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 유동성에 관한 양자역학 이론을 참고하면,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균일하게 흐르지 않으며, 때에 따라 가속하고 감속하는 등 속도가 변화무쌍하다고 한다. 피티 워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젤로 피구스는 패션 또한 이와 같다고 하며, 피티 워모의 본질에 대해 이러한 리드미컬한 시간의 흐름보다 더 알맞은 비유는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리하여 피티 워모는 ‘피티 타임(Pitti Time)’이라는 주제로 105회를 맞이했다. 이벤트가 열리는 포르테차 다 바소 입구의 아트월과 중앙광장 곳곳에 배치된 시계들이 피티 워모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알려주며, 발걸음을 이끌었다.
작년 이맘때 처음 선보인 반려동물을 위한 의류 및 라이프스타일 섹션, ‘피티펫(PITTIPETS)’은 이제 피티 워모에서 가장 인정받는 부문으로 빠르게 성장해 반려동물의 패션과 액세서리에 대한 아이템들을 폭넓게 조명했다. 환경문제가 화두인 만큼 ‘빈티지 허브 서큘러 패션(VINTAGE HUB Circular Fashion)’도 다시 활성화됐다. 업사이클링과 빈티지 소비에 대한 현대적인 접근 방식을 실질적으로 보여줬을 뿐 아니라 ‘그린 톡(GREEN TALK)’ 대담을 통해 친환경 소재 사용, 효율적인 에너지 생산 공정 등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번 시즌에는 ‘노이도이치(NEUDEUTSCH)’라는 독일 기반의 예술 프로젝트를 새롭게 볼 수 있었다. 17개의 독일 브랜드로 이뤄진 프로젝트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줄리안 데이노브가 큐레이팅했으며, 젠더 중립적인 성향의 패션과 인테리어, 제품 디자인 등을 소개함으로써 이전에 볼 수 없던 독일의 다차원적인 미학을 새롭게 정의했다. 설립한 지 2년이 되는 해, 2022년 LVMH 젊은 디자이너 상을 수상하며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영국 런던 기반의 S.S.달리(S.S.Daley)가 게스트 디자이너로 초대됐다.
그는 E.M 포스터의 중편소설 <Story of a Panic>에서 영감받아 ‘엘리엇의 방’이라는 주제로 영국 관습에 대한 옥스브리지 소년들의 반항적이고 이중적인 모습을 쇼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단정한 연미복을 입었지만 바지는 매치하지 않은 과감한 룩, 굵은 파이핑이 돋보이는 벌키한 이불 코트, 그리고 무대 곳곳에 설치된 침대를 연상시키는 조형물은 베키오 궁전을 단숨에 영국 상류층 기숙사의 퀴어 판타지 공간으로 변모시키기에 충분했다. 반면 6년 만에 피티 워모 게스트 디자이너로 돌아온 마리아노(Magliano)는 퀴어 문화에 대한 포용성과 다양한 성 정체성을 반영한 대담한 컬렉션을 통해 남성복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