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과 예술의 협업은 이제 너무나 익숙한 일이라지만, 어떤 관점에선 물과 기름처럼 결코 융화되지 않는 첨예한 경계가 있다. 그 간극을 무너뜨리는 건 좀처럼 쉽지 않은데, 그런 이유로 2024 F/W 로에베 컬렉션을 통해 증명된 조나단 앤더슨의 타고난 감각과 재능을 높이 평가한다. 언제나 공예, 예술 분야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표하는 그의 진중하고 올곧은 취향은 이렇게 패션과 예술 사이 보이지 않는 견고한 틀을 스스럼없이 허물었다.
로에베는 이번 시즌 미국 현대미술가 리처드 호킨스의 작품을 바탕으로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였다. 호킨스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남성의 몸에 매료되었고, 이는 곧 그의 작품으로 이어졌다. 미술의 역사부터 현실의 파파라치 사진, 소셜미디어 콘텐츠에서 남성의 몸을 표현하는 미학적, 문학적, 철학적 의미를 탐구하며, 콜라주와 병렬 배치에 기반한 작품들로 욕망에 대한 서사를 그려냈다. 그의 작품 안에서 이질적인 이미지들은 유기적으로 얽히고설킨 형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현재의 우리가 온라인을 통해 무분별하게 접하는 수많은 이미지들의 뒤엉킨 조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조나단 앤더슨은 호킨스의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자신의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이번 컬렉션을 완전한 현대미술로 승화시켰다.
새하얀 쇼장 벽면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연상시키는 아치형 대형 스크린을 설치했다.
이는 30여 년 동안 로에베의 상징적인 윈도 디스플레이를 도맡았던 호세 페레스 데 로사스(José Pérez de Rozas)의 1960년대 디자인에서 영감받은 것. 스크린을 통해 로에베 브랜드 앰배서더와 여러 셀러브리티의 캠페인 이미지가 호킨스 특유의 버라이어티적 요소와 뒤엉켜 12편의 비디오 콜라주로 상영되었다. 그중엔 한국 앰배서더인 NCT 태용의 모습도 담겨 있었다.
이번 컬렉션을 들여다보면 전반적으로 클래식한 테일러드 코트, 포멀한 더블브레스트 수트, 스트레이트 핏 데님, 트랙 수트, 단정한 레이스업 스니커즈, 롱 카디건, 작업복, 차분한 바이커와 콤배트 부츠 등 지극히 전형적인 미국식 아이템과 실루엣이었다. 이런 보편적이고 단일화된 요소들은 양말을 끌어올린 맨다리에 하프 코트만 입거나, 단정한 셔츠와 조거를 매치하고, 코트 안감에 트랙 수트가 치렁치렁 달려 있는 등 콜라주 같은 룩으로 표현되었다.
또 런웨이에선 눈치챌 수 없었는데, 알고 보니 스니커즈는 양말에, 양말은 바지에, 바지는 재킷이나 코트에, 그리고 벨트는 팬츠에 연결되었다고. 이 또한 무질서하게 뒤엉킨 현실을 반영한 ‘호킨스식’ 콜라주.
그뿐만 아니라 호킨스의 작품은 주얼리, 의상 프린트, 니트 자카르, 스퀴즈 백과 퍼즐 폴드의 자수, 레더 인타르시아, 글라스 스터드, 프린지 등 다채로운 디테일로 재탄생되었다. 무엇보다 그의 그림이 전면 프린트된 디테일을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후드 집업과 조거 팬츠, 스퀴즈 백은 글라스 스터드를 촘촘하게 채워 작품을 수놓았고, 니트 원피스는 마치 붓 터치를 살려낸 유화처럼, 짜임새가 다른 니트를 조각조각 이어 붙여 작품을 완성시켰다. 모든 요소들이 호킨스의 콜라주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또 해체되기를 반복하는 이번 시즌 로에베는 그 자체가 완전한 하나의 현대미술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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