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CH
한 세대 전의 브레게 드레스 워치
구교철 | 타임포럼 대표
흔히 말하는 하이엔드 브랜드에서는 이제 드레스 워치를 찾기 힘들다. 오데마 피게는 스포츠 워치밖에 없다. 랑에 운트 죄네는 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서 유쾌하지 않다. 파텍 필립도 가격이 많이 올랐고 디자인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바쉐론 콘스탄틴 역시 내 취향이 아니고 무브먼트 설계에 조금씩 모자란 부분들이 있다. 블랑팡과 예거 르쿨트르는 아직 하이엔드 브랜드라 부르기엔 완성도에서 한계가 있고. 그러니 브레게가 남는다. 브레게는 가격도 덜 올랐고 개념적으로도 가장 고전적이다. 브레게 시계에서 볼 수 있는 다이얼 디테일인 기요셰 다이얼이나 에나멜 다이얼 등 수공예적 요소를 기본으로 삼는 브랜드가 요즘은 없다. 케이스 디테일을 봐도 브레게의 디테일은 손이 많이 가는 것이다. 그런 중에도 브레게는 자신들의 전통이었던 혁신을 계속하고 있다. 창립자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가 해왔던 것처럼, 브레게는 무브먼트에 실리콘을 쓰거나 하는 등 계속 업그레이드한다. 일견 클래식하지만 무브먼트 등 세부 요소를 보면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도 브레게는 사양에 비해 가격이 살 만하다. 중고 시세도 적당하고. 하이엔드 시계를 사고 싶으나 부담스러울 때,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브레게가 있다. 일부 시계 브랜드는 리셀과 프리미엄 등으로 인해 가격이 너무 높다. 그게 과연 그 시계의 진정한 가치일지 궁금할 때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든다면 저평가된 하이엔드 시계를 찾아보게 되는데, 브레게는 가격에 비해 상당히 훌륭하다. 레퍼런스 넘버가 5로 시작하는 지름 37mm 안팎의 드레스 워치들은 기요셰 다이얼에 골드 케이스인데 중고 가격이 1천만원대로 형성되어 있다. 1천만원이면 큰돈이지만, 고가 시계 분야에서 요즘 1천만원이면 롤렉스밖에 못 산다. 그 돈으로 브레게의 금시계를 살 수 있다면 괜찮은 것 아닌가.
CAR
고든 머레이 오토모티브 T 50
김태영 | 자동차 저널리스트
과거의 차 중에는 좋은 차가 너무 많다. 그래서 ‘나라면 지금 이걸 산다’라는 주제로는 지금 나온 차를 고르겠다. 고든 머레이는 1990년대의 슈퍼카 제조사 맥라렌 황금기를 이끈 엔지니어고, 지금 나와 자신의 회사인 고든 머레이 오토모티브(GMA)에서 그때 기술을 바탕으로 한 차를 만든다. 실제로 T50은 1992~1998년에 생산된 맥라렌 F1과 공통점이 많다. F1 카처럼 운전석이 차량 가운데에 있고, 양옆으로 동승석이 있어 총 세 명의 사람이 탄다. 운전석이 위로 열리는 걸윙 도어다. 요즘 세상에도 6단 수동변속기에 V12 엔진을 고집한다. 내연기관의 황금기라 할 만한, 1990년대의 자동차 기술을 오늘날의 방식으로 잘 다듬어서 만든 차라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지난 30년 동안 발전한 자동차 공학 기술이 더해진다. 자동차 하부에서 공기를 빨아들여 차 뒤로 내보내는 ‘다운포스 팬’ 기술이 대표적이다. 가격은 2백80만 파운드부터 시작하니까 원화로 약 47억 이상이다. 그래도 여력과 의지가 있다면 지금 사야 한다. 이런 차는 앞으로 가격이 많이 오를 게 분명하다. 1993년대에 나온 맥라렌 F1은 지금 1백50억~2백억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WATCH
튜더 블랙베이 54
주현욱 | <아레나> 피처 에디터
롤렉스 서브마리너를 찬 사람을 보면 ‘도대체 어떻게 산 거지’ 하는 생각부터 든다. 가격 때문은 아니다. 오늘날의 서브마리너는 매장에 가도 살 수 없는 시계가 됐다. 서브마리너 품귀 현상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어제오늘만의 일로 그칠 것 같지도 않다. 내가 바라본 차세대 서브마리너는 튜더 블랙베이 54다. 1954년 공개된 튜더 최초의 다이버 워치를 충실하게 복각했다. 오리지널 모델은 출시 당시 이름이 블랙베이가 아닌 서브마리너였다. 가격은 서브마리너의 절반 수준이지만 디테일과 스토리에는 서브마리너와는 또 다른 흥미로움이 있다. 37mm 케이스는 블랙베이 54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스위스 럭셔리 워치 브랜드 중 37mm 이하의 다이버 워치는 아주 드물다. 그런 점에서 블랙베이 54는 차세대 서브마리너 여부와 상관없이 사고 싶은 시계이기도 하다. 2023년 8월 튜더 온라인 사이트 기준 가격은 5백7만원이다.
