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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만에 재회를 한 날은 그가 중국에서 돌아온 첫날이었다. 지난해부터 그는 국외에서 촬영을 하면서 너무나 사랑하는 영화의 파워를 실감하는 중이다. 언어와 국경을 뛰어넘는 영화라는 언어, 그리고 영화라는 목표를 가진 다국적 사람과의 촬영(영화 <데이지>는 홍콩의 유위강 감독이 연출을 했고, 시나리오는 곽재용 감독이 썼으며, 정우성·이성재·전지현이란 국내 배우와 네덜란드 현지에서 네덜란드 스태프와 촬영했다)으로 무엇보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훌쩍 중국으로 떠나 3개월째 생활하는 중이다. 4년 전, 영화 <무사>로 중국에서 그렇게 고생을 하고도 ‘또 다시 중국’이냐는 의문에 망설임 없이 답한다. “고생스럽지 않았어요.” 정우성다운 특유한 말투에는 ‘정정’, ‘반발’, ‘의문’ 이라는 어떤 감정도 묻어 있지 않다. 상대방을 응시하는 또렷한 눈망울은 한 치의 주저함도 없고, 악수를 나누는 손 안에 진심을 담는 듯하다. 그렇지만 이번 중국에서의 촬영은 그를 조금 변모시켰다. 캐릭터가 주는 느낌이 아니라 제작 환경이 준 변화다. 데뷔 때부터 자랑하던 타고난 ‘우윳빛 살결’은 가무잡잡한 피부 톤이 되었고, 지속되는 밤 촬영으로 얼굴과 몸은 얼핏 보기에도 축이 나 보였다. ‘살이 많이 빠졌다’는 반응에는 ‘그런가’라는 몸짓으로 스스로의 몸을 관조적인 리듬을 타면서 훑어내릴 뿐이다. 그래서 대중은 곡해한다. 멋지게 자신을 포장하는 ‘완벽한 설정’이라고. 두 번째 그를 만난 날, 첫 질문을 이렇게 시작했다. “스타로서 아니 배우로서 설정이나 전략이 있을 것 같다.” “없어요. 그런 게 있었다면 벌써 들켜버렸겠지. 그런 게 단지 관리만으로 되기는 어렵지 않나. 그 대신 목표는 있었죠. 영화감독.” “‘당신을 두고 ‘낯가림이 심한 배우’면서 소탈한 성격이라고 하던데. 소탈한 이미지와 정우성을 매치하기는 꽤 어렵다.” “그건 영화 현장에서 보이는 내 태도 때문일 거예요. 나는 어느 공간에 있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고 받아들여요. 환경적으로 불편한 것에 불평하지 않는 내 스타일 때문이죠. 오히려 사람과의 만남에서 굉장히 까다롭지. 내 마음의 문을 열기는 쉽지 않아요. 솔직히 난 상대방을 상대적으로 대하는 편이에요.” “상대적으로 대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배우라는 정우성에게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다가오는지 그런 게 보여요. 그런 사람에게는 딱 그만큼만. 아니 그가 원하는 방식과 방법으로 대하죠. 난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당신은 스물네 살 때도 지금처럼 보였다. 찬란한 청춘이었으나 당신만이 가진 어떤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고, 입도 무거웠고, 눈동자도 깊었고. 아! 그 독특한 분위기는 남과 성장기가 달랐기 때문인가?” “일찍부터 난 아르바이트를 통해 사회생활을 했죠. 당시 주어진 경제적인 어려움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었기에 난 불행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공허한 외로움은 있었죠. 언제나 난 말했죠. ‘나는 괜찮아’라고. 사회를 보는 눈은 긍정적이었어요. 비관적이었다면 거리의 부랑아나 싸움꾼이 되었겠죠. 또래 친구 사이에서도 어느새 난 소리 없이 친구의 문제를 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어요. 물론 완력이나 돈이 아니었죠.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달라졌어요. 그때보다 사랑에 대한 환상이 깨졌죠.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손실된 느낌이 들어요. 20대는 어느 옷이 어울리는지도 모르면서 폼 나게 입으려고만 했죠. 지금의 난 어울리는 옷을 찾았고, 그리고 더욱 멋있게 보여주고 싶은 느낌이에요. 애(愛)는 바랐는지 모르겠으나 희(喜), 노(怒)와 진정한 낙(樂)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당신과 친해지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 느낌이 단박에 통한 운이 좋은 사람이 있다면?” “동료로서는 정재. 영화 <태양은 없다>를 할 때 만났는데 그때는 김성수와 정우성이라는 낯선 공간에 들어오는 배우에 대한 배려심이 커서 내가 적극적으로 다가갔죠. 첫 만남에서 필이 통한 사람은 여명. 부산국제영화제 때 영화 <모텔 선인장> 파티에서 만났죠. 그는 나보다 일곱 살 연상이었지만 친구가 되었죠. 솔직히 난 상대적으로 대하면서 상대방의 페이스를 맞춰주는 스타일이에요. 