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잡지의 밤
잡지에는 매달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물건이 등장한다. 그런 잡지에도 바뀌지 않는 전통이 있다. <아레나>의 전통은 에이어워즈다. 에이어워즈는 한 해 동안 괄목할 성과를 낸 인물들을 조명하는 <아레나>만의 축제이자 연하장이다. 2023 에이어워즈 수상자는 한국의 젊은 필름메이커 4인방 <콘크리트 유토피아> 엄태화, <마스크걸> 김용훈, 한준희, <잠> 유재선 감독이다. 에이어워즈 시상식이 끝난 뒤, 우리는 특별한 시간을 갖기로 했다. 장소는 까르띠에 메종 청담 5층에 마련된 라 레지당스. ‘살롱 드 시네마’라는 이름으로 마련된 이번 토크쇼에는 <아레나> 이주영 편집장과 <콘트리트 유토피아> 엄태화 감독이 호스트로 나섰다. 두 호스트는 직접 <아레나> 독자들을 맞아 영화와 잡지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좋은 영화는 좋은 질문을 남긴다
살롱 드 시네마가 열리기 일주일 전.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제59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해 6관왕을 차지했다. 앞서 또 다른 희소식도 있었다. 오는 3월 열리는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 부문에 한국 출품작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이다. 지난해 출품된 한국 영화는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헤어질 결심>. 여태껏 국제장편영화 출품작으로 선정된 영화들은 하나같이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방점을 찍었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이창동 감독의 <밀양>,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그렇다. 좋은 영화는 언제나 좋은 질문을 남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엔딩 스크린이 올라갈 때면 관객은 생각에 잠긴다.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어버린 서울에서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아파트. 그곳에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남을 것인가? 작품 속 어느 주인공의 편을 들 것인가? 이 이야기를 만든 인간 엄태화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어느 형제의 이야기
토크쇼는 엄태화 감독의 자기소개로 시작됐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했지만, 성인이 되기까지 진지하게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CF 현장과 영화 미술팀 현장에서 일했던 그는 ‘글을 영상으로 옮기는 작업이 되게 매력적이구나’ 생각을 했고, 그 일을 계기로 영화 연출부에 들어갔다. 그때 참여한 작품이 박찬욱 감독의 2004년작 <쓰리, 몬스터>이다. 살롱 드 시네마의 한 챕터는 형제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엄태화 감독과 그의 페르소나인 배우 엄태구의 이야기다. 배우 엄태구는 영화감독 엄태화의 모든 장편영화에 출연했다. 엄태구는 이번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짧은 분량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름 없는 부랑자 역할을 맡았다. 엄태화 감독이 배우 엄태구를 페르소나로 삼은 건 단순히 동생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성실함이 가장 큰 무기인 배우죠. 때로는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는 거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연습을 해요. 동시에 동물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함께 TV 앞에 앉아 <터미네이터>를 보던 형제는 이제 충무로에서 가장 조명받는 듀오가 됐다.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열린 결말로 끝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저마다 몰입한 인물의 편에 서서 그들을 변호하기 시작한다. 엄태화 감독은 처음부터 관객의 의견 충돌을 염두에 두고 각본을 썼다고 했다. “4인 가족이 영화를 보러 왔다가 서로 의견이 갈려서 분열됐다는 리뷰를 본 적이 있어요. 각자 다른 인물에게 감정이입하셨던 거죠. 영화를 만들 때도 그렇게 봐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마다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고 토론하길 바랐거든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우리가 공존할 수 있는,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면 어떻게 살아야 될까?’ 생각할 수 있잖아요.” 마지막으로 엄태화 감독은 이미 다수의 차기작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다음 작품이 어디로 향할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이번 토크쇼를 통해 적어도 두 가지는 장담할 수 있게 됐다. 하나는 엄태구 배우가 등장할 거라는 것. 다른 하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만든 엄태화의 신작’으로 소개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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