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나 인문학은 시대 배경이나 인물의 삶을 통해 이해되는데 과학은 그렇지 않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하셨죠. 동감합니다.
대학교 와서 제일 좋았던 게 다른 과 과목을 들을 수 있다는 거였어요. 예술대 과목과 경제학과 과목도 들었어요. 놀랍게도 그 강의는 시대와 인생을 알려줬습니다. 고흐의 시대와 그의 인생이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설명하면 저런 작품이 나오겠구나 싶죠. 이과 계통 과목은 대부분 전후좌우 이야기를 안 해요. 방정식이 나오죠. 과학자도 사람이었으니 그 시대의 고민이 있고 그게 자기 업적에 투영되었을 텐데요. 그때부터 고민됐어요. 방황도 했고요.
어떤 방황을 하셨습니까?
전공 공부 거의 안 했어요. 유체역학 학부 때는 D를 받았을 거예요. 방황하다가 대학원에 들어갔죠. 대학원에서 교수님이나 선배 연구자와 밀착되며 재미를 느꼈어요. 맥락을 더 알게 되고, 실제 문제를 풀기도 하고요. 대학원 때는 실제로 남들이 안 한 걸 하게 됩니다. 제가 제일 싫었던 게 남들이 푼 문제를 푸는 거였습니다. 그건 고등학교 때 이미 신물 나게 했거든요. 답이 다 나와 있는 걸 대학 정도 들어간 사람들이 왜 풀고 앉아 있는가 싶었어요. 석사와 박사 때는 진짜 문제, 남들이 한 번도 못 푼 문제를 풀었습니다. 되게 신나는 일이거든요. 내가 풀면 세계 최초죠. 논문에 실리고.
뭔가 이유가 있어야 하는 성격이시군요. 모티베이션이 무엇이었습니까?
안 했던 걸 창조적으로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체역학의 역사인 <판타 레이>를 쓴 것도 그 일환이었습니까?
(관련) 자료를 오래 모았어요. 수십 년을 모아서 조금씩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줬습니다. 유체역학 전공 교수님들에게 반응이 좋았어요. 저는 기계학회 회원이라 이 글을 기계학회 저널에 발표했습니다. 그랬더니 제안이 와서 약 2년간 연재를 했어요. 어떤 면에서는 전공자를 위해, 제가 방황했던 시절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전공 공부가 어떠한 과목보다 재미있을 수 있고, 유체역학으로 세계사와 연결해 세상을 본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학생들에게 그런 모티베이션을 주려 했습니다.
마냥 대중서만은 아니었던 거네요.
전공자를 위해서 쓴 거예요. 책이 이야기처럼 풀어 쓰여 있으니 개념을 몰라도 되지만, 개념을 아는 사람들에게 이 책의 의미는 좀 클 겁니다. 아울러 교양과학의 편중이 심합니다. 한국의 교양과학은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에 편중되어 있어요. 이 학문이 나온 게 1905년이거든요. 옛날이야기 같은 면이 있습니다. 계속 발전하는 학문이지만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최신 이론인 것처럼 말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잘 안 됐어요. 과학에도 많은 분야가 있는데. 이제 한국도 세계 10대 경제대국이고 산업이 발달했는데 편중된 건 좋지 않아요.
기계공학을 전공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기계공학은 작동하는 물체의 기본을 배우는 공학의 기초입니다. 전공도 유체역학이었고, 저희 형님들께서 운영하는 회사에서 터보차저를 만들고 있거든요. 터보가 유체역학의 꽃입니다. 터보는 터빈으로 돌아가는 기계를 말하고, 터빈은 입체에서 힘을 받는 걸 말합니다. 대표적인 게 물레방아예요. 물레방아를 어려운 말로 하면 수력 터빈입니다. 바람개비는 풍력 터빈, 원자력 발전기는 원자력으로 물을 끓여서 돌리는 스팀 터빈, 화력발전은 가스 터빈이고요. 그것을 이용해 추력을 내면 터보제트엔진이죠. 그중 꽃이 터보차저예요.