RECORD
2000년대 레코드
제시 유 | DJ, <하입비스트> 코리아 편집장
특정한 뭔가는 아니고 카테고리 같은 개념이다. 2000년대에 나온 좋은 레코드. Y2K 이야기가 이미 한창인 패션과 마찬가지로 이 시기 사운드도 곧 사람들이 많이 찾고 좋아할 것 같다. 지금 1990년대의 하우스, 테크노 등 댄스음악 레코드는 이미 가격이 많이 올랐다. 2000년대 레코드를 찾는 DJ나 애호가들이 있긴 하지만 아직 그쪽으로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간 건 아니라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다만 2000년대에는 아무래도 바이닐 제작 수량 자체가 90년대에 비해 적기 때문에 가격이 빠르게 상승할 가능성이 있긴 하다. 지금 시점에서 대략적인 가격대를 말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이미 어지간한 좋은 레코드는 다 발견되어 시세가 정해진 듯한 90년대 레코드에 비해, 2000년대 레코드는 ‘디깅’의 원초적 즐거움을 자극할 만한 여지가 남아 있다. 달리 말하자면 5달러 박스, 한국에서라면 1만원 이하 박스에서 꽤 괜찮은 레코드를 발견할 확률이 높다. 거기에 무한에 수렴하는 시간과 물리적 노력을 투자할 애정만 있다면. 하우스, 테크노 등 댄스음악의 경우 한국에서는 신당동의 레코드 가게 ‘정션’이 전문적이다. 요즘은 해외여행도 워낙 자주 가니, 도시별로 특색 있는 레코드 가게를 방문해봐도 좋겠다. 저렴한 레코드는 들어보지 못하게 하는 레코드 가게도 있지만 요즘은 유튜브나 스트리밍 등으로 확인하는 방법도 있으니 휴대폰 배터리만 허락한다면 충분히 음악을 들어보고 살 수 있다. 정제되지 않은 무더기에서 뭔가를 발견하는 재미만큼 즐거운 건 드물다.
