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에게도 섹스는 특별하다. 우리는 ‘특별’해야 관심받는 SNS 세대고, ‘핫플’을 누비며 어떻게든 더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힘쓴다. 늘 요즘 애들로 붐비는 연남, 한남, 합정처럼 요즘 섹스에 대해 이야기해준 친구들도 자기 이미지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반년 만에 만난 김원진(27세, 취준생)은 잘생겼고 키도 크고 법대를 졸업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적성인 사람도 있으니까. 아무것도 안 해도 멋있는 남자의 연애와 섹스도 궁금했다. 나는 김원진이 연애에 휘둘리고 안간힘을 다해 섹스하는 남자였으면 좋겠지만 실제의 김원진은 연애에도 섹스에도 큰 흥미가 없어 보였다. 취업에 흥미가 없는 것처럼. 그런 그가 여자친구가 생겨서 한 번 만나보기로 했다.
우리는 한강이 보이는 상수역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김원진은 카키색 바지와 흰 티셔츠 위에 패딩 점퍼를 입었다. 반년 전 모습에서 패딩만 걸치고 있었다. 극한의 효율 추구가 김원진의 우선순위였다. 섹스든 삶이든. 그래서 김원진은 커피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가 다시 커피를 받아오지 않는다. 그는 기어이 커피가 나올 때까지 그 앞에서 기다려 커피를 받아 든 후에야 내 앞에 앉았다.
“남자라면 언제든 섹스하고 싶지만, 나는 못 한다고 스트레스 받진 않아. 난 ‘본투비 자위왕’이거든.” 그는 역시 효율을 추구했다. 자위 역시 성욕을 해소하는 효율적인 방법이니까. 변수는 여자친구다. 그는 한 달 전 연애를 시작했다. “막 좋아 죽고 설레는 건 아닌데 같이 있으면 좋아. 얘 아니면 어떻게 연애했을까 싶어. 뭔가가 다르게 느껴졌으니까 연애했겠지. 이유는 잘 모르겠어. 좋은 데 이유가 어디 있겠어.” 그는 갓 사랑에 빠진 남자 특유의 풋풋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런 사람에게 섹스리스 남자의 섹스를 묻는 건 실례 같을 정도였다.
“연애할 때는 다르지.” 연인과의 섹스라는 주제에서 김원진은 확고했다. “연애하는데 섹스리스인 건, 할 수 있는데 못 하는 거잖아. 연애를 안 하면 못 하는 게 일반적이니까 그냥 포기하지. 근데 연애를 하는데 못 한다? 절대 못 참아.” 섹스리스는 괜찮은데 투머치 섹스를 추구한다? “아니지, 있을 때 최선을 다하는 거지.” 김원진은 차분했다. 애인과의 깊은 섹스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내 여자 이야기’는 남자의 금기다.
요즘 섹스는 코로나가 끝나고 더 귀해졌다. ‘방역’이라는 이름의 섹스 장벽이 하나 더 생겼고, 이미 어려운 섹스가 더 어려워졌다. 그 덕에 코로나가 종식되자 섹스는 할 수 있을 때 어떻게든 해야 하는 것이 됐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애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섹스 기류가 흐르면 주저 없이 야놀자 사이트를 접속했다. 저렴한 호텔이나 호텔 같은 모텔을 찾았다.
“헤어진 여자, 사귀고 싶은 여자, 친구한테 소개받은 여자, 뭐 많다!” 부산 출신 군대 동기 최성준(25세, 직장인)은 휴가 때마다 만나는 여자가 달랐다. 신병 휴가엔 전 애인, 두 번째 휴가에는 친구의 전 애인, 그다음에는 대학 동기. 내가 휴가 때 갈 브런치 맛집 리스트를 정리하고 있을 때 최성준은 여자와 자기 전에 삼겹살에 소주를 먹을지, 파스타에 와인을 먹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코로나였는데도 그는 항상 만날 여자가 있었다. 김성준에게 팬데믹은 ‘섹스하기 전 마스크를 벗는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섹스의 총량은 같았다. 그에게 ‘코로나라서 섹스를 못 한다’는 건 그전부터 못 했던 남자들의 핑계였다. 하는 놈은 계속 잘 했다.