왜 터보의 꽃이 터보차저입니까? 시장이나 생산 규모 때문인가요?
그렇습니다. 터보차저는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 때부터 시작된 기술입니다. 초기 비행기 엔진은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이었어요. 상공으로 올라가면 공기가 희박해 잘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배기가스 배출구에 터빈을 달면 가솔린 엔진에 들어가는 공기를 압축해 넣을 수 있고, 그러면 공기가 희박한 곳에서도 작동하겠죠. 그게 터보차저의 탄생이었고 항공기 기술에 보편화되었어요. 자동차 업계에서는 비싸서 못 쓰다가 1990년대에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며 (엔진 효율을 높여주는) 터보차저가 의무 장착됩니다. 지금 연간 자동차 생산량을 약 8천만 대로 잡는데, 터보 엔진 비율이 5천 만대쯤 됩니다. 역사상 터보 장치가 이렇게 많이 생산된 적은 없었습니다.
터보차저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기술은 무엇입니까? 소재 기술인가요?
터빈 쪽은 그렇습니다. 자동차 배기가스의 온도는 거의 1000℃에 육박합니다. 그 온도를 견디며 돌아가야 해요. 실제로 돌아가는 장면 보면 겁이 납니다. 빨갛게 달아오르거든요. 그래서 내열 합금을 만듭니다. 니켈을 섞는 ‘인코넬’ 합금을 씁니다. 반대쪽에서 공기를 압축하는 부분은 정밀 가공 기술이 중요합니다.
현재 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신 에스엔에이치의 기술은 세계 수준에 얼마나 부합합니까?
터보차저의 시장점유율이 약 50%쯤 되는 회사가 있습니다. 그 회사 제품에 들어가는 정밀가공 부품 생산사 중에서 5대 벤더 중 하나가 저희입니다. 생산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확장한다고 꼭 좋은 게 아닙니다. 확장을 안 했기 때문에 내연기관의 종말을 준비할 수 있죠. 확장에 치중했으면 힘들었을 거예요. 핵심은 자동차가 아니라 정밀가공 기술이니까, 정밀가공 기술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쌓아나가야겠죠.
정밀가공 기술은 향후 어떤 기술에 응용될까요?
애플 제품에서 가장 비싼 공정이 머시닝입니다. 애플은 ‘유니보디’를 많이 써요. 알루미늄을 통으로 깎아버리는 겁니다. 그걸 ‘풀리 머시닝’이라고 합니다. 5축 가공 기계의 성능도 좋아졌어요. 기계의 회전수도 예전에는 6,000~10,000rpm이었던 게 지금은 80,000rpm까지 높아졌거든요. 모터가 좋아지고 진동을 제어해 고속으로 깎아낼 수 있습니다. 고속으로 깎을 때의 부하를 이긴 채 치고 나가고요. 고속 가공기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났습니다. 일본의 화낙은 태핑 머신으로 고속 가공을 시작했어요. 애플이 그걸로 대량생산에 성공했습니다. 삼성도 따라가고 있고요. IT 기업이 절삭가공 기술을 많이 도입합니다. 저희도 이쪽 시장이 더 열릴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IT 기업에서는 왜 절삭가공이 필요합니까? 단조나 주조로는 안 되나요?
예를 들어 노트북의 LCD 패널은 약합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면 흔들거려 접촉 불량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요. 애플은 그 패널을 알루미늄 통으로 만들어요. 튼튼해지죠. 단조나 주조로는 그 정확성을 못 맞춰요. 프레스로 찍어도 나중엔 가공으로 맞추면 됩니다. 가공하느니 풀리 머시닝으로 다 깎는 게 낫죠. 빠르니까. 깎아내고 남은 건 99% 재생됩니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터보 기술도 있습니까?