FURNITURE
길정본의 자개 3층장
김안나 | 호텔 베르누이 대표
길정본 선생의 자개 3층장이나 5층장이 있으면 좋겠다. 길정본 선생은 1970년대에 ‘흥부놀부장’을 고안해 일본에 많이 판매하셔서 일본에서 유명하다. 보통 장인은 50~60대에 일찍 작고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길정본 선생은 아직 건강히 작품을 만드신다. 작품 세계도 달라서 길정본 선생은 1980~90년대에도 고루하지 않은 자기 스타일을 계속 새로 만들어왔다. 지금까지 몇 번 매물로 만났는데 모두 놓쳤다. 가격을 말할 수는 없다. 지금 자개장 가격은 파는 사람 마음이다. 자개장의 가격은 100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예전의 어느 대통령 집에 있던 자개장은 80년대에 3천만원이었는데 그때 그 가격이면 압구정 한양아파트 3채 가격이었다. 이제는 낙관이 있는 인간문화재의 작품이어야 수백만원 수준, 예전에 1억원 하던 게 그때의 100분의 1 정도다. 대신 수리비와 배송비가 훨씬 많이 들고 수리를 맡기기도 쉽지 않다. 3~4년 전쯤 레트로 카페의 유행으로 자개가 잠깐 팔리기도 했지만 그때 팔렸던 자개들이 지금 다시 매물로 나오는 중이다. 카페 인테리어 3년 가기 쉽지 않거든. 나는 우연한 기회에 호텔을 운영하게 되면서 자개장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방을 전통 방식으로 꾸미기 위해 자개장을 찾다가 수집하기에 이르렀다. 호텔을 찾은 사람들이 보고 감동할 수 있는 것, ‘한국에 이런 게 있구나’라고 깨달을 수 있는 걸 모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길정본 선생의 40~50년 전 작품을 기다리는 중이다.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PERFUME
샤넬 레 젝스클루시프 드 샤넬 오 드 빠르펭 가드니아
원민재 | 구딸 브랜드 마케팅 매니저
가드니아는 치자꽃이다. 한국은 치자꽃을 길거리에서 보기 어렵지만 프랑스나 유럽 등 지중해풍 기후에서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지금 시즌에 많이 피는 꽃이다. 가드니아는 천연 향료로 발향되는 퍼포먼스와 실제의 화학적 퍼포먼스에서 차이가 크다. 향료일 때와 향수일 때 향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샤넬 향수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는 꽃이 가드니아와 카멜리아다. 샤넬은 그만큼 가드니아의 향을 잘 표현하는 브랜드이고. 가드니아가 속한 계열의 꽃을 화이트 플로럴이라고 하는데, 화이트 플로럴을 잘 다루는 어떤 브랜드보다도 샤넬 가드니아처럼 가드니아 향을 100% 구현한 향수는 없다. 이 향수를 지금 사면 좋은 이유는 지금이 치자꽃 시즌이기 때문이다. 구딸 브랜드 중에서는 구딸파리의 로즈 압솔뤼를 지금 사두면 좋다. 로즈 압솔뤼는 정말 1백여 가지 로즈 압솔뤼 성분이 들어간 향수다. 지금 기후변화 때문에 이렇게 천연 원료가 들어간 향 제품은 원가가 오르는 추세다. 이 제품도 4년 전에는 30만원대였는데 지금은 50만원대에 이를 정도로 가격 상승 추세가 어마어마하다. 특정 향료의 경우에는 이제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과 수급 자체가 문제인 정도가 되었다. 자연 원료 함량이 높은 압솔뤼 향수는 살 만하다고 본다.
INCENSE
스머지 스틱
김기환 | 테크회사 홍보팀
요즘은 인도풍의 인센스 스틱이 아니라 스머지 스틱을 쓴다. 인센스 스틱은 특정 지역의 향을 카피한다는 느낌이 강해서 예전처럼 잘 쓰지 않게 되더라. 스머지 스틱은 로즈메리 나뭇가지를 말린 게 대부분이라 조금 더 자연에 가까운 향이 난다. 화재 알람이 울리지 않는 선에서 숲에 있는 듯한 향을 느낄 수 있는 점이 좋다. 스머지 스틱을 켜두면 집에서 잠시 캠핑을 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주말이나 집에서 여유를 부릴 수 있을 때 스머지 스틱을 켜곤 한다. 촉촉한 초가을에 빗소리를 들으면서 자연의 내음을 맡는 기분을 실내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게 스머지 스틱의 장점이다. 스머지 스틱이 편한 물건은 아니다. 불을 붙이면 금방 불이 꺼져서 부단히 노력해야 계속 향을 피울 수 있다. 그런 특징도 스트리밍 시대에 LP를 듣는 것처럼 정성을 들이는 기분이라 좋다. 가격은 1만~2만원대고 요즘에는 웬만한 편집매장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나도 성수동의 편집매장에서 샀다. 최근 소개팅이 있었는데 약속 장소에 30분쯤 일찍 도착해 근처를 산책하다 구매했다. 스머지 스틱은 내 걸로 사고, 성냥처럼 생긴 아로마 향을 하나 사서 소개팅 상대에게 주었다. 그녀와는 잘되지 않아 지금 혼자 스머지 스틱을 피우고 있다.
