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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팡 피프티 패덤즈 속 고급 사양을 느끼며 알게 된 것들.

UpdatedOn August 0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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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다. 블랑팡 피프티 패덤즈의 첫인상이었다. 개인적으로 케이스 지름 36mm 이하의 시계는 차지 않는다. 내 손목이 가늘기도 하고 작은 시계를 좋아하기도 한다. 내가 깐깐하게 군다 쳐도 블랑팡 피프티 패덤즈의 지름은 좀 컸다. 45mm. 그런데 실제로 시계를 받아보자 묘하게도 별로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러그가 짧았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이 시계는 넓게 퍼지긴 해도 팔에서 헛도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런 첫인상부터 지금까지, 이 시계는 계속 반전의 고급품이었다.

이 시계는 요즘 시계들이 내세우는 편리함과 다른 곳에 있다. 밴드 사이즈는 나사로 조절한다. 스트랩을 교체할 때도 나사를 풀어줘야 한다. 요즘은 고급 시계도 스트랩 교체를 쉽게 하는 게 업계의 추세다. 피프티 패덤즈는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업계의 추세를 역행한다. 케이스 뒤도 스테인리스 스틸로 마무리해 무브먼트가 보이지 않는다. 요즘 비슷한 성능의 방수 시계 중에서도 사파이어 크리스털로 케이스백을 마무리해 무브먼트를 보이게 한 시계가 많다. 고급 시계나 블랑팡에 대한 기본적인 인지가 없다면 이 시계는 그냥 무겁고 비싼 시계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 모든 게 블랑팡 피프티 패덤즈의 놀라운 부분이다. 블랑팡 피프티 패덤즈는 비슷한 가격대의 시계에서 볼 수 없는 고급스러운 디테일을 갖췄다. 일례로 다이얼 가장자리에 도넛처럼 두른 베젤. 보통 다이버 시계 베젤의 소재는 스틸이나 세라믹이다. 피프티 패덤즈 베젤은 스틸도 세라믹도 아닌 반사광을 낸다. 비결은 베젤을 사파이어 크리스털로 마무리한 것. 그 덕에 거북하지 않게 반짝이며 베젤 안의 슈퍼 루미노바 야광 도료도 무사하다. 세라믹이나 스틸 위에 새겨진 야광 도료는 시간이 지나면 벗겨지기도 하는데 피프티 패덤즈는 그럴 일이 없다. 상당히 고급스러운 디테일이지만 피프티 패덤즈 어디서도 이 사실을 자랑하는 문구가 없다. 올드 스쿨 럭셔리는 그런 것이다. 생색이 없다.

블랑팡의 올드 스쿨 럭셔리는 시계 뒤로도 이어진다. 시계 안에 들어 있는 무브먼트, 블랑팡 1315는 요즘 세상이라면 개발되기 힘든 고급 무브먼트다. 무브먼트의 고급스러움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어떤 기능이 있는가, 어떤 세공을 했는가. 블랑팡은 시, 분, 초, 날짜만 보이는 ‘타임 온리’ 무브먼트도 공들여 만든다. 1315는 16년 전인 2007년 개발되었음에도 요즘 시계보다 긴 파워 리저브인 1백20시간을 기록한다. 기계식 시계의 동력원인 태엽을 세 개나 넣은 ‘트리플 배럴’을 구현했기 때문이다. 각 부위 세공도 물론 훌륭하다.

블랑팡 피프티 패덤즈는 어느 면에서나 요즘 시계의 경향과 다르다. 요즘 시계는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깐깐한 원가관리를 동시에 잡으려 하기 때문에 고급스러운 무브먼트를 잘 쓰지 않는다. 만약 사용한다면 온갖 수를 써서 알린다. 사파이어 크리스털 케이스백을 만들거나 다이얼에 ‘1백20시간 파워 리저브’라고 써두거나. 블랑팡은 ‘왜 그러는 거예요’라고 묻고 싶을 정도로 시계에 대한 자랑을 아무것도 적어두지 않았다. 사실 요즘 럭셔리 제품의 분위기를 요약하면 침소봉대다. 피프티 패덤즈에는 침소봉대가 없다. 좋은 의미의 올드 스쿨 워치메이커다.

시계를 찰수록 블랑팡의 고즈넉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시계는 컸고 내가 차던 시계에 비해 무겁긴 했지만 이물감은 거기까지였다. 운전이 편안한 대형 세단처럼 중후한 느낌이 들었다. 며칠 차고 다니다 보니 정이 든 것 같기도 하다. 잠깐 다른 걸 차고 싶어 다른 시계를 착용한 날에도 집에 돌아와 보면 피프티 패덤즈의 초침이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1백20시간 파워 리저브니까.

블랑팡 피프티 패덤즈는 고집의 시계다. 존재 자체로 고집이고, 사람들도 그 고집을 인지하고 산다면 즐거울 것이다. 이 시계의 여러 요소와 각종 전설이 눈에 익으면 다른 시계를 구하고픈 마음이 잘 들지 않는다. 결국 럭셔리는 의미 부여와 고집의 세계다. 그 관점에서 보면 블랑팡이야말로 티 내지 않는 럭셔리다. 부자가 무심코 하나 사든, 평생 피프티 패덤즈가 꿈이었던 사람들이 장만하든, 이 시계는 착용자의 교양과 세계관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나는 오늘날 굳이 이 시계를 차는 사람을 만난다면 조금 호감이 생길 것 같다.

이런 게 끌린다면
‣ 언제까지나 유행을 타지 않을 역사적 다이버 시계라는 상징성
‣ 역사적 모델임에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희소성
‣ 고급 무브먼트, 사파이어 크리스털 베젤 등 눈에 안 띄는 고급 디테일


이런 게 망설여진다면
‣ 나 빼고 세상 사람 아무도 모르는 고급 디테일과 낮은 브랜드 인지도
‣ 스트랩을 교체할 때와 버클 사이즈를 바꿀 때도 나사를 풀어야 하는 낮은 편의성
‣ 다 좋은데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크기와 가격

블랑팡 피프티 패덤즈 오토마티크

레퍼런스 5015 1130 52A 케이스 지름 45mm 두께 15.5mm 케이스 소재 스테인리스 스틸 방수 300m 버클 폴딩 버클 스트랩 세일 캔버스 무브먼트 칼리버 1315 기능 시·분·초 표시, 날짜 표시 구동 방식 오토매틱 시간당 진동수 28,800vph 한정 여부 없음 가격 2천17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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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박찬용
Photography 신동훈

2023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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