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초엘리트
사이먼 쿠퍼, 글항아리
영국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유능하지 않은 정치 엘리트들이 브렉시트를 촉발시키고 코로나 대응에 실패했다. 이 책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처럼 상당히 과격해진다. 이 과격한 주장을 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왜 이런 주장이 나오게 되었는지, 그 결과 앞으로 어떻게 되면 좋을지. 이것이 <옥스퍼드 초엘리트>의 내용이다. 저자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저널리스트 사이먼 쿠퍼. 보리스 존슨의 옥스퍼드 동문이다.
이 책은 ‘내가 본 저 양반이 못됐다’ 정도의 신변잡기가 아니다. 그랬다면 굳이 이 지면에 소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옥스퍼드 초엘리트>는 선정적 폭로가 아닌 세밀한 분석이다. 그 분석 대상이란 영국의 상류층 백인 자제들이 옥스퍼드 대학과 맞물려 정치 엘리트가 되는 구조와 작동 원리다. 한 국가의 엘리트 시스템은 그 자체로 나라의 중추와 깊이 연결되어 있으므로, 이 책을 읽으면 영국 사회 역시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이를테면 보리스 존슨의 헝클어진 머리야말로 ‘나는 이런 머리로 다녀도 영국의 권력이니까 상관없어’ 같은 사인이다. 이 책은 그런 미묘한 영국식 세속 상징을 알려주는 매뉴얼 역할도 한다.
사이먼 쿠퍼보다 이 책을 더 잘 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단 옥스퍼드 대학 출신이다. 아무래도 내부 문화를 알고 취재망을 이용하기 좋을 것이며, 본인도 옥스퍼드 대학의 글쓰기 교육 덕을 봤다고 했다. 거기 더해 사이먼 쿠퍼의 결정적인 특징은 영국 토박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남아공에서 태어나 다양한 국가에서 살다가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창밖에서 내부를 들여다보는 이방인’이었다가 이제는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방인’이다. 영국인이 영국 대학까지 나왔는데 무슨 이방인인가 싶지만 읽다 보면 저자도 나름 그리 생각하게 된 사정이 있다. 그 역시 영국 엘리트 사회의 미묘한 계단식 서열 구조다.
그 결과 이 책은 다 떠나서 그냥 재미있다. 이 책은 한국어판 표지에 적힌 말처럼 영국을 지배하는 이너서클의 습관, 약점, 악행에 대한 이야기다. 보리스 존슨, 리시 수낙, 데이비드 캐머런, 테레사 메이 등 영국 전현직 총리의 실명이 등장한다. 그들로 대변되는 옥스퍼드 엘리트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그 문제가 무엇인지를, 별로 길지 않은 분량 안에 정교하게 담았다. 영국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확실히 재미있을 것이고, 큰 관심이 없어도 상식 함양 면에서 좋은 책이다.
잡지 지면에 논픽션 장편 기사를 내보내는 내 입장에서 이 책은 뛰어난 논픽션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쇼케이스였다. 도전적 주제. 도전적 주제를 끌고 나갈 수 있는 섬세한 고위 인물 취재. 정밀한 논지. 신랄하면서도 균형 잡힌 태도. 그러므로 유명인이나 상식에 큰 관심이 없어도 어느 정도 지적 욕구나 소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것이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의 엘리트를 소재로 이런 저작물이 나오면 어떨까 싶어지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게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이 책의 미덕인 냉정과 솔직은 지금 한국 콘텐츠에서 가장 찾기 힘든 가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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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듯 가볍게
정우성, 북플레저
저자 정우성은 신문기자로 언론사 생활을 시작해 라이프스타일 잡지에서 경력을 쌓았다. 잡지계에서는 특유의 서정성과 친절함으로 자동차 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만들었고, 그 경험을 총괄해 지금은 유튜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을 운영한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한 회고록이다. 단순 회고록이 아니다. 저자는 자신이 느끼고 겪은 일들을 풍부한 인문학 서적 사례와 결부하고, 그 과정에서 콘텐츠 업계에서 일한 어느 남자의 회고가 우리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고민과 위로의 기록이 된다. 일에 대해, 일을 다루는 태도에 대해, 관계와 삶의 목표에 대해, 저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요란한 말 없이도 위로를 받는 듯하다. 제목처럼 읽기엔 가볍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다. -
맛있는 소설
이용재, 민음사
각종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음식들에 대해 다룬 책이다. 저자 이용재는 음식 지식이 풍부한 음식 평론가이자, 한글로 번역한 책을 몇 권 낸 번역가이자, 남는 시간에는 여러 종류의 책을 두루 읽는 다독가다. <맛있는 소설>은 그의 특징이 모두 모여 만들어진 책이다. 그는 이국적인 어감으로 남아 있던 문학 작품 속 음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멕시코, 일본, 러시아, 오늘의 한국 등 다양한 문학 작품 속에는 당연히 각자의 상황에 맞는 요리가 나온다. 저자는 폭넓은 문학적 관심을 바탕으로 음식과 언어에 대한 식견을 도구 삼아 도슨트가 그림을 설명하듯 책 속의 음식 장면을 설명한다. 기계적인 설명을 넘어서는 저자의 확고한 주관을 보는 맛이 있다. 방향성이 확고하게 밑간이 된 음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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