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이 파리에서 선보인 2024 가을/겨울 컬렉션은 성별의 이분법적인 구분에서 벗어나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영국 화가 글룩의 생애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특히 그의 초상화 중 하나인 ‘Peter(A Young English Women)’를 모티브로 했다. 짧게 자른 헤어스타일, 미니멀하고 클래식한 옷차림이 인상적인 여자의 초상은 눅눅한 잿빛으로 채색해 중성적이고 차분한 분위기가 도드라진다. 그의 작품을 재해석한 이번 컬렉션의 콘셉트는 ‘Portrait of uncertainty’, 즉 ‘불확실성의 초상’으로 젠더 플루이드적인 요소를 담아 클래식을 새롭게 풀어낸 것이 특징이다. 자신감 있고 활동적인 여성, 부드럽고 섬세한 남성의 모습 등 전형적으로 여겨지던 성별의 규범을 비틀어 복식을 색다른 방식으로 바라봤다. 1990년대 미니멀리즘을 토대로 한 룩들은 전체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느낌이지만, 구조적인 라인, 기하학적인 디테일을 곳곳에 더해 심심하지 않게 완성했다. 어깨를 과감하게 강조한 아우터들도 인상적이었는데, 과장된 실루엣과는 달리 부드러운 소재를 사용해 우아하고 모던한 느낌이었다. 또한 넉넉하고 편안한 핏의 아이템이 주를 이뤄 일상에서도 손쉽게 활용할 수 있을 듯했다.
이번 시즌에도 역시 든든한 지원군과 함께한 비주얼이 눈에 띄었다.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서는 사진가 데이비드 심스가 촬영하고, <보그> 파리 편집장이었던 엠마누엘 알트가 스타일링한 강렬한 광고 캠페인을 먼저 만날 수 있었다. 더불어 흡입력 있는 인물 사진가로 유명한 에스텔 랑크렐과 협업해 쇼를 연출했다. 마치 이미지의 픽셀이 깨진 것처럼 윤곽이 흐릿한 모델들의 초상을 미디어 아트로 제작해 런웨이를 둘러싼 공간을 압도적인 분위기로 꾸몄다. 이는 불확실성의 초상이라는 컬렉션의 키워드를 드러내는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했다.
런웨이의 피날레에서는 모델들이 일렬로 걸어 나오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 멈춰 섰다. 이는 마치 한 폭의 초상화를 규칙적으로 전시해둔 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을 풍겼으며, 마찬가지로 컬렉션의 주제를 내포하는 듯했다. 인물과 복식을 바라보는 시선을 전복해 클래식을 새롭게 정의 내린 시스템의 컬렉션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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