시끌벅적하게 술을 마시는 동료를 만나면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술자리를 가지고, 또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그가 원하는 스타일에 맞춰주죠. 그렇다고 내가 그 스타일에 동화되거나 영향을 받진 않아요. 난 어떤 카테고리 안에 묶이지 않으며 또 누군가를 묶으려 하지 않아요. 난, 참 웃기는 놈이에요.” “지금까지 몇 명의 지인이 있나? 정우성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들.” “열 명 안팎. 난 한 사람을 제대로 아는데도 굉장히 힘이 들고 긴 세월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라는 사람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나의 슬프고 기쁘고 쓸쓸한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나의 진정한 친구죠.” “사람에 대해 까다로운 성향을 가진 당신이라서 친구에 대한 애정 표현은 특별한가?” “얼마 전, 중국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미국에 있는 친구가 나를 만나러 온 거예요. 어떤 언질도 약속도 없었는데. 그 녀석이 내 앞에 있는 거예요. ‘어, 왔구나.’ 그냥 그랬어요. ‘웬일이야’, ‘어떻게 여기에 왔니’라는 말은 하지 않죠. 그러나 그가 사라지는 뒷모습까지 소리 없이 배웅해요.”
그에게는 아이로니컬한 요소가 제법 많다. 배우로서 디테일한 감정 표현에 주력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정작 일상생활에서 표현은 아날로그적이며 모놀로그적인 성향이 짙다. 낯가림이 심하다지만 낯선 사람 앞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거나 불편한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이 눈치 채지 못하게 넘치지도 않으면서 모자라지도 않는 남자가 정우성이다. 곽경택 감독의 말처럼 그는 웃고 있지만 웃지 않는 그 눈망울로 상대의 대화를 들으며 즐겁게 관찰하는 것이다. 빡빡한 스케줄로 두 번째 만남을 접으면서 배우 정우성과 인간 정우성은 진정으로 표리 일치할지 모른다는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그는 수선스럽지 않게 긴 시간 동안 상대방을 자기 스타일로 만드는 것처럼, 배우로서 조용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지는 않을까라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중국에 있는 그에게 전화 인터뷰를 요청했다. 배우 정우성이라는 이미지 안에 갇힌 인간 정우성의 진심이 알 듯 말 듯 머릿속에서 쥐락펴락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확인 작업이 필요했다.
“당신은 영화 작업이 즐겁다고 했는데….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표현처럼 들렸다. 생각해보니 그건 당신이 늘 주인공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닌가. 당신이 소중하다고 한 영화 <비트> 때부터 말이다. ” “하하, 맞아요. 영화 <비트>를 끝내고 시나리오를 썼고 그것을 김성수 감독에게 보여주었어요. 성장기 아이들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고 위로가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근데 나이가 들면서 관심사가 점점 달라지고 감정이 유연해져 성장기의 경험과 감정이 자꾸 퇴색하는 게 안타까워요.” “당신은 오늘까지 산간벽지에서 전등이 없는 화장실을 사용하다 내일 뉴욕 소호의 핫한 지역의 파티에 참석할 예정이다. 그 공간에 있는 당신은 전혀 당황해 하지 않으며 낯설어하지 않는다. 그런가? 당신이란 사람?” “하하, 잘 아네. 맞아요. 내가 정치인이 되었다면 공자의 말처럼 주변의 사람을 즐겁게 해서 멀리 있는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것처럼 했을 거예요.” “당신을 보고 일상이 노출되지 않은 배우라고 한다. 근데 당신은 의도적으로 일상을 노출하지 않기보다는 노출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맞아요. 난 영화 현장에 있는 것 외에는 노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요. 나는 현장 분위기를 그냥 흡수하는 배우예요. 내가 그 공간으로 들어가서 맞춰가는 스타일인 것이죠.” “당신, 화가 나지 않나? 아직까지 사람들은 당신의 연기보다는 얼굴을 보려 하고 이미지 안에 가두려고 한다. 잘생긴 배우라는 주술, 풀고 싶지 않나?” “하하하! 솔직히 ‘갈증’은 있지만 ‘욕심’은 없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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