말하자면 그는 섹스 알파 메일이었다. 타고난 큰 키, 더 큰 거기. 최성준은 섹스가 ‘존나 좋은 것’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섹스는 남자에게 ‘존나 좋은’ 면이 있지만 최성준은 자기만 ‘존나’ 좋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경험이 풍부했고 여자를 만족시키는 데 익숙했다. 그의 손과 입과 혀에는 여태 만났던 여자들의 서사가 있었다. 그에게는 하고 싶을 때마다 연락할 수 있는 여자가 있다고 했고, 그 건방진 확언처럼 그는 내게 바뀐 애인을 보여주었다. 새 애인을 그만 소개해달라고 하자 최성준은 그저 “또 보재이”라고 답하고 사라질 뿐이었다.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그에게 ‘코로나라서 섹스를 못 한다’는 건
그전부터 못 했던 남자들의 핑계였다.
하는 놈은 계속 잘 했다.”
박희연(24세, 디자이너)은 아무 때나 전화하는 친구다. 그는 잡지에 나올 만한 ‘요즘 애들’ 축에 속한다. “섹스를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애가 있어? 요즘 애들은 섹스를 제대로 말할 줄 모르는 거 같아. 위에서 넣을 때 손을 어디다 둘지, 콘돔을 언제, 무슨 말을 하면서 끼는지 같은 세심한 철학이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라는 말만 봐도 요즘 애들이다.
“남자들한테 먹히는 캐릭터의 맛을 안 지 꽤 돼서 이젠 질린다”는 말도 요즘 애들이었다. 어떤 게 먹히는지 물었더니 “남자들이 자기를 진짜 좋아한다고 느끼게 하면서 다 보여주진 않는 거지. 부끄러워하거나, 할 말을 해야 할 때 하지 않거나. 초반엔 그걸 즐겨서 적당한 호기심만 있으면 몇 번 대화하고 잠도 잤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런 여자는 어디에 있을까? “난 남자와 나 사이에 지인이 있는 게 싫어서, 주로 인스타(그램)로 만나. 소개팅보다 편해. 대화하기 전에 나랑 비슷한지 취향을 먼저 탐색하는 거지. 근데 요즘은 그럴 시간이 없어”라며 박희연은 한숨을 쉬었다.
“진짜 매력적인 사람은 대화만 해도 섹스만큼 도파민이 나오는 거 같아”라고 박희연은 어른스럽게 말했다. 섹스는 도파민을 얻는 수단의 하나일 뿐 최고의 수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매력의 원천을 따로 묻지는 않았다. “매력적이라 느꼈던 남자들은 대부분 능숙한 섹스를 했다”는 말에 약간 침울해져서. 그가 매력적이라 느낀 남자들은 이미 경험이 많았고, 그런 남자는 대체로 출처 모를 여유가 있었는데, 그 여유가 박희연이 말하는 ‘매력’의 원천이었다. ‘자면 나이스, 아니면 어쩔 수 없고 ’ 같은 태도가 여자 입장에선 자존심 상하는 동시에 정복하고 싶어진다는 이야기였다. 박희연은 끝까지 자신만만해서 “한 번 하고 나면 남자들이 더 하고 싶어지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유대감 있는 상대와의 섹스는 만족감이고, 낯선 상대와 하는 섹스는 흥분되지.” 원혜선(28세, 브랜드 마케터)은 직업이 마케터라서인지 간략화한 발표 문안처럼 요즘 섹스를 정리했다. “만족감이 먼저인 애들은 오래된 애인과의 섹스를 더 좋다고 말하고, 도파민을 찾는 애들은 연애하면서도 다른 남자랑 계속하고 싶어 하고. 능숙한 여자나 남자는 정서적 교류 같은 거 신경 안 써. 그래서 결국 끼리끼리 만나. 상처를 아예 안 받는 건 아니지만 세상에 섹스할 여자나 남자가 많다는 걸 몸으로 아니까 매일 밤 클럽에 가서 낯선 섹스 상대를 찾는 거지.” 역시 깔끔한 정리였다.
