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응급처치하듯 결제를 해버리려고 늘 장바구니에 뭔가 담아놓는다. 네이버쇼핑이든 어딘가의 편집매장이든 파페치나 엔드 클로딩이든. 사실 요즘 가장 자주 채우고 (사서) 비우는 쇼핑몰은 알리익스프레스다. 장바구니 안에 시계 스트랩이 십수 개씩 들어 있다. 가격이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저렴하다. 나토 스트랩이라 부르는 나일론 스트랩을 색색깔로 사고 특유의 짜임 구조가 인상적인 페를론 스트랩을 몇 개씩 사도 웬만한 쿼츠 시계보다 싸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시계 스트랩을 바꿔 끼우는 문화나 취미는 예전부터 있었다. 처음에는 기능적인 시도였다. 다이버 시계를 차고 정말 바다로 들어가던 시절, 사람들은 브레이슬릿을 떼어내고 더 가벼운 나일론 스트랩을 달았다. 숀 코네리 시절의 제임스 본드도 서브마리너에 나일론 스트랩을 끼워 찼다는 설정이 있다. 제임스 본드가 영국 해군 출신이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로 달에 간 버즈 올드린도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에 정품 브레이슬릿이 아닌 NASA 스펙의 스트랩을 감아서 찼다. 약 10년 전까지만 해도 사외 스트랩은 소수 애호가의 몫이었다. 영국군에 납품한 나일론으로 스트랩을 만들거나 NASA 규격을 그대로 모방하는 식이었다.
그사이 2개의 큰 변수가 생겼다. 하나는 스마트워치다. 세간의 생각과 달리 스마트워치는 손목시계 업계에 큰 활력을 주었다. 손목시계의 라이벌은 스마트워치가 아니라 맨 손목이다. 도시인이 거의 다 갖고 다니는 휴대전화는 가장 정확한 휴대용 시계다. 스마트워치가 생기며 사람들은 다시 손목에 기계를 감기 시작했다. 특히 애플 워치는 처음부터 줄 교환이 쉬웠고 후발 주자 갤럭시 워치는 일반 손목시계의 러그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다. 새로운 기계가 생기자 사설 스트랩 업체도 활기를 찾았다. 또 다른 하나는 기성 손목시계 업계의 전략이다. 스위스로 대표되는 손목시계 회사들도 스마트워치에서 온 ‘퀵 체인지 시스템’을 도입했다. 대부분의 경우 모든 스트랩이 손목시계와 호환된다.
그 결과 소비자가 고를 수 있는 스트랩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웬만한 스위스 시계 브랜드는 다양한 종류의 자체 정품 스트랩을 출시한다. 정품이라 버클 등도 오리지널이고 디테일도 좋은 대신 상대적으로 비싸다. 사제 스트랩의 폭은 더 넓다. 가격, 소재, 색채 모두 매우 다양하다. 떨이하듯 싸게 파는 저가형 직물 밴드부터 웬만한 정품 브랜드 가격에 육박하는 수십만원짜리 크로커다일 가죽 맞춤 스트랩까지 있다. 시계 하나만 있으면 줄을 다양하게 바꿔 끼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이 동한다면 어떤 줄로 사서 바꿔야 할까? 기성 시계의 문법을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 손목시계 장르는 크게 네 가지다. 드레스, 다이버, 파일럿, 드라이빙. 드레스는 원칙적으로 드레스 셔츠 안에 차는 얇은 정장용 시계다. 보통 크로커다일 등 고급스러운 악어가죽을 쓴다. 다이버, 파일럿, 드라이빙 워치는 두툼하고 크기 때문에 줄까지 두툼한 경우가 많다. 시계 케이스 두께에 맞춰 줄을 고르면 도움이 된다. 파일럿이나 드라이빙 워치는 검은색 가죽에 흰색 스티치 등 눈에 띄는 디테일을 쓰는 경우가 있다. 사설 스트랩을 고를 때도 이런 디테일을 알아두면 정품 스트랩과 위화감 없이 멋진 조합을 찾을 수 있다.
이 모든 원칙을 알든 모르든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다. 몇 년 전 어느 인도계 영국인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쉴 때도 셔츠를 입을 듯 단정한 차림의 남자였다. 그런데 그의 시계가 옛날 드레스 워치에 낡은 나토 스트랩을 끼운 것이었다. 그의 단정한 차림과 낡은 시계와 나토 스트랩의 허름한 모습 자체가 멋진 조합이었다. 일선의 시계 브랜드들도 기존의 원칙을 깨고 다양한 조합을 선보인다. 나토 스트랩을 드라이빙 워치에 연결하든, 파일럿 스트랩을 다이버 시계에 매치하든 요즘 세상엔 아무 상관이 없다. 멋만 있으면 그만이고, 당당하면 뭐든 멋있다. 원칙을 깰 때만 생기는 멋도 있다.
‘줄 바꾸기 좋은 시계가 따로 있을까?’라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모든 시계는 줄을 바꾸면 나름 멋이 있다. 보통 빈티지 롤렉스나 파네라이 등의 시계가 줄 바꾸기 문화로 유명하지만 여기도 정답은 없다. 애플 워치나 갤럭시 워치 등 스마트워치의 줄을 바꿔도 좋다. 예거 르쿨트르나 파텍 필립 같은 브랜드의 드레스 워치에 군용품 느낌의 나일론 스트랩을 감아도 상당한 멋이 있다. 마음 편하게 한번 시도하면 어떨까. 아무 검색창에나 ‘시계 스트랩’을 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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