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파타고니아 입사 21년 차라고 들었습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저는 홀세일 영업사원으로 시작했어요. 픽업트럭에 샘플을 가득 싣고 남부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네바다, 유타를 돌아다니는 게 제 일이었죠. 주로 클라이밍, 서핑 기어 위주였습니다. 그 뒤로는 신사업 개발팀, 스태프 트레이닝을 담당했고, 아시아태평양 총괄 이사가 된 지는 13년 정도 됐네요.
원래 프로 요트 선수로 활동하셨죠. 처음 입사 당시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프로 시절에는 아메리카스 컵에서 활동했어요. 시즌이 끝나고 4개월 정도 여유가 생겨 친구들과 캘리포니아에 서핑하러 갔습니다. 그곳에서 우연히 리치 힐을 만났죠. 리치는 당시 파타고니아 세일즈 부사장이었는데 그 만남이 계기가 됐어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제가 왜 파타고니아에 들어갔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웃음) 다만 제가 파타고니아에 입사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과 친구들이 “너 지금 무슨 말 하는 거냐?” 했던 것만 기억나요. 의류 매장에서는 일해본 적도 없고 옷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으니까요. 심지어 제 직업에 정말 만족하고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입사를 결정했고, 정말 큰 행운으로 여기고 있어요.
그전까지는 파타고니아에서 일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셨겠네요.
맞아요. 하지만 파타고니아와 인연을 맺은 지는 꽤 오래됐어요. 16세 무렵에 파타고니아 카탈로그에 나온 적이 있거든요. 제가 살던 하와이에 마우나케아산이 있어요. 해발 4,000m가 넘는 산인데 스노보드를 탈 수 있습니다. 그 설산에서 제가 스노보드를 타던 모습을 포토그래퍼 존 러셀이 찍었어요. 그 사진이 파타고니아 카탈로그에 실린 거죠.
파타고니아는 입사 면접을 볼 때 서핑이나 클라이밍을 잘하면 가산점이 있습니까?
가끔 물어보는 경우는 있지만 별도 가산점은 없습니다.(웃음) 다만 입사 후에도 스포츠를 즐기는 걸 권장해요. 파타고니아 본사는 캘리포니아 벤투라 해변 근처에 있어요. 다들 파도만 기다립니다. 파도가 좋으면 전부 나가서 서핑하거든요. 회사에서도 그걸 권장해요.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자연을 지켜야겠다는 생각도 커질 테니까요.
파타고니아는 이직률이 굉장히 낮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한 복지 혜택이 있나요?
방금 말씀드린 것도 복지라고 할 수 있겠죠. 사실 복지라기보다 저희의 문화이자 철학이에요. 입사 초창기였던 2003년에 잡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그 칼럼에도 “파도가 치면 사무실이 빈다”라고 했습니다. 본사 직원들은 아침에 아이, 강아지와 함께 출근합니다. 본사 캠퍼스의 절반이 사내 어린이집이거든요. 출장이 있을 때는 베이비시터를 지원하고, 미국처럼 보험제도가 취약한 경우에는 건강 관리 비용을 제공하기도 해요.
저부터 당장 입사하고 싶네요.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하는 복지는 무엇인가요?
제가 느끼는 최고의 복지는 직원들에게 ‘일하는 의미’를 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회사원들은 ‘마케팅 업무를 맡는다’ ‘디자인을 담당한다’는 식으로 일하잖아요. 파타고니아는 직원들이 담당 업무에서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회사라고 생각해요.
지난해 파타고니아 이본 쉬나드 회장이 지분 100%를 기부해 화제가 됐어요. 당시 경영진에서 반대하는 목소리는 없었나요?