다이슨입니다. 개인적으로 다이슨 제품을 보고 유체역학을 한 사람으로서 가슴 아프기도 했어요. 저 역시 터보 기술을 수십 년간 연구했는데 10년 전에 다이슨을 분해해보고 깜짝 놀랐어요. 터보 장치에서 바람의 힘을 받는 부분이 터빈, 힘을 주는 부분이 임펠러입니다. 임펠러 중 원심 임펠러가 있습니다. 이는 한 1백 년쯤 된 기술이고요. 터보차저에서도 원심 임펠러를 쓰거든요. 원심 임펠러를 반대로 돌리면 공기가 희박해지겠죠. 그게 다이슨 청소기입니다. 그걸 보고 ‘원심 임펠러가 공기 압축을 잘하는 걸 알면서 나는 반대로 돌릴 생각을 왜 안 했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든 따라가려 하는 순간 두 번째 제품이 나왔어요.
헤어드라이어군요.
다이슨 헤어드라이어는 축류 임펠러를 씁니다. 원심은 정면으로 공기가 들어와 원심 방향으로 나가는데 축류 임펠러는 공기가 들어가 그대로 축 방향으로 나갑니다. 대표적인 게 비행기 엔진이죠. 축류 임펠러는 압축력은 작아요. 그래서 비행기 엔진은 다단 축류 임펠러를 씁니다. 여러 단을 쓰면 압축력이 좋아지니까요. 그런데 다이슨 헤어드라이어는 축류 임펠러를 딱 하나만 쓰면 되죠. 한번도 그 생각을 못 한 거예요. 아침에 머리 말릴 때 시간이 드는데, 그때 온도를 올리면 머리가 탑니다. (머리를 말리기 좋도록) 풍량을 증대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축류 임펠러인 걸 저는 원리적으로 아는데 말예요. 반성하는 중 결정적으로 다이슨 에어랩이 나왔죠. 에어랩은 코안다 이펙트를 이용했습니다. 유체역학에서는 유명한 개념이에요. 왜 우리는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반성했습니다. 제임스 다이슨은 디자인 스쿨을 나왔어요.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이 있었겠죠.
맞습니다. 제임스 다이슨도 다양한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어요.
저 같은 엔지니어는 내가 하는 것만 쳐다봅니다. 스티브 잡스가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거든요. 기술을 이해하고, 다양한 면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졌고, 현대의 생산 기술이 어디까지 가는지 잘 알고 있는 거죠. 오히려 자기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었겠죠. 자기 분야를 고집하는 사람은 못 할 수도 있어요. 저도 늘 반성해요. 지금도 내가 못 찾아낸 응용 분야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어느 분야에서 너무나 상식적인데 안 써서 만들어지지 못하는 게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판타 레이>에서 한 이야기가 ‘다방면으로 보자’였어요.
수학적으로 확률이야 있겠죠.
자동차 회사에서 전기전자 쪽 사람들 많이 뽑죠. 전기자동차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자동차에 많은 장치가 전자화돼 있거든요. 서로 경계를 넘고 있어요. 지금은 21세기입니다.
<판타 레이>에 이어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을 집필하기로 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저희 아버지, 부모님 세대입니다. 저희 아버님이 지난달에 돌아가셨는데 아버님께 드리려고 한 책이었어요. <판타 레이>가 서양 과학사의 내용이라면 우리나라 과학에 대해서도 제가 조금씩 정리해둔 게 있었어요. 저희 아버지 세대를 기억하는 방식을 만들고 싶었고요. <국제시장>과 <태극기 휘날리며>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요. 저는 늦둥이기 때문에 아버님과 오래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들어보니 아버지도 청춘이 있었고 아버지의 청춘은 일제강점기였어요. 일본 유학을 하고, 한국전쟁을 겪고, 산업화를 하고, 아버지는 저 시대를 어떻게 견뎠을까 싶었어요. 우리가 맨날 아프다고 힘들다고 하는데 아버지 시대를 생각하면 지금은 징징대는 거예요. 저 아버지들은 무엇 때문에 저렇게 열심히 하셨을까.
아버지 세대에 대한 광의의 긍정이군요.