COFFEE GRINDER
말코닉 EK43
조원진 | 커피 칼럼니스트
좋은 커피를 만들기 위한 조건은 좋은 그라인더다. 좋은 그라인더 하나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 그래서 실력 있고 영리한 바리스타는 그라인더에 먼저 투자한다. 커피머신의 성능이 모자라도 커피 그라인딩만 잘되면 어느 정도 목표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라인더로 갈아낸 커피의 결과물이 매번 다르면 내 실력 혹은 머신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결과물의 품질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가정에서 커피를 내린다고 해도 좋은 그라인더에 먼저 투자하는 게 낫다고 본다. 가정에서 에스프레소 머신을 살 경우는 많지 않고, 좋은 그라인더 하나만 있으면 핸드드립에 더 이상 필요한 설비는 없다. 그라인더계의 하이엔드라면 3백만~4백만원 정도인데 다른 커피 관련 기계와 달리 그라인더는 고장도 잘 안 나고, 좋은 그라인더라면 감가상각도 별로 없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싶다면 처음부터 말코닉 EK43이나 디팅 807 등의 고급 그라인더를 사면 좋다. 아무래도 예산이 부담스럽다면 30만원대 수준으로 가격이 형성된 코만단테의 핸드밀 정도도 좋다. 이 정도 하나 사두면 나중에 계속 쓴다. 나도 말코닉을 장만해서 아주 만족하며 쓰고 있다.
WINE
샤토 띠뱅을 비롯한 가메 품종 와인
백문영 | <아레나> 컨트리뷰팅 에디터, 주류 칼럼니스트
가메는 와인 애호가에게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포도 품종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보르도 와인, 지금은 부르고뉴 와인의 인기가 높아지는 가운데 여전히 가메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합리적이다. 그래서인지 와인 애호가들은 아직 가메를 높이 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나라면 지금 가메를 마실 것 같다. 가메는 ‘보졸레 누보’로 유명한 프랑스 보졸레 지역 품종이다. 보졸레 누보 말고도 보졸레 지역에는 좋은 가메 품종 와인이 많다. 흔히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를 가볍다고 하는데 가메는 훨씬 가벼운 맛이다. 로제 와인처럼 보디감도 가볍고 산뜻하다. 이 책이 나올 때쯤이면 가을일 텐데 가을부터 나올 송이와도 잘 어울리고, 추석에 으레 즐기는 기름진 전 같은 음식과도 잘 어울릴 것이다. 한식이 기름진 듯하면서도 은근히 가벼워서 가메처럼 가벼운 와인과도 잘 맞는다. 서양 음식과 곁들인다면 참치가 들어간 샐러드나 키슈 등 앙트레류와 잘 맞겠고, 붉은 살 고기가 아닌 닭고기 등의 흰 살 고기가 잘 맞겠다. 11월이면 보졸레 누보 시즌이 돌아오는데, 가메는 지금 마셔도 좋고 지금 사둔 뒤 오랫동안 두고 마셔도 숙성 잠재력이 충분히 있다. 가격은 내가 언급한 ‘샤토 띠뱅’이 보틀 숍 기준 6만~8만원 정도다.
KOREAN DRINK
미소주방 탁주와 한영석 청명주
차주현 | 술을 좋아하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뮤직컨텐츠 담당자
당장 사서 마실 술이라면 미소주방의 탁주. 그곳은 매달 색다른 부재료로 탁주를 만든다. 매달 다른 재료로 술을 만든 뒤 그다음 달에는 같은 술을 만들지 않는다. 탁주니까 오래 보관할 수는 없지만 그런 이유로 이 술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전통주는 요즘 인터넷으로 많이 팔지만 미소주방 술은 인터넷으로 살 수 없다. 부재료가 많이 들어가서 전통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 요즘은 전통주를 주로 취급하는 보틀 숍도 많이 있으니 그런 곳을 이용하면 된다. 오래 두고 마실 수 있는 술이라면 한영석 청명주가 있다. 한영석 청명주는 맑은 술인 약주인데 매번 다른 효모를 쓴다. 그래서 위스키로 치면 배치마다 맛이 다른 것처럼 한 번 뽑아낼 때마다 맛이 다르다. 한영석 청명주는 팬도 많고, 매번 다른 술을 모으는 사람들도 많다. 한영석 청명주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와 크라우드펀딩 등으로 살 수 있다. 둘 다 전통주를 취급하는 술집에서 즐길 수도 있고. 가격은 보틀 숍 기준으로 미소주방이 1만원 중반, 한영석 청명주는 2만원대 후반이다.
