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바토 데 사르노(Sabato De Sarno)가 밀라노 남성 패션위크에서 첫 번째 남성 컬렉션을 공개했다. 사르노는 지난 9월 선보인 데뷔 쇼 ‘구찌 앙코라’로 이미 구찌의 새 챕터를 열었다. 이탈리아어로 ‘다시’를 의미하는 앙코라는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재조명하며 변화의 방향을 찾았다. 직선적으로 정제된 디테일과 포멀한 미니멀리즘, ‘로소 앙코라’가 주는 맹렬한 컬러 악센트까지. 기대와 우려가 뒤섞였던 쇼 직전의 공기는 피날레가 시작될 즈음 이미 그가 의도한 대로 환기됐다. 명료하고 상징적인 룩이 이어졌던 한 번의 컬렉션만으로 사르노를 판단하지 않기를. 그는 분명 퍼포먼스적 면모도 풍부한 사람이다.
이런 생각은 2024 가을/겨울 남성 컬렉션을 감상하고 난 뒤 더 분명해졌다. 런웨이를 따라 뻗어 내린 좁고 기다란 조명, 익숙한 마크 론슨의 플레이리스트, 그리고 오프닝에 등장한 모델의 코트 룩을 보고서야 이 기시감이 이번 컬렉션을 관통하는 의도임을 깨달았다. 화이트 슬리브리스 톱과 피크트라펠 칼라의 테일러드 코트, 굵직한 마리나 체인 목걸이와 홀스빗 로퍼, 한결 커진 재키 백까지 지난 쇼의 오프닝 룩과 완벽한 미러링 버전을 선보인 것.
이어지는 트랙 재킷 스타일의 보머와 짙은 버건디색 가죽 재킷도 앙코라 컬렉션과 동일한 아이템, 거의 비슷한 스타일링을 런웨이에 올리며 두 컬렉션 모두 젠더리스 미학을 적용했다.
또한 영국적인 소프트 펑크를 테마로 풀어낸 피코트와 보머, 발목 길이의 슬릿 디테일 팬츠, 메탈 팁을 덧댄 로퍼 같은 다수의 아이템들은 그의 표현처럼 ‘구찌를 통해 다시 패션과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기회’를 넓혀줄 포용적이며 웨어러블한 런웨이 룩을 향해 있다. 완성도 있는 테일러링으로 소재의 고급스러움과 동시대적인 실루엣을 여지없이 돋보이게 했다.
여기에 메탈 디테일의 실크 타이를 다양한 룩에 연출하면서 컬렉션 전반에 로맨티시즘을 더했다. 새로운 비전의 중심에는 구찌 아카이브가 문장처럼 아로새겨졌다. 사르노는 구찌 홀스빗 로퍼와 재키 백, GG 모노그램처럼 익숙하고도 반짝이는 하우스 아카이브를 영민하게 재해석했다. 로소 앙코라 컬러를 필두로 남성 컬렉션 런웨이에 등장한 재키 백은 블랙과 브라운, 빛나는 광택의 라임까지 비로소 다채로운 컬러와 크기로 업데이트됐다. 플랫폼 솔을 장착한 홀스빗 로퍼는 메탈 팁이나 빼곡한 스터드 장식 같은 펑크적인 변주와 하우스의 장인정신이 돋보였다.
이외에도 GG 모노그램을 전면에 더한 백팩, 작은 사이즈의 실버 버전 마리나 네크리스, 손등 길이의 짧고 타이트한 가죽 장갑 등이 단순명료한 ‘뉴 구찌’ 스타일에 방점을 찍었다. 이렇게 사바토 데 사르노는 두 개의 페어 컬렉션으로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치렀다. 런웨이 세팅부터 음악, 룩과 아이템, 디테일까지 거울처럼 닮은 두 컬렉션은 사르노가 설계한 면밀한 세계관이다. 연상과 반복으로 강조한 구찌의 새 챕터는 패션이라는 환상과 동시대적인 서사를 왕복하며, 다시 우리 모두가 열렬하게 사랑했던 구찌를 처음 만났을 때의 기분으로 돌아가게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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