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oy Suit
마치 학창 시절의 명랑한 교복같이 소년미 낙낙한 쇼츠 수트가 이번 시즌의 화두다. 대체로 오버사이즈 형태의 클래식한 재킷에 허벅지를 훤히 드러내는 마이크로 쇼츠, 혹은 무릎을 살짝 덮는 버뮤다팬츠를 매치하는 식. 퍼렐 윌리엄스는 그의 첫 번째 루이 비통 컬렉션에서 버뮤다팬츠에 레인부츠나 메리제인 슈즈를 매치해 재기 발랄하고 분방하면서도 완벽한 테일러링을 갖춘 보이 수트를 선보였다. 발렌티노는 지난 시즌 공개한 블랙 타이의 연장선으로 좁은 타이를 매치했고, 프라다는 가는 허리선을 강조한 짧고 천진한 쇼츠를, 드리스 반 노튼은 언제나처럼 여유롭고 느슨한 실루엣으로, 폴 스미스는 포멀한 수트 상의에 트렁크를 조합하는 위트를 더했다.
Workwear Vest
아마도 이번 시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건 프라다의 베스트가 아닐까. 다양한 사이즈의 아웃포켓을 갖춘, 어딘가 익숙한 디자인의 베스트. 때마침 산업용 메시 강철로 이뤄진 런웨이는 천장에서 슬라임이 흘러내리며 무형의 벽을 이루었고, 그 앞으로 등장한 넉넉한 데님 팬츠와 빨간색 멀티 포켓 베스트 룩은 왠지 덤덤하여 더 강인하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실제 산업현장에서 마주해도 결코 어색하지 않은 완벽한 작업복의 형태. 프라다는 혁명의 선봉이었고, 헤드 메이너, 지방시, 1017 알릭스 9SM 등이 각자의 스타일대로 변형한 디자인으로 새로운 행렬에 동참했다.
New Shapes
이런 조형적인 실루엣이 남성 컬렉션에 등장하는 건 생경한 장면이긴 하다. 그럼에도 종이를 접거나 구겨놓은 듯, 도형에 가까운 단순하고 미니멀한 실루엣은 분명히 새롭지만 요란하거나 낯설지 않았다. 특히 공예에 조예가 깊은 로에베, 조너선 앤더슨은 발군의 실력을 드러냈다. 하나의 원단을 둘둘 말아 큼직한 바늘을 꽂아놓은 톱이 로에베식 판타지라면, 볼륨감을 살려 몸을 동여맨 듯한 슬리브리스나, 네모난 조각을 덧붙인 카디건, 쇼츠 등은 귀여운 현실이었다. JW 앤더슨에서도 종이를 오려놓은 것처럼 보이는 드레스나, 도형을 엮어서 완성한 니트 베스트를 선보였다. 에곤랩은 3D 프린트로 재현한 듯한 단단한 소재감으로 드레이프가 바람에 날리는 형태의 언밸런스 톱을 선보였는데, 포멀한 블랙 팬츠와 매치해 오히려 우아하고 점잖았다.
Tapered Waist
침체된 시기를 지나오며 지속적으로 강조되었던 편안하고 익숙한 실루엣, 속옷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로라이즈에 반하는 포멀하고 각 잡힌 라인, 한 치 오차 없이 높고 가는 허리를 강조하는 테이퍼드 웨이스트 팬츠들이 대거 등장했다. 단순히 하이웨이스트라기엔 허릿단은 명치에 닿을 듯이 좀 더 높이 더 가늘게 조였고, 상의를 하의에 넣어 입어 가는 허리를 한 번 더 강조했다. 프라다, 생 로랑은 오버숄더, 풍성한 볼륨감의 셔츠와 매치해 드라마틱한 효과를 연출했다. 로에베의 데님들은 바지춤을 한껏 잡아 올린 듯 밑위가 높고 길었고, 상대적으로 짧거나 품이 좁은 상의를 입어 어안렌즈로 보는 듯한 과장된 실루엣을 완성했다.