ART BOOK
김범의 <변신술>
황다나 | 큐레이터
7월 27일부터 12월 3일까지 리움에서 <바위가 되는 법>이라는 전시를 하고 있다. 그 전시 이름은 아티스트 김범이 쓴 책 <변신술> 챕터 중의 하나다. 김범 작가는 2010년 아트선재에서 개인전을 할 때 처음 알았다. 김범의 작품은 다른 작가의 작품과는 달리 개념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면이 있었다. 우리는 자신의 편견과 사회화로 인해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지 않고 지식으로 믿게 되는데, 김범 작가는 그런 걸 뒤집어볼 수 있는 계기를 제안한다고 해야 할까, 그런 인상을 받았다. 왜 우리에게 바위가 되라고 했는가, 그 질문 자체가 인식을 전환하게 해주기 때문에 인상적인 전시였다. 나는 도록을 매번 사는 편이 아니다. 굳이 산다면 그 전시가 개인적으로 감명 깊었거나, 전시에서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은 뭔가가 있을 때 산다. 그런데 김범의 <변신술>은 계속 기억이 나는 책이었다. 전시 때도 그 책을 만지작거리다 내려놓고 안 샀는데 그런 책은 그때그때 사는 게 좋겠더라. 계속 생각났는데 아트북이 그렇듯 한 번 못 사니 계속 찾기가 어려웠다. 지금 독립 서점에서 소량 입고했다. 가격은 2만5천원. 이번엔 잊지 않고 사려 한다.
RECORD
호소노 하루오미의 모든 앨범 CD
소요 | 그래픽 디자이너
작년쯤부터 앨범은 바이닐이 아닌 CD로만 사고 있다. 내가 CD를 본격적으로 사기 시작한 건 일본의 2000년대 초반 일렉트로닉 장르를 모으면서부터다. CD는 바이닐과 달리 부클릿이 들어가 볼거리가 많다. 당시는 J-팝이 인정받기 시작한 시기라 CD의 품질이 좋고 패키지 프린트 상태도 깔끔하다. 무엇보다 그래픽 디자인이 훌륭해 내게는 일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내가 지금 가장 열심히 찾고 있는 건 호소노 하루오미의 앨범들이다. 호소노 하루오미는 류이치 사카모토, 다카하시 유키히로와 함께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MO)를 결성했다. YMO는 지금까지 일본 역대 최고의 음악 그룹으로 평가받는다. 안타깝게도 다카하시 유키히로와 류이치 사카모토는 올해 초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이 남긴 앨범들은 중고 음반 시장에서 가격이 크게 뛰면서 더욱 구하기 힘들어졌다. 나는 한 번 산 앨범은 되팔지 않기 때문에 추후의 중고 가격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나처럼 호소노 하루오미의 팬이라면 지금부터 열심히 디스콕스를 찾아보는 게 좋겠다. 선생님 건강하세요!
CAR
1973년식 포르쉐 911 카레라 RS 2.7
정영철 | 카 클럽 브랜드 ‘에레보’ 대표
이런 기사에 클래식 포르쉐를 추천하는 게 클리셰라는 걸 안다. 하지만 나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1972년 파리 모터쇼에서 최초 공개된 포르쉐 911 카레라 RS 2.7은 나를 포함한 자동차 마니아의 드림카다. 911 최초의 RS 시리즈 모델로 레이싱카가 아닌 양산차에 스포일러를 단 건 이 차가 최초다. 덕분에 지난 포르쉐 911 60년 역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모델 중 하나로 늘 언급된다. 911 카레라 RS 2.7은 오늘 사는 게 가장 싼 차다. 이미 가격이 오를 대로 올랐지만 빈티지 카의 가격에는 상한선이 없다. 보통 차를 살 때는 되팔 때 유리한 조건을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차는 아주 유리하지만 내게 큰 의미는 없다. 살 수만 있다면 죽을 때까지 되팔 일은 없으니까. 2.7 수평대향 공랭식 엔진이 쏟아내는 사운드만으로 이 차는 충분히 소장 가치가 있다. 구매할 거라면 클래식 카 전문 딜러나 경매 사이트를 뒤져야 한다. 현재 한 해외 사이트에서는 상태 좋은 모델이 약 14억6천만원에 거래 중이다.