우리는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 시대를 어둡게만 생각해요. 근데 그걸 극복했던, 그 아픔을 극복했던 아버지도 있어요. 해방 후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어떻게 몇십 년 만에 10위권이 됐을까요? 우리나라 역사상 그렇게 갑자기 성장한 시기가 있었을까요? 엄청난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 세대가 미친 듯이 일한 건 아닐까요? 누군가가 자신이 뭔가를 선택했을 때 내 선택이 맞다는 걸 증명하는 방법은 딱 하나거든요. 내가 잘사는 거. 우리 아버지 세대가 그랬을 거고, (그 시대의 성공 방법이라 여겼던 게) 과학이었던 것 같아요. 책을 통해 보여주려 한 것도 그겁니다.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있어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나온 시대에 그걸 동시적으로 흡수하고, 누군가에게 알리고, ‘우리가 이걸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걸 신문 검색만 해보면 금방 알 수 있고요. 그 시대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의 동년배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우리가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실제 그때 엘리트는 분야를 넘어 과학과 공학에 대한 이해가 깊었습니다. 춘원 이광수 같은 사람도 상대성이론을 상당히 이해했다고 하셨죠.
서재필도 있고 윤치호도 있어요. 윤치호는 우리나라 최초로 엑스레이를 본 사람이거든요. 그때가 뢴트겐이 엑스레이를 개발한 지 불과 몇 달 뒤예요. 왜 베를린 가서 그걸 봤을까? 그날 (윤치호) 일기를 보면 시간이 얼마 없었어요. 그동안 베를린 박람회에서 본 거예요. 나라가 망했잖아요? 그럼 어떻게 합니까. 자포자기하고 세상 욕하고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자기가 그래도 사회 지도층인데. (그 사람들이) 무엇으로 (이 상황을) 극복하려고 했을까. 과학으로.
그게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에서 전하고 싶었던 주제인가요?
우리가 그냥 만들어진 나라는 아니라는 거죠. 운이 좋아서 돈을 벌 수는 있겠죠. 저력이 있다는 거 자체는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수많은 사람들의 기록이 여전히 남아 있어요.
분야에 따라 서양 자료보다 한국 자료를 찾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조선인 만난 아인슈타인> 자료 수집 과정 자체는 순조로우셨습니까?
국립중앙도서관이 신문을 전부 다 디지털화해서 검색할 수 있어요.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포털 검색으로도 다 찾을 수 있습니다. (옛날 신문) 검색해보면 됩니다.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치면 다 나옵니다. 모르는 사람 있으면 그 사람을 또 검색하고요.
실제로 답사도 많이 가셨습니까?
전남 보성에 있는 서재필 기념관이 감명 깊었습니다. 보성에는 채동선 음악당도 있는데 거기도 재미있고요, 부산에는 한국물리학회 창립지가 있어요. 동래에는 우장춘 기념관이 있고요. 우리 주위에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의 여러 등장인물 중에서도 황진남 선생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졌습니다. ‘조선인 최초로 아인슈타인을 만난 사람’으로 비중도 할애하셨고요. 전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황진남의 인생에 대해 마지막으로 증언하신 분이 KBS 전 아나운서 위진록 님입니다. 위진록 아나운서가 그의 마지막을 기록했어요. 제가 조사한 내용과 일치했습니다. 함흥에서 태어나 하와이에서 자라 캘리포니아에서 대학 나오고 상하이 임시정부에 합류했다가 독일 베를린에 갔고, 세계 대공황을 맞아 다시 소르본으로 가고 그런 내용이 한 페이지에 적혀 있었어요. 그 내용을 책에 정리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식민지 조선에 그런 풍운아가 있었다니.
함흥에 여러 사람이 등장해요. 이임학이라는 한국 최고의 수학자가 있습니다. 이극로 선생과 황진남도 베를린에 같이 있었고, 그게 겹쳐서 하와이로 넘어가면 도산 안창호 선생이 나오고, 그다음 캘리포니아에 가면 또 뭐가 나오고 황진남의 인생만 따라가도 ‘포레스트 검프’처럼 됩니다.