One and Done
이번 시즌 런웨이에 등장한 트렌드 중 아주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아이템을 고르자면 단연 점프수트. 브랜드마다 고유의 개성과 테마를 녹이기에 단 한 벌로 충분한 점프수트는 이번 시즌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롭다. 실루엣에 집중한 로에베는 보드라운 가죽을 최소한으로 재단한 듯한 튜닉 스타일의 점프수트를 내놓았고, 이브닝웨어로도 손색없는 지방시의 우아한 화이트 테일러드 룩과 엘비스 프레슬리 스타일을 계승해 복고적이고 과감한 매력이 돋보이는 카사블랑카의 점프수트도 인상 깊었다. 하이웨이스트와 턱인, 핫팬츠 등 신체와 실루엣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올봄/여름 트렌드 사이에서 오히려 신선한 면도 있는 데다, 웨어러블한 선택지가 될 거다.
Thigh High Fits
올여름 쇼츠는 더없이 짧고 타이트한 디자인이 추세다. 마이크로 미니 팬츠로 불러도 될 만큼 허벅지를 과감히 드러낸 한 뼘 쇼츠가 주를 이뤘다. 디올 맨과 아미, 페라가모의 군더더기 없는 쇼츠가 클래식한 테니스 쇼츠처럼 프레피한 무드라면, 돌체앤가바나와 준지에 등장한 핫팬츠는 자유롭고 건강미 넘친다. 쇼츠와 빅 토트백 조합으로 낭만적인 여름 바캉스 룩을 연출한 에르메스와 실키한 코트에 카고 쇼츠를 조합한 드리스 반 노튼의 탁월한 스타일링도 참고할 만하다. 프라다는 하이웨이스트로 한껏 올린 허리선에 맞게 바지 밑단을 바짝 올려 한 뼘 트렌드에 동참했다.
Silky and Airy
이번 시즌 런웨이에서는 한여름 하와이안셔츠보다 시스루 아이템이 유행했다. 생경해서 되려 섹슈얼하게 여겨졌던 시스루 소재는 쇼츠처럼 새로운 노출 방식으로 봐도 무방할 만큼 메인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은근하게 비치는 실크와 오간자 소재, 얄팍한 니트, 여리고 아슬아슬한 레이스 소재까지 종류 역시 다양하다. 생 로랑과 드리스 반 노튼, 에르메스, 아미는 가볍게 흔들리는 시스루 소재로 절제된 우아함을 보여줬다. 반대로 컬렉션 전체를 올 블랙 룩으로 완성한 릭 오웬스는 시스루 톱으로 블랙의 농담을 이용해 남성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팔로모 스페인과 디스퀘어드2 런웨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수와 레이스 룩, 돌체앤가바나의 섬세한 자수 디테일이 놓인 수트처럼 화려하고 페미닌한 시스루 스타일은 모델의 탄탄한 몸을 더욱 강조하는 장신구처럼 보였다.
Fluffy Things
양감과 질감이 풍성한 룩들이 런웨이에서 통통 튀는 에너지를 발했다. 에트로와 JW 앤더슨 쇼에 등장한 여름 소년들의 걸음마다 경쾌하게 흔들리는 청키한 태슬 톱과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 꼼 데 가르송 옴므 플러스의 나풀거리는 깃털 스커트가 그러했다. 프라다의 워크웨어 베스트 군단에서도, 지방시의 핑크 후디 톱에서도 계절과는 다소 동떨어진 짧은 퍼가 목격됐다. 이런 소재들의 주무대인 F/W 시즌만큼 드라마틱한 비중은 아니더라도 진부한 건 참을 수 없는 패션 브랜드의 재기 발랄한 반항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Blooming Flower
봄과 여름의 피할 수 없는 클리셰, 플라워 모티브가 만발했다. 눈에 띄게 생경한 것은 없었으나 저마다의 개성과 취향을 담은 방식이 돋보였다. 발렌티노는 각양각색의 꽃을 수놓거나 프린트해 가장 다양한 변주를 뽐냈다. 그중에서도 마치 타이처럼 셔츠를 타고 흐르는 한 송이의 꽃은 더없이 우아하고 서정적이었다. 이국적인 꽃 프린트로 오래된 양탄자같이 빈티지한 느낌을 완성한 에트로, 외계 식물처럼 별난 꽃들을 장식한 셔츠를 소개한 프라다 등이 동참했다. 방법은 제각각이나 곳곳이 돌아온 계절의 환희로 가득하다는 것만은 모두 같았다.