BOOK
<반지의 제왕> 황금가지 출판 버전
송영남 | 작곡가
한국에 처음 소개된 정식 라이선스 <반지의 제왕> 소설은 출판사 황금가지에서 나왔다. 나는 영화보다 책으로 먼저 <반지의 제왕>을 접했는데, ‘세상에 이런 책이 있구나’ 하며 받았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는 몰랐지만 황금가지의 <반지의 제왕>에는 여러 번역 오류가 있었다. 2021년에는 출판사 아르테가 <반지의 제왕> 개정판을 냈다. 번역 오류를 바로잡고 영문 최신판에 적용된 수정을 반영했다. 원문으로 읽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가장 정확한 텍스트를 전하는 <반지의 제왕>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추천하고 싶은 건 <반지의 제왕> 황금가지 버전이다. 개정판에서는 원작자 J. R. R. 톨킨이 썼던 일부 고유명사가 우리말화됐다. 그 미묘한 차이를 비교하며 읽는 것이 고전을 읽는 기쁨이 아닐까? <반지의 제왕> 황금가지 버전은 이제 헌책방이나 알라딘 중고서점을 통해서만 구할 수 있다. 확인해보니 6권으로 구성된 전권 세트가 3만원대에 거래 중이다. 참고로 개정판 세트 가격은 19만6천2백원.
GAME
드림캐스트
뷰티풀 디스코 | 프로듀서
보통 ‘빈티지 콘솔 게임’ 하면 플레이스테이션을 떠올리기 쉽다. 나 역시 플레이스테이션 1과 2를 갖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나온 콘솔 게임기 중 소장 가치가 더 높은 건 드림캐스트라고 본다. 드림캐스트는 <소닉 어드벤처>로 유명한 일본 게임 제작사 세가에서 만든 게임기다. 플레이스테이션 1에 대적하기 위해 나온 기대작이었지만 아쉽게 후속 모델이 출시되지는 못했다. 내게 드림캐스트가 특별한 건 드림캐스트에서만 플레이할 수 있는 특별한 게임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L.O.L.: 랙 오브 러브>다. <L.O.L.: 랙 오브 러브>에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게임 스토리 및 사운드트랙으로 참여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곡 ‘Dream’은 지금도 스포티파이의 류이치 사카모토 리스트에서 상단에 올라와 있다. 각종 레트로 열풍이 불었으니 언젠가 2000년대 콘솔 게임기 차례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구매를 위해선 이베이를 뒤져야 한다. 제품 상태에 따라 가격차가 큰데 나는 박스까지 포함된 거의 새 제품을 2년 전 18만원에 구입했다.
LUGGAGE
리모와 트로피카나 시리즈
조상민 | 비디오그래퍼
처음 봤을 때부터 ‘이건 무조건 사야 된다’ 싶었다. 리모와 트로피카나 케이스는 리모와에서 만든 카메라 전용 케이스다. 영화 제작진, 포토그래퍼, 리포터가 열대지방의 습기와 극지대의 추위 속에서도 장비를 운반할 수 있도록 1970년대 처음 출시했다고 한다. 지금은 단종된 탓에 새 제품을 살 수 없다. 구하려면 중고나라나 번개장터를 뒤져야 한다. 나는 작년에 한 촬영장에서 촬영감독님이 쓰는 것으로 처음 접했다. 그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중고 사이트에 ‘리모와’ ‘트로피카나’ 알림 설정을 해뒀고, 지금은 각기 다른 사이즈로 5개를 갖고 있다. 물론 여섯 번째 케이스를 구하는 중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디자인이다. 다른 케이스에 비해 무겁긴 하지만 은빛 알루미늄 케이스에 카메라를 담고 있으면 촬영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내구성도 훌륭하다. 실제로 매일같이 촬영장에 함께 다니면서 여기저기 부딪히고 긁혔지만 고장 없이 잘 쓰고 있다. 되팔 때 가격 따위 생각하지 않는다. 팔 일이 없으니까. 가격대는 내가 구매한 제품 기준으로 40만원대에서 1백만원 후반이다.
