 사실 틀린 선택은 없어요. 내가 그 선택을 해서 잘 살면 그게 좋은 선택인 거고, 열심히 안 살면 나한테 안 좋은 선택이었던 거죠. 요즘은 ‘어떤 역할을 해도 내가 열심히 살면 그게 다음 경신 캐릭터지’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세상이 재미있어지고 불만이 없어졌어요. 예전에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처럼 강제로 긍정적으로 여기는 부분도 있었거든요. 그런 걸 억지로 안 할 수 있게 돼서 너무 행복해졌고 수민이한테 정말 고마워요. 악역이라는 아주 나쁜 걸 저한테 한 번 넣었다 빼니까 나쁜 에너지를 다 쓴 것 같아요. 나쁜 마음, 욕심, 질투, 악에 대한 스트레스, 이런 걸 1년 동안 다 털어버렸어요. 끝나고 나니 ‘난 다 해봤으니까’ 이런 느낌이에요. 질투해봤는데, 나쁜 생각해봤는데 별로던데. 이런 느낌으로 다 해소됐어요. 촬영 종료 후 한 달 동안은 (마음이) 털어내지 못했거든요. 살짝 사경 헤맨 것처럼 뭔가 되게 흐릿했어요. 지금은 딱 제 이름처럼 ‘여름 햇빛’ 같아요.
두드러기까지 났던 보람이 있네요.
이 기분과 제 상태가 일이 잘되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에요. 지금 일은 수민이가 잘된 거고 드라마가 잘된 거고, 송하윤의 시간은 또 다른 거니까요. 제가 직업의 임무를 완수했고, 이번에도 잘 버텨냈다는 성취감은 있죠. 하지만 작품이 잘된 것과 반짝이는 순간은 수민이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송하윤이 잘되는 건 어떤 건가요?
오늘 행복한 것. 그게 제게는 오늘의 성공이에요.
오늘은 행복하셨나요?
오늘 너무 행복했어요. 내일, 모레, 일주일치 행복을 다 끌어다 쓴 느낌이었어요. 촬영장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 그냥 진짜 너무 좋았어요.
제가 뿌듯하네요. 앞으로 어떤 배역을 맡아보고 싶으십니까?
해보고 싶은 건 없어요. 다음에 올 운명을 미친 듯이 잘 살 생각이에요. 만나는 것마다 최선을 다해서. 수민이를 버티고 해냈으니까, 그걸 품은 그다음의 제가 기대돼요. 말하자면 스스로를 ‘도장 깨기’하는 중이라 인생이 너무 즐거워졌어요. 나쁜 것들이 사라져서.
덜 즐거울 때도 있었나요?
무수히 많았죠.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고요. 그러기엔 제가 연기를 정말 미치게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걸 깨달으니 힘든 게 가려지고, 연기에 대한 사랑을 20년 동안 한 것 같아요. 치사하고 더러운 것도 경험했지만, 이 직업에 대한 사랑과 확고한 믿음은 더 단단해졌어요. <내 남편과 결혼해줘>가 방송되는 동안 많은 분들께서 송하윤이라는 배우의 20년 시간을 응원해주셨어요. 그걸 보고 ‘내가 포기 안 하고 내 직업을 사랑하길 잘했다. 믿길 잘했다’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런 응원의 한마디가 제 직업을 더 믿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게 정말 감사해요.
멋있는 말씀이네요.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그냥 옆에 있는 사람. 연예인이나 화려한 애 아니고 무난해도 돼요. 잘되고 안되는 건 흐름이고 기복인 거고, 그냥 옆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좋은 역할이든 나쁜 역할이든 ‘그런 게 있었지, 그런 게 있지’ 같은 부분을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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