원혜선은 깔끔하게 이제 좀 지쳤다고 했다. 낯선 섹스의 위험부담과 그 후의 감정 소모가 지긋지긋하다고. 그렇다고 섹스가 싫은 것은 아니니 유대감 있는 상대와의 섹스가 좋다고. 가학적인 건 싫고, 아이스크림 같은 섹스가 즐거울 것 같다고. 정말 그는 디저트 같은 섹스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메인 디시는 아니지만 코스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없으면 허전한 것. 대체로 무용하지만 필사적으로 아름다워야 하는 것. 그에게는 나름의 섹스 취향이 생긴 셈이었다. 강한 ‘민초’를 먹느냐 마느냐처럼. 그는 내게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물었다. 나는 딸기 맛이 좋다고 답했고, 원혜선은 메모해두겠다며 웃었다. 그는 나보다 세 살이 많은데 오늘 만난 사람 중 가장 ‘요즘 애들’ 같았다. ‘핫플’을 누구보다 잘 찾고 인스타그램 업로드도 바로 했다. 내가 나온 사진도 올렸는데 태그를 걸지는 않았다.
“싸가지 없게” 오랜만에 만난 친구 홍준석(25세, 잡지사 근무)에게 “섹스는 잘 하고 사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이다. 가끔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만 만나지는 않고 각자 스토리에 좋아요만 누른다. 나와 홍준석 모두 종이에 글을 싣는 사람이니, 만나도 노트북 앞에서 일만 하고 있을까 봐 DM으로 몇 마디 나누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합의한 건지도 모른다.
홍준석은 취향이 좋다. 을지로 골목을 누비며 그럴듯한 빈티지 체어를 사 들고 대중교통으로 집에 가져다 놓고, 황홀한 디자인의 빈티지 티셔츠를 모으거나, 거침없이 굵은 반지를 낀다. 섬세하고 깨지기 쉬운 것을 잘 다뤄서인지 주변에 여자가 많지만 연애는 하지 않고 섹스는 더 안 한다. 우리는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뒷마당에서 만나 커피를 들고 걸었다. 둘 다 코트 차림에 안경을 얹고 있었다. 그는 “시작이 두려운 게 아니라 과정이 무서워”라며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나는 끈질기게 물었다. 그래도 섹스는 하지? “한 지 오래돼서 하고 싶은 느낌이 뭔지도 까먹었으니까 묻지 마.” 그는 조금 짜증을 냈다.
요즘 애들은 특징이 없는 게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섹스에서도 그랬다. 섹스를 못 해서 안달이거나, 굳이 연연하지 않거나, 사랑 없는 섹스는 하지 않거나, 개방적 혹은 폐쇄적이거나. 그 모든 요소의 이유가 ‘요즘 애들이라서’는 아닐 것이다. 다만 그들은 자신의 섹스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섹스 혹은 섹스 이야기는 일종의 자기표현이다. 내 친구들은 섹스를 통해 드러나는 자기 자신의 모습에 큰 두려움이 없었다.
아울러 나와 내 친구들은 섹스에 어떤 철학이나 이미지를 가져다대는 걸 구식이라 여기는 것 같다. 코로나든, 요즘 시대든, 외로움과 괴로움이든, 어떤 변수나 수식어를 대도 섹스는 그저 섹스였다. 의미 부여를 덜하면 ‘단지 섹스’, 의미 부여를 많이 하면 ‘무려 섹스’일 뿐이었다.
* 사생활 보호를 위해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고 나이는 ±1~2세의 오차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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