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 맨의 기계정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킴 존스의 5주년을 맞이한 디올 맨 2024 S/S 컬렉션은 모두에게 감회가 남다른 컬렉션이었다. 킴 존스는 이번 컬렉션을 위해 디올의 상징적인 정원을 건축했다. 텅 비어 있던 너른 은색 공간은 SF 영화 세트장에 가까웠다. 쇼의 시작을 알리듯 어두웠던 조명이 다시 밝아지고 바닥에 타일처럼 깐 트랩도어가 열리는 게 쇼의 오프닝이었다. 51개의 트랩도어 아래에 있던 모델들이 순차적으로 올라와 런웨이를 걷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모두가 주의를 기울였다. 킴 존스는 꽃모자를 쓴 소년들이 바닥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식물이 자라나는 유기적인 모습을 구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당나라 시대의 꽃 장신구 ‘룽화(Ronghua)’를 더한 비니로 독창적이고 사실적인 정원의 디테일을 살렸다. 비니 아래로 떨어지는 룩들은 크리스찬 디올 전성기 시절의 여성복부터 남성복까지 계승해온 선대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킴 존스 스타일로 재해석하고 변형했다. 오늘의 남성복에도 영향을 미친 이브 생 로랑의 모던한 실루엣을 적용했고, 클래식한 남성 아이템에 트위드, 자수, 카나주와 같은 여성복의 방식을 녹였다. 여기에 명랑한 네온 컬러, 격식을 비트는 장식과 패턴의 매치처럼 뉴 룩과 뉴웨이브를 넘나드는 킴 존스의 감각이 만발한 룩들은 하나같이 화려하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았다.
드리스 반 노튼의 유려한 컬러웨이
드리스 반 노튼은 다시 이색적인 우아함을 탐구한다. 간결하고 길게 떨어지는 실루엣을 강조한 이번 컬렉션은 자연스럽게 흐르는 듯한 감각을 표현했다. 늘어진 스쿱넥, 길게 뻗어 내린 래글런 소매, 물결치는 코트와 바짓단으로 남성적인 테일러링을 부드럽고 유연하게 풀어냈다. 인위적인 실루엣을 배제한 가벼운 비율과 여린 소재로 한동안 잊혔던 조용하고 섬세한 남성상에 주목했다. 스타일링 역시 가는 목걸이와 벨트 정도만 더할 뿐 복잡하고 장식적인 것들을 내려놓았다. 대신 서로 다른 패턴과 컬러, 소재의 아이템들로 규정되지 않은 스타일을 완성했다. 지나치게 단조롭지도 크게 거슬리는 것도 없는 느슨한 스타일. 시간을 덧입은 것처럼 깊이 있고 담담한 브론즈, 머스터드, 에크루, 라일락, 올리브 컬러 톤이 주를 이룬 덕분일 테다. 여기에 메탈릭한 시퀸과 벨벳부터 피부가 드러나는 니트와 시스루, 실크를 조화롭게 사용하고 색채의 조합과 농도를 달리했다. 개입의 여지를 열어 조화로움을 살린 드리스 반 노튼의 컬렉션을 감상하고 있자니 철저하게 계산하고 재단된 스타일에 누적된 피로감이 한결 가시는 듯했다.
아미의 1990’s 미니멀리즘
알렉산드르 마티우시는 1990년대의 미니멀리즘에 집중했다. 기본에 충실해 실용적이고 완성도 있는 그 시절 스타일이 심플한 우아함, 진지함을 추구하는 아미의 스타일과 맞닿아 있다. 2024 봄·여름 컬렉션은 1930년대에 문을 연 스포츠 센터의 테니스 클럽에서 선보였다. 콘크리트 건축물의 단순하고 인더스트리얼 분위기를 갖춘 이 공간 역시 1990년대 패션쇼 장소로 자주 애용됐다고. 프랑스 배우 뱅상 카셀이 쇼의 오프닝 모델로 서 런웨이를 압도했고, 1990년대와 2000년대 패션 매거진과 런웨이를 누비던 톱 모델 기네비어 반 시누스(Guinevere Van Seenus)도 등장했다. 이외에도 리우 웬, 아메리카 곤잘레스, 박태민, 김상우 등 다양한 세대와 이미지의 모델들을 캐스팅해 시대를 반영하는 아미의 디자인 정체성을 다시금 강조했다. 아이코닉한 스트라이프와 테일러링, 파리지앵 시크로 요약할 수 있는 이번 컬렉션에서 처음으로 선글라스를 론칭하기도 했다.
로에베의 새로운 실루엣
로에베 컬렉션에선 린다 벵글리스(Lynda Benglis)의 청량한 분수 이미지를 넣은 초대장을 보내왔다. 쇼장에도 그녀가 만든 분수 작품 세 개를 설치했는데, 유동적인 물성을 포착한 비정형의 형태가 유리 천장으로 쏟아지는 자연광을 받아 부서지듯 빛났다. 조너선 앤더슨은 색다른 관점으로 남성복에 접근해 독특한 비율의 실루엣을 완성했다. 마치 시퀸 소재처럼 전체를 크리스털로 가득 채운 셔츠와 니트 폴로, 아가일 니트 아래에는 여지없이 허리춤까지 올라온 극단적인 하이웨이스트 팬츠를 매치했다. 용솟음치는 듯한 분수 작품을 유유히 지나는 모델들은 하나같이 팔을 바짝 올리고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구부정하게 워킹했는데, 그 모습마저 고아한 미장센으로 남았다. 초대형 핀을 꽂은 패브릭 스와치 모티브 톱과 비늘처럼 얇게 가공한 가죽으로 신발부터 톱까지 하나의 수트로 완성한 룩 역시 레디투웨어와 동떨어진 만큼 실험적이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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