Halter Neck
지난 시즌 탱크톱의 인기에 힘입어 어깨 라인을 시원하게 드러낸 홀터넥이 강렬한 기세로 등장했다. 여성복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전형적인 홀터넥으로 가늘고 여린 몸의 실루엣을 그대로 드러내는가 하면, 셔츠나 재킷의 일부를 도려내 디자인의 원형만을 차용한 것도 볼 수 있었다. 남성복과는 거리가 멀었던 홀터넥의 출현은 성별의 해방을 향해 또 한 걸음 나아간다는 증거가 아닐까.
Glitter Bomb
번득이는 햇살 아래서 영롱한 빛을 발할 스팽글과 비즈, 크리스털을 수놓은 옷들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왔다. 아미와 로에베는 대부분 미니멀한 실루엣의 재킷이나 셔츠, 팬츠 위에 촘촘하게 채워 넣어 반짝이는 장식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반면 반짝이 특유의 화려함과 요란함을 즐기고 싶은 이들을 위해 구찌는 미러볼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룩을 선보였고, 아찔한 스팽글 브리프에 귀여운 문구의 시스루 톱을 매치한 아쉬시식 위트도 흥미로웠다.
Crochet Crush
무더운 여름에도 니트를 입을 수 있다. 성글고 느슨하게 짠 크로셰 니트라면 가능한 일이다. 복고적이고 젠더리스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다면 디스퀘어드2와 마린 세르의 크롭트 디자인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 때로는 테일러링과 의외로 좋은 궁합을 이루는 발렌티노의 크로셰 코트를 우아하게 걸쳐보는 것도 추천한다. 안전한 노선을 원한다면 아미리와 이자벨 마랑, 보디의 룩들을 참고해보자. 이렇듯 컬러와 디자인, 그리고 스타일링에 따라 달라지는 변화무쌍한 매력 덕분에 크로셰 니트의 인기는 올해도 여전히 유효할 예정이다.
Wild Animal Print
거칠고 제멋대로지만 그만큼 강렬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애니멀 프린트가 강세다. 꽤 닮은 디올과 웨일즈 보너의 룩은 수렵시대에 입었을 법한 슬리브리스와 짧은 쇼츠를 매치해 귀엽고 경쾌하게 완성했다. 두 브랜드가 주행성 동물 같다면, 생 로랑은 완전한 야행성 동물을 연상시켰다. 허리를 질끈 조인 레오퍼드 패턴의 트렌치코트와 날씬한 팬츠, 그리고 날렵한 부츠가 완벽히 어우러져 어둠 속에서 눈을 번득이는 맹수 느낌을 물씬 풍겼다.
With Tweed
트위드 소재를 적극 활용한 브랜드들이 포착됐다. 샤넬의 트위드 재킷이 연상되는 이미지 때문인지 고급스럽고 호화로워 보이지만, 트위드는 원래 농부를 위한 실용적인 직물이었다. 디올 맨은 이렇게 튼튼하고 활용도가 높은 트위드를 의류부터 신발, 가방 등 다채로운 카테고리에 적용했고, 아미리도 트위드로 단정하고 편안한 실루엣의 셋업 수트를 만들었다. 조금 다른 방향을 택한 디스퀘어드2는 데님 소재를 더해 스포티하고 캐주얼한 Y2K 스타일을 완성했다. 아직은 깊숙이 와닿는 트렌드는 아니지만 빠른 시일 내에 주류로 진입할 것 같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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