그런 삶을 들여다보면 인생이 뭔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 삶을 산 분인데 후손을 아직 못 찾았다고도 하셨죠.
제가 황진남 선생의 묘소를 찾은 계기가 역사학자 조준희 선생이었습니다. 그분 기사에 ‘조카가 있다고 하는데 연락이 안 된다’는 말이 나와요. 그런데 제가 작년에 유튜브에서 이 책의 계기가 된 광복절 특집 방송을 했어요. 어떤 분께서 거기에 답을 다셨어요. 황진남 조카라고. 그분 답글을 봐도 연락할 방법이 없잖아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과학을 왜 할까? 호기심으로 할까,
돈을 벌려고 할까? 그게 다는 아니지 않습니까?
미지의 영역을 새로 밝히고 규명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그것이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미덕이자
꿈임을 어린이에게 가르쳐주는 겁니다.
아이들은 그런 꿈을 꿔야 하거든요.
어른은 아이들의 꿈에 답할 의무감을 가져야 하고요.”
연락 달라고 답글을 달면 안 됩니까?
그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연락하는 게 맞는지도. 또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미묘한 부분이잖아요. 고민이 많습니다.
이야기를 따라다니며 만들다 보면 그런 고민의 순간이 오는 것 같아요. 내가 이야기를 적다가 이야기에 개입하게 될 때요.
그 거리를 두기가 힘들었어요. 후손들이 다 살아 계시거든요. 혹시 그분들께 뭔가 잘못되지 않을까. 서재필 박사님 후손과도 이메일을 주고받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김연수의 후손을 만났을 때도 그랬고요. 제가 굉장히 조심해야 돼요. 그런 것을 잘못 건드리면 서로 오해를 살 수 있습니다. 평가되고 기록되는 건 무서운 거예요. 기억되는 게 무섭기 때문에 제가 쓴 글 하나하나가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렇죠. 용기를 내신 거라 생각합니다.
용기, 그건 아버지 때문에 한 거죠. 아버지가 일기를 많이 남기셨거든요. 아버지도 언젠가는 그걸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저도 ‘이 세대가 다 가기 전에 내가 한번 말을 던져보자. 그러면 또 누군가가 또 거기에 대해서 화두를 던지겠지’라는 생각으로 책을 일부러 얇게 썼어요. 하루에 읽을 수 있도록. 큰 얼개만 만들어놓고 사람들이 그 빈 공간을 채워 넣을 수 있게 만들어보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정했어요. 어렵고 복잡하게 안 쓸 거고, 검색되고 검증 가능한 사진만 나열할 거라고. 논란거리 이런 건 다 빼고.
앞으로 다른 대중 서적을 쓸 계획도 있습니까?
책 쓸 계획은 원래 없었어요. <판타 레이>도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도 우연히 쓴 거라서요. 지금 대중서를 쓸 생각은 없고요, 원래 시리즈로 생각하던 책만 있습니다. 하나는 과학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예요. 음악 역사를 과학사의 발전으로 본 ‘음악의 공간사’라는 걸 생각했어요. 음악을 공간의 역사로 본 겁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아크로폴리스와 원형극장에서 출발해 로마네스크나 고딕 양식 시기에 음악이 어떻게 바뀌는지, 오페라극장이 생기면서 음악이 어떻게 바뀌는지 이런 게 있어요. (이 사고방식을) 지금의 방송미디어까지 연결하면 음악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또 하나는 과학과 경제에 관련된 겁니다. 열역학법칙이나 유체법칙에서 케인스의 유동성 같은 개념이 이해될 필요가 있어요. 그걸 확장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큰 책은 아니어도 몇몇 경제학자와 조금씩 이야기하고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작가와 엔지니어가 있습니까?