CAMERA
펜탁스 67II
신동훈 | 포토그래퍼
이베이 장바구니에는 5개월째 담겨 있는 카메라가 하나 있다. 펜탁스 67II다. 사진을 찍다 보면 여러 클라이언트를 만난다. 그분들이 내게 언제 어떤 톤의 사진을 요구하게 될지는 만나기 전까지 모른다. 그래서 늘 다양한 카메라를 구비하려고 애쓴다. 여태까지 샀던 카메라들을 하나도 되팔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사실 펜탁스 67II는 ‘나라면 이걸 사겠다’ 하고 추천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유명한 제품이다. 지금도 유럽의 많은 패션 사진가들이 67II를 쓰고 있다. 67II는 되팔 때 가격을 걱정할 물건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 단종된 모델이고 앞으로 새롭게 출시될 것 같지도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좋은 물건은 더더욱 줄어들 테니 하루라도 빨리 사길 권한다. 실제로 장바구니 속 카메라의 가격은 5개월간 야금야금 오르더니 지금은 5백만원 가까이 한다. 보디와 단렌즈 세트 기준이다.
CLOTHING
1990년대 반자켓 바서티 재킷
김동석 | 빈티지 숍 ‘테이크 아이비’ 대표
반자켓은 일본에서 가장 먼저 프레피 룩 스타일을 선보인 패션 브랜드 중 하나다. 아메리칸 빈티지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봤을 사진 에세이집 <TAKE IVY>도 반자켓에서 만들었다. 반자켓은 일본의 빈티지 숍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확실한 마니아층이 있어 비교적 가격이 높게 형성되어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아직 그 진가가 알려지지 않아 중고장터에서 꽤 저렴한 가격으로 구할 수 있다. 반자켓에서 하나만 사야 된다면 단연 바서티 재킷이다. 요즘 여러 국내 브랜드에서 나온 바서티 재킷과 달리 1980~90년대 나왔던 바서티 재킷은 길이가 짧고 소매통과 품이 여유롭다. 마이클 잭슨이 살아생전 도쿄에 갔을 때 입었던 빨간색 바서티 재킷도 반자켓 제품이다. 단 국내에서는 매물이 많지 않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본에서는 30만~40만원에 판매된다.
AUDIO
소니 SRS-X99
차종현 | <아레나> 디지털 에디터
소니가 한때 보스나 뱅앤올룹슨처럼 스펙이 좋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만들던 때가 있었다. 그 전략으로 만든 모델 중 마지막 모델이 SRS-X99다. 아는 사람은 아는 스피커계의 명기다. 보통 블루투스 스피커보다 크기도 커서 출력이 좋고, 확실히 음질이 깨끗하고 밸런스가 훌륭하다. 디자인도 멋있고. 보통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혹은 하이엔드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고 싶지만 뱅앤올룹슨이나 보스 말고 다른 걸 원하는 사람들이 이 스피커를 물어물어 찾는다. 소니는 이런 제품을 더 이상 출시하지 않기로 했는지 이 제품의 새 모델이 나오지 않고, 앞으로 이런 하이엔드 지향 블루투스 스피커는 나오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일부 물량이 남아서 지금 모 백화점 몰에서 신품 대비 30% 정도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나도 중고로 40만원 정도 주고 구매했다. 만족스럽게 쓰고 있다.