전혀 없었습니다. 사실 내부적으로는 그렇게 놀라운 일도 아니었어요. 이본은 파타고니아를 운영하면서 늘 두 가지를 강조했어요. 자연을 보호할 것. 다른 사업자에게 영감을 줄 것. 우리만 할 게 아니라 경쟁자도 자연보호 활동에 동참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게 이본의 원칙이었어요. 그걸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결단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30억 달러에 달하는 지분 기부 이후, 파타고니아 환경 캠페인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프로젝트의 단위가 달라졌죠. 파타고니아는 오래전부터 매출 1%를 환경단체에 기부해왔어요. 그런데 지배구조 개편 이후로는 기존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지원이 가능해졌어요. 예를 들어 미국에서 환경오염이 우려되는 구역이 있다. 그러면 통째로 그 땅을 사버리면 됩니다. 거기에 들어가서 환경 재생 사업을 벌이는 거죠. 그런 일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어요.
대단히 좋은 취지라고 생각하지만, 제품을 팔고 수익을 내야 하는 회사 입장에서 염려는 없나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해요. 지분 100%를 환경단체에 기부한 순간, 파타고니아를 살 때 환경 보호에 동참하게 된다는 명분이 생겼거든요. 옷을 사는 게 아니라 환경보호에 투자하는 셈이 되는 거죠. 그런 점에서 고객을 설득하기 더 좋아졌죠.
파타고니아는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 ‘파타고니아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입니다’ 슬로건으로도 유명하죠. 이런 문구만 작성하는 전문 팀이 따로 있습니까?
카피라이팅팀이 있긴 하지만, 두 문구는 그 팀에서 만든 게 아니에요.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는 파타고니아 창립 멤버인 릭 리지웨이가 평소 하던 말을 그대로 가져다 쓴 거예요. ‘파타고니아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입니다’는 파타고니아 창업자 이본이 직원들에게 쓴 편지에 적혀 있던 말이고요. 마케팅 문구가 아닙니다. 그냥 우리 머릿속에 늘 들어 있던 생각을 글로 옮긴 거예요. 그 문구가 통한 건 마케팅이 아닌 실제 저희의 평소 철학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파타고니아는 ‘적게 구매하고 더 많이 요구하십시오’라고 말하잖아요. 그걸 실현하기 위해 내구성만 연구하는 전담 팀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캘리포니아 본사에 포지(Forge, 대장간)라고 부르는 연구실이 있어요. 말씀드렸듯 이본은 원래 대장장이였어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우리는 제품을 개발하는 연구실을 포지라고 부릅니다. 방수, 투습, 내구성 등 모든 기능성 관련 연구가 그곳에서 진행되죠.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는 옷을 적게 사고 오래 입는 것이 중요해요. 우리가 튼튼한 옷을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내구성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사님께서 갖고 계신 파타고니아 제품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얼마나 됐나요?
제가 12세 무렵에 어머니가 빨간색 스냅티 스웨트 셔츠를 하나 사주셨어요. 38년 정도 됐네요. 물론 지금도 입습니다. 제가 대학교에 다닐 동안은 아버지가 입으셨는데 다시 돌려받아서 입고 있어요.(웃음)
옷장이 아니라 박물관에 들어가야 할 정도네요.
저희끼리는 ‘옷에 스피릿이 깃든다’는 말을 자주 해요. 캠핑을 하다 불에 그을리기도 하고, 암벽등반하다가 쓸리기도 하고. 그렇게 남은 흔적이 다 이야깃거리잖아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의 이야기고요. 지금 유행하는 옷들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아요. 깊은 이야기가 녹아들 때 그 옷이 흥미로워지죠.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에서 특히 인기 있는 제품이 있나요?
한국에서는 레트로 엑스가 특히 많이 팔려요. 양털 재킷이라고 하죠? 요즘에는 좀 더 모던하고 테크니컬한 제품들도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에요. 한국은 패션 트렌드가 굉장히 빠르게 변하잖아요. 그럼에도 우리의 가장 오래되고 클래식한 디자인을 사랑해주시니까요. 모두가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할 때 슬로 브랜드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파타고니아는 환경단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사님께서 정의하는 파타고니아는 어떤 브랜드인가요?
정의 내리지 않습니다.(웃음) 파타고니아의 핵심 가치는 다양성이라고 생각해요. 직원도 그렇게 뽑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시스템이 보장될 때 자연보호에 대한 사명을 더욱 잘 지켜나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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