빅토르 위고를 좋아합니다. <레 미제라블>은 생각보다 아주 방대한 소설이에요. 읽어보면 (소설이라기보다는) 프랑스의 당시 사회사에 더 가깝습니다. 엔지니어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해가 필요해요. 엔지니어는 ‘엔진’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엔진은 시커먼 연기를 내는 게 아니라 라틴어 ‘인제니움’에서 온 말이에요. 인제니움은 새로운 물건입니다. 그래서 서양인에게 엔지니어라고 하면 크리에이터라고 이해합니다. 영화 <에이리언> 프리퀄 격인 <프로메테우스>에서도 인간을 창조한 외계 생명체를 엔지니어라고 부르고요. 제가 엔지니어로 좋아하는 사람 역시 독창적인 사람이에요.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와 제임스 다이슨이죠. 이 시대의 크리에이터잖아요. 둘은 세상을 바꿨습니다. 특히 스마트폰이 나오고 세상이 다 바뀌었습니다. 그 정도로 인류 문화를 바꾼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나중에 역사는 잡스를 제임스 와트라든지 헨리 포드 정도로 기록할 거예요.
<판타 레이>에는 5백 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이 가는 인물이 있습니까?
마이클 패러데이입니다. 패러데이는 정규학교 교육을 못 받았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쓴 글을 읽어보면 단어가 너무 명료하고 알기 쉽게 쓰여 있어요. 전자기 유도 현상을 발견한 대학자인데도 끝까지 겸손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패러데이의 강연 중 어린이에게 한 ‘양초 강연’ 원고를 읽다 눈물을 흘렸습니다. 양초 강연은 양초 안으로 불을 켜놓고 거기서 파라핀이 먹는 현상, 승화, 대류, 연소 반응, 광학, 화학 반응 등 모든 과학을 설명하는 강연이에요. 그 사람은 크리스마스의 어떤 서커스보다도 양초 강연이 더 재미있을 거라 자신했어요. 아이들을 모아놓고 말했습니다. “어떤 다이아몬드가 양초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양초는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나지만 다이아몬드는 양초가 빛을 비추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이 양초처럼 빛나길 원합니다. 여러분이 자라서 먼 미래에 양초처럼 빛을 밝혀 이웃에게 인류에 대한 미덕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다면 오늘 양초 강연은 보람될 것입니다.”
저도 <판타 레이>에서 언급한 그 말씀을 봤어요. 깊이 감동했습니다.
우리가 과학을 왜 할까? 호기심으로 할까, 돈을 벌려고 할까? 그게 다는 아니지 않습니까? 미지의 영역을 새로 밝히고 규명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그것이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미덕이자 꿈임을 어린이에게 가르쳐주는 겁니다. 아이들은 그런 꿈을 꿔야 하거든요. 어른은 아이들의 꿈에 답할 의무감을 가져야 하고요.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찾는 사람들은 자연히 역사에 남을 자기를 떠올릴 때가 있을 듯합니다. 박사님은 어떤 인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엔지니어로 기억되고 싶어요 터보를 진심으로 열심히 연구한 엔지니어로.
글 쓰는 엔지니어 민태기가 추천한 책 5권
<코스모스> 칼 세이건
내 인생을 바꾼 책. 여담으로 이 책에도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나온다. 경제학자가 아니라 뉴턴의 전기를 쓴 사람으로. 케인스보다 뉴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의 역사> 스티븐 호킹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코스모스>와 <시간의 역사>를 킥킥대며 읽었다. 이해를 못했던 거지.(웃음) 알았으면 킥킥대며 봤겠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아르놀트 하우저
이 책을 보면서 과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쓰겠다고 결심했다.
<More heat than light> 필립 미로브스키
경제학자 필립 미로브스키의 책. 과학의 역사로 경제 역사를 분석한 책이다. 어빙 피셔 같은 경제학자들이 열역학 방정식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등이 나온다.
<괴델, 에셔, 바흐> 더글라스 호프스태터
굉장히 흥미로운 책. 읽어보면 인공지능 열풍을 한 번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공지능을 ‘빠른 계산’으로만 생각하는 건 너무 좁은 범위의 정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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