AUDIO
빈티지 웨스턴 일렉트릭 555_W 드라이버
권요섭 | ‘헬카페’ 대표
미국에서 1926년부터 1929년까지 생산한 스피커 드라이버 유닛이다. 워낙 오래된 드라이버라 깨끗한 걸 구하기 힘들다. 복각도 1천5백만원이 넘으니 상태가 깨끗한 오리지널은 2천만~3천만원에 육박할 것 같다. 이건 스피커 드라이버라 유닛밖에 없어서 이 드라이버를 산 뒤 별도의 혼 등 소리를 울려줄 장치를 찾아 스피커를 만들어야 한다. 그걸 다 꾸리면 크기부터 상당히 커질 거고. 그런데도 갖고 싶은 이유는 이 당시 스피커가 내는 자연스러운 소리 때문이다. 요즘 스피커에 비하면 물리적 스펙이 떨어질 수는 있다. 요즘 스피커는 고역도 저역도 엄청나게 풍부하니까. 그런데 어차피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청 주파수 영역은 정해져 있으니 소리가 아니라 음악을 듣는다면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 스피커는 드라이버가 하나라서 풀레인지 스피커 느낌으로 많은 대역을 자연스럽게 재생할 수 있다. 만약 이 드라이버를 구해 사운드 시스템을 꾸리고 음악을 감상한다면 야노시 슈타커가 연주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프렐류드를 듣고 싶다.
CAR
폭스바겐 투아렉 1세대 가솔린 3.2 VR6
박찬용 | <아레나> 피처 디렉터
중고차 가격은 꾸준히 떨어지다가 정확히 특정할 수 없는 어떤 시점을 지나면 반등한다. 그 반등하는 구간을 지나면 중고차가 영타이머나 클래식 카가 된다. 반등의 폭은 자동차의 가치에 따라 다르고, 자연히 그 반등의 폭이 자동차의 역사적인 가치가 된다.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은 차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해당 모델의 1세대인 것. 해당 카테고리, 혹은 자사의 역사에서 처음 나온 것, 그리고 무엇보다 차 자체가 좋은 것. 그런 차들은 1980년대든 1990년대든 클래식 카가 되는 지위를 누렸다. 1980년대의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W126이 그랬고, 그다음 세대인 W140은 클래식 카로 가는 가격 저점의 골짜기를 지나는 중이다. BMW의 3세대 3시리즈 E36은 이제 웬만한 중고 3시리즈보다 높은 가격을 인정받고 있다. 2000년대 초반의 차들도 이제 슬슬 중고차를 넘어 클래식 카가 되는 분위기고, 그중에서도 내가 눈여겨보는 차는 2002년에 나온 투아렉 1세대다.
투아렉 1세대는 폭스바겐 브랜드에서 고급화 제품을 시도하던 시대의 과도기적 욕구가 들어 있는 모델이다. 당시 폭스바겐은 고급 세단 페이톤 등을 만들며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었다. 고급화 제품을 시도한 만큼 레이블만 폭스바겐일 뿐 내장재의 세부는 나무나 가죽 등 요즘 고급차보다 더 좋은 걸 썼다. 좋은 건 내장 사양만이 아니다. 투아렉 플랫폼인 PL1은 같은 그룹의 포르쉐 카이엔과 아우디 Q7도 공유하던 명 플랫폼이다. 투아렉 고성능 모델인 5.0L 디젤 엔진은 보잉 747을 끌 정도의 괴력 퍼포먼스를 선보인 이력이 있다. 무게가 60톤인 오스트리아의 레오파르트 2 탱크가 밟고 가도 모습을 유지할 정도의 견고함을 선보인 적도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인류에게 점잖음이라는 게 남아 있었다. 투아렉 1세대가 그 시대의 증거다. 투아렉은 괴물 같은 성능과 고귀한 뼈대를 갖췄음에도 지금 눈으로 보면 티구안과 큰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검소하게 생겼다. 그런 검소함이 기품이라 믿는다면 투아렉은 지금이라도 사서 오래된 옷 기워 입듯 타는 차다. 마감 중인 2023년 8월에 확인한 투아렉 3.2의 현 시세는 5백만원. 제네시스 G70의 선수금도 안 될 값으로 2000년대 초반 독일의 품위가 담긴 프리미엄 SUV를 살 수 있다. 내연기관의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은 대배기량 4.2L 엔진에 눈이 갈지도 모르지만, 실보유와 운용을 생각한다면 엔진 실린더는 적은 게 낫다. 실린더가 많아질수록 고장이 날 수학적 확률이 높아지고, 이는 즉 치솟는 수리비를 뜻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관점에서 볼보 XC90 1세대도 눈여겨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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